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8.21 미학 오디세이 1
  2. 2009.11.15 진중권의 이매진
  3. 2009.03.24 진중권 교수님을 만나다
2010. 8. 21. 09:07
 
 지난 2009년 2학기 때, 서구문예사라는 교양과목을 수강했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문예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는데, 문학과 예술을 이르는 말이라는데, 사실 예술은 배웠지만, 문학은 배운 적이 없다. 아마 문학과 예술이라기 보다는 문화와 예술을 뜻하는 건가보다. 어쨌든,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과목은, 인터넷 강의이기 때문에 수강한 것이었다. 학교를 하루라도 더 안가고자 하는 열망때문에, 어쨌든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학기때는 일주일에 학교에 4번만 다녔었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 학기보다 수업을 덜 듣는데, 이번에는 일주일 내내 학교에 간다.
 
 사실, 지난 학기 때 가장 재밌었던 과목은 서구문예사였다. 이제 전공도 질리고, 사실 어려워서 하기가 싫어진다. 음. 사실 머리가 안따라가준다. 어쨌든, 처음에는 궁여지책으로 이 과목을 수강했었는데, 뭔가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즐거움 때문이었나, 재밌게 수강했었고, 그에 걸맞는 성적도 받았다. 부끄럽지만 지난 학기 때는 좋은 성적을 받지는 못했는데, 이 과목이 그나마 평점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역할을 했었다.
 
 생소한 분야에 관심이 확장되는 차에, 예전부터 작가님의 명성만으로 읽고 싶었던 책인, 이 책이 떠올랐다. 진중권 교수님의 미학 오디세이 1. 진중권 교수님의 이매진을 조금 어렵게 읽었던 터라,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조금 걱정이 됬었는데, 그리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 진중권 교수님도 미학이 생소하게 알려졌던 때에 이 책을 썼던 터라, 조금이라도 쉽게 쓴 것 같았다.
 
 이 책은 에셔의 작품 따라, 서양 예술의 발전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표지에는 에셔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라고 쓰여있다. 참고로 나는 에셔라는 사람을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위키피디아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수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를 표현한 판화로 유명하다'고 한다. (2010년 7월 23일 현재. 3월 6일에 써놓고 임시 저장해놓은 글에 다시 이어서 쓰는 글. 당연히 책 내용은 다 잊어버렸다.) 수직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를 표현한 판화. 뭔가 맞지 않지만, 아귀가 들어 맞는 그런 그림. 그런데, 이러한 에셔의 그림의 순서를 통해, 미의 주관화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여기부터는 2010년 8월 21일에 쓰여진 글)
 
57쪽 가상과 진리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대략 두 가지 노선이 있었다. 플라톤은 예술이 가상을 포기해야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관점은 그 뒤에도 여러 가지로 변형되고 뒤섞이면서, 미학사 속에서 자꾸 되풀이된다.
 
 어느 예술이든지, 항상 2 가지로 대립하는 것 같다. 위에서 표현한 것 처럼, 일단 가상과 진리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를 조금 더 고상하게 표현해본다면,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이다. 헌데, 이는 최근에만 있었던 대립은 아닌 것 같다. 이는 선사시대로부터 이어져온 대립이다.
 
31쪽 선사 시대부터 우리는 벌써 두 가지 대립되는 재현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구석기 시대의 자연주의적 양식과 신석기 시대의 기하학적 양식이 그것이다. 현존하는 미개 부족들은 신석기 단계에 있기에 대부분 추상적, 기하학적 양식을 보여주는 데 반하여, 아직 구석기 단계에 있는 부시맨에게선 자연주의적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어쨌든 이 두 양식의 대립은 오랫동안 미술사를 지배하게 되는데, 이 대립이 인류 최초의 문명 세계에서도 새로운 형태로 되풀이 된다.
 
 그리고 이 미학 오디세이는 이를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가상의 대화가 이루어져 있는데, 두 철학자의 가상의 대화를 읽으면서, 진중권은 진정 천재라는 생각을 한 두번 한게 아니었다.
 
 이제 여기서 급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책을 다시 읽지 않는 한, 제대로 된 리뷰가 나올 것 같진 않다. 언제는 제대로 쓴적이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여튼, 여기서 급마무리.
 
 E.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미학을 이에 빗대어 정의해보면, 객관과 주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혼자 정의를 내려본다.
 
 아참, 일단 1권은 선사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의 예술 작품을 다루는 것 같다.
 
