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5. 20:39


 지난 3월 23일, 학교에서 진중권 교수님 강연회에 갔었다. 그 때 진 교수님 강연을 듣고 나서, 이 책에 진 교수님 사인을 받았다. (그 과정은 일전에 글로 쓴 적이 있다.) 그 이후에 누군가와 진중권 교수님의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그때의 일을 자랑하곤 한다. 하지만 사인 받으려고 책을 산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왠지 이 책에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차라리 미학 오디세이에 사인을 받을걸 그랬나 보다.

 

 먼저 나는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 등장하는 영화는 유명한 영화들일텐데, 봤던 영화는 5편뿐이었다. (사실 5편이 채 안되는 줄 알았었는데, 딱 다섯 편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흥미로운 주제의 글들은 많았지만, 영화를 몰라서 읽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리고 읽기 어려웠던 이유가, 진 교수님 책을 처음 읽는 거였는데, 일단 말들이 어려웠다. 눈에 익숙지 않은 단어들이 난무하는 바람에 읽는데, 애를 먹었다. 아마 나의 읽기 능력이 떨어져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진중권 교수님 인터뷰를 한 동영상을 봤는데, 어려운 단어들은 의학에 빗대면 수술 도구와 같은 것이고,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는 게 필수라는 내용의 말을 했었다. 그리고 의미를 표현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영화 비평서로 알고 읽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영화 비평서가 아니라 영화 담론에 관한 책이라고 한다. 영화를 여러 가지 범주로 나눠서 서술했다. 그 중에 몇 가지 재미있는 내용을 설명하자면,

 

 먼저 uncanny vally. 일본의 로봇공학자 마사히로 모리는 “산을 오르는 것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함수의 예다. 정상까지의 거리가 줄어든다고 고도가 항상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에 언덕과 계곡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로봇이 점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친밀도가 증가하다가 어떤 계곡에 도달하는 것을 관찰했다. 나는 이런 관계를 ‘섬뜩함의 계곡’(不氣味の谷)이라 부른다.” 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이 섬뜩함의 계곡, 즉 uncanny vally의 개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는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를 설명하는 글에서 소개된 개념이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저자는 언캐니 밸리에 빠져 좌초했다고 한다. 반면에 <스타워즈>에 나오는 로봇 C3PO와 <터미네이터>는 전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막상 컴퓨터 기술로 실제와 유사한 모습으로 재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혐오감을 주는 것은, 아직은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기에, 아니면 인간의 고유의 영역을 지키려는 우리의 의지가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다음은 인터렉티브 필름(interactive film). ‘설마 이런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음직한데, 정말로 이런 영화가 있다고 한다. 이는 영화와 게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예로 설명된 되었다. 사실 이 영화는 ‘비디오 게임’으로 분류되나, 감독이 직접 인터렉티브 필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 이유는 관객과 영화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관객은 영화 중간에 등장인물들을 조종하여 영화(혹은 게임)의 플롯을 창조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영화의 다른 예는 <키노아우토마트>라는 영화인데, 조금 아니 많이 오래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당시 2대의 영사기를 사용했고, 관객은 상영 도중 모두 다섯 번 투표를 해야 했다고 한다. 하하. 영화에 비해서 우리내 인생은 항상 누군가 -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 그리고 부모님 등등 - 와 인터렉티브 하기때문에 모든 결정은 주위의 누군가의 개입으로 인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재밌게 본 영화인 서사의 파괴에서 소개된 나비효과에 대한 설명도 재밌었고,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소개된 라쇼몽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나름대로 재밌는 책 인 것 같다. 영화 한편에서도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부러웠다.

 

39쪽 이미지는 설득하지 않는다. 그저 도취시킬 뿐이다. 이성은 마비되고, 그래서 정신은 황홀하다.

 

98쪽 TV는 눈의 연장, 라디오는 귀의 연장, 자동차는 다리의 연장, 크레인은 팔의 연장, 컴퓨터는 두뇌의 연장, 이런 견해를 흔히 미디어의 ‘의족명제’(prothesenthese)라 한다.

 

133쪽 이미지가 뜨거우면 상상력은 식는다. 중세의 목판화는 차갑다. 관객에게 앙상한 뼈대의 빈틈과 간극을 스스로 채우라고 요구한다. 이미지가 차가울 때 상상력은 뜨겁다.

 

152쪽 범죄를 저지를 수 없어서 저지르지 못하는 것은 도덕이 아니다.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지만, 저지르지 않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도덕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설적 결론에 도달한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진정으로 도덕적이다.’

진중권의 이매진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진중권 (씨네21, 2008년)
상세보기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