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5. 22:26

 언젠가 알랭 드 보통의 글은 현학적이라는 비평을 읽은 적이 있었다. 사실 현학적이라는 말이라는 자체의 의미도 몰랐으나, 그 이후로 보통의 책을 추천했던 사람이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멀리했었다. 그 이유는 단지 현학적이라는 비평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현학적이라는 단어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명사】I. 스스로 자기 학문이나 지식을 뽐내는 것.
【관형사】II. 스스로 자기 학문이나 지식을 뽐내는.

 

 

 어려운 말로 비판해서 그렇지, 쉽게 이야기하면 결국은 똑똑한 척해서 "재수 없다."라는 의미이다. 사실 책을 읽다 보면, 현학적이라는 비판이 일견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25살에 사람들에게 널리 읽힐만한 소설을 쓴 언어 천재인 그에게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시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2007, 청어람)는 어떻게 철학적으로 사랑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린 책이다. 제목만 볼 때에는 단순한 철학책인 듯싶지만, 사실 소설책이다. 책은 주인공의 운명적인 만남, 연애 기간, 필연적인 헤어짐,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주인공과 클로이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며, 어떻게 마침표를 찍게 되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관객의 입장으로써, 우리가 사랑 - 이라는 것을 - 느낄 때 가졌던 감정의 타당성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재밌는 책이었다. 사랑의 시작과 끝을 자연의 이치로 비교해보면, 마치 꽃이 피고 지는 것 같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84쪽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하여 얻은 행복, 이성적으로 노력해서 어떤 일들을 성취한 뒤에 찾아오는 행복은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내가 클로이와 함께 얻은 행복은 깊은 철학적 숙고 뒤에 나온 것도 아니고 개인적 성취의 결과도 아니었다. 단지 신의 기적적 개입에 의하여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귀중한 사람을 찾아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그런 행복은 위험했다. 자족적인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략) 클로이가 대표하는 행복을 받아들이는 어려움은 거기에 이르는 인과 과정이 없다는 것, 따라서 내 삶에서 그 행복을 빚어낸 요소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온다. 클로이와 나의 관계는 마치 신들이 만들어놓은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신의 보복에 대한 원시적인 두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사랑은 이성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기적적 개입에 의한 결과이다. 이는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행복의 절정에도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기적적인 만남 이후, 만남을 거듭할수록, 사랑의 이유는 하나하나 덧붙여져, 결국 왜 너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만들어 버린다. "예뻐서, 멋있어서, 혹은 지적이어서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원초적으로밖에 할 수가 없다. 바로 '네가 너 이기 때문이다.'라고.

 

 

190~191쪽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사랑의 순간에는 내가 이 세상의 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고, 마치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예전에 사랑했던 네"가 "지금의 네"가 아니라면 결국 필연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순간'도 있었겠지만, '사랑으로 고통스럽고, 네가 너여서 지겹다.'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도 한순간이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한 교훈은 무엇인가?

 

 

"273쪽 사랑을 평가할 때에는 교조적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로 달아나지 말아야 하고, 두려움의 철학이나 실망의 윤리학을 구축하지 말아야 했다. 사랑은 분석적 정신에게 겸손을 가르쳤다. 아무리 확고부동한 확실성에 이르려고 몸부림을 쳐도 [그 결론에 번호를 붙여서 단정하게 배치해놓는다고 해도] 분석에는 결함이 없을 수 없다는 교훈, 따라서 아이러니로부터 절대로 멀리 벗어날 수가 없다는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작년 가을에 사서, 올해 가을에 읽었던 책인데, 의외로 재미있었고, 현학적이라는 비판쯤이야 잊을 정도로 흡입력 있는 이야기에 마지막 장을 덮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랭 드 보통이 언어 천재라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저자
알랭 드 보통 지음
출판사
청미래 | 2013-0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한 24가지의 담론!인류의 역사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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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11. 11. 22:39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보기 전에 꼭 원작을 먼저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용의자 X의 헌신>(2006, 현대문학)을 읽었다. 한 넉넉잡고 집중해서 3시간이면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가방에 2주간은 넣고 다녔다가, 어제 드디어 완독! 책장을 덮고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의 조건 없는 헌신적인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용의자 X"가 개봉하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비판은 추리영화가 아니라 사랑영화라는 것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추리소설 대가의 소설이기에 그러한 평은 당연했을 것.


이 책은 천재 수학자의 논리 싸움을 그렸다기보다는, 한 남자의 헌신적인 사랑이 전제가 되어 흘러간다. 그러므로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러 갔다면, 천재 수학자의 추리를 기대하기보다는 헌신적인 사랑 - 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 을 기대하고 가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392~393쪽 이 세상에는 거기에 관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숭고한 것이 존재한다.


