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6. 22:05


 다사다난했던  작년. 개인적으로 가장 극적이었던 사건을 꼽자면,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와 기아 타이거즈의 우승을 꼽을 것이다. 물론, 전자는 비극이었고, 후자는 희극이었다. 두 극적인 사건은 뭔가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를 이은 책이 있으니, 그 책은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다. 사실 이 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에 출판된 책이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 후 다시 이슈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 김은식씨는 야구 이야기를 맛갈나게 전하는 작가이다. 예전에 읽었던 그가 쓴 책인 야구의 추억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그의 칼럼은 매번 챙겨보는 편이다. 기록으로써의 야구가 아닌, 기억으로써의 야구를 가장 잘 전하는 분 같다. 그래서 이 책 읽기를 주저 하지 않았다. 사실 추석 연휴 때 집에 내려가는 버스에서 이 책을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버스에서 결국 이 책은 보지 않았고, 내려가는 10시간 동안 수다만 떨면서 갔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큰 소리로 수다를 떤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우라나라 프로야구의 태생은, 사실 3S(Sex, Screen, Sports) 정책에 의한 전(全) 정권의 산물이다. 뭔가 정권의 정당성이 없으니,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인 김은식씨는, 한 때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했었다고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3S 정책의 산물인 야구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잠깐 고민한 적이 있었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역사의 아이러니인지 모르지만, 많은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아세운 정권에서 프로야구를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야구팀 가운데, 호남을 연고로한 해태 타이거즈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고, 정치적 소외된 호남에서의 유일한 위안거리는 해태 타이거즈였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전 재산이 29만원 뿐인 분의 극진한(?) 호남사랑이 이런 시나리오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 해태가 잘 나가던 시절, 정치적으로는 소외되었었고, 김대중은 대선에서 미끄러지고, 급기야 정계에서 은퇴 선언까지 했었다. 호남인들에게 도대체 김대중이란 무엇이었나. 사실, 김대중을 지지한다고해서 득이 된 것은 없었고, 돌아온 것은 폭도 취급이었고, 급기야 많은 사람이 빨갱이로 몰려 죽기까지 했었다.
 
31쪽 김대중은 광주, 그리고 한국민주화운동과 그렇게 뿌리 깊은 곳에서 이어졌다. 같이 웃는 사람보다 함께 울었던 사람과의 인연이야말로, 잘라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호남인들이 김대중을 지지했던 것은 함께 울었던 인연 때문일 게다. 어쨌든, 해태의 영광과 김대중의 고난은 궤를 달리했다. 당시 빙그레 이글스에 김대중이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해태와 빙그레와의 경기가 있을 때, 김대중 선수가 등판했을 때는 많은 관중이 김대중을 연호했다고 한다. 그렇다. 유일하게 눈치보지 않고 야구장에서 김대중을 연호할 수 있었던 곳이 그들에게는 야구장이었다.
 
126쪽 그 시절, 그곳에서, 야구장은 수천 명이 모여 한 목소리로 외치고 흥분하고 울고 웃으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곤봉과 최루탄의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세는 역전된다. 결국 대통령 병에 들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통령에 집착을 보였던 김대중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고, 그 시절, 해태 타이거즈는 모기업의 부도로 인해, 해체의 위기를 맞는다. IMF에서 차관을 받으며, 신자유주의의 물결도 또한 수입되어 온다. 그리고 그것은 해태의 발목을 잡는다. 사실 신자유주의보다는, 해태의 무리한 사업확장이 해태의 몰락을 가져왔다. 결국 해태는 해체되어, KIA에 인수된다. 어쩌면, 해태 팬은 김대중에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해태만은 아니, 해태 타이거즈만은 살렸어야 한거 아닌가 하는. 책에서는 이 사건을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의 바톤 터치로 명명하며 "김대중이 해태 타이거즈를 죽였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시절 무등 구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 책에서는 소개가 되지 않았지만, 올 해 또다시 바톤 터치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KIA 타이거즈의 우승이 그것이다. 사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께 죄송한 일이지만, 타이거즈와 김대중은 공생할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책을 덮고, 이렇게 해태를 추억하는 책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입에서 여전히 오르내리는 팀. 최근 어떤 기사에서는 만약 당시 해태의 우승보다, 삼성 혹은 두산이 우승했었더라면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더 발전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해태가 강조한 것은 오로지 투지, 하지만 삼성, OB는 당시에 드문 선진 시스템과 투자가 있었는데, 만약 두 팀이 우승했었다면 프로야구의 트렌드가 그쪽으로 흘러갔을테지만, 해태의 변함없는 우승으로 투자없는 투지만 강조되었다는 점을 아쉬워 했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이야기거리는 풍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태의 변함없는 우승은 프로야구의 재미를 반감시켰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의 후반부에 쌍방울 레이더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중 인상적인 글귀가 있다.
 
174쪽 흘러간 것을 소홀히 하는 이들은 다가올 시간들 역시 치열하게 임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쌍방울 레이더스를 기억하는 방식 역시 한국 프로야구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한 가지 척도가 될 것이다.
 
 쌍방울은 누구도 떠맡지 않으려는 우리 프로야구의 역사이다. 안타깝지만, SK가 쌍방울을 인수한게 아니라, 해체 후, 재창단을 했기 때문에, 쌍방울은 주인없는 역사가 되어버렸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실 KBO에서 신경써서 관리해야 하는 문제인데. 신경을 안쓰는 것 같다. 이게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현주소이다.
 
 이 책을 읽으면 야구와 정치, 현대사를 골고루 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글쓴이의 글 재주 덕분에 책이 더욱 풍성해진 것 같다. 이런 류의 책이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다. 하지만 추운 것 보다 역시 겨울이 안좋은 점은, 야구가 없어서이다. 빨리 야구 개막했으면 좋겠다.
 
 
 
244쪽 뒤돌아보자면 경제학자들의 계산보다 26년쯤 일렀던 프로야구의 출범, 그것은 항상 '의지'로써 '조건'과 '배경'을 앞지르고 선도했던 한국사회 역동성의 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그 '의지'가 흐려지는 순간에도 버텨나갈 자생력을 결여한 불완전성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
카테고리 취미/스포츠
지은이 김은식 (이상미디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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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