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6. 22:05


 다사다난했던  작년. 개인적으로 가장 극적이었던 사건을 꼽자면,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와 기아 타이거즈의 우승을 꼽을 것이다. 물론, 전자는 비극이었고, 후자는 희극이었다. 두 극적인 사건은 뭔가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를 이은 책이 있으니, 그 책은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다. 사실 이 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에 출판된 책이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 후 다시 이슈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 김은식씨는 야구 이야기를 맛갈나게 전하는 작가이다. 예전에 읽었던 그가 쓴 책인 야구의 추억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그의 칼럼은 매번 챙겨보는 편이다. 기록으로써의 야구가 아닌, 기억으로써의 야구를 가장 잘 전하는 분 같다. 그래서 이 책 읽기를 주저 하지 않았다. 사실 추석 연휴 때 집에 내려가는 버스에서 이 책을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버스에서 결국 이 책은 보지 않았고, 내려가는 10시간 동안 수다만 떨면서 갔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큰 소리로 수다를 떤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우라나라 프로야구의 태생은, 사실 3S(Sex, Screen, Sports) 정책에 의한 전(全) 정권의 산물이다. 뭔가 정권의 정당성이 없으니,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인 김은식씨는, 한 때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했었다고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3S 정책의 산물인 야구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잠깐 고민한 적이 있었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역사의 아이러니인지 모르지만, 많은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아세운 정권에서 프로야구를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야구팀 가운데, 호남을 연고로한 해태 타이거즈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고, 정치적 소외된 호남에서의 유일한 위안거리는 해태 타이거즈였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전 재산이 29만원 뿐인 분의 극진한(?) 호남사랑이 이런 시나리오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 해태가 잘 나가던 시절, 정치적으로는 소외되었었고, 김대중은 대선에서 미끄러지고, 급기야 정계에서 은퇴 선언까지 했었다. 호남인들에게 도대체 김대중이란 무엇이었나. 사실, 김대중을 지지한다고해서 득이 된 것은 없었고, 돌아온 것은 폭도 취급이었고, 급기야 많은 사람이 빨갱이로 몰려 죽기까지 했었다.
 
31쪽 김대중은 광주, 그리고 한국민주화운동과 그렇게 뿌리 깊은 곳에서 이어졌다. 같이 웃는 사람보다 함께 울었던 사람과의 인연이야말로, 잘라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호남인들이 김대중을 지지했던 것은 함께 울었던 인연 때문일 게다. 어쨌든, 해태의 영광과 김대중의 고난은 궤를 달리했다. 당시 빙그레 이글스에 김대중이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해태와 빙그레와의 경기가 있을 때, 김대중 선수가 등판했을 때는 많은 관중이 김대중을 연호했다고 한다. 그렇다. 유일하게 눈치보지 않고 야구장에서 김대중을 연호할 수 있었던 곳이 그들에게는 야구장이었다.
 
126쪽 그 시절, 그곳에서, 야구장은 수천 명이 모여 한 목소리로 외치고 흥분하고 울고 웃으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곤봉과 최루탄의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세는 역전된다. 결국 대통령 병에 들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통령에 집착을 보였던 김대중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고, 그 시절, 해태 타이거즈는 모기업의 부도로 인해, 해체의 위기를 맞는다. IMF에서 차관을 받으며, 신자유주의의 물결도 또한 수입되어 온다. 그리고 그것은 해태의 발목을 잡는다. 사실 신자유주의보다는, 해태의 무리한 사업확장이 해태의 몰락을 가져왔다. 결국 해태는 해체되어, KIA에 인수된다. 어쩌면, 해태 팬은 김대중에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해태만은 아니, 해태 타이거즈만은 살렸어야 한거 아닌가 하는. 책에서는 이 사건을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의 바톤 터치로 명명하며 "김대중이 해태 타이거즈를 죽였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시절 무등 구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 책에서는 소개가 되지 않았지만, 올 해 또다시 바톤 터치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KIA 타이거즈의 우승이 그것이다. 사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께 죄송한 일이지만, 타이거즈와 김대중은 공생할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책을 덮고, 이렇게 해태를 추억하는 책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입에서 여전히 오르내리는 팀. 최근 어떤 기사에서는 만약 당시 해태의 우승보다, 삼성 혹은 두산이 우승했었더라면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더 발전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해태가 강조한 것은 오로지 투지, 하지만 삼성, OB는 당시에 드문 선진 시스템과 투자가 있었는데, 만약 두 팀이 우승했었다면 프로야구의 트렌드가 그쪽으로 흘러갔을테지만, 해태의 변함없는 우승으로 투자없는 투지만 강조되었다는 점을 아쉬워 했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이야기거리는 풍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태의 변함없는 우승은 프로야구의 재미를 반감시켰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의 후반부에 쌍방울 레이더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중 인상적인 글귀가 있다.
 
174쪽 흘러간 것을 소홀히 하는 이들은 다가올 시간들 역시 치열하게 임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쌍방울 레이더스를 기억하는 방식 역시 한국 프로야구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한 가지 척도가 될 것이다.
 
 쌍방울은 누구도 떠맡지 않으려는 우리 프로야구의 역사이다. 안타깝지만, SK가 쌍방울을 인수한게 아니라, 해체 후, 재창단을 했기 때문에, 쌍방울은 주인없는 역사가 되어버렸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실 KBO에서 신경써서 관리해야 하는 문제인데. 신경을 안쓰는 것 같다. 이게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현주소이다.
 
 이 책을 읽으면 야구와 정치, 현대사를 골고루 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글쓴이의 글 재주 덕분에 책이 더욱 풍성해진 것 같다. 이런 류의 책이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다. 하지만 추운 것 보다 역시 겨울이 안좋은 점은, 야구가 없어서이다. 빨리 야구 개막했으면 좋겠다.
 
