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3.05.05 독서론
  2. 2012.04.03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
  3. 2010.01.11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4. 2010.01.04 진정한 그리움과 외로움
  5. 2009.09.04 양을 쫓는 모험
단상2013. 5. 5. 00:31

# 시기나, 계절에 따라 읽고 싶은 책들이 있다. 먼저, 신록의 계절인 5월에는 이양하 선생의 <신록예찬>(을유문화사, 2005), 4월은 - 이미 지났지만 - 무라카미 하루키의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문학사상, 2009)를 들 수 있다. 올해 4월에 꼭 읽으려고 했지만, 놓쳐서 이제 내년 4월까지 기다려야 할 듯.


어쨌든 계절에 따라 생각나는 책 또는 시 - 가끔 내 페북에 올렸던 - 와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것도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물론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말이다.


# <상실의 시대>(문학사상사, 2010)에서 주인공 와타나베의 선배인 나가사와는 "위대한 개츠비를 3번 이상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라는 말을 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라는 생각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지만, 사실 별내용은 없었던 게 기억난다.


어쨌든 상실의 시대를 읽은 많은 사람은 으레 위대한 개츠비도 읽는 게 수순인 것 같다. 나는 아직 각 2권의 책을 두 번밖에 못 읽어서, 나가사와 선배와는 친구가 될 수는 없겠지만, 5월 16일에 개봉하는 <위대한 개츠비>를 본다면, 3번은 채우기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영화 한 편 보는 것을 책 한 권 읽는 것으로 퉁쳐주는 아량을 베풀어 준다면 말이다.


아참, 그리고 나가사와 선배의 독특한 독서 철학. 그는 죽은지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읽지 않는단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는 걸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지. 인생은 짧아."


# 최근 독서는 한 달에 한 권 정도 겨우 하는 수준이다. 그마저도 요새는 책을 못 읽고, 아니 안 읽고 있다. 요새는 웹툰 <미생>에 빠져 있는데, 미생에서 삶을 배운다. 아이폰으로 보면서 중간중간 캡쳐해 놓는 컷도 많다. 다음 주 월요일에 캡쳐해놓은 사진들, 인쇄해서 책생 맡에 붙여놓을 생각이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4. 3. 22:36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는 편안함이 있다.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그의 면목이다. 나는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선호하는 편인데, 덤덤한 문체와 꾸밈없는 그의 일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비밀의 숲><문학사상사, 2007)이라던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 2009)를 읽을 때는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그저, 작가로서의 삶을 느낄 수 있고, 옆집 아저씨로서의 삶도 엿볼 수 있다. 물론 그의 소설도 좋아한다.


 가장 최근의 에세이 <잡문집>(비채, 2011)은 말 그대로 잡문을 엮은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게 뭐야."라며 실망할 사람도 더러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잡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다면,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사실 나는 기대치를 낮춰 읽긴 했지만서도, 이걸 그냥 넘겨야 하나, 다 읽어야 하나, 고민 했던 분량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재즈에 관한 글들. 전혀 문외한이라서. 그럼에도 일단 모든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다 읽기는 했지만, 역시나 읽고 나면,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찌하랴. 잡문집인 걸.


 그래도 아무리 책으로 내기는 부족한 글들을 겸손하게 잡문집이라 칭하였어도, 그의 철학과 삶, 일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으로서 이 책을 읽는다면,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그중 몇가지 좋은 글들을 적어본다.


먼저 주례사 중에서,

87쪽 가오리 씨,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그리고 그의 예루살렘 상 수상 연설 <벽과 알> 중에서. 사실 이 부분을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91쪽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벽이 옳고 알이 그르더라도, 그래도 나는 알 편에 설 것입니다. 옳고 그름은 다른 누군가가 결정할 일입니다. 혹은 시간이나 역사가 결정할 일입니다. 혹시라도 소설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벽 쪽에 서서 작품을 썼다면, 과연 그 작가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요?


그의 기억에 관한 공감할 수 있는 글.


196쪽 우리의 인생이란 기억의 축적으로 완성된다. 그렇지 않은가? 혹시 기억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지금 현재의 우리밖에 기댈 곳에 없는 셈이 된다. 기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떻게든 자기라는 존재를 하나로 묶고, 동일시하고, 존재의 중추 같은 것을 - 설령 그것이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더라도 - 일단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뭐랄까, 쿨한 삶의 철학.


