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3.04 시계, 거울, 창문
  2. 2010.01.25 참을 수 있는 인간의 악함
단상2011. 3. 4. 23:23

# 시계, 거울, 창문.

 

이 3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카지노에 없다는 것. 사실 카지노에 가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다. 왜 이 3가지가 없을까? 카지노의 상술이긴 하지만, 뭔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긴다. 시계, 거울, 창문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계를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내가 앉아있는 순간에도, 생각하고 있는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 가는 구나. 적어도 내가 멈춰 있는 순간만이라도, 시간이 흐르지 않는 다면 좋으련만.

 

어떻게 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죽어간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분명 죽는 때는 다가오고, 시간이라는 놈은 우리의 죽음까지 남는 시간을 점점 앞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조금 더 의미 있게 사용해야 한다.

 

# 요즘 자꾸 생각나는 말씀이 있다.

 

예레미야 23:23~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이 말씀을 처음 인지하게 된 때는 지난 10월이었던 것 같다. 면접 탈락 발표가 나고나서, 충격이 컸었다. 딱히 붙을 이유는 없었지만, 떨어질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던 면접이었기 때문이다. 눈물이 울컥하려던 것을 참았다. 오히려 때로는 따뜻한 위로가 눈물을 흘리게 만들기도 한다. "괜찮지? 아, 괜찮아요. 잘 될꺼야." 이 한 마디가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는 사실도 그 시절에 알았다.

 

발표가 나서, 한 시간 넘게 이불 둘러싸매고 누워있었다. 그러다 일기로 마음을 풀고.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목요찬양예배에 갔다. 예배 중에, 목사님께서 예레미아 23:23~24 말씀을 인용하셨다. 우리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가까이에 있는 하나님만을 생각한다. 한 때, 하나님을 생각할 때, 찬양 가사에서 처럼.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신음을 해도, 구직은 요원해지고, 내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때가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먼 데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기 원하는 것 같았다. 천지에 충만한 하나님은 왜 모를까. 이런 찬양이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 철야 예배 때 불러서 생각나는 찬양인데, 그 찬양 가사 중에는

 

가시 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라는 게 있다. 어떻게, 가시 밭의 백합화에서 예수 향기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걸 아는 게, 천지에 충만한 하나님을 아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어쨌든 요즘 자꾸 이 말씀이 생각나는 것은, 기도 응답하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온 땅 가운데 충만한 하나님을 눈여겨보고, 귀 기울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 대학교에 갓 입학한 꼬꼬마 신입생들을 바라보며, 같이 캠퍼스를 거닐던 한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저 때가 좋았는데." 그래서 그랬다. 나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비록 아직 직장도 없고, 내세울만한 거 하나도 없지만, 나는 그 때 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변덕이 심해서, 내일 아침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예전에 이찬수 목사님 설교 중에서 누군가의 말을 인용했었는데, 청년에게 가장 주기 아까운 게 청춘이라고 했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직 나는 내게 주어진 청춘의 가치를 잘 모르지만, 무얼 해도 싱그러운 지금 이 청춘, 대학교 신입생 때 더 잘 알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새로운 팀은 짱이다. 간사님을 비롯해서, 새로운 리더진. 자주 만나서 그런지, 벌써부터 아늑해졌다. 좋다!

 

# 이번 주일 아침. 참 오랜만에 맞는 비였던 것 같다. 늦은 겨울비 인지. 아니면 봄을 맞이하는 비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꽃샘비라고 해두자. 어쨌든 오랜만에 어색하게 우산을 갖고 나갔다. 전 날 잠이 안와 뒤척이다가 늦게 잤고, 아침에 겨우 일어났다. 날씨가 생각보다 쌀쌀해 조금 더 따뜻하게 입고 올껄 그랬나 보다 했더랬다.

 

종로 3가역에서 내려, 대동세무고등학교를 찾는 데 한참. 참 좋아진 세상. 구글맵을 이용해서, 겨우 찾아갔다. 도착 해서, 교실에 들어가니, 이미 열심히 가져온 종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뭐... 준비해 간 것도 없었다. 심지어는 연필도 준비 안해 갔으니. 왜 생각지도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식은땀 줄줄. 원래 공식적인 시험에서는 연필 사용 불가 인 줄 당연히 알지만, 괜히 연필이 없어서 불안했더랬다.

 

시험 시작. 뭔가 나도 언론사 시험을 보는구나. 나의 시험 이력에 한 획(?)을 긋는 기분으로 시험을 본 것 같다. 허나, 상식 시험에서 좌절. 원래 상식만은 진짜로 자신있었는데. 이래뵈도, 상식 있는 남자. 아오. 며칠 전에 신문에서 본거였는데, 한 숨만 수 차례. 그리고 서너어 문제.

 

작문 시험. 언론사 시험이 이런건지도 몰랐었다. 주제어 하나만 하니 던져 놓고, 한시간 동안 1600자 내외로 쓰라는데. 막막할 줄 알았지만, 다행히, 나는 잘 한 것 같다. 다만, 분명히 보수적인 성향인 경제 신문에 정부 비판을 많이 해놨으니.

