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23. 00:55

 2009년에 1940년대편 1권을 읽고, 2년이 지나서야 2권을 읽었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산더미다. 90년대편까지 연대별로 3~4권의 책이 있는데, 장기 프로젝트로 읽어야 할 듯. 점점 장기 프로젝트가 늘어난다. 조정래 장편 소설 부터 시작해서...

 

 09년에 읽었을 땐, 왜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근본부터 알고 싶어서 읽게 되었었다. 요 근래 2권을 읽은 이유는 그냥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부터.

 

 40년 대는 격변의 시기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격변이 아닌 시기는 없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난세에 영웅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많았었나, 너무도 많은 이름들이 등장했다.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를 정도로.

 

 2권에서의 주인공은 1권에 이어서 이승만과 김구이다. 그 중에서도 김구에 대해 조명을 해보자면, 저자는 김구에 대한 평가에 '안전의 욕구'가 스며들었다고 한다. 사실 김구가 정말로 존경받아야 할 시기는 장덕수 암살의 배후자로 지목 받고, 경찰에 연행되어 씻을 수 없는 수모를 당한 후 부터였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소원이 통일이 아니었을 게다.

 

68쪽 " 장덕수가 암살되었을 때 이승만은 김구를 배후로 지적했고 그 후 김구는 경찰에 연행되어 씻을 수 없는 수모를 당한 후로 이승만과 헤어질 것을 결심했다. 그 후속 조치로 나온 것이 단정론의 철회와 남북협상론이었다. 따라서 김구의 남북 통일론의 배후에는 우국적 고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승만과의 애증의 문제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신복룡, 「한국사 새로 보기: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역사의 진실」재인용)

 

 1권을 읽고서, 김구가 그렇게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왜 만인의 존경의 대상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물론 내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도 그만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을테지만, 공이 과에 비해서 너무 크게 평가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승만에 대해서도. 건국의 아버지라고 추대받지만, 분단을 고착화 시킨 장본인. 그리고 본인의 권력을 위해 많은 힘 없는 국민을 죽인 장본인. 특히 그 당시의 종교라고 할 수 있었던 반공과 마녀라고 할 수 있었던 좌익, 빨갱이는 권력 유지에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제주 4.3 사건에 대한 텍스트를 읽을 때는,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해보았다. 국민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국가란 무엇인가. 4.3 사건에 대한 글을 읽을 때, 책을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아직도 나이드신 제주 도민들은 4.3 사건에 대해 기억할 때는, 언급하기 꺼려하고 몸서리를 친다고 한다. 참고로 국가의 4.3 사건 희생자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는 노무현 대통령이 했다고 한다.

 

 이 사건에 비할 바 못되지만, 최근 국민들에게 최루액을 사용한 물포를 사용하기도 했다. 국민에게 최루액을 사용해야만 하는 국가는 과연 선인가? 물론 국가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 WBC 등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지만, 국가의 유지, 혹은 권력의 유지를 위해 언제고 국민을 피해자로 만들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있다는 건 명심해야할 일인 것 같다. 이는 헌법의 풍경이라는 책을 읽을 때도 느꼈던 점.

 

 그런 점에서 욕망과 폭력의 제도화라는 소제목은 이 시기를 잘 압축해준다. 누구의 욕망을 위함이며,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동원되었던 폭력. 폭력은 당연히 이 시기에 좌익이라고 의심받던 사람들. 사실 단지 희생양이 필요했을 뿐이었기 때문에, 좌익이 아니었더라도 언제나 그 폭력이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역시 이 시기에는 친일파의 득세도 빼놓을 수 없다.

 

312쪽 해방정국에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친일파 위주의 기능적 효율성만을 따져선 안 될 이유가 전쟁 중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지배집단은 일제 시기에도 그랬던 것처럼 전쟁이 터지자 다시 해방 전으로 돌아가 자신과 자기 가족 챙기기에만 바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후 한국의 지배, 엘리트 집단의 전통으로 굳어져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게 된다.