207쪽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 두 사람은 예술 활동으로나, 이론 활동으로나 모든 면에서 서로 적대적이었다. 다 빈치과 회화를 가장 높이 평가했다면,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oti, 1475~1564)에게는 조각이야말로 예술 중의 예술이었다. 다 빈치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읽고 과학적 관차과 실험에 관심이 있었다면, 미켈란젤로는 신플라톤주의의 신비주의에 기울어져 있었다. 다 빈치가 자신을 합리적 규칙에 따라 작업하는 과학자라고 생각했다면, 미켈란젤로는 영감에 따라 작업하는 고독한 천재로 의식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한 차례 정면 대결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피렌체 시가 두 천재에게 시의회 대회의실의 벽면에 각각 시의 역사에 관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던 거다. 이 세기적 대결은 아쉽게도 무산되고 말았다. 대결이 이루어졌다면 과연 누가 이겼을까?


미학오디세이1
카테고리 인문 > 철학 > 주제별철학 > 미학
지은이 진중권 (휴머니스트,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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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11. 15. 20:39


 지난 3월 23일, 학교에서 진중권 교수님 강연회에 갔었다. 그 때 진 교수님 강연을 듣고 나서, 이 책에 진 교수님 사인을 받았다. (그 과정은 일전에 글로 쓴 적이 있다.) 그 이후에 누군가와 진중권 교수님의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그때의 일을 자랑하곤 한다. 하지만 사인 받으려고 책을 산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왠지 이 책에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차라리 미학 오디세이에 사인을 받을걸 그랬나 보다.

 

 먼저 나는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 등장하는 영화는 유명한 영화들일텐데, 봤던 영화는 5편뿐이었다. (사실 5편이 채 안되는 줄 알았었는데, 딱 다섯 편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흥미로운 주제의 글들은 많았지만, 영화를 몰라서 읽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리고 읽기 어려웠던 이유가, 진 교수님 책을 처음 읽는 거였는데, 일단 말들이 어려웠다. 눈에 익숙지 않은 단어들이 난무하는 바람에 읽는데, 애를 먹었다. 아마 나의 읽기 능력이 떨어져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진중권 교수님 인터뷰를 한 동영상을 봤는데, 어려운 단어들은 의학에 빗대면 수술 도구와 같은 것이고,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는 게 필수라는 내용의 말을 했었다. 그리고 의미를 표현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영화 비평서로 알고 읽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영화 비평서가 아니라 영화 담론에 관한 책이라고 한다. 영화를 여러 가지 범주로 나눠서 서술했다. 그 중에 몇 가지 재미있는 내용을 설명하자면,

 

 먼저 uncanny vally. 일본의 로봇공학자 마사히로 모리는 “산을 오르는 것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함수의 예다. 정상까지의 거리가 줄어든다고 고도가 항상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에 언덕과 계곡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로봇이 점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친밀도가 증가하다가 어떤 계곡에 도달하는 것을 관찰했다. 나는 이런 관계를 ‘섬뜩함의 계곡’(不氣味の谷)이라 부른다.” 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이 섬뜩함의 계곡, 즉 uncanny vally의 개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는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를 설명하는 글에서 소개된 개념이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저자는 언캐니 밸리에 빠져 좌초했다고 한다. 반면에 <스타워즈>에 나오는 로봇 C3PO와 <터미네이터>는 전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막상 컴퓨터 기술로 실제와 유사한 모습으로 재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혐오감을 주는 것은, 아직은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기에, 아니면 인간의 고유의 영역을 지키려는 우리의 의지가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다음은 인터렉티브 필름(interactive film). ‘설마 이런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음직한데, 정말로 이런 영화가 있다고 한다. 이는 영화와 게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예로 설명된 되었다. 사실 이 영화는 ‘비디오 게임’으로 분류되나, 감독이 직접 인터렉티브 필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 이유는 관객과 영화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관객은 영화 중간에 등장인물들을 조종하여 영화(혹은 게임)의 플롯을 창조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영화의 다른 예는 <키노아우토마트>라는 영화인데, 조금 아니 많이 오래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당시 2대의 영사기를 사용했고, 관객은 상영 도중 모두 다섯 번 투표를 해야 했다고 한다. 하하. 영화에 비해서 우리내 인생은 항상 누군가 -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 그리고 부모님 등등 - 와 인터렉티브 하기때문에 모든 결정은 주위의 누군가의 개입으로 인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재밌게 본 영화인 서사의 파괴에서 소개된 나비효과에 대한 설명도 재밌었고,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소개된 라쇼몽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나름대로 재밌는 책 인 것 같다. 영화 한편에서도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부러웠다.