257쪽 과거에 쓴 작품은 웬만하면 일단 다시 읽지 않습니다. '과거는 돌아보지 않는다'라고 하면 꽤나 멋지게 들리지만, 내 소설을 집어든다는 게 왠지 멋쩍고, 다시 읽어본들 어차피 마음에 안 들게 빤하니까요. 그보다는 앞을 내다보며 다음 할 일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343쪽 독자의 마음을 진정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뛰어난 문장도 아니요 재미있는 줄거리도 아니요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분위기인 것이다. 내가 특히 마음을 쓴 부분은 그들의 '올바른 자세'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일본어로 옮기는 일이었다.


작가로서의 철학.


445쪽 소설을 쓴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자기만의 방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방을 마련하고, 그곳으로 사람을 불러 편안한 의자에 앉히고, 맛있는 음료는 내놓고, 상대가 그곳을 아주 마음에 들게 하는 것. 마치 자기만을 위한 장소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뛰어나면서도 바람직한 이야기의 본디 그대로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곳이 설령 어마어마하게 멋지고 호화로운 방이라도 상대가 편히 쉬지 못하면 바람직한 방 =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겠죠.


하루키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잡문집을 읽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1-11-2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30년 하루키 문학의 집대성!『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197...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0. 1. 11. 01:52

 하루키의 팬이라거나, 혹시 하루키의 다른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면, 하루키가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사실 쯤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약 2년 전에 읽었던 비밀의 숲이라는 에세이에서 취미로서의 그의 달리기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금 그의 취미가 달리기였다는 것을 일깨워 준 책이 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도대체 달리기를 얼마나 좋아하길래, 이렇게 책으로까지 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이 책은 달리기에 대한 내용일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008년, 뜨거웠던 여름. 나도 달렸다. 달리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일주일에 3번은 30분 이상 달리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적어도 10월 이전까지는 그렇게 지켜왔다. 그 때 뭔가 달리기를 하는데, 동기부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뭔가를 찾다가, 이 책에 이르게 되었다.
 
45쪽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나는 하루키처럼, 강물을 생각하려 했고, 구름을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안들고, 도대체 왜 뛰고 있을까, 그 때는 사람들 많은 곳에 있으면 신종플루 걸리는데,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저녁 8시 정도 쯤에는 달리기를 하려는 사람이 공원에 많았기 때문에, 괜한 걱정을 했었다. 그리고, 달리기를 하면 뭔가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은, 내일 해야할 것, 오늘 잘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아마 그 때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일은 쓸데 없는 생각 안하고, 도서관에서 쫌 더 오래 공부해야겠다.'
 
  음. 하지만 10월 이 후에는, 중간고사를 전 · 후로 갑자기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과제와 시험공부 때문에 달리는 시간을 확보하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결국 일주일에 겨우 한 번 하다가, 11월 이 후로는 달리기를 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덕분에 나의 심장과 폐는 몇 달 동안 계속 같은 패턴으로만 운동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하루키의 달리기는 집착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그의 본업은 러너?, 그리고 하루키는 한가하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엄연히 하루키의 직업은 작가이다. 그런데 그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글을 더 잘 쓰기 위해서이다.
 
264쪽 내 경우, 이렇게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소설을 착실하게 쓰기 위해서 신체 능력을 가다듬어 향상시킨다' 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므로 레이스나 연습을 위해서 작품을 쓸 시간을 빼앗겨버리고 나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라고 할까, 약간 곤란한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이유로 현재로서는 비교적 온건한 단계에 나 자신을 머물게 하고 있다.
 
 사실 처음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생각했던 하루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양을 쫓는 모험을 읽고서 느꼈던 하루키는 괴짜일 거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글쓰는 것만 빼면 평범한 직장인과 비슷한 모습이다. 규칙적인 기상과 취침, 그리고 일(글쓰기 혹은 강연). 그리고 취미로서의 달리기. 뭔가 그의 에세이를 읽어보면 분명히 평범한 남성인데, 어떻게 그의 머리에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는지.
 