<백야행>(2000, 태동출판사)에 이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두 번째 읽었는데, 두 책에서 나오는 공통적인 사랑의 방식은 모두 한 사람과 관계하는 그 자체로 행복해하는 한 남자가 사랑의 대상을 지키는 - 비록 방법이 옳지는 못하지만 - 것이다. 그리고 항상 먼발치에서 그 사람을 지켜본다. 썩 부럽진 않지만, 헌신적인 사랑을 함에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모습을 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일을 하든지, 추리를 하던지, 전제가 잘 못 되면, 아무리 일을 해도 헛수고가 된다. 최근 내가 저질렀던 실수도, 전제의 오류가 있던 데이터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발생했었다. 지지난 주 금요일 완벽하게 일을 끝냈다는 성취감을 하루, 이틀 만끽했었지만, 지난 월요일에 출근하고 나서 오류를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그리고 식은땀이 날 정도의 절망감이 들 때의 아찔함.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 또한 치밀한 논리 싸움을 하면서, 전제를 비틀어, 결국 자신이 원하는 최상의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논리 싸움에서는 승리했다. 결과를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토대 위에 서 있나.'에 따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향이 결정되고, 그 방향은 우리를 되돌릴 수 없는 곳으로 인도한다. 올바른 토대 위에 집을 짓고, 우리가 응당 있어야 할 그 곳에 이를 때 까지, 끊임 없이 올바른 곳에 서 있는지 점검하자.


그나저나, 책 다 읽고 영화 보러 가려고 했는데, 이제 조만간 영화 내리겠지? 자, 이제 영화속 주인공들이 어떻게 소설속 주인공을 분했는지만 확인하면 끝!




용의자 X의 헌신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출판사
현대문학 | 2006-08-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정교한 살인수식에 도전하는 천재 물리학자의 집요한 추적이 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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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8. 21. 22:03

 ‘평소에 우리가 갖고 있던 생각들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라는 물음을 누군가에게 한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아마도 ‘그거 알아서 뭐하게.’라는 답이 돌아오지 않을까? 아마 나는 그리 대답했을 것 같다. 생각을 생각한다는 것은 당연을 이유로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의 생각은 주체적으로 형성되었다기 보다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생각의 좌표>(한겨레출판사,2009)는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를 이야기 하는 책이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만들어낸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한다. 누군가, 혹은 특정 집단의 목적 하에, 주입된 어떤 것이 우리의 생각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가장 먼저 우리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교육을 이야기한다. 단순 주입식 교육은 생각을 못하게 하고, 사지선다, 혹은 오지선다 객관식 문제는 사고의 틀을 단순화 시킨다. 그리고 그런 시험으로 매겨전 등수는 학생들을 서열화 시키고, 서열의 상위에 위치한 학생들은 사회의 기득권층이 된다.

43쪽 인간과 사회에 관해 질문을 던질 줄 모르고 오직 객관적 사실에 대한 암기에서 뛰어나다는 점은 그들이 기존 체제를 지키는 가치관과 이념으로 무장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들의 지배를 받는 사회구성원들에게 비판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의 의식세계에는 지배세력이 기획, 의도하여 암기하도록 한, 세뇌시킨 것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회의하지 않고 고집하기 때문에 지배세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 관철되는 것이다. 이것이 ‘미친 교육’의 실상이다. 즉,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면서도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는 자기 생각과 논리가 없어 지배세력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회구성원을 양산하는.

 우리나라 교육은 전체주의를 강요한다. 근대적인 우리 교육은 일제의 일제의 황국신민을 만들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잔재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전체주의는 우리의 생각을 경직시킨다. 전체를 따를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곳은 전체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곳이다. 그곳이 바로 우리 학교이다. 이는 비단 학교 뿐만이 아니라, 하나가 되기를 강요하는 곳은 모두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 사회는 맘몬신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고발한다. 물질은 최고의 선이며,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부자되세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라는 광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우리나라. 홍세화씨는 오랜 프랑스 생활 끝에, 한국에 돌아와, “부자되세요.” 라는 광고를 보며, 끝에 (마음의)라는 말을 끝까지 기다리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그에게 너무 큰 기대였었다.

 이는 자본을 가진 기득권층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시스템화 해온 결과물이다. 특히, TV의 광고는 끊임 없이 소비를 강요한다. TV 광고 뿐만 아니라, 지하철 역 앞의 버스에 프린팅 된 맥주 광고, 길을 지나가다 보는 광고판을 통해서도, 그 물건을 가져야 괜찮은 사람이 될거라며 속삭인다. 이 또한 우리의 생각을 오로지 자본에게 집중시킨다. 주체적인 생각을 방해하고, 자본에 종속시킨다.

