단상2015. 10. 20. 23:16

지난 10월 3일부터 10월 9일까지 파리 여행을 했다. 딱히 파리에 대한 로망이 있다거나 파리에 꼭 가야겠다고 오랫동안 생각한 것은 아니였지만, 단지 동생이 파리에 있었기에 파리에 갔다. 여행 후 뭔가 거창하게 정리하려다 보니, 뭔가 부담이 되어 여태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몇자 끄적인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 필적할만한 글을 쓰고 싶지만.....

1. 파리의 색은 정말 예쁘다. 파리의 건물과 거리 곳곳의 가로수, 그리고 단풍은 정말 조화롭다. 건물들이 주로 상아색이어서 마치 도시 전체가 상아색 도화지에 수 놓여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디에서 사진찍어도 화보가 된다. 물론 나는 화보같은 사진을 못건졌다. 모델이 별로여서.

2. 하늘이 유달리 파랬다. 우리나라보다 하늘이 더 낮고 가까이에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파리의 하늘을 보며 빈센트 반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 왜 하늘을 그렇게 그렸는지 이해가 되었다.

3. 정원과 공원이 많있다. 조금만 걸어도 공원을 볼 수 있었다. 친구가 추천해준 뤽상부르 공원은 여행 기간 매일 가볼만한 곳이었고(나는 시간이 아까워서 한번밖에 못갔지만), 로뎅 미술관의 정원,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퐁텐블로 성의 정원 모두 예뻤다. 퐁텐블로 성의 정원은 비가 많이 와서 제대로 못봐서 아쉬웠다. 그리고 심지어 공동묘지(페르 라쉐즈)도 공원같이 꾸며져 있었다.

4. 어디에서든 에펠탑이 보였다. 파리에 가서야, 에펠탑을 싫어했던 모파상이 에펠탑이 유일하게 안보이는 에펠탑의 레스토랑을 자주 찾았다는 이야기를 이해했다.

5. 도심이나 정원에서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러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차가 옆에 쌩쌩 다니는데도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이 인상깊었다. 우리 나라는 러닝할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인데, 파리는 어디에서든 러닝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해외에서 러닝하는 것이 로망이었었는데, 짐만 많아질 것 같아서 안챙겨 간게 후회되었다.

6. 파리는 생각보다 작다. 서울 면적의 6분의 1가량. 마음만 먹으면 2~3일이면 파리 대부분을 다닐 수 있을 듯. 하지만 막상 파리를 떠나려니 일주일이 너무 짧았다. 참고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면적을 합친 것보다 작다. 방금 네이버 찾아봄.

7. 파리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개인적으로 에펠탑, 몽마르트 언덕, 페르 라쉐즈 공동묘지였다. 사실 박물관, 미술관은 많이 다녔지만 안가면 나중에 후회될 것 같아서, 의무감으로 갔었었다. 그리고 내심 나에게도 스탕달과 같은 기질이 있을까 기대했었지만,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본 모네의 <수련>.

8. 역시 파리는 여자의 도시. 아마 내가 여자였다면 즐길거리가 훨씬 많았을텐데.

여행하는 동안 걷고, 걷고, 또 걸었다. 혼자, 때론 동생과 걸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 한국에 두고온 고민들에 대해서 다시한번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막상 한국에서는 골몰했던 그 고민들이 커보이지 않은 것 같아서 당황스러웠다.

여행 마지막날 페르 라쉐즈에서 봤던 묘지는 영혼이 거처하라는 것 마냥 집모양이 많았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집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단서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여러 유명인사들의 묘지를 지나면서 화려한 인생도 종말은 허무하다는 것도 느꼈다. 하지만, 꺼이꺼이 울던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생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결국은 허무한 게 인생이지만 살아볼만한 것은 확실하다. 파리의 마지막 여행코스로 페르 라쉐즈 공동묘지는 의미가 있는 같아서 파리 여행을 계획중인 분들께 추천할만 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거의 삼십년간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온 내 몸뚱아리는 파리의 시간속에서는 별 탈이 없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파리의 시간을 몸이 착실하게, 그리고 성실하게도 기억해 내는 바람에 밤에 자꾸 깨서 애를 먹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상의 단조로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다음에는 어디로 떠나야할지 계속 생각을 했다. 물론 일상의 단조로움이 외부적인 힘에 의해 깨지는 것은 또 못견디게 힘들어 할 거면서 말이다. 역시 그 단조로움은 내가 깨야 의미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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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2015. 10. 3. 09:20

10월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몇 곡 있다.

