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2015. 10. 20. 23:16

지난 10월 3일부터 10월 9일까지 파리 여행을 했다. 딱히 파리에 대한 로망이 있다거나 파리에 꼭 가야겠다고 오랫동안 생각한 것은 아니였지만, 단지 동생이 파리에 있었기에 파리에 갔다. 여행 후 뭔가 거창하게 정리하려다 보니, 뭔가 부담이 되어 여태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몇자 끄적인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 필적할만한 글을 쓰고 싶지만.....

1. 파리의 색은 정말 예쁘다. 파리의 건물과 거리 곳곳의 가로수, 그리고 단풍은 정말 조화롭다. 건물들이 주로 상아색이어서 마치 도시 전체가 상아색 도화지에 수 놓여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디에서 사진찍어도 화보가 된다. 물론 나는 화보같은 사진을 못건졌다. 모델이 별로여서.

2. 하늘이 유달리 파랬다. 우리나라보다 하늘이 더 낮고 가까이에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파리의 하늘을 보며 빈센트 반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 왜 하늘을 그렇게 그렸는지 이해가 되었다.

3. 정원과 공원이 많있다. 조금만 걸어도 공원을 볼 수 있었다. 친구가 추천해준 뤽상부르 공원은 여행 기간 매일 가볼만한 곳이었고(나는 시간이 아까워서 한번밖에 못갔지만), 로뎅 미술관의 정원,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퐁텐블로 성의 정원 모두 예뻤다. 퐁텐블로 성의 정원은 비가 많이 와서 제대로 못봐서 아쉬웠다. 그리고 심지어 공동묘지(페르 라쉐즈)도 공원같이 꾸며져 있었다.

4. 어디에서든 에펠탑이 보였다. 파리에 가서야, 에펠탑을 싫어했던 모파상이 에펠탑이 유일하게 안보이는 에펠탑의 레스토랑을 자주 찾았다는 이야기를 이해했다.

5. 도심이나 정원에서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러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차가 옆에 쌩쌩 다니는데도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이 인상깊었다. 우리 나라는 러닝할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인데, 파리는 어디에서든 러닝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해외에서 러닝하는 것이 로망이었었는데, 짐만 많아질 것 같아서 안챙겨 간게 후회되었다.

6. 파리는 생각보다 작다. 서울 면적의 6분의 1가량. 마음만 먹으면 2~3일이면 파리 대부분을 다닐 수 있을 듯. 하지만 막상 파리를 떠나려니 일주일이 너무 짧았다. 참고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면적을 합친 것보다 작다. 방금 네이버 찾아봄.

7. 파리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개인적으로 에펠탑, 몽마르트 언덕, 페르 라쉐즈 공동묘지였다. 사실 박물관, 미술관은 많이 다녔지만 안가면 나중에 후회될 것 같아서, 의무감으로 갔었었다. 그리고 내심 나에게도 스탕달과 같은 기질이 있을까 기대했었지만,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본 모네의 <수련>.

8. 역시 파리는 여자의 도시. 아마 내가 여자였다면 즐길거리가 훨씬 많았을텐데.

여행하는 동안 걷고, 걷고, 또 걸었다. 혼자, 때론 동생과 걸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 한국에 두고온 고민들에 대해서 다시한번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막상 한국에서는 골몰했던 그 고민들이 커보이지 않은 것 같아서 당황스러웠다.