 저자는 이 외에도 언론의 폐해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오랫동안 우리의 생각을 통제해온 언론. 그러한 언론에 길들여진 우리는 그 언론이 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언론은 기득권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신문 기사를 자세히 뜯어서 읽어보면, 과연 누구의 입김을 대변하고 있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기사를 활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의도한 대로 우리의 생각이 형성될 것 이다.

 그러면 우리 주위의 환경들은 끝끝내 우리의 주체적인 생각을 방해할 터인데, 어떻게 하면, 우리는 나만의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는 물신에 맞설 수 항체를 기르고 가치관의 문제를 바로 잡는 것일 것이다. 

205쪽 ‘시장경제’라는 이름의 유일신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경배하는 온랒 유령들이 난무하는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나’와 ‘자유’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긴장과 성찰이 요구된다.

 결국 우리 존재에 대한 생각에 집중해야 한다. 존재를 둘러싼 부차적인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자기 성찰은 본질에 집중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는 물질보다 더 귀한 존엄한 한 인간에 대한 성찰로 이끌고, 사람 사이의 연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물음에 딱 떨어지는 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물음은 자기 성찰과 사회 비판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앞으로, 내 생각이 어떻게 형상되었는지에 관하여 자문하는 것이 물신과 싸울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이 책은 이야기 한다.

98쪽 말하자면 귀소본능이란 누군가와 비교하고 경쟁라는 관계로부터 비켜나 있다고 기억되는 곳에 안기고자 함이라는 얘기다.

179쪽 성숙한 사회는 성숙한 사회구성원의 의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강제에 의해 정착되거나 성숙될 수 없다. 구성원들이 민주적이머 주체적안 시민의식을 형성하지 못한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성숙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204-205쪽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고. 그러니 이제 사람 사는 방식의 변화도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해 여행을 즐기던 사람들이 심심찮게 하는 말처럼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장소와 차이와 시대의 변화에도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의 꿈과 욕망,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그것들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히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품위를 향유하고자 하는 본원적 욕구는 변할 수 없다. 다만 각박한 현실이 잠시 우리를 눈멀게 하고 있을 뿐이다. '시장경제'라는 이름의 유일신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경배하는 온랒 유령들이 난무하는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나'와 '자유'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긴장과 성찰이 요구된다.


생각의 좌표

저자
홍세화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09-11-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 더 인간적인 사회가 아니라, 덜 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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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5. 16. 22:36

먹거리에 대한 불신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마도 먹거리가 산업화가 되면서 부터 일 것이다. 먹거리에도 경제의 논리가 개입되어 저비용, 대량생산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었다. 기업은 이윤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식의 질은 무엇으로 담보할까? 현대의 음식산업은 그것을 담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소비하는 이상 우리는 이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323~324쪽 수세기 동안 먹는 행위는 특별한 순간을 의미했다. 대화와 감정을 나누는 시간, 즉 대부분의 경우 즐거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음식은 그저 습관이 되었고, 혼자 빨리 먹어치워야 할 것이 되었다. 무엇보다 광고의 대상이 되었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음식은 빨리 해치워야 하는 대상이 되었고, 광고의 대상이 되었다. 광고는 우리에게 빨리, 많이 먹으라고 부추킨다. 그리고 식품회사는 더 많이 팔아 수익을 남기기 위해 질이 담보되지 않은 저비용의 재료를 사용해 우리의 입에 넣는다. 그리고 그 수익은 다시 광고비로 들어가 우리에게 또 먹을 것을 강요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식품회사와 정치와의 유착관계로 인하여 계속 반복된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건강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비만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식욕을 억제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라고. 하지만 이는 본명히 사회경제적인 문제이다.


308쪽 식품의 산업화는 우리가 몰랐던 몇몇 회사들에게 더 큰 이득을 안겨주는 '혁명'이다. 더 나쁜 것은 식품업계가 언론 조작과 광고 공세를 통해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저야 한다고 믿게 만든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비윤리적인 기업의 행태와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하나하나 탐사하며, 불편한 진실을 알린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현실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위와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더 똑똑해여쟈 한다. 최근 이러한 문제를 자각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나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식욕을 다스리고, 조금 더 똑똑해져야 겠다는 것과 식품회사를 믿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래도 요 근래, 탄산음료와 패스트푸드를 안먹기로 다짐하고, 예전에 비해 조금 더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음식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환경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속이고, 소비를 부추킨다. 기본적인 욕망을 자극하면서. 그리고 깊은 생각을 못하게 만들고, 주어진 현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이 책은, 전세계적은 식품기업의 은밀한(?) 비밀을 폭로하지만, 사고의 외연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본주의, 그리고 우리를 속이고 있- 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는 다른 것들도 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씁쓸한 결론을 스스로 내려보며, 책장을 덮었다.


