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에게 보낸 편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4.06 가슴 절절한 러브레터
  2. 2009.04.02 글쓰기에 대해서
  3. 2009.03.22 영화를 본다는 것
2009. 4. 6. 00:09


 이 책을 덮고나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책에는 없을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의 결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때 할 일이 없었을 때 네이버의 기사를 섭렵(?)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으니, 프랑스의 한 철학자가 불치의 병에 걸린 자신의 부인과 동반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쇼킹한 뉴스여서, 잠시동안 생각을 했었더랬다.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음. 나 솔직히 이 사람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어떻게 알게되었냐면, 예전에 매일경제 신문에서의 신간소개 코너에서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읽고 싶어서, 책 보관함에 계속 넣어놨다. 오래 묵은 책들을 찾아보니, 마침 이 책이 보였다. 그리고 머지 않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음. 이 사람 철학자라는데, 내가 아는 게 없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앙드레 고르와 그의 아내 도린은 영화같은 첫 만남을 가졌다. 도린을 보고 첫눈에 반한 고르는 그녀에게 춤을 청한다. 그녀의 대답은 "와이 낫!" 이었다. 그렇게 둘의 첫만남이 시작되었고 그들의 사랑도 시작되었다.
 
12쪽 쾌락이라는건 상대에게서 가져오거나 상대에게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 덕에 알았습니다. 쾌락은 자신을 내어주면서 또 상대가 자신을 내어주게 만드는 것이더군요.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었습니다.
 
21쪽 우리는 둘 다 불안과 갈등의 자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보호해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서로가 서로에게 힘입어, 이 세상에서 있을 자리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애초부터 우리에겐 없던 자리를 말입니다.
 
30쪽 만약 내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면, 나는 결코 세상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입 밖에 낼 줄 몰랐던 말들을 나는 찾아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함께했으면 한다는 마음을 당신에게 전할 수 있는 말들을.
 
 고르와 도린의 사랑은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 사랑이 아닌, 서로를 채워주는,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했다. 즉,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나'인 서로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랑 말이다.
 
 둘의 관계는 둘 만의 사적인 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공적인 즉, 고르의 일에서도 함께 했었다. 도린은 고르가 글을 쓰는데, 조언도 해주었고, 독려도 해주었다. 때로는 고르가 미처 깨우치지 못한 것들도 알려주기도 한다.
 
52~53쪽 나는 내 생각을 구조화하기 위해 이론이 필요했고, 구조화되지 않은 생각은 항상 경험주의와 무의미 속에 빠져버릴 위험이 있다고 당신에게 반박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대답했지요. 이론이란 언제든 현실의 생동하는 복잡성을 인식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53쪽 직관도 감동도 없다면 지성도 없고 의미도 없음을 당신은 인지과학을 공부하지 않고도 알았던 것입니다. 당신의 판단은 전달될 수는 있지만 증명해 보일 수는 없는, 그러나 당신이 몸소 겪어 얻은 확신의 토대 위에 서 있었습니다. 이런 판단의 권위 - 그것을 '윤리'라고 합시다 - 는 논쟁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생기는 것입니다. 반면 이론적 판단의 권위는 논쟁으로 설득시키지 못하면 무너지고 맙니다.
 
72쪽 당신은 내게 삶의 풍부함을 알게 해주었고, 나는 당신을 통해 삶을 사랑했습니다. 아니, 삶을 통해 당신을 사랑한 건지도 모르겠군요.
 
 아름다운 고르와 도린의 사랑이 항상 평화로운 것은 아니었다. 잘못된 치료로 거미막염이라는 병에 걸리게 된다. 사실 거미막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책에서 잠깐 잠깐 고통스러워 하는 도린의 모습을 볼 때,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병이라고 짐작을 할 수 있었다.
 