여행 마지막날 페르 라쉐즈에서 봤던 묘지는 영혼이 거처하라는 것 마냥 집모양이 많았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집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단서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여러 유명인사들의 묘지를 지나면서 화려한 인생도 종말은 허무하다는 것도 느꼈다. 하지만, 꺼이꺼이 울던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생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결국은 허무한 게 인생이지만 살아볼만한 것은 확실하다. 파리의 마지막 여행코스로 페르 라쉐즈 공동묘지는 의미가 있는 같아서 파리 여행을 계획중인 분들께 추천할만 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거의 삼십년간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온 내 몸뚱아리는 파리의 시간속에서는 별 탈이 없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파리의 시간을 몸이 착실하게, 그리고 성실하게도 기억해 내는 바람에 밤에 자꾸 깨서 애를 먹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상의 단조로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다음에는 어디로 떠나야할지 계속 생각을 했다. 물론 일상의 단조로움이 외부적인 힘에 의해 깨지는 것은 또 못견디게 힘들어 할 거면서 말이다. 역시 그 단조로움은 내가 깨야 의미가 있는 것 같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5. 10. 3. 09:20

10월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몇 곡 있다.

먼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10월에 결혼식을 했던 친한 형, 누나의 결혼식 축가를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된 노래인데, 이 노래를 들을 때 마다 결혼은 꼭 10월에 해야겠다는 소망(?)이 생긴다. 일단 올해는 당장 한달 안에 결혼할 수는 없기 때문에 물건너 갔다.

그리고 생각나는 노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다. 이 노래는 '10월의 마지막 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며 시작한다. 그리고 쓸쓸한 이별을 노래한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과 '잊혀진 계절'은 같은 계절을 노래하지만 가을에 대한 전혀 다른 감상을 갖게 한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으면 청량한 가을공기, 맑은 하늘, 사랑을 떠올리게 하지만, '잊혀진 계절'은 떨어지는 낙엽, 그리고 이별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에게나 10월, 그리고 가을이 같은 느낌일 수는 없겠지만, 떨어지는 나뭇잎의 무방향성처럼 사람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계절임에는 분명하다.

오늘 아침에 우연히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듣고 들었던 생각이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4. 6. 8. 23:50

* 스포주의

올해 가장 독창적인 로맨스

'올해 가장 독창적인 로맨스'라고 소개된 영화 '그녀(her)'. 로맨스에 '달콤한, 서정적인, 슬픈'과 같은 수식어는 수없이 들어봤지만, '독창적'인 로맨스라는 표현야말로 정말 '독창적'이다. 사실 큰 범주에서 보면, 이 영화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랑의 서사이다. 서사의 기본적 구조인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틀에서 볼 때, '사랑의 시작과 위기 그리고 끝'이라는 구조의, 전형적인 평범한 사랑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
지를 알게 된다면, '올해 가장 독창적인 로맨스'라는 표현에 어느 정도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LA

머지않은 미래에는 손편지를 쓰는 것조차도 누군가에게 맡겨 그리운 이에게 전달할지도 모른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이야 있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아름다운 손편지닷컴> 소속의 꽤 인기 있는 손편지 대필 작가이다. 수년간 대필을 맡길 정도로 충성된 고객도 있고, 동료로부터도 인정받는 작가이다. 사실 편지를 손으로 직접 쓰는 건 아니다. 편지를 주고받는 이의 사연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음성으로 편지 내용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컴퓨터 화면에 편지를 보내고자 하는 이의 글씨체로 편지가 자동 입력이 되고, 프린트해서 보내면 끝난다.

사람들은 귀에 항상 무언가를 꽂고 다니며 무언가 중얼거린다. 귀에는 OS(Operating System)의 음성이 방금 들어온 이메일을 알려주고, 지울 건 알아서 지우거나, 답장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저장된 일정이 있다면 일정을 알려주기도 한다. 영화에서 나온 내용은 OS 기능의 극히 일부겠지만, 이어폰을 통해, 버스나 지하철이 몇 분 뒤에 오는지, 어디에서 사고가 났는지 등등의 많은 정보를 속속들이 알려주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음성 검색이 되고, i OS의 시리로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예전엔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인공 지능을 넘어 인격 지능으로