326쪽 우선,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소비자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우리는 매일 먹는 세 끼 식사를 투표하듯 선택해야 한다. 그 투표에 세상이 독성물질로 가득 찰 것이냐 아니냐가 달려 있다. 우리는 환경과 건강, 윤리를 생각한 떡에 표를 던져야 하며, 그 힘은 구매력에서 나온다.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 일은 투표소에 가는 것 이상으로 정치적인 행위가 되었으며, '직접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어울리는 유일한 순간이 되었다.


소비에 종속되어서는 안되지만, 우리는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소비를 해야한다. 비록 우리의 소비(표)는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하나하나 모이다보면, 우리 나름대로의 힘을 발휘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비판적인 소비의 승자는 결국 비윤리적인 자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최소한의 힘을 윤리적인 소비를 해야할 것이다. 숨막히도록 우리를 둘러싼 자본과 항상 욕망을 부추키는 광고에 맞서 이기려고 노력하지만, 맘같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랴, 내가 가진 조그마한 힘이라도 이렇게 사용해야지.



독소: 죽음을 부르는 만찬

저자
윌리엄 레이몽 지음
출판사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05-17 출간
카테고리
건강
책소개
2001년, 미국은 9·11 테러 희생자(2,752명)보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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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7~328쪽 국제비만대책위원장이자 토니 블레어 정부 때 보건 고문을 맡았단 필립 제임스 교수는 시드니 비만대회에서 연설을 통해 비만 위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우리는 의학적이거나 과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다루는 건 전 세계적인 의료체계를 집어삼킬 엄청난 경제적 문제입니다. 국민이 내는 세금을 오늘날 비만 유행병을 일으킨 모든 식품 체인을 과잉보호하는 데 사용하고 있음에 우리는 주목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의 기름과 지방, 당분 과다 생간은 농업 수익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보조금때문이며, 이로 인해 우리가 겪고 있는 건강 위기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4. 3. 22:36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는 편안함이 있다.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그의 면목이다. 나는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선호하는 편인데, 덤덤한 문체와 꾸밈없는 그의 일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비밀의 숲><문학사상사, 2007)이라던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 2009)를 읽을 때는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그저, 작가로서의 삶을 느낄 수 있고, 옆집 아저씨로서의 삶도 엿볼 수 있다. 물론 그의 소설도 좋아한다.


 가장 최근의 에세이 <잡문집>(비채, 2011)은 말 그대로 잡문을 엮은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게 뭐야."라며 실망할 사람도 더러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잡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다면,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사실 나는 기대치를 낮춰 읽긴 했지만서도, 이걸 그냥 넘겨야 하나, 다 읽어야 하나, 고민 했던 분량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재즈에 관한 글들. 전혀 문외한이라서. 그럼에도 일단 모든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다 읽기는 했지만, 역시나 읽고 나면,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찌하랴. 잡문집인 걸.


 그래도 아무리 책으로 내기는 부족한 글들을 겸손하게 잡문집이라 칭하였어도, 그의 철학과 삶, 일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으로서 이 책을 읽는다면,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그중 몇가지 좋은 글들을 적어본다.


먼저 주례사 중에서,

87쪽 가오리 씨,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그리고 그의 예루살렘 상 수상 연설 <벽과 알> 중에서. 사실 이 부분을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91쪽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벽이 옳고 알이 그르더라도, 그래도 나는 알 편에 설 것입니다. 옳고 그름은 다른 누군가가 결정할 일입니다. 혹은 시간이나 역사가 결정할 일입니다. 혹시라도 소설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벽 쪽에 서서 작품을 썼다면, 과연 그 작가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요?


그의 기억에 관한 공감할 수 있는 글.


196쪽 우리의 인생이란 기억의 축적으로 완성된다. 그렇지 않은가? 혹시 기억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지금 현재의 우리밖에 기댈 곳에 없는 셈이 된다. 기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떻게든 자기라는 존재를 하나로 묶고, 동일시하고, 존재의 중추 같은 것을 - 설령 그것이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더라도 - 일단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뭐랄까, 쿨한 삶의 철학.


257쪽 과거에 쓴 작품은 웬만하면 일단 다시 읽지 않습니다. '과거는 돌아보지 않는다'라고 하면 꽤나 멋지게 들리지만, 내 소설을 집어든다는 게 왠지 멋쩍고, 다시 읽어본들 어차피 마음에 안 들게 빤하니까요. 그보다는 앞을 내다보며 다음 할 일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343쪽 독자의 마음을 진정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뛰어난 문장도 아니요 재미있는 줄거리도 아니요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분위기인 것이다. 내가 특히 마음을 쓴 부분은 그들의 '올바른 자세'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일본어로 옮기는 일이었다.


작가로서의 철학.


