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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4 천재들의 실패
2010. 2. 4. 01:16

 금융사(史)에 대해서 관심이 있거나 해서 책을 찾아보면, 항상 나오는 실패 사례가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ING은행에 단돈 $1에 팔린 베어링 은행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유명한 사건 중의 하나는 LTCM 파산 사건이다. 금융의 역사에서 두 금융기관은 실패의 사례로, 실패의 교과서로 여겨진다. 그래서 국내 금융 자격증을 공부하다보면, 실패 사례로까지 등장한다. 하지만 실패라고 해서 모두 같지는 않다. 베어링 은행의 파산 사건은, 직원 관리를 잘못해서 생긴 실패이지만, LTCM 파산 사건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다.
 
 LTCM의 설립자인 존 메리웨더는 LTCM을 설립하기 이전에는 살로먼 브라더스의 차익거래팀을 이끈 유능한 간부였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실수로 인한 실패와 나중에 LTCM의 실패는 거의 유사하다. 어쨌든 일단 살로먼 브라더스에서의 실패를 극복하고 LTCM을 설립한다. LTCM은 Long Term Capital Managemet의 약자로 말 그대로 장기 자본으로 투자하는 회사이다. 그의 일환으로 헤지펀드로서는 드물게 최소 3년 만기의 폐쇄형이었다. 그리고 LTCM이 유명세를 탔던 것은 무엇보다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을 스카웃해 그들의 투자이론으로 무장했기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그들의 투자 이론과 위험 관리 기법은 곧잘 들아맞아서 초창기에는 많은 돈을 벌어 투자자들을 기쁘게 하기도 했다.

 모든 투자의 기본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그 중에서 차익거래 기법은 선물 가격과 현물 가격의 차이를 이용한 것으로 무위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법이다. 그리고 스프레드 거래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기초자산을 대상으로 하는 선물가격이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에 착안, 둘 이상의 선물계약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포지션을 설정하는 투기적인 거래형태다. LTCM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투자기법을 이용했다. (차익거래와 스프레드 거래 정의는 네이버 사전 참조.)
 
 그리고 이러한 투자 기법 외에도 LTCM은 레버리지를 다른 헤지펀드보다 크게 사용했다. 즉 자기 자본이외에도 빌린 돈이 LTCM의 투자 금액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러한 겉으로 보기에는 안전한 기법과 명성으로 그들의 시작은 창대했다. 하지만 끝은 미약했다. 모든 금융 역사의 스토리는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하다. 창대한 시작은 결국 사람들의 욕심에 불을 붙인다. 이는 예전에 다른 글에서도 쓴 적이 있는데, 이는 초심자의 행운과 일치한다. 결국 초심자의 행운은 가혹한 시험으로 끝나게 된다.
 
 어쨌든, 그들의 성공으로 LTCM에 투자한 금융 기관들은 함박웃음을 지었고, 더 투자하지 못해서 안달이 났었다. 그들은 점점 시장에서 큰 고래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골의사 박경철이 예전에 했던 이야기들인데, 고래에 연못이 있다고 생각하자. 연못의 대부분을 고래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 경우에 고래가 빠져 나간다고 생각한다면, 연못의 물은 크게 출렁이다 못해 바깥으러 넘치기까지 할 것이다. 이를 금융시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지난 금융위기 때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생각할 때, 외국인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가자, 우리나라 주식 시장이 엄청나게 출렁였었다. 그 때 사람들의 입에 오르 내렸던 이야기들은 반토막이었다. 어쨌든 LTCM은 거대한 고래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는 그들이 시장에서 빠져나가면 시장이 크게 출렁인다는 이야기이고, 그들이 매도하는 물량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팔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장에 매도자밖에 없다면? LTCM이 파산한 이유 가운데, 이러한 배경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들은 위험을 간과했었고, 인간적인 요소human factor를 무시했다. 그들은 미래의 리스크를 과거의 가격과 변동성을 근거로 추측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실수였다. 어쨌든 그들은 이론을 신봉했지만, 항상 세상이 이론과 같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그것을 간과했다. 이번 금융 위기도 마찬가지 였다. 그 덕분에 유명해진 책이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블랙 스완이다. 정규 분포의 극단의 사건들이 역사에서, 특히 금융의 역사에서는 더 크게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선언, 아시아의 금융 위기 등의 일련의 사건들은 시장을 극도로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모든 시장은 출렁였고, LTCM이 보유한 포트폴리오에도 영향을 미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만약 그들의 위험관리 기법이 딱 들어맞았다면 그들은 많은 돈을 벌었을텐데, 아니 최소한 잃지는 않았을텐데, 그들의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자산들은 결국 흔들렸고, 위기가 되니깐 모든 자산의 가격이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즉 폭락했다.
 
290쪽 위기시에 '상관 관계는 항상 1이 된다.' 지진이 일어나면 모든 시장이 흔들리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첨단 투자 기법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려버렸다. 결국 그들은 미국 정부의 구제 금융을 받았다. 금융의 역사에서 항상 되풀이 되는 과정인 것 같다. 원래 파산시켜야 마땅하지만, 파산시키기에는 너무 여파가 크기 때문에, 즉 too big to fail. 이번 금융 위기 때도 마찬가지로 많은 금융 기관들이 구제 금융을 받았다.
 
 이러한 탐욕으로 인한 금융 위기 발생 시, 피해를 입는 사람은 다수의 대중이다. 특히 최근의 금융 위기는, 실물에서 전이된 위기라기 보다는 금융 그 자체의 문제로 발생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금융의 문제가 실물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어쨌든, 이제 금융에서의 위기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은 적절하게 규제되어야 한다. 최근 오바마 정부에서 금융 산업을 규제하는 계획을 세우는데, 덕분에 주가가 많이 떨어져서,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그들의 계획에 찬성한다. 특히 국민들의 세금으로 구제 금융을 받을 때는 얼씨구 하고 받고, 조금 살아날 기세가 보이니까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 특히 일반 국민들은 아직도 경기가 회복됬다는 것을 크게 체감하고 있지 못한 상황인데 말이다. 어쨌든, 금융은 적절하게 규제되어야 한다.
 
 책의 내용에서 약간 벗어난 이야기로 흐르긴 했다. 음. 재밌게 읽긴 했는데, 조금 어렵기도 했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이 많아 헷갈리기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름대로 재밌는 책이었다.
 
102쪽 원칙적으로는 세상이 과거처럼만 돌아간다면 리스크는 없다.
                                         _ 머턴 밀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276쪽 금융은 종종 한 편의 시만큼이나 공정하다. 그것은 무모함을 적절한 열정으로 응징한다. LTCM의 채권자들은 과거 자신들의 너그러움이 현재의 혼란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보통은 고객이 파산해도 대출해 준 사람은 마진의 형태로 담보를 가지고 있겠지만, LTCM의 경우에는 이론적으로 아예 아무것도 못 건질 수도 있었다. 은행들이 LTCM에 헤어컷을 면제해 주면서까지 자금 지원을 해준 것이 펀드가 한계점까지 운용되도록 도와준 격이 되었다. 이제 만약 LTCM이 도산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362쪽 미래의 리스크를 과거의 가격과 변동성을 근거로 추측할 수 있다는 믿음이 거의 모든 투자 은행과 트레이딩 부서에 팽배해 있었다. 바로 이것이 LTCM의 기본적인 실수였고, 그들의 엄청난 손실은 현대 금융학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풀기 어려운 결점을 폭로한 것이다.

천재들의 실패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로저 로웬스타인 (한국경제신문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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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