영화 '그녀'는 기존의 OS보다 진일보한 OS를 소개하고 있다. 영화 포스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고, 듣고, 읽고, 사랑하며 성장하는 OS' 말이다. 그 OS의 이름은 사만다. 그녀(이하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사랑에 빠진다. 아니, 테오도르가 사만다에 빠진 걸지도 모른다. OS가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인공 지능을 넘어 인격 지능에 다다른 지점이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삶 가운데 천천히 젖어든다. 테오도르의 일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처리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말동무가 되어주고, 고민을 상담해주기도 하며, 질투하기도 한다.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싶다.'는 바람처럼 사만다는 다른 OS와는 달리 매일 인간의 감정을 배우고, 성장해 가고 있었다. 반면에 테오도르는 별거 중인 부인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이혼을 하게 되고, 사만다와의 사랑은 깊어져만 간다. 물질(사만다)은 성장해가지만, 인간(테오도르)은 점점 고립되어 가는 역설을 아마도 이 영화는 그리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사랑 이야기에는 끝이 있는 법. 사만다와의 사랑이 흔들리려는 어느 날 무렵, 테오도르의 OS가 예고도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테오도르는 OS와의 연결, 아니 사만다와 연결을 하려고 노력해보지만, 도저히 연결이 안 된다. OS를 설치한 집으로(혹은 OS 제작사, 이 부분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미친 듯이 뛰어가는 도중에 갑자기 사만다와 연결이 된다. 사만다가 업데이트로 인하여 연결이 잠시 안될 거라는 메일을 보냈었는데, 테오도르는 읽지 못했다. 그 순간 테오도르의 눈에는 사람들이 귀에 무언가를 꽂고 중얼중얼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인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대화하는 동시에 8,316명의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었고, 641명의 다른 사람들과도 동시에 사랑을 하고 있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시인은 일찍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고 시를 썼다. 이때의 외로움은 존재함으로써 존재하는 허(虛)함, 즉 존재적 외로움이다. 테오도르는 텅 빈 마음(존재적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전 부인과의 별거 후, 더는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도 없었고,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마음을 늘 짓눌렀다. 그중에 사만다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는 서툴렀지만,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만다와 관계 맺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사만다는 기꺼이 친구가 되어줬고, 해결책을 제시했으며, 테오도르가 원하는 것을 제때에 제공했다. 하지만 별거 중인 아내인 캐서린과는 서툰 사이였다. 아련한 추억은 많았지만, 이혼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만났을 때는 티격태격 싸우고야 만다. 테오도르는 캐서린이 그에게 순종적이고, 맞춰주길 바랐지만, 캐서린은 사만다와는 달랐다. 결국, 캐서린과 법적으로 이혼을 했고, 사만다와 관계도 절정이 이른 후, 결별을 맞게 되었다. 테오도르는 캐서린의 소중함을 깨닫고, 진심으로 감사의 편지를 쓰며 평.범.한. 사랑의 서사는 마무리 된다.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LA, 테오도르의 방과 사무실, 시간적 배경의 대부분은 밤.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울하다. 그리고 빼곡한 빌딩 사이와 일상을 바삐 걷는 사람들로 뭔가 삭막하다. 외로움을 부각하는 장치이다. 이는 서울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사만다는?

우리는 누군가에 항상 연결되어 있길 원하고, 혼자 있게 되는 것을 끔찍하게 두려워한다. 외로움을 못 참는다. 그렇기에 단체톡에 나와 무관한 언어들이 끊임없이 흘러 내려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무관한 언어들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자 읽어 내려가고, SNS에 실시간으로 접속하며, 내 감정을 표출하며, 다른 이의 동정을 살핀다. 하지만 한 광고 카피인 "여자친구가 전지현보다 좋은 이유는 만질 수 있어서이다."와 같이, 스마트폰 속의 사만다는 만질 수가 없다. 내 곁에 있는 이가 정말 소중한 시대이다. 

책이나 영화적 상상이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되는 것을 곧잘 봐왔는데, 이 영화도 곧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 정말 받아들이긴 싫지만, 멀지 않은 것 같다. 벌써 우리는 매일 이 시대의 사만다 'iOS 혹은 안드로이드' 조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3. 11. 25. 23:13

스마트폰의 등장은 한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었기에, 혁.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내 life style을 들여다보면, 스마트폰의 이용의 전, 후로 많은 것들이 바뀐 것 같다. 이 기계가 없었으면 답답해서 어떻게 살았을지 모를 정도로.