 
 
244쪽 뒤돌아보자면 경제학자들의 계산보다 26년쯤 일렀던 프로야구의 출범, 그것은 항상 '의지'로써 '조건'과 '배경'을 앞지르고 선도했던 한국사회 역동성의 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그 '의지'가 흐려지는 순간에도 버텨나갈 자생력을 결여한 불완전성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
카테고리 취미/스포츠
지은이 김은식 (이상미디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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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11. 28. 11:41
 사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최근 갑자기 생각나서 급하게 읽기 시작했다. 일단 제목이 멋있지 않은가? 이 책의 부제는 세계의 지식인 16인가 하버드대생의 대화이다. 그런데 이 16인의 지식인 중에서 아는 사람은 노엄 촘스키 뿐이었다. 나머지 내가 몰랐던 15명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다양하다. 역사가, 문학자, 의사, 기업 지도자, 경제학자 법학자 등등.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그 사람들의 글을 혹은 책을 읽지 않고서도 만날 수 있는 점은 독자들에게 행운인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사실, 나에게는 조금 재미없었던 면도 있다. 16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생각 중에, 재미있었던 것도 있었지만, 읽기에 지루했던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음. 한 가지 부러운점은,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이러한 강좌가 있으면 좋겠다 하는 점이다.
 
 이 책에 나온 이슈 중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이 몇 가지 있다. 먼저 경제학자 줄리엣 쇼어의 이야기들이다. 주로 과로하는 미국인의 이야기와 소비주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먼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인들의 노동시간이 가장 길다는 주장을 했다. 노동시간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는 여가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지난 학기에 노동경제학 시간에 배웠는데, 여가의 기회비용은 임금이다. 그러니까 여가의 기회비용(임금)이 커질 수록 여가시간은 줄이고, 노동을 더 하게된다. 최근 우리 경제 체제는 여가시간을 주지 않고 돈을 준다. 사람들은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 돈을 받길 원하고, 그 돈으로 소비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그리고 텔레비전과 소비의 관계에 대한 글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텔레비전이 소비를 더욱 부추킨다는. 물론 이 얘기는 정말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다시 한 번 텔레비전의 폐해에 대해서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음. 그래서 결론은, 노동시간을 줄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야인 것 같다.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여가시간을 더 늘릴 수 있도록. 연구에 의하면(122쪽)  많은 시간을 들이고 기술을 익혀야 하는 여가 활동들이 가장 많은 걸 얻게 해주고 가장 만족스럽기도 하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도 바껴야 할 것같다. 소비를 위해 여가를 포기하는 그런 모습들. 꼭 필요하지 않는 것들을 소비하기 위해 일을 더 해야하고, 그럼으로써 여가 시간은 줄어들게되고, 삶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 스스로 한번 고민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라니 구니어의 《광부의 카나리아》이야기. 광부들은 공기의 독성이 너무 심할 때 경보를 하도록 카나리아를 탄광에 가져간다고 한다. 카나리아는 허약한 호흡기 조직을 갖고 있다고한다. 만약 카나리아에 문제가 생기면 탄광 공기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카나리아는 사회의 여러 문제를 진단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인종이 될 수도 있고, 지역, 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카나리아의 경고 신호에 유의 해야 한다. 특히 최근 대한민국을 생각해보면 답이 안나온다. 대한민국이라는 탄광이 있는데, 대한민국 탄광의 공기에 이상 신호가 발생한 것 같다. 이 탄광의 카나리아는 대한민국 국민인데, 지금 우리나라를 보라. 카나리아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카나리아가 어떻게 되든 신경 안쓰는 윗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걱정이다.
 
 에런 퓨어스틴이라는 기업인의 이야기도 뭔가 느낄점을 많이 남겨준다. 퓨어스틴은 자신의 공장에 불이 나서, 공장을 다시 짓는 동안에도 직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결국 파산하긴 했지만, 자기 고향 기업에 헌신하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에이미 굿맨의 미국 고발도 또한 신랄하다. 동티모르에서의 학살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몸서리가 쳐졌다.
 
 이 외에도 많은 지식인들이 미국의 카나리아 관찰자로서 미국의 이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깨어있는 지식인들이 있고, 그 지식인들 덕분에 그나마 희망이라는게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강의에서 뭔가 상통하는게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행동하는 양심!인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지식인들은 실천가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상)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들도 우리 양심의 언어에 조금이라도 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1쪽 때로 사람은 어떤 것에 대해 흐릿하게만 아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주 뼈저리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제가 뼈저리게 느낀 것은, 사회에 아주 심하게 불만을 느낀다면 정부나 헌법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정부 주도로 또는 법이 이야기하는 걸 가지고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인민들 스스로 실천하는 행위를 통해 해결될 거라는 말입니다. - 하워드 진
 
315쪽 여러분이 몇 살이든, 무엇을 하든, 학생이든 교수든, 일을 하고 있든 실업 상태든, 경비원이든, 도장공이든, 학교 구내서점에서 일하든 아니면 식당에서 일하든, 우리는 매일 매 순간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칼이 될 것인지 방패가 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결정입니다. - 에이미 굿맨

오늘의 세계적 가치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브라이언 파머 (문예출판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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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11. 21. 14:04

 카탈로니아 찬가, 동물농장에 이어 읽은 조지 오웰의 3번째 책. 그 3권의 책 중에서 이 책이 가장 길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기전에 선행학습(?)을 할 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고, 분명히(!) 언젠간 읽게 될 책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읽기 시작했다.
 
 조지 오웰이 1984를 출간한 해가 1949년이라고 한다. 아마 집필을 완성한 해가 1948년이었을 거라는 생각이든다. 어쨌든, 아주 오래전에 쓰인 책이 지금 우리 시대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1984는 큰형님(?), 아니 빅 브라더스에 의해 우리 삶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일부러 전쟁을 일으키고, 소설 속의 인물들은 텔레스크린에 의해 철저하게 감시받는다. 그리고 섹스로 인한 쾌락은 죄악시 된다. 또한 우리들의 언어도 철저하게 우리 의식을 통제하기 위해 제약받고 있다. 또한 과거 또한 왜곡시킨다. 이는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기치 아래, 현재를 지배하는 자로서, 과거를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 시킨다.
 
 하지만 이 중애 깨인 이가 있었으니, 이는 윈스턴이다. 그는 일기를 쓰는 것에서부터 저항을 한다. 일기 쓰는 것이 발각되는 날엔 최고 사형까지 받을 수 있는 죄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일단 소심한(?) 저항을 시작했고, 결국은 체제를 전복하고자 시도한다. 그 중에 금지된 사랑(?)도 있었고, <형제단>이라는 조직에 가입해 체제 전복을 도모했다. 하지만 그는 <형제단>이라는 조직이라는 떡밥(?)에 걸려들었고, 결국 고문을 받는 처지가 된다. 숱한 고문끝에 사랑도 배반하게 되며, 결국 없던 죄까지도 시인하게 된다. 그는 결국 총살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지만, 빅 브라더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진심으로.
 