 

 최근 역사 왜곡을 한다고 추정되는(?) 다큐멘터리가 이슈가 되었고, 반대편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에 페인트를 뿌리기도 했다. 아직도 역사는 우리를 지배한다. 매 시기의 역사적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도 쌓여가, 후대가 어떻게 이 시기를 기억할 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역사를 대하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2(개정판)(8·15해방에서6·25전야까지)
카테고리 역사/문화 > 한국사 > 근현대사 > 해방전후사/한국전쟁
지은이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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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10. 1. 28. 01:22
 
 작년에 읽었던 책. 작년 부쩍 우리나라 현대사가 궁금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그것이 촉발되었고,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이 후에,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어떤 책이 좋을까 싶어서 고민하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냥 거창하게 현재 우리나라 정치 구조에 누적된 문제점이 갑자기 궁금해져서, 혹시 멀지 않은 가까운 과거를 알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고, 솔직히 말하면, 아는 척을 하고 싶어서 였던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책은 1940년대 1편으로 일제 치하로부터 해방된 1945년, 1946년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강준만 교수님이 머리말에 쓴 이야기인데, 한 대학생이 40년대 후반의 이야기를 읽다가, 우울해서 이 책을 덮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덮지는 않았고 - 사서 읽은 책이었기 때문에 다 읽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 속으로 욕을 하며 읽었다.
 
 해방 이 후, 격동의 1940년대. 이 책을 읽고 가장 오래 가슴을 저미게 만들었던 이야기는 해방 소식을 듣고도 사람들이 기뻐 곧바로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 아니라 그 전대로 무표정하기만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줄곳 겁을 먹고 지내왔고, 해방된 그 순간에도 일본 경찰이 버티고 있었으므로, 바로 기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4~5시간 후 대폭발로 이어졌다. 어쨌든 나는 이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고 가슴이 아팠다. 기뻐도 곧바로 기뻐하지 못했던 그 4~5시간.
 
 어쨌든 해방 이 후, 하지만 기쁨의 순간만이 그 시간을 채웠던 것은 아니었다. 해방이 갑작스럽게 와서, 아무런 준비도 못했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 시기, 우리나라이 진짜로 영웅이 나왔더라면, 지금 우리나라는 분단되어 있지도 않았을테고, 친일파들이 득실거려, 후대에도 떵떵거리며 살지는 았았을 게다. 영웅이 나오기는 커녕 영웅인 척 하려했던 사나이-슈퍼맨이었던 사나이 패러디 - 들만 득세했다. 어쨌든, 그 시기 영우이 되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았나보다. 이는 인정욕구와 영웅주의라고 저자는 분석했던 것 같다.
 
 이 때 친일청산을 했어야 했지만, 슬픈 이야기이지만 일제 치하에서 미군정으로 변화되었을 때, 전범국인 일본을 철저하게 처벌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즉 미국이 전략적 요충지로 이용했기 때문에, 일본은 전쟁을 일으키고도, 그에 합당한 벌을 받지 않았다. 아마 일본의 힘이 약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친일파의 힘 또한 약해질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또 그들은 미군정의 부름을 받아, 더 큰 권력을 누렸다고 한다. 이 참을 수 없는 기회주의.
 
