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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7 고향의 봄 2
단상2011. 4. 17. 01:22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 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딱 이건 내 고향이다. 내 나이대의 사람들은 동의 하기 어려운 봄이지만 적어고 내 고향의 봄은 그렇다. 전원일기에 나오던 그 마을 보다 훨씬 시골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어느 정도 시골이냐면 산골소녀 영자보다는 아니지만, 내가 살던 곳도 완전 산골이었다. 아주 어릴 땐 산을 넘어가면 아라비아 상인들 및 외국인이 사는 줄 알았다. 할머니께서는 산에 가서 우슬이라는 약초를 캐서 파셨는데. 할머니가 산에 다녀오시면 진짜로 외국에 다녀오신지 알았었다.

 

음. 그리고 또 시골 of 시골을 가늠하는 한 가지. 티비가 어느정도 잘 나오냐인데. MBC만 깨끗히 나오고, KBS1은 그럭저럭 KBS2는 날씨에 따라 잘 나올 때도 있었고, SBS는 구경도 못했다. 이건 산골에 살았던 고 2때 까지 지속되었는데.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순풍 산부인과 얘기만 하면 나는 꿀먹은 벙어리 - 그나마 꿀이라도 먹어서 다행이지만 - 마냥 있었더랬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제일 좋아하는 채널은 MBC이다.

 

어릴 때의 봄. 그 곳에서는 계절에 따라서 해야할 것들이 매번 바뀐다. 봄에 하는 연중 행사는 모내기 준비하는 것. 모판에 고운 황토흙을 채우고, 볍씨를 뿌린다. 그리고 모가 돋아나길 기다려. 적당히 자라나면 모내기 시작! 모내기는 보통 기계가 하는데, 직접 손으로 심은 적도 있다. 꼬막손으로 어른들 따라했었는데. 논에 맨발로 들어가 혹시 거머리가 물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거머리가 물면 기겁을 했었는데. 아빠는 쏘쿨하게 손으로 떼어버렸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산에 놀러가서 개나리 진달래 꺾어와서 꽃병에 꽃아 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꽃들한테 미안하다. 그리고 또 봄의 기억 중의 하나는 쑥이랑 미나리를 캐러 다니기도 했고, 고사리 손으로 고사리를 꺾으로 산에 다니기도 했다. 엄마랑 같이 가기도 했었고, 동생들이랑 소꿉친구랑 같이 가기도 했었다.

 

또 봄 하면 생각 나는 게 개학. 학교도 가야지. 마지막 6학 년 때 전교생이 12명 남짓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입학 했을 땐 20명이 넘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같은 학년 3명, 바로 아래 학년 5명. 한 선생님이 두 학년을 맡았다. 뭐 개학이라고 해서 반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해서 딱히 기대감같은 건 없었다. 특히 같은 학년 3명중에 여자가 2명이어서 나는 3년 선배들이랑 주로 놀았다. 축구하거나 주로 학교에 있는 잔디밭에서 야구를 했던 게 기억난다. 음. 그 땐 형들한테 엄청 까불었는데, 지금은 만나면 어색해한다

 

음 그리고 어릴 때도 야구광이었었다. 특히 봄에 야구가 개막하는 데, 매일 매일 스포츠 뉴스를 섭렵하며. 직접 순위표를 만들기도 했었다. 종범이 형 홈런 쳤는지도 관심 대상. 물론 그게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그 때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서 답답해서 직접 스포츠 뉴스를 보며 기록을 하던 영특하던 어린시절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집. 닭장 속에는 암탉이 있었고. 아참. 한가지 인상적이 었던 것. 부엉이도 며칠 유숙했었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부엉이가 잠시 닭장에 있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개도 키웠었고, 염소도 키웠다. 어릴 때 부모님이 왜 그런 걸 시켰는 지 모르지만, 염소도 끌고 다녔다. 철에 따라 좋은 꼴을 먹이는 좋은 목자(?)ㅋㅋㅋㅋㅋ는 아니었고, 염소가 말을 안들어서 나한테 이걸 시킨 부모님을 원망하고, 염소를 원망하고. 어릴 때 아마도 염소 끌다가 팔근육이 유달리 발달했는지도 모른다.

 

집 뒷 뜰에는 자연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이끼가 끼어있고, 가끔 뱀도 지나다녔다. 학교 가는 길에 왕 구렁이 본적도 있고,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하다. 로드킬도 많이 봤다.

 

예전 집엔 두엄밭도 있었다. 나중에 거름으로 쓰게 될. 그리고 화장실은 재래식. 화장실에 갈 때마다, 빠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밤에는 무서워서 화장실에 잘 못가고.

 

집앞 텃밭엔 고추, 옥수수, 마늘, 부추, 고구마, 감자 등을 키웠었다. 그리고 감나무(단감, 떨감), 배나무 아주 어릴 땐 포도나무도 있었던 것 같다. 옆 켠에는 빛좋은 개살구 나무도 자리잡고 있었다.

 

어릴 때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 어릴 때 차암 부잡했었는데. 나무에 올라가는 거 좋아했었다. 괜한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감나무에 열린 감을 먹거나, 수박을 먹고 씨를 뱉으면 며칠 뒤에 싹이 돋아나기도 했다. 물론 이는 가뭄에 콩 나듯의 확률 정도였지만.

 

울타리 밖, 집 옆은 친척집의 밤나무와 감나무 밭. 집 앞에는 아주 작은 대나무 숲도 있었다. 봄이면 죽순이 돋아났는데. 그거 꺽어서 칼싸움을 하곤 했다. 그 때는 죽순이 먹을 거라는 생각은 못해봤다;;;

 

집앞 여우내라는 개천이 있었다. 비가 많이 올 땐 물이 갑자기 불어나, 다리를 삼킬 듯 하지만, 며칠 뒤에 금새 말라버려서, 여우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천(川)이 여우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음. 아주 어릴 때에 그 여우내에서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다. 그 다음 부턴 깊은 물가 근처에도 못가겠더라.

 

직접 손으로 물고기도 잡는 신동이었다 나는. 움직이는 물고기를 잡는 것은 아니고, 돌 사이로 손을 슬그머니 집어 넣으면 운이 좋으면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운이 안 좋으면 빠가사리를 잡거나, 꺽지를 잡아 다치기도 했었던 것 같다.

 

봄 얘기를 하다가, 너무 길어졌다. 벌써 4월도 반을 넘어섰다. T.S. 엘리엇은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 왜 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이유가 있긴 하겠지만. 나도 작년에는 잔인한 달이로구나 읊고 다녔었는데, 올해는 그냥 견딜만하다.

 

시인 김영랑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라는 시에서,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나카시마 미카라는 일본 가수는 벚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연분홍 빛 벚 꽃이 춤출 때 완전히 억누를 수 없는 마음으로 계속 서 있었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꽃잎들. 마냥 아름답기만 하다. 참 복합적인 감정이다. 봄을 여읜 것 같기도 해서, 슬프기도 하지만, 떨어져야 하는 자신의 임무를 다 한 꽃을 보면, 숙연해지기도 한다.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