 사실 책을 읽으면서 윈스턴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의 혹은 이 책을 읽었던 대부분의 독자의 응원을, 지지를 배반해버렸다. 결말이 조금 밝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옮긴이의 말을 읽고서 그냥 납득 했다. 이 책을 쓸 당시, 조지 오웰의 아내가 죽고, 그 또한 건강상태가 안 좋은, 여러 악조건 가운데 책을 썼다고 하는데, 결국 그 악조건이 책의 결말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떠오른 영화가 있었는데, <브이 포 벤데타>이다. 이 영화도 미래의 영국을 그렸는데, 영화를 제작한 워쇼스키 형제 - 지금은 남매라고들 하지만 - 가 혹시 1984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영화와 책의 결말은 다르지만.


브이 포 벤데타
감독 제임스 맥테이그 (2005 / 독일, 영국, 미국)
출연 나탈리 포트만, 휴고 위빙, 스티븐 레아, 존 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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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사실 책에서 1984년을 부정적으로 그린 것보다는, 우리내 삶은 더 나은편이다. 하지만 감시당하고 있는 것은 매 한가지이다. CCTV에 의해 감시당한다거나, 특히 후불제교통카드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이동경로까지 그대로 노출된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웹서핑을 하는 것, 미니홈피나, 블로그도 충분히 감시 당할 수 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밀접한 것들이 우리를 옭아 매는 족쇠가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뭐 부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끝이 없기에,  그리고 일단 편익이 그것들을 포기하는 대가보다는 크기 때문에. 음. 이렇게 길들여져 가는건가.
  
114쪽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자유이다. 만약 자유가 허용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도 이에 따르게 마련이다.
  
143쪽 그는 고통과 공포에 대한 생리학적 무용성과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순간에 무기력하게 무너져버리는 육체의 배신을 생각하고 몸서리를 쳤다.
  
236~237쪽 그런데 단순히 살아남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는 게 목적이라면, 궁극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단 말인가? 사람들이 그들을 자신들과 똑같게 개조시킬 수 없듯 그들 또한 사람들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없다. 설령 그들이 사람들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하더라도, 인간의 속마음까지 공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속마음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신비로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267쪽 모든 사람들이 적게 일하고 배불리 먹으며 목욕탕과 냉장고가 있는 집에서 자동차와 비행기까지 소유하고 산다면, 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불평등의 구조는 틀림없이 붕괴되고 말 것이다. 만약 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적 소유와 사치라는 의미에서 부가 공평히 분배되는 한편으로 권력이 소수 특권계급에 의해 장악되는 사회를 상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회는 오랫동안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시간적 여유와 함게 경제적 안정을 똑같이 누리게 되면 빈곤에 허덕인 나머지 사회에 무관심했던 대중이 마침내 눈을 뜨게 되고,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결국은 소수의 특권층이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됨으로서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계층 사회의 장기적인 존속은 가난과 무지를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
  
299쪽 우리 사회에서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현실 그대로의 세계를 가장 모른다. 일반적으로 이해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착각을 많이 하고, 지식이 많으면 많을 수록 정신이 덜 건전하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전쟁에 대한 열망이 높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373쪽 "맞았네. 권력은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행사할 수가 있지. 복종으로는 충분하지 않네. 괴롭히지 않고, 어떻게 권력자의 의사에 복종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권력은 고통과 모욕을 주는 가운데 존재하는 걸세. 그리고 권력은 인간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권력자가 원하는 새로운 형태로 다시 뜯어 맞추는 거라네·····"

1984(세계문학전집77)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조지 오웰 (민음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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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11. 15. 20:39


 지난 3월 23일, 학교에서 진중권 교수님 강연회에 갔었다. 그 때 진 교수님 강연을 듣고 나서, 이 책에 진 교수님 사인을 받았다. (그 과정은 일전에 글로 쓴 적이 있다.) 그 이후에 누군가와 진중권 교수님의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그때의 일을 자랑하곤 한다. 하지만 사인 받으려고 책을 산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왠지 이 책에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차라리 미학 오디세이에 사인을 받을걸 그랬나 보다.

 

 먼저 나는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 등장하는 영화는 유명한 영화들일텐데, 봤던 영화는 5편뿐이었다. (사실 5편이 채 안되는 줄 알았었는데, 딱 다섯 편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흥미로운 주제의 글들은 많았지만, 영화를 몰라서 읽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리고 읽기 어려웠던 이유가, 진 교수님 책을 처음 읽는 거였는데, 일단 말들이 어려웠다. 눈에 익숙지 않은 단어들이 난무하는 바람에 읽는데, 애를 먹었다. 아마 나의 읽기 능력이 떨어져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진중권 교수님 인터뷰를 한 동영상을 봤는데, 어려운 단어들은 의학에 빗대면 수술 도구와 같은 것이고,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는 게 필수라는 내용의 말을 했었다. 그리고 의미를 표현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영화 비평서로 알고 읽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영화 비평서가 아니라 영화 담론에 관한 책이라고 한다. 영화를 여러 가지 범주로 나눠서 서술했다. 그 중에 몇 가지 재미있는 내용을 설명하자면,

 

 먼저 uncanny vally. 일본의 로봇공학자 마사히로 모리는 “산을 오르는 것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함수의 예다. 정상까지의 거리가 줄어든다고 고도가 항상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에 언덕과 계곡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로봇이 점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친밀도가 증가하다가 어떤 계곡에 도달하는 것을 관찰했다. 나는 이런 관계를 ‘섬뜩함의 계곡’(不氣味の谷)이라 부른다.” 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이 섬뜩함의 계곡, 즉 uncanny vally의 개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는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를 설명하는 글에서 소개된 개념이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저자는 언캐니 밸리에 빠져 좌초했다고 한다. 반면에 <스타워즈>에 나오는 로봇 C3PO와 <터미네이터>는 전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막상 컴퓨터 기술로 실제와 유사한 모습으로 재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혐오감을 주는 것은, 아직은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기에, 아니면 인간의 고유의 영역을 지키려는 우리의 의지가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다음은 인터렉티브 필름(interactive film). ‘설마 이런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음직한데, 정말로 이런 영화가 있다고 한다. 이는 영화와 게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예로 설명된 되었다. 사실 이 영화는 ‘비디오 게임’으로 분류되나, 감독이 직접 인터렉티브 필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 이유는 관객과 영화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관객은 영화 중간에 등장인물들을 조종하여 영화(혹은 게임)의 플롯을 창조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영화의 다른 예는 <키노아우토마트>라는 영화인데, 조금 아니 많이 오래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당시 2대의 영사기를 사용했고, 관객은 상영 도중 모두 다섯 번 투표를 해야 했다고 한다. 하하. 영화에 비해서 우리내 인생은 항상 누군가 -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 그리고 부모님 등등 - 와 인터렉티브 하기때문에 모든 결정은 주위의 누군가의 개입으로 인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재밌게 본 영화인 서사의 파괴에서 소개된 나비효과에 대한 설명도 재밌었고,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소개된 라쇼몽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나름대로 재밌는 책 인 것 같다. 영화 한편에서도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부러웠다.