445쪽 소설을 쓴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자기만의 방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방을 마련하고, 그곳으로 사람을 불러 편안한 의자에 앉히고, 맛있는 음료는 내놓고, 상대가 그곳을 아주 마음에 들게 하는 것. 마치 자기만을 위한 장소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뛰어나면서도 바람직한 이야기의 본디 그대로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곳이 설령 어마어마하게 멋지고 호화로운 방이라도 상대가 편히 쉬지 못하면 바람직한 방 =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겠죠.


하루키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잡문집을 읽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1-11-2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30년 하루키 문학의 집대성!『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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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2. 15. 17:33

 ‘청춘(靑春)’이라는 단어가 작년처럼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 해는 없었을 것이다. 푸른 봄을 생각하면, 당연히 따스한 봄이 가슴에 스며들어야 하는데, 사실 청춘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보면, 실상은 안쓰럽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과연 ‘따스한 봄과 같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면,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함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런 청춘을 위로하는  김란도 교수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 2010)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청춘의 아픔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책 이외에도, 청춘을 감싸 안으려는 박경철, 안철수의 청춘 콘서트가 인기를 끌었었고, 기성 정당들은 청춘을 끌어안기 위해,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청춘들의 문제는 청춘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의 문제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는 다름 아닌 청춘이다.


 이런 청춘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최근 들어, 20대의 정치 참여가 두드러지면서,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만들고, 그들의 표심을 모으기 위해 많은 정치인이 노력하고 있지만, 그들을 진정으로 20대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단지, 20대가 주요 투표의 캐스팅 보드(casting board)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듣는 척만 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엄기호 교수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푸른숲, 2010)에서는 20대의 ‘the right to speak’를 넘어서, ‘the right to be heard’를 위한 노력의 흔적이 돋보인다. 저자는 이 책을 “2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이 어떤 언어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들과 함께 나누었던 지적 대화의 기록이다. 형식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겠지만, 내용을 보자면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내가 깨닫게 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다.”(19쪽)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들과의 수많은 대화 가운데, 인문학적 개념을 도출해 내고, 학생들이 “개념적 사유가 가진 짜릿함을 만끽”(249쪽)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고 한다. 그 결과가 이 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 책은 20대 스스로에 대한 자기고백적 혹은 변론적 성찰, 그리고 20대가 바라본 이 사회에 대한 고발적 성찰을 담는다. 특히, 앞으로 더 나아질 것 없는 미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과거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던 기성세대의 그것과는 다르다. 기성세대는 정치적인 자유를 꿈꾸었지만, 20대는 경제적 자유를 희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세대는 20대를 속물로 볼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예속된 그들의 모습은 부정할 수 없는 이 사회의 자화상이기에, 속물로만 볼 수도 없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경제적 속박은, 그들이 조금 더 높은 순위의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가 되고, 또한, 그들이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노동력이 초과 공급 상태인 현대 사회에서는, 그들의 열정조차 ‘자기 소설서’에 그럴싸하게 표현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삽질’ 또는 ‘잉여’로 표현되는 현실은 이 사회의 서글픈 이면이다.


 상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그 사람은 사회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쓰레기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나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드러내고 상품으로 치장하여야 한다. 우리 모두는 본래 속물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속물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67쪽)


 이런 20대를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비판 보다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조성해줘야 한다. 마음껏 사랑을 하지 않는 20대를 향한 비판에도, 사랑을 하기에도 사회적 환경, 즉 사랑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조성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저자는 ‘삶이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되었는데 어떻게 사랑이 임시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임시적인 사랑, 그것은 왜 또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163쪽)라고 반문한다. 이 외에도, 저자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도 20대의 가감 없는 생각들을 그대로 전하고자 노력한다. 책을 읽다 보면 그저 철없을 것 같은 20대의 성찰이 놀랍기도 하다. 깊은 사유를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그들이 철부지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라고 선언한 전(全) 고려대학생 김예슬 양의 선언에 대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학생들이 그 선언의 순수성과 저의 사이에서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20대의 고군분투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 일단 수많은 대학생 가운데 일부, 제한적인 학생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자칫, 20대 대부분의 생각일 거라고 여길 일반화의 오류에 당착할 위험이 있다. 또한, 그저 20대의 변명거리만 가득한 것 같아서, 20대 밖의 시선에서는 이 책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제목에 청춘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이 책은 아마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은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는 숙명일 게다.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같은 청춘을 지나온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위로를 하는 책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마치 친구와도 같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20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은 꼭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특히, 20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척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것은왜청춘이아니란말인가20대와함께쓴성장의인문학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엄기호 (푸른숲,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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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1. 8. 12:36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는 손양원 목사의 딸인 손동희 권사님이 쓰신 책이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을 증언하는 자료 중 가장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동기도,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에서 느꼈던 아쉬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아쉬움은, 최대한 정확하고, 풍부한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쓰게 하는 유인이 되었다. 평생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회상하며, 최대한 감정의 소요를 자제하며 쓰기 위해 노력했을 저자를 생각해보니, 쉬이 읽을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양원 목사의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손양원 목사, 그리고 목사님의 가족에까지 이르는 믿음은 한마디로 ‘고난의 역사’라고 표현할 수 있다. 특히 그 시대는 믿음에 따른 박해가 있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손양원 목사님은 모두 감사로 받아들였다.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감옥에 갇히고, 또한 이념이 권력이 되었던 당시 여순사건의 현장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해방 이후, 순교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이 읽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적신다.