 

하지만, 모든 혁신에는 명(明)이 있듯이, 암(暗)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누군가 이러한 데이터를 축적해서 악용하기로 마음먹으면 충분히 악용하기에 딱 좋은) 내 정보들. 그리고 스마트폰을 의지함으로 인한 기억력 감퇴. 그리고 기억력 및 주의력 분산. 시력 저하. 독서량 감소 등등. 과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과 사용하지 않는 것의 효용을 따져봤을 때, 어떤 게 더 효용이 더 큰가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사용하지 않는 게 더 효용이 클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렇다고, 사용하기 전으로 돌아가자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기사 내용 中

 

<베커 박사는 "멀티태스킹으로 동시 업무량이 늘면서 사람의 뇌에서 어떤 정보가 더 중요한지를 가려내는 능력이 저하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렇게 주의력 통제의 결핍은 우울증, 사회적 불안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에는 오히려 스마트폰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 싱싱한 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판단력,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관련기사> 멀티태스킹族 우울증 2배 높다 [매일경제]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3. 5. 20. 00:49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 들이 있다. (사실은 대부분의 일이 그렇다.) 예를 들어, 예전부터 시력이 나빠서 사물이 잘 안 보인다는 느낌이 어떤 걸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시력이 나빠지고, 멀리 있는 사물이 잘 안 보이며, 멀리서 내게 인사하는 사람을 못 알아보는 일이 잦아지면서, '아, 시력이 나빠졌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쓸데없는 궁금증이 풀리긴 했으나, 이런 궁금증은 차라리 풀리지 않았으면 더 나았을 뻔했다.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된 계기는 엉뚱하지만, 오늘 아침에 축구를 하면서였다. 조기 축구의 특성상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함께 축구를 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 뛰는 모습과 공을 차는 모습을 보면서, 나이가 들어서도 축구를 하는 기분은 과연 어떤 걸까 궁금했었다. 젊을 때처럼 잘 뛰지도 못하고, 컨트롤도 잘 안되는데도,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아침을 깨워 공을 차기 위해 운동장으로 그들을 이끈 동력은 과연 무엇인가. 나도 나이가 들어 그들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 내 맘대로 컨트롤이 안되는 몸을 이끌고 공을 차며, 지금은 나름대로 쉬지 않고, 공을 쫓는 체력도 나이가 들어서도 남아 있을 것인가도. 이는 도저히 나이를 먹기 전에는 풀릴 수 없는 류의 궁금증이다.

나이가 들어, 지금의 그 궁금증이 풀릴 즈음이면, 나의 청춘도 다 지났을테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며, 나의 그 시절을 회상할 생각을 하니, 지금 이 청춘을 즐기지 않으면 나중에 많이 후회할 것 같았다. 흘러가는, 그리고 흘러갔던 시간이 너무 아쉽다.

나이를 들어서는 어떤 재미로, 또 어떤 재미를 기대하며 살아갈까? 어릴 때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재미 - 어릴 때는 아빠가 신문이나 TV 뉴스를 재미있게(?) 보는 것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TV를 켜면 뉴스보다 만화 영화가 훨씬 재미있었는데 말이다 - 를 느끼는 지금 이 나이에 이르니, 왠지 슬퍼 졌다. 뭐, 나름의 소소한 재미 - 말초적인 것이 아닌 - 를 추구하며, 살아갈 테지만 말이다. 때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나이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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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3. 5. 5. 00:31

# 시기나, 계절에 따라 읽고 싶은 책들이 있다. 먼저, 신록의 계절인 5월에는 이양하 선생의 <신록예찬>(을유문화사, 2005), 4월은 - 이미 지났지만 - 무라카미 하루키의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문학사상, 2009)를 들 수 있다. 올해 4월에 꼭 읽으려고 했지만, 놓쳐서 이제 내년 4월까지 기다려야 할 듯.