 

39쪽 이미지는 설득하지 않는다. 그저 도취시킬 뿐이다. 이성은 마비되고, 그래서 정신은 황홀하다.

 

98쪽 TV는 눈의 연장, 라디오는 귀의 연장, 자동차는 다리의 연장, 크레인은 팔의 연장, 컴퓨터는 두뇌의 연장, 이런 견해를 흔히 미디어의 ‘의족명제’(prothesenthese)라 한다.

 

133쪽 이미지가 뜨거우면 상상력은 식는다. 중세의 목판화는 차갑다. 관객에게 앙상한 뼈대의 빈틈과 간극을 스스로 채우라고 요구한다. 이미지가 차가울 때 상상력은 뜨겁다.

 

152쪽 범죄를 저지를 수 없어서 저지르지 못하는 것은 도덕이 아니다.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지만, 저지르지 않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도덕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설적 결론에 도달한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진정으로 도덕적이다.’

진중권의 이매진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진중권 (씨네21,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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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11. 7. 22:56

 지난 4月. 세계 책의 날때 교보문고에 갔다가 산 책이다. 친구의 강력 추천으로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오래 묵혀놨다가 최근에 읽은 책이다.
 
 서머싯 몸. 굉장히 생소한 이름이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체호프 단편선의 해설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했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도 그의 이름을 본 적이 있다. 서머싯 몸도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 알게된 작가 중의 한명이다.
 
 먼저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이 뜻하는게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뭔가 수수께끼 같은 느낌이었는데, 결국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 의미는 알아내지 못했고, 이 소설에 대한 해설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근데 서머싯 몸이 직접 말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해석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이 책은 유명한 화가인 폴 고갱을 모델로 쓴 책이라고 한다. 뒤에 해설을 읽어보면, 이 책의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와 폴 고갱을 직접적으로 비교한 글도 있는데, 흥미로웠다. 물론 진짜 폴 고갱보다, 소설의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이 더 극적인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찰스 스트릭랜드는 평범한 증권 브로커였다. 하지만 어느 날 무엇엔가 홀렸던지 화가가 되기로 결정하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홀연히 (영국에서) 프랑스로 떠난다.
 
69쪽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치고가 문제겠소? 오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분명 내연녀와 함께 떠났을 것이라는 모두의 추측을 비웃듯이, 그의 결심은 뜻 밖이었다. 그의 그림에의 집착은 무엇엔가 홀렸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설명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안락한 생활은 버리고, 가난한 직업인 화가가 되자 생활이 궁핍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저 그림만 그릴 수 있으면 그에게 더 필요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사람도 그의 그림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다. 시대를 너무 앞선 천재성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림의 가치라는 게 사실 경제학적으로 수요가 있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인데, 그의 그림에 대한 수요는 전혀 없었다. 경제학을 배우지만, 이럴 땐 경제학적 틀이 전혀 쓸모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쨌든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가치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의 가치를 알아본 유일한 한 사람은 너무나도 평범한 화가(더그 스트로브)였다. 천재성을 알아본 평범함. 뭔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긴 한 것 같다. 어쨌든 지극히 평범했든 스토로브는 스트릭랜드를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스트릭랜드의 병이 위중해지자 자신의 부인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집에서 보살핀다. 하지만 결국 스트로브의 부인(블란치)는 스트릭랜드를 사랑하게 되고, 스트로브는 집에서 쫓겨난다. 가장 적절한 사자성어로 표현하지만, 주객전도가 아닌가 싶다. 이것은 분명 블란치가 스트릭랜드를 택한 것이지, 스트릭랜드가 블란치를 택한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블란치는 오로지 예술과 아름다움에만 관심을 가진 스트릭랜드 때문에 자살을 택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아마도 책의 전환점이 아닌가 싶다. 여기까지는 1인칭 화자가 직접 관찰한 스트릭랜드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후 ''는 스트릭랜드를 만나지 못한다. 스트릭랜드는 이 후 타히티라는 섬으로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타히티로 떠난 후의 내용은 절대적으로 '나'에 의한 기억보다는 '다른 사람'에 의한 스트릭랜드의 이야기에 의존한 글이었다.
 
 스트릭랜드가 타히티로 건나간 후 아타라는 소녀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아타는 철저하게 스트릭랜드에 순종하는 여성상이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문둥병에 걸려 죽게된다. 문둥병에 걸려 눈이 보이지 않는 기간동안에도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오두막에 자신의 최후의 걸작을 그렸지만, 아타는 스트릭랜드의 유언대로 그의 시체와 함께 오두막을 불태워버린다. 이렇게 그림에 홀린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는 끝이난다. (책의 내용이 끝난 것은 아님.)
 
 책의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까지 왜 제목이 달과 6펜스인지 몰랐다. 아마 해설을 읽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해설에서 은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에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고 한다. 스트릭랜드는 책에서 6펜스의 세상을 떠나 달의 세계를 지향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거나, 혹은 인간에 대한 통찰에 대한 글에 감탄을 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고, 무언가 느낀적은 있는데, 말이나 글로 옮기기 어려운 것들은 작가는 글로 잘 풀어 낸 것 같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닌가 보다.
 
 찰스 스트릭랜드에 대해 글을 쓰자면,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인 것 같다. 욕을 실컷 퍼부어도 모자랄텐데, 희안하게 끌린다. 욕은 하지만 왠지 동정이 된다. 아마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골칫거리가 될테고, 아무도 상종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런 사람들에게 끌리는 것은 오늘날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다. 이 책의 화자도 또한 스트릭랜드를 비난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다녔었다. 스트릭랜드는 시대를 앞선  나.쁜.남.자.의 전형이다.
 
