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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0 침묵 2
단상2010. 12. 20. 01:11

#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을 때, 해야할 일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침묵도 우리가 해야할 일들 중의 하나이다. 침묵해야 비로소 들을 수 있다.

 

반면 시끄러운 곳에 가면, 사고하기를 멈추기도 한다. 한번도 가보지는 않았지만, 클럽에 가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일탈을 원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냥 시끄러운 그 상태에 머물기만 하면, 생각을 피할 수 있다. 시끄러운 곳에서 온전한 생각을 하기는 여간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이 시대. 침묵을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너무 많다. 미디어, 핸드폰 등. 조용히 생각하게 하는 우리를 방해하는 것들. 때로는 세상이 우리를 미혹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시끄럽게 하는 것이다. 끊임 없이 시끄럽게 하는 것.

 

조용히 있으면 불안해 지는 시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침묵 속 에서야 참 나를 만날 수 있다. 정말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나를 말이다.

 

# 고요하게, 그리고 평화롭게 눈이 내리던 금요일 새벽,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 한편이 생각 났다. 왜 그날 이 시가 생각났는지는 모르지만.

 

임의 침묵
                          한용운

임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임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임의 말소리에 귀 먹고
꽃다운 임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 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임은 갔지마는 나는 임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임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도대체 만해 한용운은 어떻게 이런 시를 지었는지 모르겠다. 천재다 천재. 읽을 수록. 이 시의 임은 조국, 부처님, 혹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 일 수도 있다. 이런 비유와 상징이 정말 좋다. 그냥 써놓고, 임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둘러 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용운도 이걸 노리지 않았나 싶다.

지금 나의 임은 누구 일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입니다. 그건 저도 대답 못해요. 왜냐면 저도 모르니까요. 알아도 대답 못해요. 중요한 것은 임은 갔지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그대는 고요한 침묵 속에서 산책하시길. 아. 정말 써놓고도 오그라든다. 왜냐면 지금은 감성이 충만한 새벽 1시. 내일 진짜 이건 부끄러워서 다시 지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생 시절. 이 시를 입시용으로 배우긴 했지만, 나름대로 그 시절에 배웠던 이런 소소한 것들이 나이 들어서 생각나고, 이러한 것은 나름대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말 학교에서 쓸데 없는 것들을 배우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 쓰고 보니, 제일 위에 있는 침묵은 나의 침묵이지만, 위 시의 침묵은 당신의 침묵이다. 나의 침묵은 정당한 거라고 생각해보지만, 사랑하는 나의 임이 침묵한다면, 답답해 죽겠지? 하지만 임의 침묵도 신뢰해야겠다.

 

# 문득 오늘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왜 떠오른거지.

 

# A안과 안이 있다. (A와 ㄱ으로 쓴 것은 둘 중에 한 가지가 우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둘다 동등한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한 가지가 절대로 열등한 것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A와 ㄱ으로 써봤다.) 둘 다 잘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둘 다 좋은 기회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왠지 A를 선택하면 ㄱ을 회피하는 느낌이고, ㄱ을 선택하면, A를 회피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느 것을 선택해도 마음이 편지 않을 것 같은 마음. 결론은 나는 김칫국을 너무 잘 마신다는 거다.


# 이 글의 결론은. 결국 내가 지금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감성 충만한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보고서와 빨래 때문이라는 것. 물론 후자가 더 큰 이유다. 빨래 후. 이제 널고 자야겠다.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