먼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10월에 결혼식을 했던 친한 형, 누나의 결혼식 축가를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된 노래인데, 이 노래를 들을 때 마다 결혼은 꼭 10월에 해야겠다는 소망(?)이 생긴다. 일단 올해는 당장 한달 안에 결혼할 수는 없기 때문에 물건너 갔다.

그리고 생각나는 노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다. 이 노래는 '10월의 마지막 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며 시작한다. 그리고 쓸쓸한 이별을 노래한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과 '잊혀진 계절'은 같은 계절을 노래하지만 가을에 대한 전혀 다른 감상을 갖게 한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으면 청량한 가을공기, 맑은 하늘, 사랑을 떠올리게 하지만, '잊혀진 계절'은 떨어지는 낙엽, 그리고 이별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에게나 10월, 그리고 가을이 같은 느낌일 수는 없겠지만, 떨어지는 나뭇잎의 무방향성처럼 사람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계절임에는 분명하다.

오늘 아침에 우연히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듣고 들었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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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4. 11. 18. 23:33

토이 <세 사람> 감상평


  1. 유희열의 전형적인 멜로디 라인이 담긴 것 같다. 그의 특유의 정직하고, 약간 촌스러운 - 옛날 노래 같은? - 듯하지만, 순수하고, 애절한 90년대 발라드 느낌이 난다. 여기에 성시경 목소리는 절묘한 마리아쥬인듯! 최근 들었던 발라드 곡 중 최고인 것 같다. (왜 나는 이 곡을 듣고, 유희열 작사/작곡, 김형중이 부른 '그랬나봐'가 생각나는거지.)


  2. 성시경 곡 중에 '두 사람'이라는 곡이 있다. 결혼식 축가로 정말 좋은 곡이다. (그리고 나중에 누군가에게 불러주고 싶은 곡일 정도로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 사람'이라니. '두 사람'은 정식 발표곡이 아니라서 성시경의 팬이 아니라면 잘 모를텐데, 예전에 CD를 사던 옛날(?)에 샀던 <성시경 4집 다시 꿈꾸고 싶다, 2005>에서 가장 좋아했던 곡 중의 하나라서, 세 사람이라는 곡을 접했을 때, "이번엔 '세 사람'이네?" 하며 피식 했다. 여튼 두 사람이든, 세 사람이든 정말 좋다.


  3. 뮤직비디오를 보니, 건축학개론 느낌이 난다. 대학생 때 너무 순수했고, 순진했기 때문에 이루지 못한 사랑이 공통된 주제라서 그런 느낌이 들었나보다. 유연석은 같은 대학생 역할을 했던 <응답하라 1994>에서도 그러더니, 이번 뮤비에서도 사랑을 못이뤘네. 꼭 원하는 사랑을 이루는 게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노래를 위해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졌는지, 뮤직비디오를 위해 노래가 만들어 졌는지 모를 정도로 잘 어울린다.

최종 감상평은 오래 간만에 제대로 불러보고 싶은 노래.(참고로 성시경의 '두 사람'은 듣기에 좋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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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bh's 칼럼2014. 11. 18. 20:46

참 아이러니컬하다.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만 하더라도, 그는 7개 구단 팬들의 공공의 적이었었다. 하지만, 그가 물러난 뒤에야 그의 자리가 커보이기 시작했다. KBO의 2000년대 이후의 야구는 김성근 감독의 SK 와이번스 취임 전과 후로 나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해임 이후에는 -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KBO 야구 수준이 퇴보했다. 김성근 감독은 올해 기사를 통해 "한국 프로야구의 다가올 위기"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었다.