 앞으로 누군가가 재밌는 소설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꼭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10~11쪽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서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전설적인 사건들은 주인공을 불멸의 세계로 들여 보내는 가장 확실한 입장권이 되어준다.
 
102쪽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는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159쪽 사랑은 몰입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  머리로는 알지 모르나 - 자기의 사랑이 끝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환상임을 알지만 사랑은 환상에 구체성을 부여해 준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을 현실보다 더 사랑한다. 사랑은 사람을 실제보다 약간 더 훌륭한 존재로, 동시에 약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기가 아니다. 더 이상 한 개인이 아니고 하나의 사물, 말하자면 자기 자아에게는 낯선, 어떤 목적의 도구가 되고 만다.
 
207쪽 사람이란 사교적인 교제를 통해서는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외양만을 보여준다. 따라서 사람을 진짜로 알기 위해서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소한 행동이라든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스치는 순간적인 표정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때로는 가면을 너무 철저히 쓰고 다니다가 정말 그 가면과 같은 인격이 되어버리는 일도 있다. 하지만 책이나 그림은 진짜 모습을 꼼짝없이 드러내고 만다. 겉만 그럴싸한 것은 곧 속이 텅 비어 있음을 나타낼 뿐이다. 욋가지를 쇳조각처럼 칠한다 해도 쇳조각처럼 보일 리는 없다. 아무리 특이하게 꾸민다 해도 평범한 정신을 감출 수는 없다.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작품에서도 날카로운 관찰자는 영혼의 깊은 비밀을 읽어내고 만다.
 
220쪽 남녀가 똑같이 사랑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다른 점은, 여자가 하루 온종일 사랑할 수 있는 데 비해 남자는 이따금씩밖에 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달과 6펜스(세계문학전집 38)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서머셋 모옴 (민음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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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10. 30. 15:22

 오랜만에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읽었다. 일년 중 아니 그래도 가끔은, 어쩌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이 생각나는 때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작년 이맘때 즈음에는 연금술사를 다시 읽었었고, 올 10월달에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은 뭔가 종교적이고, 교훈적이다. 그의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읽었던 대부분의 책들은 - 이 책을 비롯해서 -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왠지 자살을 소재로 한 책이 그의 작품이라는 생각에 어울리지는 않았으나, 책을 덮는 순간 역시 파울로 코엘료의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베로니카는 왜 죽기로 결심했을까?
 
69쪽 삶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마침내 얻게 되었을 때,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일매일이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죽기로 결심했다.
 
 사실 24살(베로니카의 나이)의 나이에 삶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얻었다는 게 어떻게 생각해보면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만한 생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쨌든, 그녀는 죽기로 결심했고, 수면제를 먹는 방법으로 자살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고, 그녀가 깨어난 곳은 정신병원 빌레트였다. 빌레트에는 여러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진짜로 미친 사람들, 사랑에 미쳤던 사람, 그곳의 생활에 익숙해서 나가기를 꺼려하는 사람들 등, 그리고 베로니카.
 
 빌레트의 의사는 베로니카에게 수면제의 과다 복용으로 인한 심장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는 이야기를 했고, 길어야 일주일 정도 살 수 있을 거라는 진단을 내렸다. 처음에 그녀는 죽기를 선택했지만, 이제는 죽음이 그녀를 선택했다. 시한부 인생, 나는 잘 모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고, 나도 그 머지않은 미래를 알고 있다면 정말 끔찍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녀는 일주일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처음에 그녀는 어차피 죽는 거 며칠 더 기다릴 필요 없이 더 빨리 죽고 싶어했다. 하지만 날이 지날 수록 하루 하루가 그녀에게 더욱 더 소중해짐을 뼈저리게 만들었고, 살고자 하는 욕망이 시간이 흐를 수록, 즉 죽음이 다가올 수록 더욱더 커져감을 느껴왔다. 그녀는 빌레트에서 사랑을 알게되고, 삶을 알아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죽기 하루 전날 밤, 그녀는 빌레트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에뒤아르와 빌레트를 탈출한다. 소중한 하루를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정당한 방법으로 나가고자 빌레트의 이고르 박사에게 청했으나, 완곡한 거절을 받았다. 결국 그녀는 도심의 조그마한 광장에서 에뒤아르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죽음을 얼마 남지 않은 그녀로 인해 정신병원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느린 죽음의 자각으로 인해 빌레트의 많은 사람들이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신들의 삶을 다시 평가했다. 오랫동안 세상을 피해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해 있었던 환자는 다시 세상에 맞설 힘을 얻기도 했고, 다른 환자들은 자신의 상태를 재검토 받고자 했다. 즉 빌레트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욕망을 느린 죽음의 자각이 일깨워 준 것이다.
 
 이렇게 끝나면 너무 뻔한 스토리인데,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베로나카는 죽지는 않았다. 에뒤아르의 품에서 눈을 감은 베로니카는 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다. 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베로니카는 빌레트의 이고르 박사의 피실험자로써 일주일을 보낸 것이었다.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심장 손상은 조작된 것이었다. 심장의 기능이 약화되고 발작을 일으키는 약을 투여해 베로니카에게 심장이 손상되었다는 것을 믿게 만들었고, 이는 이고르 박사의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 는 논문을 작성하게 위한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자살했던 사람이 다시 자살을 할 확률을 낮추고자 만들어진 실험인데, 베로니카가 운이 좋게(?) 뽑힌 것이다. 이 죽음의 자각에 대한 실험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전염성을 갖고 있었다. 이는 이고르 박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고르 박사의 실험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어쩌면 이런 실험들이 실제로 자행되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아마 인권위에서 알게 된다면, 이고르 박사는 사회에서 매장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선하지 않다면 이는 정당한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은 소설책이니까, 이는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책을 읽고서 예전에 가시고기에서 봤던,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 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오늘도 헛되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19~20쪽 신은, 어느 날 그녀가 자살할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녀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행동에 그리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149쪽 "젊은이란 그런 거야. 젊음은 몸이 얼마나 버텨낼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지. 하지만 몸은 언제나 버텨내."
 