 특히, 여순사건 때,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 순교했는데, 그 두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고, 자신의 양아들을 삼은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일 터이다. 그리고 모든 계명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에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솔로몬보다는 욥이 되고 싶다던 손양원 목사님은 평생을 고난 가운데 살았지만, 항상 감사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나병 환자들을 보며, 차라리 자신이 나병에 걸렸으면 좋았을 거라는 고백을 하기도 한다.

“…우리 기독교는 본시 잘 살기 위한 종교가 아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 위해 잘 죽기 위한 종교인 것입니다. 꼭 살아서만이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씨가 죽어야 싹이 나듯이 죽어서도 얼마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280~281쪽)

 그는 마지막 순교하는 순간까지도 전도했다. 그는 그의 필시 생각처럼, 잘 죽기위해 노력했고, 결국 한알의 밀알이 되어, 하나의 본(本)이 되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007년에 여수에 있는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에 들른적이 있다. 오래전 기억이라서, 무엇을 봤는지는 선명하지는 않다. 사실 오래전 기억이라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고,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무지로 인해, 그 기념관에 전시된 사진과 물품들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방문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이 책을 읽고서야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한 숨을 쉬었는지 모른다. 손양원 목사님의 고난과 믿음의 경주. 그리고 나의 모습을 생각할 때, 한 없이 부끄럽다는 생각에 나온 한 숨들이었다. 이런 한 숨 쉴 일을 매일 조금씩 줄여가며 살아가면 좋으련만.


250쪽 아버지가 던진 사랑의 폭탄은 용서를 모르는 완악한 인간사회의 죄악으로 뭉친 근원을 뿌리채 파괴시키는 사랑의 폭탄이리라. 양식 없어 기근이 아니라 사랑이 없어 기근인 이 사회에 복수만이 최대의 승리인양 끝장을 보자는 이들에게 사랑의 폭탄이 되어 떨어지기를 바란다.

326쪽 돌이켜보면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셨음을 느끼며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어렵고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울 때도 그분은 우리 곁에 계셨다. 길을 찾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할 때도 그분은 우리의 길을 미리 예비하고 계셨다. 한 알의 씨앗은 죽어야만 그 결실의 열매가 백 배 혹은 천 배가 되듯이 두 오빠와 아버지는 죽어 희생이 되었지만 그 씨앗들은 싹이 나고 움이 터서 이 땅에 복음의 열매가 되어 많은 영혼을 깨우치는 하나의 ‘믿음의 본’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거두시는 순간, 죽음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며, 패배가 아니고 승리이며, 실패가 아니고 성공이며, 돌발사고가 아니고 그의 계획과 섭리이다. 죽음은 곧 이 땅의 시련을 마치는 졸업이다.

나의아버지손양원목사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지은이 손동희 (아가페출판사,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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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1. 3. 23:16
나의 스무살. 대학교 2학년, 나도 브라이언 트레이시처럼 자전거 여행을 했었다. 서울에서 해남 땅끝까지.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가끔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완주했던 걸로 기억된다. 대학교에서 만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나름대로 존경하는 친구가 도서관에서 꼬드겼었다. “이번 여름에 자전거 여행 가자.”고. 딱히, 자전거 여행에 대해서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덜컥 “그래.”라고 답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시작된 자전거 여행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안되는 자랑할만한, 그리고 낭만적인 경험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친구에게 참 감사하다.

이 책을 쓴 브라이언 트레이시도, 20살 때,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여행을 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행을 위해 돈을 모으는 과정, 자전거로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여행했던 과정. 그리고 스페인에서 랜드로버를 구입해, 사하라 사막을 여행했던 과정을 이 책은 그리고 있다. 너무도 낭만적일 것 같은 이 여행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실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여행 경비를 스스로 마련하기 위한 과정, 그리고 여행 중에도, 최소의 비용을 들이기 위한 처절한 노력. 여행 중에는 자동차가 고장나고, 사하라 사막의 더위에 지치고, 아무리 아꼈음에도 불구하고, 경비가 떨어져, 경비를 구하는 과정. 사하라 사막 여행의 막바지에,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불법으로 - 사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본 받을만 하다 - 국경을 넘어 갈 때의 스릴 아닌 스릴. 하지만, 전혀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들의 쿨한(?) 호의는 여행의 청량제였다. 자동차가 고장났다거나, 길을 모를 때, 친절하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더욱 어려운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아슬아슬한(?) 여행기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그들의 여행을 응원하게 되었다. 자기계발 전문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모든 여행 과정에서 배울점을 찾았다. 작은 부분에서도, 배울점을 찾았던 그의 긍정을 배워본다. 흡사, 공자가 이야기했던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는 어디에서든 적용된다.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누구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생각하기에 따라 스승이 된다.