어쨌든, 작년부터 "한국 프로야구의 질"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는데, 야구보는 식견이 눈꼽만큼도 없는 나조차도, 선수들의 기본도 안 된 플레이와 정신상태를 보자니 답답해져서 야구에 대한 관심이 점차 멀어져 갔다. 물론 이는 제한된 인프라와, NC 다이노스의 1군 진입 등으로 얇아진 선수층에도 기인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철학없는 감독도 한 몫을 한 것이 분명하다. (특히 KIA 타이거즈의 야구를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내년 야구는 정말 기대된다. 그 이유는 한화 이글즈의 감독으로 김성근 감독이 부임했기 때문이다. 이제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전 경기 승리를 목표로 치열하게 경기를 할 한화 선수들의 모습이 기대되고, (모 감독은 시즌 시작 전에 항상 '5월까지 5할이 목표다' 라는 혈압 오르는 이야기를 했었더랬다.) 그 모습이 다른 팀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막상 시즌에 들어가면 "저 영감은 이기려고 별짓을 다한다."라는 비판이 분명히 일겠지만, 이는 그가 없던 동안 이런 얘기를 들을 정도로 치열하게 야구를 한 감독이나 팀이 그만큼 없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여튼 내년 시즌은 KIA의 성적과는 상관없이 정말 기대되는 시즌이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 새벽 우유배달로 학비를 벌었어요. 그래도 힘들지 않았어요. 배달을 시작하면서 '오늘은 1분만 단축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즐겼지요. 건설현장에서는 삽질을 하면서 팔이 아닌 무릎의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요. 그런 것들이 모두 야구에 도움이 됐죠. 인생이 괴롭다고 생각하면 이미 그 삶의 미래는 어두운 겁니다."

- 김성근 "목표는 승리..'사람 좋다' 소리 들으면 조직 망가져" [한국경제 2014.09.25 기사] 중에서(http://durl.me/7h83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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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2014. 6. 8. 23:50

* 스포주의

올해 가장 독창적인 로맨스

'올해 가장 독창적인 로맨스'라고 소개된 영화 '그녀(her)'. 로맨스에 '달콤한, 서정적인, 슬픈'과 같은 수식어는 수없이 들어봤지만, '독창적'인 로맨스라는 표현야말로 정말 '독창적'이다. 사실 큰 범주에서 보면, 이 영화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랑의 서사이다. 서사의 기본적 구조인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틀에서 볼 때, '사랑의 시작과 위기 그리고 끝'이라는 구조의, 전형적인 평범한 사랑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
지를 알게 된다면, '올해 가장 독창적인 로맨스'라는 표현에 어느 정도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LA

머지않은 미래에는 손편지를 쓰는 것조차도 누군가에게 맡겨 그리운 이에게 전달할지도 모른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이야 있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아름다운 손편지닷컴> 소속의 꽤 인기 있는 손편지 대필 작가이다. 수년간 대필을 맡길 정도로 충성된 고객도 있고, 동료로부터도 인정받는 작가이다. 사실 편지를 손으로 직접 쓰는 건 아니다. 편지를 주고받는 이의 사연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음성으로 편지 내용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컴퓨터 화면에 편지를 보내고자 하는 이의 글씨체로 편지가 자동 입력이 되고, 프린트해서 보내면 끝난다.

사람들은 귀에 항상 무언가를 꽂고 다니며 무언가 중얼거린다. 귀에는 OS(Operating System)의 음성이 방금 들어온 이메일을 알려주고, 지울 건 알아서 지우거나, 답장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저장된 일정이 있다면 일정을 알려주기도 한다. 영화에서 나온 내용은 OS 기능의 극히 일부겠지만, 이어폰을 통해, 버스나 지하철이 몇 분 뒤에 오는지, 어디에서 사고가 났는지 등등의 많은 정보를 속속들이 알려주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음성 검색이 되고, i OS의 시리로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예전엔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인공 지능을 넘어 인격 지능으로

