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09. 3. 22. 22:09

 어제 난생 처음, 극장에 혼자 갔다. 음.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아마도 2007년 <화려한 휴가>를 본 후에 처음 간 것 같다. 원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에 취미는 없는데, 요즘 부쩍 영화가 땡겼다. 이번 주 내내 벼르고 있었는데 못가다가, 여유로운 그리고 약간은 따스한 토요일 오후에 시간이 남아, 신촌에서 독서 모임을 마친 후에 극장을 갔다. 극장에 온 대부분은 모처럼 따뜻한 토요일을 즐기기 위한 연인들이었다.

 

 영화를 보려고 약 한시간 넘게 기다린 것 같다.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얼마 전에 완독 했던 앙드레 고르의 를 다시 읽었다. 절반 정도 읽으니, 영화 시간에 다다랐다. 어제 봤던 영화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이다.

 

 빈민가에서 자란 자말(주인공)이 퀴즈쇼에서 엄청난 상금을 탄다는 내용이다. 음. 퀴즈쇼에 나간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쨌든 퀴즈쇼에 나가서 문제를 푸는데,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빈민가 출신의 자말이 문제를 척척 맞추는데, 결국 마지막 문제를 남겨두고 생방송 퀴즈쇼의 묘미로 인해 다음 날 다시 출연하게 된다. 하지만 퀴즈쇼를 마치고 사기죄(추정)로 인해 체포된다. 체포되고나서, 공범자가 있는지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의 과거를 진술한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의 어두웠던 사건들이 퀴즈쇼 문제의 정답과 얽히면서 우여곡절 끝에 문제를 맞춰나간 이야기를 한다. 형사는 그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믿고 풀어주고, 자말은 다시 퀴즈쇼에 나가 마지막 한 문제를 맞춰 밀리어네어가 된다. 그리고 TV로 자신을 지켜본 라티카를 만나고 끝난다. 음. 마지막 엔딩은 조금 촌스러웠다. 영화를 보다가 몇몇 부분은 개연성이 없는 부분이 있었고, 약간은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소재가 참신하고, 접하기 어려운 인도 영화를 보게 되어서 좋았다. 음.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접했는데, 좋은 영화를 발견해서, 즐거운 토요일 오후를 보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가지 생각한 게 있었다. 37쪽에는 "글쓰는 사람의 첫째 목적은 그가 쓰는 글의 내용이 아닙니다. 그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쓴다는 행위입니다." 라는 내용이 있다. 를 읽은 직 후 영화를 봤던 터라,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영화를 보는 것에 취미가 없어서 많은 영화를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씩, 영화를 미치도록 보고 싶은 때가 있다. 딱히 어떤 영화를 꼭 찝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그리워 질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영화를 재밌게 봤다는 것 보다는, 그냥 영화를 봤다는 자체로 만족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떤 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는 누구와 봤고, 그날 영화를 보고나서 무엇을 했고, 영화를 보기전에는 무엇을 했는지가 더 머릿속에 남아 있곤 하다. 그래서 영화는 나에게 기억의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화 <왕의 남자>는 친구가 군대를 가기 며 칠전에 만나서 밥 먹고나서, 영화 보고, 당구장에 갔던 기억이 하나의 영화이다.

 

 음. 그리고 이건 잡소리지만 영화 말고도, 어떤 날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이야기를 못하는 경우에는 이런 저런 글을 쓰곤 한다. 그런 날이 많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 3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주제도 없고 그리 대단한 글도 아니지만, 글을 쓰고 나면 뭔가 후련해지기도 하고, 나중에 보면 챙피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그냥 글을 쓰고 있다는 -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는 - 사실 자체로 만족을 얻곤 한다. 그렇게 키보드를 두드린 결과물이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음. 사실 짧게 쓰려고 시작한 글이 너무 길어진 느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한 것은, 영화를 혼자 본다는 것이다. 지금 까지 극장에 혼자가서 영화를 본 적은 없었는데, 혼자 다녀오니까 왜 이렇게 편한지. 뭔가 혼자를 즐기는 타입은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음. 영화를 같이 볼 여자친구는 없구나. 어쨌든 혼자 영화 보는 것을 즐기고 오니 좋았다. 가끔 여러명이 영화를 보러 갈 때 - 특히  어떤 영화를 보러 갈지를 정하지 않았을 때 - 는 한참을 고민하곤 한다. 대부분 즐겁게 보긴 하지만, 가끔 나의 주장이 강해서 영화를 보게 될 때 - 그런 경우는 많지 않지만 - 그 영화가 한숨만 나오게 하는 영화였다면, 등에서 미안한 땀(?)이 나오게 된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의견으로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 또한 한숨이 나오는 영화라면. 음. 어쨌든 그래서 영화를 혼자 보는게 좋다. 그리고 또한 어떤 사람을 꾀어서(?) 영화를 보게 되면 - 이런 경우는 별로 없지만, 사실 내가 꾀임을 당한 적이 더 많다 -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미안해진다. 영화 러닝 타임이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은 족히 되니까. 어쨌든, 딱 한번 영화를 혼자 봤을 뿐인데, 영화 혼자보기 예찬론자가 되어버렸다.

 음. 하지만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이 때, 여자친구와 같이 영화를 보는 날이 머지 않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