 

제작년에 읽은 로맹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소설을 처음에 인용했다. 그 소설은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책인데, 그 책에 "벽"이라는 내용의 단편 소설이 등장한다. 약간 외설적이긴 한데.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가끔 마주쳤던 천사같이 아름다운 한 여자를 연모하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와 여자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사이이다. 남자는 고독했던 존재였다. 그의 전 존재는 애정을 갈구했다. 그러던 중, 그 천사같이 아름다운 여자는 그를 감동시켰다. 하지만, 어느 날 밤. 그의 옆 방에서 들리는 삐걱임, 신음, 그리고 특이한 소리가 그의 귀를 울렸고, 이는 그를 더욱 낙담하게 만들었다. 미지의 처녀를 사랑하던 그는 그녀가 쾌락의 소리를 내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남자는 고독의 겨운 세상을 져버리고, 자살하고 말았다. 하지만, 후에 밝혀진 사실은 그것은 그 청년의 오해했던 소리는 그녀는 비소 중독으로 인해 점점 죽어가는 소리였던 것이었다. 그녀가 죽은 이유는 "고통스러운 고독과 삶에 대한 총체적인 혐오 때문이었다."

 

이 정도의 예를 들고 - 사실 소설의 내용을 정확하게 옮기지는 못했다. - 벽은 소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용기 없음으로 자신을 죽인 것, 그리고 비약적이지만은 고독에 빠진 그녀를 구하지 못한 점도 남자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리고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MB 취임 3주년이 되던 주였던 것 같다. 그래서 3년 동안 잘했던 점. 물론 이것도 억지 칭찬이었지만, 대충 썼다. 그리고 질책도 했다. 소통의 부재에 대한. 광우병 소고기 문제 때, 그는 분명 자신이 소통하지 못함에 대해서 반성했었고, 앞으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취임 3주년 기자 간담회는, 가지 회견이 아니라, 등반으로 바꼈고, 등반하는 동안 받았던 질문은 겨우 3개, 그것도 영양가 없었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벽을 뚫고 소통해야 한다. 앞에서 예를 든, 남자와 여자의 꼴 나기전에.

 

이렇게 써놓고 보니, 작문은 잘한 줄 알았는데, 맘에 안든다. 뭐, 그래도, 이게 그 때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생각이긴 했다. 벽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생각났던 게, 그 소설이었으므로.

 

시험을 마치고, 나가는 길. 눈이 안 좋아, 혹시 으로 본건 아니었나. 급 생각이 들어서, 거듭 확인했더랬다. 어이 없겠지만, 진짜로, 식은 땀 줄줄.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0. 1. 25. 23:22

 두번 째 읽는 에밀 아자르, 아니 이번엔 로맹 가리의 소설. 이 소설은 단편이다. 단편 중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라는 제목이 있는데, 그 제목을 이 책 전체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이 전에 읽었던 그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워낙에 재밌게 읽었던 터라,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뭐가 재밌는지도 모르겠고, 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는 이유도 잘 모를 정도였다. 그래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왜 재밌는지 모르겠다고. 친구의 문자-이 책은 인간의 악함을 다루고 있다는-를 받고서, 그제서야 재미를 느꼈었다. 이 책은 인간의 참을 수 있는, 아니 참을 수 밖에 없는 악함을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나는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토로를 했다.
 
 이 책에는 16편의 단편 소설들이 있다. 모두 하나같이 부도덕하고, 악한 인간들의 군상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의 군상들을 보고 있으면, 아니 읽고 있으면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 지는 것은 나 자신이다. 왜냐하면 그 모습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로맹 가리 자신의 모습도 또한 소설 속에 조금이나마 녹아 있지 않을까 싶다.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이다. 그냥 얼마 전에 폴 고갱을 모델로 한 달과 6펜스를 읽었는데, 그 책에서 스트릭랜드가 최후를 맞이한 섬인 타히티와 폴 고갱이 이 이야기에서 언급된다. 이 이야기는 탐욕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벗어나 홀로 섬에 간 주인공이 그곳에서 폴 고갱의 그림이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 그 그림들을 비싼 값에 매입한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그림은 모사된 그림이었고, 결국 그는 순수를 찾아간 그 섬에서 조차, 탐욕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한 재밌게 읽었다. 벽을 사이에 둔 남녀의 자살, 부질없는 망상, 오해, 외로움, 관음증을 다룬 이야기인데, 짤막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한번 읽어보시라! 단편 모음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부담도 적은 것 같다.
 
 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다 재밌게 읽었다던,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궁금한건 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 다고 글을 썼을까? 왜 하필이면 페루일까? 하는 생각들인데 별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에 대한 설명은 이와 같다. 
 
18쪽 "어쨌든 한 가지 설명은 있을 거요. 언제나 한 가지 이유는 있는 법이니까."
 
 
 
115쪽 "(생략)속임수와 거짓된 가치가 도처에서 기승을 부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획일성이 있다면 걸작의 그것 아니겠소. 우리는 온갖 위조범들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야 하오. 내게 예술작품이란 신성한 거요. 나에게 작품의 진위는 종교라고 할까······(생략)"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로맹 가리 (문학동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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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