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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15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2013. 12. 15. 22:26

 언젠가 알랭 드 보통의 글은 현학적이라는 비평을 읽은 적이 있었다. 사실 현학적이라는 말이라는 자체의 의미도 몰랐으나, 그 이후로 보통의 책을 추천했던 사람이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멀리했었다. 그 이유는 단지 현학적이라는 비평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현학적이라는 단어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명사】I. 스스로 자기 학문이나 지식을 뽐내는 것.
【관형사】II. 스스로 자기 학문이나 지식을 뽐내는.

 

 

 어려운 말로 비판해서 그렇지, 쉽게 이야기하면 결국은 똑똑한 척해서 "재수 없다."라는 의미이다. 사실 책을 읽다 보면, 현학적이라는 비판이 일견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25살에 사람들에게 널리 읽힐만한 소설을 쓴 언어 천재인 그에게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시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2007, 청어람)는 어떻게 철학적으로 사랑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린 책이다. 제목만 볼 때에는 단순한 철학책인 듯싶지만, 사실 소설책이다. 책은 주인공의 운명적인 만남, 연애 기간, 필연적인 헤어짐,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주인공과 클로이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며, 어떻게 마침표를 찍게 되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관객의 입장으로써, 우리가 사랑 - 이라는 것을 - 느낄 때 가졌던 감정의 타당성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재밌는 책이었다. 사랑의 시작과 끝을 자연의 이치로 비교해보면, 마치 꽃이 피고 지는 것 같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84쪽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하여 얻은 행복, 이성적으로 노력해서 어떤 일들을 성취한 뒤에 찾아오는 행복은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내가 클로이와 함께 얻은 행복은 깊은 철학적 숙고 뒤에 나온 것도 아니고 개인적 성취의 결과도 아니었다. 단지 신의 기적적 개입에 의하여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귀중한 사람을 찾아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그런 행복은 위험했다. 자족적인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략) 클로이가 대표하는 행복을 받아들이는 어려움은 거기에 이르는 인과 과정이 없다는 것, 따라서 내 삶에서 그 행복을 빚어낸 요소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온다. 클로이와 나의 관계는 마치 신들이 만들어놓은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신의 보복에 대한 원시적인 두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사랑은 이성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기적적 개입에 의한 결과이다. 이는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행복의 절정에도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기적적인 만남 이후, 만남을 거듭할수록, 사랑의 이유는 하나하나 덧붙여져, 결국 왜 너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만들어 버린다. "예뻐서, 멋있어서, 혹은 지적이어서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원초적으로밖에 할 수가 없다. 바로 '네가 너 이기 때문이다.'라고.

 

 

190~191쪽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사랑의 순간에는 내가 이 세상의 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고, 마치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예전에 사랑했던 네"가 "지금의 네"가 아니라면 결국 필연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순간'도 있었겠지만, '사랑으로 고통스럽고, 네가 너여서 지겹다.'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도 한순간이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한 교훈은 무엇인가?

 

 

"273쪽 사랑을 평가할 때에는 교조적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로 달아나지 말아야 하고, 두려움의 철학이나 실망의 윤리학을 구축하지 말아야 했다. 사랑은 분석적 정신에게 겸손을 가르쳤다. 아무리 확고부동한 확실성에 이르려고 몸부림을 쳐도 [그 결론에 번호를 붙여서 단정하게 배치해놓는다고 해도] 분석에는 결함이 없을 수 없다는 교훈, 따라서 아이러니로부터 절대로 멀리 벗어날 수가 없다는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작년 가을에 사서, 올해 가을에 읽었던 책인데, 의외로 재미있었고, 현학적이라는 비판쯤이야 잊을 정도로 흡입력 있는 이야기에 마지막 장을 덮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랭 드 보통이 언어 천재라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저자
알랭 드 보통 지음
출판사
청미래 | 2013-0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한 24가지의 담론!인류의 역사와 함...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