10쪽 이 시기에 진정한 이데올로기가 있었다면, 그건 대세 또는 힘이 센 쪽으로 기우는 기회주의였을 것이다. 해방 이틀 후 소련군이 서울역에 들어온다는 헛소문은 그런 기회주의를 유감없이 드러나게 해준 사건이었다. 후일 강력한 반공(反共) · 반소(反蘇)주의자로 활동하게 되는 사람들도 그때엔 소련군에 대한 대대적인 환영을 준비하였기 때문이다.
 피가 끓는 원한관계, 전통적인 유대관계, 대세 추종의 처세술 등과 같은 동기들로 인해 빚어졌거나 증폭된 갈등마저 이데올로기 투쟁이라 불러야 한다면, 그건 아마도 '의사(擬似 : 실제와 비슷함) 이데올로기 투쟁' 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음. 친일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친일을 했으나, 인정하지 않은 뻔뻔한 친일, 그리고 반성하는 친일. 물론 모두 잘못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반성하지 않는 뻔뻔한, 정당화하는 친일이 많지 않나 싶다. 한편 내가 당시에 살았더라면 친일을 하지 않았으려나? 모르겠다. 하기야. 친일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하는건데, 친일 하는 것도 아마 어려웠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나라 국민의 단결도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의 과잉으로 인해 너도나도 우익, 좌익을 선택받기를 강요받았고, 흑백논리는 덤이었다. 중도를 지키기란 어려웠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저자는 그 동안 오랫동안 막혔던 둑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표현했고, 통제가 어려웠고, 통제를 시도할 주체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욕망은 애국심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그 시기는 시정잡배도 정치를 부르짖었고, 영웅이 되던 시기였다.
 
 또 한 가지 의아했던 점은, 백범 김구에 대한 점이다. 그냥 지금 우리나라에서 김구 선생이 과대평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은 조심스러운 부분이기에. 뭐라고 할 말은 없고,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그냥 단편적인 생각일 뿐. 당시 친일파 처단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는 정치자금 문제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종종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현실 상황을 오판 했었고, 자신의 욕심인지, 민족을 위한 것인지 불분명한 상황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지난 해, 조정래 작가님의 강연회를 듣고서, 뭔가 생각한 게 있었다. 청산리 전투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사람은 김좌진 장군인데, 사실 그 때 김좌진 장군 말고도 기억해야할 분이 있다고 했는데, 이름을 까먹었다. 어쨌든, 남한과 북한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영웅화 시켰다는 말씀이었다. 즉, 균형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였다. 김구에 대한 평가도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한 것 같다. 뭐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지껄인 이야기이고, 진짜 아무것도 모르면서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래 빈수레가 요란하다고들 하니까.
 
 그리고 당시 임시정부는 분열하고 있었고, 과도한 보상욕구와 인정욕구에 굶주렸다고 한다. 결국 민족을 위해 했던 일이라고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순수하게 민족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던가보다. 아마 영웅이 되고 싶었던 마음도 컸을 것이다.
 
136쪽 이타적 삶을 산 사람들의 과도한 보상욕구가 문제였을까? 보상욕구 자체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나, 그런 전통은 훗날까지도 계속되어 민중으로 하여금 엘리트의 이타적인 행동을 정략적인 '장기 투자' 로 보게끔 만드는 가공할 효과를 낳게 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책 읽은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예전에 조금 메모한 것을 바탕으로 쓴 글인데, 뭔가 당시에는 재밌게, 애써 읽었었는데, 기억력이 좋지 않아 지금 머리에 남은 게 많지 않다는 것이 슬프다.
 
18~19쪽 진정한 '낙관과 긍정'을 위해선 우리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회복이 필요하다. 그래야 과거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다. 그래야 오늘이 규명되고 더 나은 내일이 열린다. 어떤 역사적 조건의 산물 또는 역사의 상흔은 우리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의식구조로까지 자리잡아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역사 탐구의 장점은 현재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의 기원을 캠으로써 그것이 어떠한 역사적 조건의 산물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게끔 해준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1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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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3. 29. 09:53