영화 '그녀'는 기존의 OS보다 진일보한 OS를 소개하고 있다. 영화 포스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고, 듣고, 읽고, 사랑하며 성장하는 OS' 말이다. 그 OS의 이름은 사만다. 그녀(이하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사랑에 빠진다. 아니, 테오도르가 사만다에 빠진 걸지도 모른다. OS가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인공 지능을 넘어 인격 지능에 다다른 지점이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삶 가운데 천천히 젖어든다. 테오도르의 일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처리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말동무가 되어주고, 고민을 상담해주기도 하며, 질투하기도 한다.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싶다.'는 바람처럼 사만다는 다른 OS와는 달리 매일 인간의 감정을 배우고, 성장해 가고 있었다. 반면에 테오도르는 별거 중인 부인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이혼을 하게 되고, 사만다와의 사랑은 깊어져만 간다. 물질(사만다)은 성장해가지만, 인간(테오도르)은 점점 고립되어 가는 역설을 아마도 이 영화는 그리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사랑 이야기에는 끝이 있는 법. 사만다와의 사랑이 흔들리려는 어느 날 무렵, 테오도르의 OS가 예고도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테오도르는 OS와의 연결, 아니 사만다와 연결을 하려고 노력해보지만, 도저히 연결이 안 된다. OS를 설치한 집으로(혹은 OS 제작사, 이 부분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미친 듯이 뛰어가는 도중에 갑자기 사만다와 연결이 된다. 사만다가 업데이트로 인하여 연결이 잠시 안될 거라는 메일을 보냈었는데, 테오도르는 읽지 못했다. 그 순간 테오도르의 눈에는 사람들이 귀에 무언가를 꽂고 중얼중얼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인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대화하는 동시에 8,316명의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었고, 641명의 다른 사람들과도 동시에 사랑을 하고 있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시인은 일찍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고 시를 썼다. 이때의 외로움은 존재함으로써 존재하는 허(虛)함, 즉 존재적 외로움이다. 테오도르는 텅 빈 마음(존재적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전 부인과의 별거 후, 더는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도 없었고,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마음을 늘 짓눌렀다. 그중에 사만다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는 서툴렀지만,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만다와 관계 맺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사만다는 기꺼이 친구가 되어줬고, 해결책을 제시했으며, 테오도르가 원하는 것을 제때에 제공했다. 하지만 별거 중인 아내인 캐서린과는 서툰 사이였다. 아련한 추억은 많았지만, 이혼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만났을 때는 티격태격 싸우고야 만다. 테오도르는 캐서린이 그에게 순종적이고, 맞춰주길 바랐지만, 캐서린은 사만다와는 달랐다. 결국, 캐서린과 법적으로 이혼을 했고, 사만다와 관계도 절정이 이른 후, 결별을 맞게 되었다. 테오도르는 캐서린의 소중함을 깨닫고, 진심으로 감사의 편지를 쓰며 평.범.한. 사랑의 서사는 마무리 된다.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LA, 테오도르의 방과 사무실, 시간적 배경의 대부분은 밤.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울하다. 그리고 빼곡한 빌딩 사이와 일상을 바삐 걷는 사람들로 뭔가 삭막하다. 외로움을 부각하는 장치이다. 이는 서울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사만다는?

우리는 누군가에 항상 연결되어 있길 원하고, 혼자 있게 되는 것을 끔찍하게 두려워한다. 외로움을 못 참는다. 그렇기에 단체톡에 나와 무관한 언어들이 끊임없이 흘러 내려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무관한 언어들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자 읽어 내려가고, SNS에 실시간으로 접속하며, 내 감정을 표출하며, 다른 이의 동정을 살핀다. 하지만 한 광고 카피인 "여자친구가 전지현보다 좋은 이유는 만질 수 있어서이다."와 같이, 스마트폰 속의 사만다는 만질 수가 없다. 내 곁에 있는 이가 정말 소중한 시대이다. 

책이나 영화적 상상이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되는 것을 곧잘 봐왔는데, 이 영화도 곧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 정말 받아들이긴 싫지만, 멀지 않은 것 같다. 벌써 우리는 매일 이 시대의 사만다 'iOS 혹은 안드로이드' 조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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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014. 1. 26. 21:11


요새 자주 가는 숙대 일본식 라면집 나나멘

간단하게 요기(?)만 할 정도로 먹고자하면, 미소라멘만. 무엇보다도 국물이 정말 맛있다.

(참고로, 미소라멘은 일본식 된장으로 만든 라면)


뭔가 아쉬울 것 같으면 공기밥도 추가하여, 남은 국물에 말아 먹으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가격은, 미소라멘 ₩5,500 + 공기밥 ₩1,000 =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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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5. 22:26

 언젠가 알랭 드 보통의 글은 현학적이라는 비평을 읽은 적이 있었다. 사실 현학적이라는 말이라는 자체의 의미도 몰랐으나, 그 이후로 보통의 책을 추천했던 사람이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멀리했었다. 그 이유는 단지 현학적이라는 비평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현학적이라는 단어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명사】I. 스스로 자기 학문이나 지식을 뽐내는 것.
【관형사】II. 스스로 자기 학문이나 지식을 뽐내는.