79쪽 우리 둘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고 믿고 싶었는데, 당신만 혼자 그런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고르와 도린은 이를 계기로 생태주의와 기술비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75~76쪽 즉 산업의 팽창은 사회를 거대한 기계로 바꾸어놓는데, 그 기계는 인간을 해방하기는커녕 인간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공간을 제한하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적과 그 추구 방식을 결정해버린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거대한 기계의 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을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온갖 서비스가 동시에 전문화함에 따라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책임지고, 자기 요구를 스스로 결정하고 충족시키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직업들'에 종속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읽고 심하게 공감을 했었다. 무엇이 본질인지 한번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책의 후반부이다. 후반부를 읽을 때에는 뭔가 동반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문장들이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89~90쪽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실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왜 그는 그리고 그녀는 동반자살을 선택했을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랑을 해보지 않아서 인가보다.
 
87쪽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본질인 단 하나의 일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썼지요. 당신이 본질이니 그 본질이 없으면 나머지는 당신이 있기에 중요해 보였던 것들마저도, 모두 의미와 중요성을 잃어버립니다.
 
 서로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 앙드레 고르는 도린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큰 상실감, 즉 삶의 본질의 상실감을 느끼고서, 결국 삶을 마감했으리라고.
 
 이 책의 뒷 표지에, 김훈작가가, 짧은 서평을 쓴게 있는데, 마지막 줄에 아, 나는 언제 이런 사랑 한번 해보나. 읽고서, 나도 똑같이 마음속으로 따라해봤다.
 
 음. 두 번 읽었다. 처음에는 지하철에서 통학하면서 읽었었고, 두 번째는 혼자 영화를 보러 갔었는데, 시간이 남아, 영화를 기다리며, 이 책을 읽었었다. 처음 읽을 때는 사실, 그냥 텍스트만 읽고 간 느낌이었는데, 두 번째 읽을 때는 뭔가 가슴에 더 와닿는 느낌이었다. 먹먹했고, 가슴 한 켠이, 살짝 아렸다.

D에게 보낸 편지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앙드레 고르 (학고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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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맛있는 단어 & 문장2009. 4. 2. 08:39
- 앙드레 고르의 <D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37쪽 글쓰는 사람의 첫째 목적은 그가 쓰는 글의 내용이 아닙니다. 그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쓴다는 행위입니다. 쓴다는 것은 세상과 자기 자신을 문학적 구상의 소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다루는 '주제'에 대한 문제는 그 다음에야 제기되는 것입니다. 주제는 필요조건입니다. 글을 만들어 낼 때 부차적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지요. 글을 쓸 수만 있게 해준다면 어떤 주제든 좋은 주제입니다.

52~53쪽 나는 내 생각을 구조화하기 위해 이론이 필요했고, 구조화되지 않은 생각은 항상 경험주의와 무의미 속에 빠져버릴 위험이 있다고 당신에게 반박했습니다. 그러면 다인은 대답했지요. 이론이란 언제든 현실의 생동하는 복잡성을 인식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Posted by 데이드리머
일상2009. 3. 22. 22:09

 어제 난생 처음, 극장에 혼자 갔다. 음.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아마도 2007년 <화려한 휴가>를 본 후에 처음 간 것 같다. 원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에 취미는 없는데, 요즘 부쩍 영화가 땡겼다. 이번 주 내내 벼르고 있었는데 못가다가, 여유로운 그리고 약간은 따스한 토요일 오후에 시간이 남아, 신촌에서 독서 모임을 마친 후에 극장을 갔다. 극장에 온 대부분은 모처럼 따뜻한 토요일을 즐기기 위한 연인들이었다.

 

 영화를 보려고 약 한시간 넘게 기다린 것 같다.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얼마 전에 완독 했던 앙드레 고르의 를 다시 읽었다. 절반 정도 읽으니, 영화 시간에 다다랐다. 어제 봤던 영화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이다.