 작년 말이었다. KBS에서 방송 했던 TV 책을 말하다에 이 책이 소개되었다. 패널이 음. 누구였더라. 우석훈 교수님하고, 음 시골의사 박경철도 아마 출연 했을 것이다. 두 분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그 방송에 대한 기억은 많이 나질 않지만, 이 책에 대한 임팩트는 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샀고, 책을 산지 약 2달이 지난 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일단 지방의 사전적 의미는 서울 이외의 지역이다. 방송 중에 기억나는 한가지는 우석훈 교수님이 지방이라는 단어에도 서울 중심적인 사고가 물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참, 그리고 한가지 더 생각 나는 게 있는데, 시골의사 박경철님은 아마도 강준만 교수님이기에 이런 책을 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음. 강준만 교수님은, 예전에 한참 월간지 인물과 사상을 읽을 때 처음 접했다. 그 때 교수님의 글이 기억에 오래 남았었는데, 음. 누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식민지가 뜻하는 것은 지방이 서울(수도권)에 정치,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내부식민지론으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부식민지를 고착화 시키는 주범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교육인 것 같다. 예부터 '말은 나면 제주도로, 사람은 나면 서울로'라는 말이 있었다. 아마 옛부터 모든 것의 중심이 서울로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 것같다. 서울로의 집중. 물론 긍정적인 외부효과도 있지만, 아마 부정적인 외부효과가 더 큰 것 같다. 나 또한 내부식민지를 고착화 시키는데, 일조하는 것 같아서 할말은 없지만서도, 서울로 유학을 온 지방학생들이 서울에서 사용하는 돈을 따져보면 -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돈이 지방에서 쓰이지 않고 - 어마어마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서울에 소재하는 대학교에 학생들이 집중하는가? 그것은 단순하다. 단지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서울의 많은 학교들이 서울에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짐에도 많은 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학교들을 지방으로 옮긴다면, 과연 지금의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을까?'하고 묻는다. 아마 답은 뻔할 것이다. 53쪽의 "지방의 여러 지역에선 아직도 지역의 우수인재를 서울로 보내는 걸 '지역발전전략' 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걸 내부식민지 근성에 찌든 추태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라는 구절을 읽을 때는, 왠지 뜨끔했다. 뭐 나는 고향에서의 '지역발전전략' 정책의 수혜를 입은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음. 지금 수혜를 입고 있다. 서울유학생을 위한 기숙사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감사히 잘 지내고 있지만, 이것을 내부식민지 근성에 찌든 추태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정말 궁금하기는 하다. 그래서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과연 여러 방법으로 혜택을 받은 학생들이 너무너무 고마워서 과연 나중에 고향에 뭔가 기여를 해야한다고 생각할까? 이건 조금 아닌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니. 나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주위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95쪽에 소개된 한 예는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남겨준다. 도쿄대학 법학부, 교토대학 법학부의 학생 2명이 중앙관청이나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고 지역발전을 위해 고향에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이런 결심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교육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중 한 예가 방송, 신문이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잡담을 하면, "지방방송 꺼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지방방송을 왜 꺼야 하는가. 지방방송을 꺼서인지, 지방사람들은 지방의 소식들 보다는 서울의 소식에 더 빠삭하다. 이는 방송 뿐만 아니다. 신문도 마찬가지인데, 중앙지인 조중동의 점유율이 지방에서 지방지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중앙지에서는 지방에 대한 기사를 단지 한면에 걸쳐 싣는게 전부인데. 덕분에 지방지는 고사위기에 처해졌다고 한다.
 
 음. 그리고 예전에 블랙 스완을 읽을 때 접했던 프랙털 이론을 여기서 한번 더 만났다. 수학자 만델브로가 고안한 개념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프랙털 이론이 어떻게 쓰였냐 하면, 서울-지방의 관계가, 지방에서도 똑같이 예를 들어 부산-경남, 광주-전남의 관계와 비슷핟고 한다. 사이가 좋고 나쁨을 떠나, 서울에 많은 것들이 집중되듯이, 지방의 대도시도 또한 집중이 되고, 더 깊게 들어가면 읍-면의 관계도 비슷한 것같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너무 외부적인 측면에 대해서 썼는데, 사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외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부적 문제이다. 너무 외부적으로만 접근하면 피해의식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내부적인 문제도 많다. 지방에서의 이권 다툼, 지방 행정의 후진성, 그리고 지방민의 무관심, 지방의 교수들의 무책임함. 등등 내부적으로도 개선해야할 문제점들이 많다.
 
