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봄날 같은 영화. 싱숭하기도, 생숭하기도 한 영화. 건축학개론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카피로 모든 (잠재적) 관객을 영화 주인공으로 만든다. 특히 첫사랑이라는 단어에서 풍겨오는 아련함이 많은 관객을 공감하게 한다. 첫사랑이라. 남녀 간의 사랑 중에서 가장 순수할 수 있고, 서투를 수 있고, 풋풋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첫사랑은 그런 거다.
영화를 보며, 첫사랑의 풋풋함과 캠퍼스를 누비던 대학생 시절이 그리워졌다. 사실 요즘 첫사랑을 대학교에 와서야 했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첫사랑과 캠퍼스는 잘 어울린다. (건축학개론이라는 수업과 첫사랑은 잘 어일리지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의 연기도 어울린다. 첫사랑을 그리는 신인 배우들. 아마 눈에 익은 배우들이 연기를 했다면, 그런 이야기를 그릴 수 있었을까.
이제훈이라는 배우를 처음 봤는데, 매력이 넘치는 배우인 것 같다. 그리고 왠지 앞으로 이 영화에서 맡은 승민의 역할보다 더 맞는 역할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 수지도 익히 들어서 명성은 알고 있었지만, 건축학개론에서 처음 봤다. 딱 그 나이에 맞는 신입생 역할을 너무 아기자기하게 한 것 같다. 그들의 소소한 데이트 - 라고 할 수 있을까 - 였던 철길 걷기와 그들의 키스 - 사실은 뽀뽀 - 도 당분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승민이 엄마에게 “엄마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GEUSS 로고가 박힌 흰 티의 초고속세탁을 부탁했던 장면이, 결국 서연 앞에서 GUESS가 아니었음을 알았을 때의 자괴감 혹은 모욕감을 느끼며 도망쳤던 모습은 왠지 마음을 저미게 했다. 그녀가 술 취해 학교 선배와 함께, 자취방으로 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실망하여 집(정릉)에 돌아가는 택시를 잡으려 하지만, 정릉을 외면하던 택시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던 모습을 보며, 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가 생각났다.
음대생이었던 서연에게, 건축학도 승민은 나중에 집을 지어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서연(한가인)은 고향인 제주도에 지을 집을 부탁하기 위해서 - 라기보다는 승민을 만나기 위해 - 승민(엄태웅)의 건축사무소를 찾아간다. 영화의 시작은 이 장면이지만, 시간 순서로는 하반부에 속한다. 그리고 집을 지으며, 과거를 떠올린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기에, 그들의 사랑은 정말로 첫사랑으로 끝맺는다.
건축학개론에서 나타난 첫사랑의 언어는 노래 - 가령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라던가, 강의실과 캠퍼스 등. 이 영화에 공감을 했더라면, 이런 소소한 부분을 잘 읽어낸 영화의 성실함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첨부. 별로 영화와 관련은 없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