책장을 덮으며, 딱 하나 기억해야할 점을 꼽아 보자면, ‘포기하는 것도 습관이다.’라는 구절이다. 그 동안 도중에 얼마나 많은 포기를 해왔는지, 돌아본다. ‘이쯤이면 됐어.’라는 포기의 언어는, 성공을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포기하는 습관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도록 만든다. 습관성 포기는 이제 멀리하고, 새해에는 되도록 이기는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해봐야지. 새해에 읽기에 적절한 책. 그리고 지금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

참고로, 이 책은 한 서점에서 덤으로 받은 책이어서, 내가 읽게 될 거란 생각은 못했다. 또한 자기계발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읽을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고, 자기전에 잠깐 읽어 볼까 하다가? 출퇴근길에 읽게 되었다.

오래동안 자기계발서를 멀리했다. 자기계발서에 언급된 내용을 모두 실천하기가 겁났기 때문이다. 뭔가 머리에 채워지는 부분도 없다고 생각했었고. 이제 자기계발서를 가끔씩 읽게 된다면, 책에서 딱 한가지 마음에 와닿는 부분만 취할 계획이다. 가끔 자극이 필요할 때, 읽어야지.

18쪽 당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있다면, 그러한 모습이 요구되는 상황에 직면해서 실전 경험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즉 용감해짐으로써 용기를 배우고, 인내함으로써 인내를 배운다. 이러한 인격적 특질은 역경에 직면해 그것을 이겨내는 시간과 양과 강도가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서 증폭 발전하게 될 것이다.

132~133쪽 인생을 살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욕망이나 시도는 개인의 정신과 영혼을 파괴한다.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정신 자세는 인격을 높여 주고 자긍심을 갖게 한다. 반면 다른 사람에게 기대려는 정신 자세는 수치심의 근원이다.


스무살여행내인생의터닝포인트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브라이언 트레이시 (황금부엉이,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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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11. 11. 27. 00:45

 인터넷 서점에서 반값 할인하길래, 냉큼 샀던 책이다. 클래식 수첩이라는 책의 제목답게, 조금 큰 수첩 정도의 사이즈여서, 들고 다니면서, 부담 없이 읽기에도 편하다. 그리고 기자가 독자에게 알게 쉽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그런지, 클래식 입문서로도 훌륭한 책이다. 또한 기자답게, 최신의 정보 및 음악 산업에 대한 동향도 실려 있어, 전반적인 클래식 시장에 대해서도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중간 중간의 유머도 웃기진 않지만, 뭐랄까 귀엽다고나 할까.

 

46쪽 한 편의 공연을 관람하는 경험 역시 프로그램과 연주 단체를 조사하고, 날짜와 장소를 확인하며, 티켓을 구입하기까지의 망설임을 모두 포함합니다. 혹시 늦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졸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연주자의 입장에 박수를 보내는 과정이 모두 한 편의 공연을 이루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편하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데도, 굳이 공연장을 찾는 것은 이처럼 공연에 ‘아우라’라고 부를 수 있는 속성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안다 박수’는 홀로 영광을 누리려는 독점욕일 뿐 아니라, 다른 관객의 소중한 추억까지 훼방 놓는 얌체 행위이기도 합니다.

 

 위의 문장은 내가 이미 갖고 있던 생각이기도 하다. 공연뿐만 아니라, 누군가와 영화를 같이 본다거나, 심지어는 좋아하는 사람과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에 대한 기억은 이렇다. 군복의 건빵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이기 때문에, 건빵주머니에 담고서, 예비군 훈련받다가, 짬이 나면 꺼내어 읽던 책. 걷기에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어쨌든 책을 읽다가, 잠시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기도 하고, 도대체 언제 끝나나 푸념하기도 했다.

 

172 쪽 「전원 교향곡」이나 「환상 교향곡」처럼 표제가 붙어 있지 않는 한, 기악 음악은 ‘순수한 음표의 덩어리’일 뿐입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라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의 대사를 빌리자면, 음악을 들으며 자아를 투영하는 것도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이 음악에서도 흔들린 건 베토벤이나 등장인물이 아니라, 어쩌면 톨스토이 자신일지도 모르지요.
지금 당신은, 어떤 음악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지요.

 

 클래식에 처음 관심을 갖고 이 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클래식을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 중의 한 명이지만. 중간에 소개되는 음악을 천천히 찾아 들어야겠다.

