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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30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2009. 10. 30. 15:22

 오랜만에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읽었다. 일년 중 아니 그래도 가끔은, 어쩌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이 생각나는 때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작년 이맘때 즈음에는 연금술사를 다시 읽었었고, 올 10월달에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은 뭔가 종교적이고, 교훈적이다. 그의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읽었던 대부분의 책들은 - 이 책을 비롯해서 -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왠지 자살을 소재로 한 책이 그의 작품이라는 생각에 어울리지는 않았으나, 책을 덮는 순간 역시 파울로 코엘료의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베로니카는 왜 죽기로 결심했을까?
 
69쪽 삶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마침내 얻게 되었을 때,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일매일이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죽기로 결심했다.
 
 사실 24살(베로니카의 나이)의 나이에 삶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얻었다는 게 어떻게 생각해보면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만한 생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쨌든, 그녀는 죽기로 결심했고, 수면제를 먹는 방법으로 자살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고, 그녀가 깨어난 곳은 정신병원 빌레트였다. 빌레트에는 여러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진짜로 미친 사람들, 사랑에 미쳤던 사람, 그곳의 생활에 익숙해서 나가기를 꺼려하는 사람들 등, 그리고 베로니카.
 
 빌레트의 의사는 베로니카에게 수면제의 과다 복용으로 인한 심장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는 이야기를 했고, 길어야 일주일 정도 살 수 있을 거라는 진단을 내렸다. 처음에 그녀는 죽기를 선택했지만, 이제는 죽음이 그녀를 선택했다. 시한부 인생, 나는 잘 모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고, 나도 그 머지않은 미래를 알고 있다면 정말 끔찍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녀는 일주일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처음에 그녀는 어차피 죽는 거 며칠 더 기다릴 필요 없이 더 빨리 죽고 싶어했다. 하지만 날이 지날 수록 하루 하루가 그녀에게 더욱 더 소중해짐을 뼈저리게 만들었고, 살고자 하는 욕망이 시간이 흐를 수록, 즉 죽음이 다가올 수록 더욱더 커져감을 느껴왔다. 그녀는 빌레트에서 사랑을 알게되고, 삶을 알아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죽기 하루 전날 밤, 그녀는 빌레트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에뒤아르와 빌레트를 탈출한다. 소중한 하루를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정당한 방법으로 나가고자 빌레트의 이고르 박사에게 청했으나, 완곡한 거절을 받았다. 결국 그녀는 도심의 조그마한 광장에서 에뒤아르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죽음을 얼마 남지 않은 그녀로 인해 정신병원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느린 죽음의 자각으로 인해 빌레트의 많은 사람들이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신들의 삶을 다시 평가했다. 오랫동안 세상을 피해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해 있었던 환자는 다시 세상에 맞설 힘을 얻기도 했고, 다른 환자들은 자신의 상태를 재검토 받고자 했다. 즉 빌레트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욕망을 느린 죽음의 자각이 일깨워 준 것이다.
 
 이렇게 끝나면 너무 뻔한 스토리인데,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베로나카는 죽지는 않았다. 에뒤아르의 품에서 눈을 감은 베로니카는 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다. 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베로니카는 빌레트의 이고르 박사의 피실험자로써 일주일을 보낸 것이었다.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심장 손상은 조작된 것이었다. 심장의 기능이 약화되고 발작을 일으키는 약을 투여해 베로니카에게 심장이 손상되었다는 것을 믿게 만들었고, 이는 이고르 박사의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 는 논문을 작성하게 위한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자살했던 사람이 다시 자살을 할 확률을 낮추고자 만들어진 실험인데, 베로니카가 운이 좋게(?) 뽑힌 것이다. 이 죽음의 자각에 대한 실험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전염성을 갖고 있었다. 이는 이고르 박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고르 박사의 실험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어쩌면 이런 실험들이 실제로 자행되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아마 인권위에서 알게 된다면, 이고르 박사는 사회에서 매장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선하지 않다면 이는 정당한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은 소설책이니까, 이는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책을 읽고서 예전에 가시고기에서 봤던,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 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오늘도 헛되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19~20쪽 신은, 어느 날 그녀가 자살할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녀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행동에 그리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149쪽 "젊은이란 그런 거야. 젊음은 몸이 얼마나 버텨낼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지. 하지만 몸은 언제나 버텨내."
 
151쪽 사회는 점점 더 많은 규칙들로, 그 규칙들을 반박하기 위한 법률들로, 또 그 법률들을 반박하기 위한 새로운 규칙들로 넘쳐났다. 그것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법규를 일탈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216쪽 "... 일생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오로지 우리 잘못에서 비롯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것에 대응했어. 우리는 격리된 현실이라는 쉬운 길을 택했던 거야.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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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