 하루키는 33살 즈음에, 러너로서, 소설가로서의 출발점에 섰다. 지금은 만 60이 넘은 나이인데, 그 나이 이후로 꾸준히 달리기를 해왔다. 그는 그의 서른세살에 의미를 부여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 스콧 피츠제를드의 조락은 그 나이 언저리에서 시작되었고, 하루키는 소설가로서 그리고 러너로서 발을 내딛는다. 그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달리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의 달리기 이야기들. 실제 아테네 병사가 뛰었던 마라톤 코스, 뉴욕 그리고 보스톤, 트라이애슬론까지. 그의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하다. 바로 달리기를 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마라톤에서의 마라톤에 관한 그의 글을 읽을 때는 그의 인간적인 면도 엿볼 수 있었다. 먼저 '그까짓 쯤이야 -> 덥긴하지만 뛸만한데? -> 목마른데, 맥주마시고 싶다. -> 지겹다. 괜히 시작했네. -> 아, 화난다. 그런데, 화낼 기운도 없다. -> 휴. 도착.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좋다.' 대충 각색해서 이런 심경 변화가 있었다. 아테네의 마라톤 코스의 달리기는 한 남성 잡지에서 하루키에게 부탁해서 이루어진 것인데, 이 달리기가 결국 그의 첫번째 마라톤 완주 기록이 되었다. 음. 그리고 그의 트라이애슬론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나도 한번?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음. 언젠간 하게될지도? 어쨌든, 하루키는 달리기를 하면서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은 작가이자 러너이다.
 
 아마, 우리도 하루키의 달리기와 같은 매일 규칙적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의 경우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신문을 꼭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 특히 토요일 신문. 음. 우리도 뭔가 나름대로 규칙적인 것에 의미를 부여해서, 하루처럼 철학적인 것으로 승화시킨다면, 아마 우리도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something!
 
87~88쪽 건전한 자신감과 불건전한 교만을 가르는 벽은 아주 얇다. 젊었을 때라면 확실히 '적당히 해도' 어떻게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혹사시키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이제까지 쌓아왔던 체력의 축적만으로도 무난한 기록을 올릴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지불해야 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밖에는 손에 넣을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103쪽 마라톤 마을의 아침 카페에서 나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찬 암스텔 비어를 마신다. 맥주는 물론 맛있다. 그러나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115~116쪽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그맊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 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246쪽 가령 몇 살이 되어도 살아 있는 한, 나라고 하는 인간에 대해서 새로운 발견은 있는 것이다. 발가벗고 거울 앞에 아무리 오랜 시간 바라보며 서 있는다 해도 인간의 속까지는 비춰주지 않는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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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0. 1. 4. 23:39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그리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 예전에 읽었던 청년 박문수가 쓴 기쁨의 천마일이라는 책에서 그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프리카에 있어도 아프리카가 그립다는. 진정한 그리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노래 가사의 그것처럼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이것이 진정한 그리움일 게다.

 

 반면에, 진정한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그리움에 대한 설명과 비교했을 때, 아마도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일 것 같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그런 느낌들.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 일반적인가라면,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야 말로 진정한 외로움인 것 같다.

 

 사실 이런 진정한 그리움과 외로움은 드문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미치게 된게, 예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양을 쫓는 모험에서, 진정한 나약함에 대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각을 빗대어 설명하자면

 

"일반론은 그만두자.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물론 인간은 누구나 나약해. 그러나 진정한 나약함은 진정한 강인함과 마찬가지로 드문 법이야. 끊임 없이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나약함을 자네는 모를걸세. 그리고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거야. 모든 것을 일반론으로 규정 지을 수는 없어."

 

 진정한 그리움도 외로움도, 일반론으로 규정지을 수 없고, 실제로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론으로 생각하는 일반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별거 아닌 잡.생.각.이다. 그냥 이런 생각을 갑자기 했을 뿐이다.

 

 사실 어제 감기에 걸렸다. 별로 심하게 걸린 것도 아니고, 아마 하루, 이틀 자고나면 금방 나을 정도의 증세이다. 그런데, 어제 문득 갑자기 스친 생각인데, 혹시, 만약에, 내가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할 때, 혼자 있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궁상맞게, 지금으로썬 내 거처를 아는 유일한 친구에게 문자를 하나 보냈다. 그래도 덜 궁상맞게 ㅋㅋ를 많이 붙여서 보냈다. "혹시..며칠동안나랑연락두절되면ㅋ나찾아와줘ㅋ지금내거처아는사람너밖에없는것같아ㅋ","나감기걸렸는데 ㅋㅋ혹시방에서꼼짝못하게되면ㅋ 도와줄사람이없어ㅋㅋ혹시해서..ㅋ"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궁상맞고,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오는데, 왜 갑자기 어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9. 4. 18:20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여름에 읽어야 제맛(?) 이라며 이 책 읽기를 여름이 되기까지 주저해왔다. 결국 무더운 7월달에 이 책을 집어 들어 읽었다. 그리고 리뷰를 쓰려고 하는 지금은 9월 초. 중요한 것은 책을 읽을 때의 느낌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앞으로는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겠다. 음. 하지만 지금 리뷰가 밀린 책이 벌써 몇권이더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질리지가 않는다. 벌써 이 책이 4번째다. 한 작가의 책을 이렇게 많이 읽은 적은 처음 인 것 같다. 대부분 3권정도에서 그치는데 반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질리지가 않는다. 읽는 책마다 느낌이 다 다른 것 같다. 어떻게 한사람의 머리에서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이야기 보따리가 정말 있다면, 그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머리에는 무한대로 있는 것 같다.
 