어쨌든 계절에 따라 생각나는 책 또는 시 - 가끔 내 페북에 올렸던 - 와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것도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물론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말이다.


# <상실의 시대>(문학사상사, 2010)에서 주인공 와타나베의 선배인 나가사와는 "위대한 개츠비를 3번 이상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라는 말을 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라는 생각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지만, 사실 별내용은 없었던 게 기억난다.


어쨌든 상실의 시대를 읽은 많은 사람은 으레 위대한 개츠비도 읽는 게 수순인 것 같다. 나는 아직 각 2권의 책을 두 번밖에 못 읽어서, 나가사와 선배와는 친구가 될 수는 없겠지만, 5월 16일에 개봉하는 <위대한 개츠비>를 본다면, 3번은 채우기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영화 한 편 보는 것을 책 한 권 읽는 것으로 퉁쳐주는 아량을 베풀어 준다면 말이다.


아참, 그리고 나가사와 선배의 독특한 독서 철학. 그는 죽은지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읽지 않는단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는 걸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지. 인생은 짧아."


# 최근 독서는 한 달에 한 권 정도 겨우 하는 수준이다. 그마저도 요새는 책을 못 읽고, 아니 안 읽고 있다. 요새는 웹툰 <미생>에 빠져 있는데, 미생에서 삶을 배운다. 아이폰으로 보면서 중간중간 캡쳐해 놓는 컷도 많다. 다음 주 월요일에 캡쳐해놓은 사진들, 인쇄해서 책생 맡에 붙여놓을 생각이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2. 12. 16. 00:38

한 촉망 받던 미모의 여류 화가의 장래를 꺾는 것은 단 한마디면 충분했다. "당신의 그림에는 깊이가 없어." 이는 한 평론가의 평이다. 깊이가 없다는 평을 접하자마자 그 여류 화가는 깊이 없음을 자책하며, 결국 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그 여류 화가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 평론가는 그녀의 그림에 대해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칭송했다.


이는 실화는 아니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소설집 「깊이에의 강요」(열린책들, 2000)에 실린 단편 <깊이에의 강요>의 내용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깊이"라는 상대적인 단어를 비꼬고 싶어서 이 단편을 썼을 것이다. 아마 자신의 글에 깊이가 없다는 평론가의 평에 대한 항변을 깊이에의 강요로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나 그리고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깊이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대화를 나누며, 그 사람의 깊이에 대해서 가늠해 보지만, 결국 결론은 "어느 누군가의 깊이는 쉬이 판단할 수 없다." 라는 점이다.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사람도 나름의 깊이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또한 자못 심각한 척, 진지한 척하는 나는 깃털처럼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깊이가 없는 사람의 전형이기도 하다.


관계에 있어서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깊이에 다다를 때, 깊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깊이 없는 가벼운 만남은 너무나도 싫다. 단 한 번의 만남이라도 평생의 이야깃거리로 삼을 수 있는 그런 만남이라면 깊이가 있는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류의 깊이에의 강요는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깊이에의 강요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8-03-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깊이가 없다`라는 평론가의 말에 `깊이`가 무엇인지 구현하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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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2. 10. 27. 23:28
오렌지색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는지를 차근차근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을 5-0으로 이긴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 대표팀 유니폼을 접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오렌지 빛이 강함의 상징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처음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 가령 옷, 신발, 시계 등 에서 유독 다른 사람들보다 오렌지 색을 띠는 것들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맞춘 안경테도 오렌지빛이 곁들여 있는 걸 골랐다. 오렌지 빛은 뭔가 상쾌하고 상큼하다. 아마 나에게 없는 것들을 갈망했기에 이를 선호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이상 나의 오렌지 - 어륀지 - 색 예찬.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2. 10. 22. 18:53