 이 책에서 지방의 발전을 주장하는 것을 넓혀보면, 성장과 분배로도 설명할 수 있다. 지방은 분배를 요구하고 있고, 서울은 성장을 지향하고 있다. 이건 필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가치가 어떤 것에 더 큰 비중을 두는지에 따라 방향이 설정되는지, 적어도 지금까지는 서울의 성장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이러다가 전 국토가 수도권이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344쪽 지방이 지방주의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울이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발상을 포기한 만큼 그 걱정도 지방이 해야 한다. 수도권의 고민도 헤어려가면서 좀더 정교한 대안을 제시하고 추진해 나가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을 지방이 책임지자."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뭔가 저자의 결연한 주장인 것 같다.
 
20쪽 지금 지방의 요구는 무조건 수도권에 있던 것을 빼내서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라는 게 아니다. 전체 파이를 키우지 못하면서 나눠 먹기만 하자는 것도 아니다. 중앙의 기만적인 정책, 그리고 새로 투자 · 투입되는 돈과 인허가권이 수도권 위주로 돌아가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44쪽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의 근본 문제는 헌법이나 제도에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줄세우기와 줄서기 관행에 있다. 이런 관행은 이성과 양심을 가진 자율적 개인을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며, 내부 비판과 이견을 압살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총명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인 집단일지라도 스스로 망할 때까지 아무런 자구책을 내놓지 못한다. 이게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줄 공화국' 의 부끄러운 얼굴이다.
 
69쪽 규제를 푸는 건 수도권엔 '현금' 이다. 일도 매우 간단하다. 규제를 푸는 것만으로 모든 게 완성된다. 반면 국가의 지원을 지방에 집중하겠다는 건 지방엔 '어음' 이다. 그것도 만기일이 멀리 남은 5년짜리 어음이다. 안전장치도 없다. 법적으로 강제할 수도 없는 신뢰뿐이다.
 
135쪽 우리는 공공 영역의 사유화에 대해 많은 비판을 쏟아내곤 있지만 작심하고 그걸 본격적인 이슈로 삼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아니, 고양이 목에 방울 매달 사람이 없다고 보는 게 옳겠다. 사유화를 근절할 순 없을망정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공공 영역이 전리품으로 탕진되는 걸 막는 것 이상 큰 개혁이 어디에 있겠는가.
 
139쪽 사회개혁을 위한 비판에서도 '역지사지' 는 꼭 필요하다. 실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국민도 '직업으로서의 정치' 에 대한 역지사지를 해줘야 한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지만 정치인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에겐 생계수단이기도 하다. 그걸 인정하는 현실적 기반 위에 서야 정치를 바판하더라도 힘이 실리고 응징도 제대로 할 수 있다.
 
152쪽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한 마당이 펼쳐졌을 때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최근의 촛불집회처람 말이다. 그런 기회는 자주 오지도 않지만, 그건 좀 무책임한 생각이다. 내가 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거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일에 참여를 해주면 그 일이 그럴듯해지고, 참여자가 늘면 세상을 진짜로 바꾸게 된다. 우리는 왜 이런 간단한 이치를 외면하는 걸까?
 
238쪽 아는 만큼 보일 뿐만 아니라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지역문화에 대해 별로 좋은 줄 몰랐던 것도 알게 되면 몹시 좋아하게 된다. 지역문화를 모를 뿐만 아니라 무관심한 수용자들을 상대로 그 무지와 무관심을 그대로 둔 채 아무리 콘텐츠 경쟁력을 역설해봐야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293쪽 한국은 세계에서 교육열이 가장 뜨거운 나라다. 긍지를 느끼고 자랑할 만 하다. 그러나 그 그림자가 있으니, 그게 바로 학력 · 학벌 숭배주의다. 자신만 숭배하고 끝나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자신의 숭배심을 근거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게 문제다.

지방은 식민지다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강준만 (개마고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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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