 

 빈민가에서 자란 자말(주인공)이 퀴즈쇼에서 엄청난 상금을 탄다는 내용이다. 음. 퀴즈쇼에 나간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쨌든 퀴즈쇼에 나가서 문제를 푸는데,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빈민가 출신의 자말이 문제를 척척 맞추는데, 결국 마지막 문제를 남겨두고 생방송 퀴즈쇼의 묘미로 인해 다음 날 다시 출연하게 된다. 하지만 퀴즈쇼를 마치고 사기죄(추정)로 인해 체포된다. 체포되고나서, 공범자가 있는지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의 과거를 진술한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의 어두웠던 사건들이 퀴즈쇼 문제의 정답과 얽히면서 우여곡절 끝에 문제를 맞춰나간 이야기를 한다. 형사는 그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믿고 풀어주고, 자말은 다시 퀴즈쇼에 나가 마지막 한 문제를 맞춰 밀리어네어가 된다. 그리고 TV로 자신을 지켜본 라티카를 만나고 끝난다. 음. 마지막 엔딩은 조금 촌스러웠다. 영화를 보다가 몇몇 부분은 개연성이 없는 부분이 있었고, 약간은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소재가 참신하고, 접하기 어려운 인도 영화를 보게 되어서 좋았다. 음.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접했는데, 좋은 영화를 발견해서, 즐거운 토요일 오후를 보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가지 생각한 게 있었다. 37쪽에는 "글쓰는 사람의 첫째 목적은 그가 쓰는 글의 내용이 아닙니다. 그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쓴다는 행위입니다." 라는 내용이 있다. 를 읽은 직 후 영화를 봤던 터라,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영화를 보는 것에 취미가 없어서 많은 영화를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씩, 영화를 미치도록 보고 싶은 때가 있다. 딱히 어떤 영화를 꼭 찝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그리워 질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영화를 재밌게 봤다는 것 보다는, 그냥 영화를 봤다는 자체로 만족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떤 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는 누구와 봤고, 그날 영화를 보고나서 무엇을 했고, 영화를 보기전에는 무엇을 했는지가 더 머릿속에 남아 있곤 하다. 그래서 영화는 나에게 기억의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화 <왕의 남자>는 친구가 군대를 가기 며 칠전에 만나서 밥 먹고나서, 영화 보고, 당구장에 갔던 기억이 하나의 영화이다.

 

 음. 그리고 이건 잡소리지만 영화 말고도, 어떤 날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이야기를 못하는 경우에는 이런 저런 글을 쓰곤 한다. 그런 날이 많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 3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주제도 없고 그리 대단한 글도 아니지만, 글을 쓰고 나면 뭔가 후련해지기도 하고, 나중에 보면 챙피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그냥 글을 쓰고 있다는 -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는 - 사실 자체로 만족을 얻곤 한다. 그렇게 키보드를 두드린 결과물이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음. 사실 짧게 쓰려고 시작한 글이 너무 길어진 느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한 것은, 영화를 혼자 본다는 것이다. 지금 까지 극장에 혼자가서 영화를 본 적은 없었는데, 혼자 다녀오니까 왜 이렇게 편한지. 뭔가 혼자를 즐기는 타입은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음. 영화를 같이 볼 여자친구는 없구나. 어쨌든 혼자 영화 보는 것을 즐기고 오니 좋았다. 가끔 여러명이 영화를 보러 갈 때 - 특히  어떤 영화를 보러 갈지를 정하지 않았을 때 - 는 한참을 고민하곤 한다. 대부분 즐겁게 보긴 하지만, 가끔 나의 주장이 강해서 영화를 보게 될 때 - 그런 경우는 많지 않지만 - 그 영화가 한숨만 나오게 하는 영화였다면, 등에서 미안한 땀(?)이 나오게 된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의견으로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 또한 한숨이 나오는 영화라면. 음. 어쨌든 그래서 영화를 혼자 보는게 좋다. 그리고 또한 어떤 사람을 꾀어서(?) 영화를 보게 되면 - 이런 경우는 별로 없지만, 사실 내가 꾀임을 당한 적이 더 많다 -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미안해진다. 영화 러닝 타임이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은 족히 되니까. 어쨌든, 딱 한번 영화를 혼자 봤을 뿐인데, 영화 혼자보기 예찬론자가 되어버렸다.

 음. 하지만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이 때, 여자친구와 같이 영화를 보는 날이 머지 않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