 

 날이 추워지고, 밤이 더 길어져서 그런지, 여름보다는 클래식 듣기에 더 좋은 계절인 것 같다. 아무래도 집에 일찍 들어가는 일이 잦고, 데이트를 한다면 - 물론 나는 그럴 일은 없지만 - 밖에서 하는 활동보다는 공연장을 찾는 것이 추울 때는 더 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튼 이번 겨울에는 싼 공연이라도 한 번 찾아가볼까 생각중이다. 음. 이런 게 진짜 허세일까. 여튼 이 책 강추.


클래식수첩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예술일반
지은이 김성현 (아트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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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11. 11. 20. 01:38

  2006년도에 급생긴 문화상품권으로 사서 읽었던 책이다. 책 값이 비싸서, 내 돈 주고 사서 보기에는 뭔가 아까웠던 것 같다. 그 당시 이 책을 읽을 때는 도무지 무슨 얘기 인지 몰라서, 글씨만 멀뚱멀뚱 구경했다.
 
 사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면, 이 책의 내용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들이 가득차있다. 다만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것을 어떻게 본인의 뜻대로 해석해서 정리하느냐가 관건인다. 그 흐름을 관찰하고 정리하는 것이 통찰력을 얻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만 보자면, 어떻게 하면 부를 증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쓴 책인 것 같지만, 영어 제목은 Revolutionary Wealth 이다. 그대로 해석하자면, 혁명적인 부. 그래서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변화, 즉 혁명이다.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경제를 설명하고 있다. 과거에 낡은 패러다임으로는 현재의 경제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화폐)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의 영역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설명한다. 그 예로, 프로슈머라는 개념을 선보인다.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한다는 뜻. 지금 이 책을 읽고, 나름대로 리뷰를 쓰는 시늉을 하는 것도 그 영역에 속할 것이다. 이 외에도, 화폐경제활동에는 속하지 않지만, 가사 노동 또한 이에 속한다.
 
245쪽 프로슈머는 비화폐 경제에서 더 나은 활동을 하기 위해 자신의 돈으로 자본재를 구입한다. 결국 화폐 경제 내 수익을 감소시킨다. 측정되지 않는 대부분의 프로슈머 경제가 화폐 경제와 상호 작용하는 또 다른 방식을 여기서 살펴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부의 심층기반으로 시간, 공간, 지식을 들고있다. 말 그대로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부를 창출하게 위해 가장 먼저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그런 개념은 아니다. ‘시간의 재정렬, 공간의 확장, 지식에 대한 신뢰’로 그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부 창출의 변화가 이러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을 간단하게는 위와같이, 길게는 수십페이지에 걸쳐서 설명하고 있다.
 
 음. 사실 책을 읽으며 그다지 새로 배웠다거나, 재밌었던 부분은 많지 않았다. 진부한 내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읽기 시작했기에, 의무감으로 읽기 시작했었다. 처음 읽었을 때, 나중에 한번 더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실천하고, 근래에 쿠형님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말 어이없지만,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이 토플러의 책 '제 3의 물결'을 17번인가? 하여튼 그 쯤 읽었다고 해서, 나도 자극을 받아, 나는 부의 미래를 그에 상응하게 읽어보자는 어이없는 다짐을 했는데, 아마 한 번 더 읽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우리 사회를 물결 투쟁의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물결에는 시간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끊임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물결 투쟁은 시간의 투쟁이기도 하다. 우리 주위에도 많은 시간의 충돌이 있다.
 
 나는 사회와의 비자발적인 물결투쟁을 하는 중이다. 솔직히, 나는 느린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사회는 너무 빠른 속도로 흘러 간다. 이 사회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이 사회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회보다 한 걸음 더 앞서서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장 유명한 물결투쟁은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인 것 같다. 러다이트 운동은 19세기 초반에 영국에서 있었던 기계파괴 운동이다. 기계로 인해, 자신의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던 운동이다. 이는 산업 발전 속도와 노동자의 발전 속도가 달랐기 때문에 생겼던 운동이다.
 
 이 외에도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많은 구성원들은 각자 다른 시간속에서 살고 있다. 산업, 정부, 교육, 종교 등등 다른 시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엇나감에 따라 도처에 물결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각각의 속도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세대간에도 물결 투쟁이 발생하고 있다. 세대간 물결투쟁은 10월 26일에 있었던 서울 시장 재보선 시장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투표처럼 세대간 표가 극명하기 갈린적은 드물었을 것이다. 이는 정치를 바라보는 현세대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는 젊은이들의 물결투쟁이다. 앞으로의 정치는 동시화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이들의 시간을 맞추는 동시화의 능력이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결론을 맺어본다.
 
 경제, 경영 서적의 결론을 정치로 맺는 이상한 흐름. 

부의미래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지은이 앨빈 토플러 (청림출판,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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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