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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03 진눈깨비
  2. 2012.03.13 수선화에게 4
  3. 2012.03.10 봄빛
2012. 4. 3. 22:18

진눈깨비

                                                                   기형도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참 많은 각오를 했었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  
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  
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  
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 했다, 진눈깨비


점심을 먹고, 기형도 시집을 펴서 읽는데, 진눈깨비가 나왔다. 그리고 창 밖에는 진눈깨비가 내렸다. 19년만에 4월의 서울 하늘에 내린 눈이란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3. 13. 17:17

종로 5가 근처에서 친한 형과 밥을 먹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수선화를 샀다. 감히 꽃에게 샀다는 표현을 하기에는 너무 미안하지만. 수선화를 보자마자, 정호승님의 수선화에게라는 시가 떠올라, 아니 살 수가 없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내가 수선화를 산 것도 외로움때문이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3. 10. 18:45
겨우 내 게을렀던 빛이
기여코 6시 넘어까지 길을 밝힌다

해가 길어진다
어두움이 짧아진다

고요한 어둠 속 평온함은 짧아지고
빛 속의 시끌벅적함은 길어진다

아 봄이여
왜 밤을 앗아가는가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