151쪽 사회는 점점 더 많은 규칙들로, 그 규칙들을 반박하기 위한 법률들로, 또 그 법률들을 반박하기 위한 새로운 규칙들로 넘쳐났다. 그것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법규를 일탈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216쪽 "... 일생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오로지 우리 잘못에서 비롯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것에 대응했어. 우리는 격리된 현실이라는 쉬운 길을 택했던 거야.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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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10. 30. 00:39

 어느새 이 책이 나의 4번째 지식 ⓔ가 되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매번 마음 속에 몇가지 울림들을 남겨주는 몇 안되는 책이다. 영상을 챙겨보지 못하는 나에게 책으로나마 만날 수 있는 지식 ⓔ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사실 이 책을 산지는 오래됬었다. 예약판매로 판매할때 샀었는데, 그 이유는 포스트잇에 눈이 멀어서; 어차피 읽을 책이라면 미리 사놓고 포스트잇도 얻는다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이번 지식 ⓔ에서는 다른 시즌에서와 비교될 정도로 MB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다. 뭐 많다고 해서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많다는 이야기이다. 약간 이런 내용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나의 입장에서는 뭐 시원했지만.

 

 그리고 다른 시즌과는 다르게, 이번 책에서는 다른 책들을 소개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1,2,3 에서는 따로 그 내용과 관련된 책들을 소개해줬는데, 이번 시즌에서는 따로 소개한 책들은 없었다. 책 내용 중간중간에 나오는 책들도 있지만, 지식 ⓔ를 읽으면서 좋은 책들도 함께 소개받았으면 하고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또한 약간 실망할 여지가 있다. 지식 ⓔ 시즌 5가 나왔다는데, 아직 내용은 모르지만, 김주하 기자님이 얘기한 것 처럼 한 갈래 독서가, 다른 열 갈래 독서가 될 수 있도록 지어졌으면 좋겠다. 대단한 다독가인양 글을 써서 민망하지만.

 

16쪽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311쪽 사람이 고안해낸 모든 사상, 조직, 제도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을 때라야 계속 존재할 가치가 있다.

 

328쪽 낙오자, 빈민들에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힘'은 빈곤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지식 e SEASON 4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EBS 지식채널 e (북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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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9. 28. 23:50

  개인적으로 가장 신뢰하는 경제전문가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통찰편에 이은 분석편.
 
 분석편은 기술적 분석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것도 본인이 뽑은 액기스만을 썼다고 한다. 사실 기술적 분석에는 이런 저런 이론들이 난무하고 있어서, 공부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해야할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의 서문에서 시골의사가 기술적 분석에 대해서 이 책에서 다룬 내용 이상의 것을 공부하는 것은 낭비라고 자신 있게 얘기 했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시골의사의 얘기라면 믿음이 간다.
 
 이 책은 한참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하던 때에 출간되었다. 그 때 바로 읽었더라면 더 도움을 받았을 텐데, 요즘 다시 주가가 회복된 때에 읽어서 그런지, 뭔가 절실함(?)이 예전에 비해서 떨어진 느낌이다. 불과 올해 초만 하더라도 반토막난 주식을 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며 주식 공부 열심히 해서 복수해야지 - 그런데 누구에게 복수한다는 건가 -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원금을 다 회복하다보니깐, 복수해야 겠다는 마음이 사라졌다.
 
 어쨌든 최근에 많이 오르긴 올랐다. 이렇게까지 많이 오를지는 몰랐다.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못에 외국인이라는 고래가 다시 들어오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예전에는 큰 고래 한 마리 뿐이었지만 지금은 예전과 비교하자면 고래가 2마리인 느낌이다. 외국인과 국민연금이라는 고래. 고래가 2마리로 늘어서, 연못의 물이 조금이나마 더 안정적이 됬다고나 해야할까. 금융위기 때 외국인이라는 고래가 연못에서 빠져나가면서 연못물이 크게 출렁거렸는데, 국민연금이라는 고래가 조금씩 커가면서 연못이 조금이나마 평안해지지 않았나 싶다.
 
 음. 여러 금융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이것저것 아는 것은 늘었을지 모르지만, 제대로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냥 외우기만 했지 매커니즘이랄까, 그런 것들은 몰랐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새로 배우는 마음으로 읽었다. 재밌게 읽었던 부분은 거시경제지표 부분의 소비자동향지수에 관한 내용이었다. 특히 소비자기대지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소비자동향지수와 주가지수 추이를 비교해보니 유사한 움직임을 보였다. 음. 간단히 책에 나온 매커니즘을 설명하자면 <소비지출 → 생산증가 → 고용증가 → 설비투자 → 소비지출> 이러한 순환 구조이다. 그런데 주가가 폭락하기 이전에 이미 소비자 동향지수는 하락하고 있었다고 한다.
 
 거시경제지표에 이어, 기업분석에서는 재무제표와 재무비율, 그리고 재무제표를 이용한 주가승수에 관한 내용도 쉽게 쓰려고 노력한 것 같다. 뭐 읽고나서 바로 잊어버리긴 하지만, 적어도 책을 읽을 때는 감명깊게(?) 읽었더랬다.
 
 그리고 이 다음으로 본격적으로 차트를 보며 기술적 분석을 배웠는데, 윽. 이런걸 다 알아야 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 읽었다. 이 정도는 알아야 주식 시장에서 매매를 할 수 있는 라이센스를 얻은거라는 시골의사의 말에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뭔가 시골의사의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본업인 의학 공부 이외에도 젊은 날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을 쌓았다는 것 자체가 귀감이 된다. 기술적 분석에 관한 내용에서는 변동성 지표인 볼린저 밴드가 가장 신선했고, 유용했던 것 같다. 볼린저 밴드는 표준편차의 개념을 주가에 대입해서 편차 내에 가격이 존재할 확률을 매매 판정에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351쪽) 역시 이 개념도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들어보기는 했지만, 그냥 변동성 지표라는 것만 알고 자세히 공부는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공부하게 되었다. 내가 사용하는 HTS에 볼린저 밴드를 추가하고 보니깐 왠지 괜스리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통찰편을 읽을 때는 무릎을 치면서 읽었다고 할 수 있고, 분석편을 읽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뭐 무릎을 치는 것과 고개를 끄덕이는 것의 동기에는 큰 차이는 없겠지만, 굳이 두 책을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어쨌든 재밌는 책을 읽었고, 이 책에서 또 가지치기를 해서 다른 재밌는 투자관련 책도 찾아 읽어야겠다.
 
