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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7 달과 6펜스
2009. 11. 7. 22:56

 지난 4月. 세계 책의 날때 교보문고에 갔다가 산 책이다. 친구의 강력 추천으로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오래 묵혀놨다가 최근에 읽은 책이다.
 
 서머싯 몸. 굉장히 생소한 이름이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체호프 단편선의 해설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했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도 그의 이름을 본 적이 있다. 서머싯 몸도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 알게된 작가 중의 한명이다.
 
 먼저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이 뜻하는게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뭔가 수수께끼 같은 느낌이었는데, 결국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 의미는 알아내지 못했고, 이 소설에 대한 해설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근데 서머싯 몸이 직접 말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해석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이 책은 유명한 화가인 폴 고갱을 모델로 쓴 책이라고 한다. 뒤에 해설을 읽어보면, 이 책의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와 폴 고갱을 직접적으로 비교한 글도 있는데, 흥미로웠다. 물론 진짜 폴 고갱보다, 소설의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이 더 극적인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찰스 스트릭랜드는 평범한 증권 브로커였다. 하지만 어느 날 무엇엔가 홀렸던지 화가가 되기로 결정하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홀연히 (영국에서) 프랑스로 떠난다.
 
69쪽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치고가 문제겠소? 오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분명 내연녀와 함께 떠났을 것이라는 모두의 추측을 비웃듯이, 그의 결심은 뜻 밖이었다. 그의 그림에의 집착은 무엇엔가 홀렸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설명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안락한 생활은 버리고, 가난한 직업인 화가가 되자 생활이 궁핍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저 그림만 그릴 수 있으면 그에게 더 필요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사람도 그의 그림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다. 시대를 너무 앞선 천재성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림의 가치라는 게 사실 경제학적으로 수요가 있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인데, 그의 그림에 대한 수요는 전혀 없었다. 경제학을 배우지만, 이럴 땐 경제학적 틀이 전혀 쓸모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쨌든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가치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의 가치를 알아본 유일한 한 사람은 너무나도 평범한 화가(더그 스트로브)였다. 천재성을 알아본 평범함. 뭔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긴 한 것 같다. 어쨌든 지극히 평범했든 스토로브는 스트릭랜드를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스트릭랜드의 병이 위중해지자 자신의 부인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집에서 보살핀다. 하지만 결국 스트로브의 부인(블란치)는 스트릭랜드를 사랑하게 되고, 스트로브는 집에서 쫓겨난다. 가장 적절한 사자성어로 표현하지만, 주객전도가 아닌가 싶다. 이것은 분명 블란치가 스트릭랜드를 택한 것이지, 스트릭랜드가 블란치를 택한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블란치는 오로지 예술과 아름다움에만 관심을 가진 스트릭랜드 때문에 자살을 택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아마도 책의 전환점이 아닌가 싶다. 여기까지는 1인칭 화자가 직접 관찰한 스트릭랜드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후 ''는 스트릭랜드를 만나지 못한다. 스트릭랜드는 이 후 타히티라는 섬으로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타히티로 떠난 후의 내용은 절대적으로 '나'에 의한 기억보다는 '다른 사람'에 의한 스트릭랜드의 이야기에 의존한 글이었다.
 
 스트릭랜드가 타히티로 건나간 후 아타라는 소녀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아타는 철저하게 스트릭랜드에 순종하는 여성상이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문둥병에 걸려 죽게된다. 문둥병에 걸려 눈이 보이지 않는 기간동안에도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오두막에 자신의 최후의 걸작을 그렸지만, 아타는 스트릭랜드의 유언대로 그의 시체와 함께 오두막을 불태워버린다. 이렇게 그림에 홀린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는 끝이난다. (책의 내용이 끝난 것은 아님.)
 
 책의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까지 왜 제목이 달과 6펜스인지 몰랐다. 아마 해설을 읽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해설에서 은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에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고 한다. 스트릭랜드는 책에서 6펜스의 세상을 떠나 달의 세계를 지향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거나, 혹은 인간에 대한 통찰에 대한 글에 감탄을 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고, 무언가 느낀적은 있는데, 말이나 글로 옮기기 어려운 것들은 작가는 글로 잘 풀어 낸 것 같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닌가 보다.
 
 찰스 스트릭랜드에 대해 글을 쓰자면,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인 것 같다. 욕을 실컷 퍼부어도 모자랄텐데, 희안하게 끌린다. 욕은 하지만 왠지 동정이 된다. 아마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골칫거리가 될테고, 아무도 상종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런 사람들에게 끌리는 것은 오늘날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다. 이 책의 화자도 또한 스트릭랜드를 비난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다녔었다. 스트릭랜드는 시대를 앞선  나.쁜.남.자.의 전형이다.
 
 앞으로 누군가가 재밌는 소설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꼭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10~11쪽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서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전설적인 사건들은 주인공을 불멸의 세계로 들여 보내는 가장 확실한 입장권이 되어준다.
 
102쪽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는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159쪽 사랑은 몰입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  머리로는 알지 모르나 - 자기의 사랑이 끝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환상임을 알지만 사랑은 환상에 구체성을 부여해 준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을 현실보다 더 사랑한다. 사랑은 사람을 실제보다 약간 더 훌륭한 존재로, 동시에 약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기가 아니다. 더 이상 한 개인이 아니고 하나의 사물, 말하자면 자기 자아에게는 낯선, 어떤 목적의 도구가 되고 만다.
 
207쪽 사람이란 사교적인 교제를 통해서는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외양만을 보여준다. 따라서 사람을 진짜로 알기 위해서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소한 행동이라든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스치는 순간적인 표정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때로는 가면을 너무 철저히 쓰고 다니다가 정말 그 가면과 같은 인격이 되어버리는 일도 있다. 하지만 책이나 그림은 진짜 모습을 꼼짝없이 드러내고 만다. 겉만 그럴싸한 것은 곧 속이 텅 비어 있음을 나타낼 뿐이다. 욋가지를 쇳조각처럼 칠한다 해도 쇳조각처럼 보일 리는 없다. 아무리 특이하게 꾸민다 해도 평범한 정신을 감출 수는 없다.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작품에서도 날카로운 관찰자는 영혼의 깊은 비밀을 읽어내고 만다.
 
220쪽 남녀가 똑같이 사랑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다른 점은, 여자가 하루 온종일 사랑할 수 있는 데 비해 남자는 이따금씩밖에 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달과 6펜스(세계문학전집 38)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서머셋 모옴 (민음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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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