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2012. 3. 27. 21:37

4월의 봄날 같은 영화. 싱숭하기도, 생숭하기도 한 영화. 건축학개론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카피로 모든 (잠재적) 관객을 영화 주인공으로 만든다. 특히 첫사랑이라는 단어에서 풍겨오는 아련함이 많은 관객을 공감하게 한다. 첫사랑이라. 남녀 간의 사랑 중에서 가장 순수할 수 있고, 서투를 수 있고, 풋풋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첫사랑은 그런 거다.


영화를 보며, 첫사랑의 풋풋함과 캠퍼스를 누비던 대학생 시절이 그리워졌다. 사실 요즘 첫사랑을 대학교에 와서야 했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첫사랑과 캠퍼스는 잘 어울린다. (건축학개론이라는 수업과 첫사랑은 잘 어일리지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의 연기도 어울린다. 첫사랑을 그리는 신인 배우들. 아마 눈에 익은 배우들이 연기를 했다면, 그런 이야기를 그릴 수 있었을까.


이제훈이라는 배우를 처음 봤는데, 매력이 넘치는 배우인 것 같다. 그리고 왠지 앞으로 이 영화에서 맡은 승민의 역할보다 더 맞는 역할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 수지도 익히 들어서 명성은 알고 있었지만, 건축학개론에서 처음 봤다. 딱 그 나이에 맞는 신입생 역할을 너무 아기자기하게 한 것 같다. 그들의 소소한 데이트 - 라고 할 수 있을까 - 였던 철길 걷기와 그들의 키스 - 사실은 뽀뽀 - 도 당분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승민이 엄마에게 “엄마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GEUSS 로고가 박힌 흰 티의 초고속세탁을 부탁했던 장면이, 결국 서연 앞에서 GUESS가 아니었음을 알았을 때의 자괴감 혹은 모욕감을 느끼며 도망쳤던 모습은 왠지 마음을 저미게 했다. 그녀가 술 취해 학교 선배와 함께, 자취방으로 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실망하여 집(정릉)에 돌아가는 택시를 잡으려 하지만, 정릉을 외면하던 택시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던 모습을 보며, 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가 생각났다.


음대생이었던 서연에게, 건축학도 승민은 나중에 집을 지어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서연(한가인)은 고향인 제주도에 지을 집을 부탁하기 위해서 - 라기보다는 승민을 만나기 위해 - 승민(엄태웅)의 건축사무소를 찾아간다. 영화의 시작은 이 장면이지만, 시간 순서로는 하반부에 속한다. 그리고 집을 지으며, 과거를 떠올린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기에, 그들의 사랑은 정말로 첫사랑으로 끝맺는다.


건축학개론에서 나타난 첫사랑의 언어는 노래 - 가령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라던가, 강의실과 캠퍼스 등. 이 영화에 공감을 했더라면, 이런 소소한 부분을 잘 읽어낸 영화의 성실함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건축학개론 (2012)

8.6
감독
이용주
출연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조정석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한국 | 118 분 | 2012-03-22
글쓴이 평점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첨부. 별로 영화와 관련은 없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