52~53쪽 주식투자가 도박이 되는 것은 투자자들이 도박하듯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이 출발한 뒤에 게임에 참여해도 되는데 굳이 어느 말이 앞서 나갈지를 예측하려 들거나, 룰렛의 원반 속도가 느려져 어느 구멍에 구슬이 들어갈지 예상될 때 배팅해도 되는데 굳이 구슬이 던져지자마자 배팅하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또 내 손에 좋은 패가 들어올 때까지 10번이고 100번이고 기다려도 아무도 시비 걸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게임에 매번 참여하는 것이 바로 주식투자를 도박과 다름없게 만드는 원인이다.
 
69쪽 주가는 전망이 아니다. 전망은 오로지 통찰에 의한 것이고, 모든 투자는 상황에 대응하는 것일 뿐이다. 기술적 분석이든 아니든 전망이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전망을 하려 들기 때문' 이다. 그리고 기술적 분석에 국한하여 생각한다면 기술적 분석을 보조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전부로 여기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다.
 
481~482쪽 기술적 분석이란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기준' 으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기술적 분석 도구들은 그것의 정확성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적용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만약 그 적용의 기준이 일정하지 않고 어떤 필요나 자신의 심리적 요인에 따라 흔들리거나 불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2: 분석편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박경철 (리더스북,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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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9. 24. 23:02

얼마만인지, 정말 꼬꼬마 때였던, 1997년 이후, 12년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절대 지지 않는다는 전설을 남겼던 해태.

그리고 해태를 인수해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한 KIA.

해태든, KIA든 변함없이 응원한 팬들.

정말 눈물 날 것 같다.

 

2009 시즌은 특별하다.

정치적으로 연관짓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라는 책으로 인해 이런 인식이 널리 퍼진 것 같다.

정치적으로 엇박자를 이루었던 KIA의 성적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어느해였던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올 시즌은 특히 시즌 초에 전망을 어렵게 만드는 일들이 많았다.

비시즌동안에는 우리 종범 형님을 은퇴시키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들로 시끄러웠었고,

시범경기 때는 주전이라고 여겨지던 채종범의 부상,

개막 후 이용규의 부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윤석민 선수의 WBC 후유증으로 인한 부진,

그리고 한기주의 부진.

시즌 중반에는 김원섭의 간염으로 인한 엔트리 말소. 등등 이야기거리로 말하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시즌 초반 KIA가 위태위태 할 때, LG로 부터 온 귀인이 있었으니,

그는 김상현, 그리고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는 못받았지만, 포카리 박기남 선생.

친정팀 KIA 복귀 경기에서 만루홈런을 치더니, 홈런만 쳤다하면 만루홈런.

절대적으로 아마 이 선수가 없었다면 KIA의 정규리그 1위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정말 정말 LG에는 미안하다 ㅋ

사랑해요 LG~♬ 라고 노래는 부르지만 ㅋ

김상현 선수 보내주고,

KIA가 힘든 시절(?)을 보낼때 어김없이 만나서 KIA에 승수를 보태주고,

두산과 1위 다툼을 할 때는 두산 잡아줘서 KIA가 1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좋은 친구(?)다.

내년에는 KIA에서 건너간 강철민 투수,

꼭 성공해서 LG 선발진의 주축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한 서울고에서 온 귀인.

KIA희망 안치홍 안찌롱.

개인적으로 KIA선수 응원가중에서 안찌롱 선수의 응원가를 가장 좋아한다.

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음. 우리 찌롱이 후반으로 갈 수록 약점이 노출되어,

타율도 많이 까먹었지만,

신인으로 홈런 10개 이상,

그리고 올스타전 MVP.

무럭무럭 자라다오.

 

우리 석민어린이.

WBC다녀와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팀 어려울 때 굳은 일을 많이 맡아서 했는데,

싫은 내색 없이 잘 해줘서,

미안하고, 고마운 선수이다.

그리고 데뷔 때부터 정말 기대하던 선수여서,

석민 선수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올 시즌 가장 극적인 경기를 뽑자면,

군산 SK전에서 김원섭 선수의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

정말 그 때 방에서 혼자 TV보면서 소리쳤던 기억이.

광주에서는 아파트 전체에서 함성이 들렸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어쨌든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홈런타자도 아니었고,

올시즌 어려운 일도 많이 겪었던 김원섭 선수였기에, 더 극적이었다.

원래 김원섭 선수는 초구를 잘 치지 않는 선수인데,

초구를 쳐서 만루홈런을 쳤다.

그것도 전형적인 안타를 치는 선수였는데,

홈런을 노리고 타석에 들어섰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대진형님의 100승 경기도 기억에 남는다.

그 경기는 중계로 보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의 타이거즈 팬들은 이대진 형님 이름을 들으면 뭔가 뭉클함을 느낄 것이다.

오랜 재활기간을 거친 그.

그리고 드디어 100승. 정말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또 정말 타이거즈의 심장.

이종범 형님.

타이거즈=이종범일 정도로, 타이거즈에는 없어서는 안되는 선수이다.

올해 은퇴할 뻔 했지만,

보란듯이 올 시즌 타이거즈의 중심이 되어서,

후배 선수들에게 희생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특히 오늘 정규시즌 우승 확정으로 우리 종범 형님의 감회가 특히 남달랐을 것 같다.

 

그리고 KIA의 체질을 바꾼 조범현 조갈량 감독님.

성적이 안좋을 때는 KIA팬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지만,

소신 있는 선수단 운용으로,

명장의 반열에 올라간 감독님.

존경합니다!

SK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못했던 한을 KIA에서 푸시길.

 

음. 한국시리즈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정말 기대된다.

한국시리즈에서도 꼭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 특히 열번째 우승 꼭 달성 할 수 있길!

 

오늘은 잠못이루는 밤이 될 것 같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9. 13. 02:23

 촘스키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가 아마도 2년 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장정일의 공부라는 책에서였다. 그 책은 장정일 자신의 독후감을 쓴 책인데, 그 책에서 촘스키를 어떻게 다뤘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방금 찾아봤더니 그 책이 읽은(?) 촘스키 책의 제목이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였다. 이 죽일놈의 기억력이란. 지금 당장 책이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조만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촘스키란 이름. 음. 그리고 가장 최근에 그의 이름을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서적 리스트에서 봤다. 볼온서적에 포함된 그의 책에는 <정복은 계속된다>, <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그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불온서적에 대응하는 한국인의 자세(?)에 대해서, "불온서적 판매량 증가는 한국인들의 양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1971644) 부끄럽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뿌듯한 기사였다. 어쨌든 이번에 읽은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에서 누누히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국방부는 군인의 아니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려 했던 것 같았다.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려고 했던 하나의 예이다.
 