 

39쪽 이미지는 설득하지 않는다. 그저 도취시킬 뿐이다. 이성은 마비되고, 그래서 정신은 황홀하다.

 

98쪽 TV는 눈의 연장, 라디오는 귀의 연장, 자동차는 다리의 연장, 크레인은 팔의 연장, 컴퓨터는 두뇌의 연장, 이런 견해를 흔히 미디어의 ‘의족명제’(prothesenthese)라 한다.

 

133쪽 이미지가 뜨거우면 상상력은 식는다. 중세의 목판화는 차갑다. 관객에게 앙상한 뼈대의 빈틈과 간극을 스스로 채우라고 요구한다. 이미지가 차가울 때 상상력은 뜨겁다.

 

152쪽 범죄를 저지를 수 없어서 저지르지 못하는 것은 도덕이 아니다.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지만, 저지르지 않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도덕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설적 결론에 도달한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진정으로 도덕적이다.’

진중권의 이매진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진중권 (씨네21,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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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일상2009. 3. 24. 01:15

 오늘 학교에서 진중권 교수님 강연회를 했다. 주제는 디지털 시대의 문화였다. 열심히 강의 필기를 해가면서 들었다. 유익했던 강의였다. 강의 요약한 내용을 다시 정리해야하는데, 오늘은 졸려서, 못하겠다. 그래서 일단 교수님을 만났던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

 

 티비에서만 보던 진중권 교수님을 실제로 보니깐 새로웠다. 그렇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목소리도  귀에 익고, 방송에서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아서 마치 방송을 보는 듯한 착각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막힘없이 말을 하시고, 학생들의 질문에도 곧 바로 대답을 하시는 달변가이신 것 같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안좋아 할 수도 있는데, 음 나는 그 분을 좋아한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실 강연을 마치고 대단한 만족감을 갖고 지하철 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하철 역을 가는 길에, 뭔가가 아쉬웠다. 역시 막혀있는 공간에서는 생각도 제한되는 것 같다. 길을 걸으며, 생각하는데, 뭔가 강의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그러면서 그냥 아쉬운 마음을 갖고 걷는 길에, 학교 후문의 서점을 발견했다. 서점가서 이런 저럭 책을 스치며 보니, 아쉬운 마음은 조금 풀렸다. 여러 책들을 스치며 보는 중에 진중권 교수님이 얼마 전에 출판한 이매진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나중에 읽어야하고, 그냥 훑어보고, 서점에서 나왔다.

 

 서점을 나와서, 가는 길에 진중권 교수님 일행을 마주쳤다. 근처의 호프집에에 들어갔는데, 진보신당 당원과 학교 교지편집위원회의 조촐한 뒤풀이 같았다. 뭔가 그냥 가기 아쉬워서, 사인을 받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예전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짓을 저질렀다. 서점에가서 이매진을 구입하고, 사인을 받으러 조금 뒤 늦게 따라 들어갔다. 사인을 받고나서 가려는데, 진중권 교수님께서 시간있으면, 조금 있다 가는게 어떻겠느냐는 말씀에, 사실 0.000001초만 고민하다가 바로 진중권 교수님 옆자리에 앉았다. 뭔가 꼽사리라고 해야하나, 주최 측의 모임에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된 것 같아서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사실 말주변이 별로 없어서, 이런 저런 얘기는 많이 못했지만,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재밌었고, 진중권 교수님 옆에서 있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티비 토론회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실 토론회의 특성상, 조금 날카로운 모습만 보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예의바르시고, 상대를 배려하고, 음. 이런걸 젠틀이라고 해야하나. 젠틀 앞에 수식어를 하나 붙이자면, 뭔가 자유로운 젠틀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쨌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에 악수를 하고 진중권 교수님은 먼저 들어가셨다. 그리고 나도 지하철 시간도 있고, 기숙사까지 들어가려면 너무 늦으면 안되니까, 적당한 시간에 먼저 일어났다.

 

 오늘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진중권 교수님의 책을 탐독해야겠다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재발견이다. 사실 예전이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무슨 일로, 내가 이런 일을 했는지. 한편으로는 가상하기도 하다.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나저나 내일 1교수 수업이라서 빨리 자려고 했는데, 일단 기숙사에 늦게 들어와서, 씻고 나니 12시가 넘었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네이트온에서 수다를 떨면서 벌써 1시가 넘었다. 오늘 강연도 정리 못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내일 혹은 주말로 미뤄질 듯 싶다. 흑. 빨리 자야겠다.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엔 지하철을 타고 파김치가 되서 학교에 도착하곤 하는데. 조금 더 일찍 출발해야겠다.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