 음. 이 책의 장르를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왠지 차분한 추리소설이라고나 해야할까. 차분한 이라는 단어와 추리소설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는 않지만. 어쨌든 양을 쫓아야 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마 이것때분에 차분한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의 모티브는 아마도 283~289쪽의
 
"양이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중국 북부, 몽고 지역에서는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라네. 그 사람들 사이에서는 양이 체네에 들어온 다는 것은 신의 은총이라고 여겨지고 있지. 예를 들어서 원(元) 나라 시대의 어떤 책에는 징기즈칸의 체내에는 '별을 짊어진 백양' 이 들어가 있었다고 씌여져 있지. 어때, 재미있지?"
 "재미있습니다."
 "사람의 체내에 들어갈 수 있는 양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여겨지고 있다네. 그리고 양을 체내에 가지고 있는 사람 역시 영원히 죽지않는다는 거야. 그러나 양이 달아나 버리면, 그 불사성(不死性)도 상실되는 거지. 모든 것은 양에 달린 거네. 양은 마음에 들면 몇십년 이라도 같은 데에 있고, 마땅찮으면 홱 나가 버리지. 양이 달아나버린 사람들은 보통 '양이 빠져 나간 사람' 이라 불리는 데 즉 나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거네."
 
인 것 같다. 정말로 이런 이야기가 있는지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서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보통 양은 순한 느낌인데, 이 책에서 나오는 양은 뭔가 다른 느낌이다. 신비한,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생각해보니 꼭 양(羊)일 필요는 없을텐데. 아마 위의 설화가 양이 아니라 개(犬)였다면, 개를 쫓는 모험이었을려나;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는 학생운동에 빠졌던 자신의 과거를 청산이라고 한다. 사실 이것은 해설을 통해 알게 된 건데, 관념을 의미하는 양을 쫓았지만, 결국 양은 죽고(관념이 무너짐),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그런 이야기 인 것 같다. 본인이 직접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에 있는 해설과 연관지어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면  자신의 나약함인 것 같다.
 
420쪽 "일반론은 그만두자.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물론 인간은 누구나 나약해. 그러나 진정한 나약함은 진정한 강인함과 마찬가지로 드문 법이야. 끊임 없이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나약함을 자네는 모를걸세. 그리고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거야. 모든 것을 일반론으로 규정 지을 수는 없어."
 
423쪽 "난 나의 나약함이 좋아. 고통이나 쓰라림도 좋고 여름 햇살과 바람 냄새와 매미 소리, 그런것들이 좋아. 무작정 좋은 거야. 자네와 마시는 맥주라든가……"
 
 아마도 뭔가 해설과 연관지어 본다면 자신이 쫓았던 관념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이번에도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생각을 담은 독특한 문장들을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아참, 그리고 이 책에는 다른 책과는 다르게 언급된 책이나 작가의 이름이 적은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 여러 작가와 여러 책들을 언급하는데, 상대적으로 이 책에서는 적었다. 이 책속의 책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고요한 돈강, 도이치(독일) 이데올로기, 주니타키의 역사이다. 위의 3권의 책은 검색하면 결과가 나오지만, 주니타키의 역사는 검색 결과가 없다. 이 책의 중심 배경이 되는 곳이 주니타키인데, 하루키가 주니타키에 찾아 가면서 읽은 책이다.
 
447쪽 나는 강을 따라서 하구까지 걸어가 마지막으로 남은 50미터 정도 되는 모래사장에 앉아 두 시간 동안 울었다. 난생 처음 그렇게 울어 보았다. 두 시간 동안 울고 나서 겨우 일어설 수가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나는 일어서서 바지에 묻은 고운 모래를 털었다.
 날은 완전히 저물었고, 걷기 시작하자 등뒤에서 파도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장이다. 왠지 상실의 시대의 마지막 부분과 느낌이 비슷했다. 무언가 깨닳은, 하지만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그런 느낌.
 
 음.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뭔가 이해가 잘 안되었었는데, 상실의 시대를 읽었을 때 그랬던 것 처럼. 이 또한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었던 것 처럼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양을 쫓는 모험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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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