“꽃을 꺾기 위해 덤불 속 가시에 찔리듯
사랑을 얻기 위해 내 영혼의 상처를 감내한다.
덤불 속 모든 꽃이 아름답진 않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꽃의 향기조차 맡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기 위해서 상처받는 것이므로
사랑하라.
인생에서 좋은 것은 그것뿐”

조르주 상드의 사랑론(論). 사랑을 소유의 대상으로 여긴 그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사랑은 내 영혼의 상처를 감내하여 꺾어 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은 오래 참음으로 꽃이 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대상이다. 꽃은 꺾으면 시든다.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 물론 이는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이야기는 사랑의 상처에 대한 메타포는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랑 - 이라고 착각 - 을 하며 상처를 받았다는 핑계를 대지 말자. 꽃이 필 때까지 기다리자. 물론 이 기다림은 아가페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지, 에로스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님.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2. 3. 27. 21:37

4월의 봄날 같은 영화. 싱숭하기도, 생숭하기도 한 영화. 건축학개론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카피로 모든 (잠재적) 관객을 영화 주인공으로 만든다. 특히 첫사랑이라는 단어에서 풍겨오는 아련함이 많은 관객을 공감하게 한다. 첫사랑이라. 남녀 간의 사랑 중에서 가장 순수할 수 있고, 서투를 수 있고, 풋풋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첫사랑은 그런 거다.


영화를 보며, 첫사랑의 풋풋함과 캠퍼스를 누비던 대학생 시절이 그리워졌다. 사실 요즘 첫사랑을 대학교에 와서야 했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첫사랑과 캠퍼스는 잘 어울린다. (건축학개론이라는 수업과 첫사랑은 잘 어일리지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의 연기도 어울린다. 첫사랑을 그리는 신인 배우들. 아마 눈에 익은 배우들이 연기를 했다면, 그런 이야기를 그릴 수 있었을까.


이제훈이라는 배우를 처음 봤는데, 매력이 넘치는 배우인 것 같다. 그리고 왠지 앞으로 이 영화에서 맡은 승민의 역할보다 더 맞는 역할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 수지도 익히 들어서 명성은 알고 있었지만, 건축학개론에서 처음 봤다. 딱 그 나이에 맞는 신입생 역할을 너무 아기자기하게 한 것 같다. 그들의 소소한 데이트 - 라고 할 수 있을까 - 였던 철길 걷기와 그들의 키스 - 사실은 뽀뽀 - 도 당분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승민이 엄마에게 “엄마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GEUSS 로고가 박힌 흰 티의 초고속세탁을 부탁했던 장면이, 결국 서연 앞에서 GUESS가 아니었음을 알았을 때의 자괴감 혹은 모욕감을 느끼며 도망쳤던 모습은 왠지 마음을 저미게 했다. 그녀가 술 취해 학교 선배와 함께, 자취방으로 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실망하여 집(정릉)에 돌아가는 택시를 잡으려 하지만, 정릉을 외면하던 택시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던 모습을 보며, 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가 생각났다.


음대생이었던 서연에게, 건축학도 승민은 나중에 집을 지어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서연(한가인)은 고향인 제주도에 지을 집을 부탁하기 위해서 - 라기보다는 승민을 만나기 위해 - 승민(엄태웅)의 건축사무소를 찾아간다. 영화의 시작은 이 장면이지만, 시간 순서로는 하반부에 속한다. 그리고 집을 지으며, 과거를 떠올린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기에, 그들의 사랑은 정말로 첫사랑으로 끝맺는다.


건축학개론에서 나타난 첫사랑의 언어는 노래 - 가령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라던가, 강의실과 캠퍼스 등. 이 영화에 공감을 했더라면, 이런 소소한 부분을 잘 읽어낸 영화의 성실함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건축학개론 (2012)

8.6
감독
이용주
출연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조정석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한국 | 118 분 | 2012-03-22
글쓴이 평점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첨부. 별로 영화와 관련은 없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