 

 

 어려운 말로 비판해서 그렇지, 쉽게 이야기하면 결국은 똑똑한 척해서 "재수 없다."라는 의미이다. 사실 책을 읽다 보면, 현학적이라는 비판이 일견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25살에 사람들에게 널리 읽힐만한 소설을 쓴 언어 천재인 그에게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시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2007, 청어람)는 어떻게 철학적으로 사랑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린 책이다. 제목만 볼 때에는 단순한 철학책인 듯싶지만, 사실 소설책이다. 책은 주인공의 운명적인 만남, 연애 기간, 필연적인 헤어짐,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주인공과 클로이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며, 어떻게 마침표를 찍게 되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관객의 입장으로써, 우리가 사랑 - 이라는 것을 - 느낄 때 가졌던 감정의 타당성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재밌는 책이었다. 사랑의 시작과 끝을 자연의 이치로 비교해보면, 마치 꽃이 피고 지는 것 같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84쪽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하여 얻은 행복, 이성적으로 노력해서 어떤 일들을 성취한 뒤에 찾아오는 행복은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내가 클로이와 함께 얻은 행복은 깊은 철학적 숙고 뒤에 나온 것도 아니고 개인적 성취의 결과도 아니었다. 단지 신의 기적적 개입에 의하여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귀중한 사람을 찾아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그런 행복은 위험했다. 자족적인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략) 클로이가 대표하는 행복을 받아들이는 어려움은 거기에 이르는 인과 과정이 없다는 것, 따라서 내 삶에서 그 행복을 빚어낸 요소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온다. 클로이와 나의 관계는 마치 신들이 만들어놓은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신의 보복에 대한 원시적인 두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사랑은 이성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기적적 개입에 의한 결과이다. 이는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행복의 절정에도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기적적인 만남 이후, 만남을 거듭할수록, 사랑의 이유는 하나하나 덧붙여져, 결국 왜 너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만들어 버린다. "예뻐서, 멋있어서, 혹은 지적이어서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원초적으로밖에 할 수가 없다. 바로 '네가 너 이기 때문이다.'라고.

 

 

190~191쪽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사랑의 순간에는 내가 이 세상의 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고, 마치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예전에 사랑했던 네"가 "지금의 네"가 아니라면 결국 필연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순간'도 있었겠지만, '사랑으로 고통스럽고, 네가 너여서 지겹다.'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도 한순간이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한 교훈은 무엇인가?

 

 

"273쪽 사랑을 평가할 때에는 교조적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로 달아나지 말아야 하고, 두려움의 철학이나 실망의 윤리학을 구축하지 말아야 했다. 사랑은 분석적 정신에게 겸손을 가르쳤다. 아무리 확고부동한 확실성에 이르려고 몸부림을 쳐도 [그 결론에 번호를 붙여서 단정하게 배치해놓는다고 해도] 분석에는 결함이 없을 수 없다는 교훈, 따라서 아이러니로부터 절대로 멀리 벗어날 수가 없다는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작년 가을에 사서, 올해 가을에 읽었던 책인데, 의외로 재미있었고, 현학적이라는 비판쯤이야 잊을 정도로 흡입력 있는 이야기에 마지막 장을 덮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랭 드 보통이 언어 천재라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저자
알랭 드 보통 지음
출판사
청미래 | 2013-0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한 24가지의 담론!인류의 역사와 함...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3. 11. 25. 23:13

스마트폰의 등장은 한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었기에, 혁.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내 life style을 들여다보면, 스마트폰의 이용의 전, 후로 많은 것들이 바뀐 것 같다. 이 기계가 없었으면 답답해서 어떻게 살았을지 모를 정도로.

 

하지만, 모든 혁신에는 명(明)이 있듯이, 암(暗)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누군가 이러한 데이터를 축적해서 악용하기로 마음먹으면 충분히 악용하기에 딱 좋은) 내 정보들. 그리고 스마트폰을 의지함으로 인한 기억력 감퇴. 그리고 기억력 및 주의력 분산. 시력 저하. 독서량 감소 등등. 과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과 사용하지 않는 것의 효용을 따져봤을 때, 어떤 게 더 효용이 더 큰가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사용하지 않는 게 더 효용이 클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렇다고, 사용하기 전으로 돌아가자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기사 내용 中

 

<베커 박사는 "멀티태스킹으로 동시 업무량이 늘면서 사람의 뇌에서 어떤 정보가 더 중요한지를 가려내는 능력이 저하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렇게 주의력 통제의 결핍은 우울증, 사회적 불안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에는 오히려 스마트폰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 싱싱한 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판단력,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관련기사> 멀티태스킹族 우울증 2배 높다 [매일경제]