 역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포리송 사건을 통한 '표현의 자유' 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39쪽 "내게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증오하는 사람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는 생각만을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정직하다면 반대편의 주장까지도 수긍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 도대체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하길래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포리송의 표현의 자유' 를 지지했을까. 사실 나 같은 소인배는 잘 모르겠다. 음.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새삼깨닫게 되고 있다. 아. 참고로 포리송 사건은 41쪽 "나치 포로 수용소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고, 모두가 독일의 일방적 악행으로 인정하던 쇼야Shoah를 상대적 반응으로 분석한 글을 발표" 함으로 발생한 사건이라고 한다. 촘스키는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능욕당한 사람들이 글로써 그들의 생각을 널리 알리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라는 이야기를 했다. 음. 사실 맞는 얘기이기도 한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사회적으로 정말 인정되지 않는 얼토당토 않은 말들,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꾀는 말들도 권리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뭐 그건 사람들의 가치판단의 문제이니까. 최근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기회(?)로 보수논객들의 이런저런 글들을 썼는데, 이런 것들도 인정되야 할까? 나는 속이 좁은 사람같다. 참고로 촘스키는 "누군가에게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인정한다고 그것이 곧 그의 생각에 공감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음. 표현의 자유 이외에, 선전에 관한 이야기도 관심을 끌었다. 지금 우리들이 하는 사고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들이 살아오면서 언론, 광고 등에 의해 누적된 것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 동안 우리들이 지향했던 가치들도 바뀌어 "잘 먹고, 잘 살자." 가 지상 과제가 된 느낌이다. 배금주의가 팽배해져있고, 1인 1표의 민주주의가 점차 1주 1표의 자본시장의 논리로 바뀌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돈이 즉 권력이 되는 느낌. 나도 그런 생각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뭐 나 뿐만 아니라 대다수 주위 사람들도 또한. 어쨌든 이러한 생각들이 여러 선전에 의한 것들이란다.
 
 69쪽 "2차 대전이 끝난 후 사회민주주의 사상과 다소 급진적인 민주주의 사상의 유입으로 기업의 지배가 위협받자, 선전은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여론과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언론기관과 홍보기관이 총동원되었습니다. 기업계 지도자의 표현대로 '개똥철학' 즉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은 천박한 것' 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면서 장시간 노동을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타인과의 연대 등과 같은 위험한 생각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요컨대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한편으로 기업들의 선전은 어느정도 성공(?)한 것 같은데, 정부 선전의 효과는 점차 감소하는 것 같다. 대중들이 점차 성숙해졌다고나 해야할까. 어쨌든 인터넷이 발달해서인가, 점차 정책에 대한 선전에 대해서는 불신들을 갖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 조작된 동의에 대한 개념이 새로웠다. 즉 동의(여론)가 조작된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주로 정치 권력자들,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 홍보 관련 기업들이 자행한다고 한다. 이는 권력을 강화시키는 도구라고 말 했다고 한다. 그는 여러 사례를 통해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 이외에도 암울한 이야기들이 더 많은데, 더 책을 읽은지 오래되어서 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책을 읽고 바로 썼더라도 마찬가지였을테지만.
 
 이 책의 원제는『두 시간의 대화』이다. 사실 이 원제 보다는 저자와 촘스키의 대화의 일부였던 조금 더 자극적인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제목을 내세워 책의 판매를 도모한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나 같아도 원제로는 흥미가 생길 것 같지는 않지만, 조금 씁쓸하긴하다. 그리고 이 책이 한국에 2002년에 출판된 책이고, 촘스키와의 인터뷰는 1999년 11월에 했다고 하는데, 인터뷰가 있은지 1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최근 우리사회의 조류를 볼 때 한국인 독자로서 공감이 되고, 걱정이 되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닐 것 같다.
 
28쪽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해두고 싶습니다. 사회가 민주화될 때, 달리 말해서 국민을 강제로 통제하고 소외시키기 힘들때 엘리트 집단이 선전이란 방법을 동원합니다.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지만, 과학적 수법과 선전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타의 수법까지 동원한 공개적이고 의도된 현상이기도 합니다.
 
29쪽 신문과 방송, 광고와 예술 등 어떤 수단을 사용하든 간에 선전 자체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선전수법이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울 뿐입니다. 예전부터 그 역할은 지식인의 몫이었습니다. 학식과 지식을 지닌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94쪽 시장에서는 누구나 소유한 몫만큼의 권리를 행사하려 합니다. 가령 당신에게 25달러가 있다면 그 25달러만큼 시장에서 당신의 위치를 갖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시장에 없는 사람, 즉 미래 세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리는 결정의 결과를 짊어져야 할 사람이 바로 그들입니다.
 
94쪽 현재의 경제체제가 붕괴된다면 그 이유는 금융위기나 생태환경의 재앙일 가능성이 큽니다. 대중의 각성과 경계 이외에 현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은 없습니다. - 그의  혜안을 느낄 수 있었다.
 
109쪽 "외국에 투자되는 자본은 대부분이 경영 지배권의 확보를 위한 돈입니다.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기업을 민간 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에 넘기려는 속임수일 뿐입니다. 이런 민영화는 대체로 부패한 정부에서 주로 시행됩니다."
 
165쪽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무정부주의자들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기분 원칙이 있습니다. 지배구조와 계급구조는 어떤 형태를 띠더라도 의혹의 대상으로 삼아 그 정당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 남자와 여자,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노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형태의 지배구조를 찾아 내서 정당성을 입증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물론 누가 보아도 정당성을 지닌 지배구조가 있습니다. 예컨대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정당성을 입증할 수 없는 지배구조는 부당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관계를 전복시킬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개인의 관계부터 국제 관계까지 그 차원을 따질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지만, 이것이 무정부주의 사상의 기본 틀입니다. 이런 기본 틀은 민중투쟁, 즉 계몽주의 시대의 유산입니다.
 
219쪽 미국은 변덕스럽고 보복을 잊지 않는 국가로 인식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세계 모든 국가가 미국을 두렵게 생각할 테니까요. 지나치게 합리성을 따지는 국가로 인식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이비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 두려움을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핵무기에 의존해야 합니다. 미국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 나라, 핵확산방지조약에 서명한 나라에도 서슴없이 핵무기를 사용할 국가입니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드니 로베르 (시대의창,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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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