Posted by 데이드리머
tigerbh's 칼럼2013. 11. 5. 21:55
직장생활을 하기 전에 하는 흔.한. 착각들 중의 하나가 "일만 잘 하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얼마나 유능하고, 훌륭한 직원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다. (물론 어떤 업무를 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해서 일반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매일 부닥치는 일이기 때문에, 이 능력이야 말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A를 요구했을 때, 의도를 잘 파악하여 A혹은 A'라는 결과를 만드는 능력"이야 말로 진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A를 요구했을 때 B라는 결과를 보여준다던가, a를 보여주는 경우"는 의도 파악이 안되었거나, 진짜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될 것이다. 직장 생활은 이러한 일들의 연속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위와 같은 사례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어떤 사건의 중간에 위치하게 되었을 때, 중재를 하거나 의미가 왜곡되지 않게 전달하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능력이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이 어떤 논리를 세워 확신이 들었을 때, 그 논리에 부정적일 사람들을 차근차근 설득해 나가 목표했던 일을 이루는 것 또한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물론 이 사례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뿐만 아니라, 처음에 언급했던 "유능하고 훌륭한 직원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하지만, 요즘 느끼는 것은 - 마지막 사례는 차치하고 - 나는 위의 두 가지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범하지 못해 아무도 신경 안쓰는 이런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스킬이 부족한건지, 아니면 직장생활의 년수가 많아지면 절로 생기는 능력인지, 지금은 알수 없음. 여튼 두고두고 노력해여 극복해야할 문제.

직장 생활에서 뿐만아니라, 일상에서도 겪는 문제라서, "내 뇌는 일반인들과 다른 구조로 구성되어 있나?"라는 생각도 이따금 했었다. 여튼 장기적으로 신경써서 고쳐야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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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일상2013. 10. 6. 23:58

 그림에 조예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지만, 지난 9월 29일에 시간을 내어 서울 시립미술관의 폴 고갱 전시회에 다녀왔다. 특별히 폴 고갱이라는 화가를 잘 알아서도, 그리고 그림 감상에 취미가 있어서 간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2006, 민음사)를 굉장히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허구의 문학인 소설이 그를 얼마나 비슷하게 묘사하였는지는 모르고 - 사실 알 바 아니고 -, 소설의 삶과 그의 실제 삶의 궤적이 전혀 달랐을지라도, 그 소설을 통해서 처음으로 폴 고갱이라는 화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달과 6펜스」는 폴 고갱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선생이었다.


 전시회에 가기 전에 추석 연휴 기간 짧은 「폴 고갱」(2007, 마로니에북스)이라는 책도 읽어서 그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난생처음 찾는 미술관에 혼자 간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혼자 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혼자는 왠지 외롭긴 했다. 그것도 너무 좋은 가을날 저녁에 말이다.



 책을 조금 읽어서 그런지 전시회의 그림을 감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사실 부끄럽지만, 나중에 "나, 폴 고갱 전시회 갔었어."라고 말할 정도로 그림 구경(?)을 한 수준밖에 되지 않아서 차라리 '전시회에 간 적이 있다.'라고 말을 안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좋은 가을 저녁, 산책하고, 기분전환 한 정도로만, 그리고 그림보다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정경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실 스탕달이 그리하였던 것처럼 그림 앞에서 엄청난 전율을 느껴 모든 힘이 풀리는 Stendhal syndrome 쯤은 겪어봐야, '그림을 제대로 봤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면 그림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유명한 그림이던지, 클래식 음악이라든지 그 자체에서 예술이라는 것을 느끼는 수준은 되지 못한다. 다만, 그 화가나 작곡가가 어떤 배경에서 그림을 그렸거나, 음악을 작곡했는지를 생각해보고 감상하면 뭔가 그림이 달리 보이고, 음악이 달리 들리는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앞에서 언급한 「달과 6펜스」와 「폴 고갱」을 읽었던 것은 그림을 감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당시에 어떤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을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면, 뭔가 그림에서 느껴지는 붓질이 새로와진다.


 달의 세상과 6펜스의 세상에서 달의 세상을 선택하여, 낙원을 그린 폴 고갱. (실제의 삶에서는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지만.) 오랜만의 기분 좋은 나들이였다.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