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11. 22:39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보기 전에 꼭 원작을 먼저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용의자 X의 헌신>(2006, 현대문학)을 읽었다. 한 넉넉잡고 집중해서 3시간이면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가방에 2주간은 넣고 다녔다가, 어제 드디어 완독! 책장을 덮고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의 조건 없는 헌신적인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용의자 X"가 개봉하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비판은 추리영화가 아니라 사랑영화라는 것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추리소설 대가의 소설이기에 그러한 평은 당연했을 것.


이 책은 천재 수학자의 논리 싸움을 그렸다기보다는, 한 남자의 헌신적인 사랑이 전제가 되어 흘러간다. 그러므로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러 갔다면, 천재 수학자의 추리를 기대하기보다는 헌신적인 사랑 - 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 을 기대하고 가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392~393쪽 이 세상에는 거기에 관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숭고한 것이 존재한다.


<백야행>(2000, 태동출판사)에 이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두 번째 읽었는데, 두 책에서 나오는 공통적인 사랑의 방식은 모두 한 사람과 관계하는 그 자체로 행복해하는 한 남자가 사랑의 대상을 지키는 - 비록 방법이 옳지는 못하지만 - 것이다. 그리고 항상 먼발치에서 그 사람을 지켜본다. 썩 부럽진 않지만, 헌신적인 사랑을 함에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모습을 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일을 하든지, 추리를 하던지, 전제가 잘 못 되면, 아무리 일을 해도 헛수고가 된다. 최근 내가 저질렀던 실수도, 전제의 오류가 있던 데이터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발생했었다. 지지난 주 금요일 완벽하게 일을 끝냈다는 성취감을 하루, 이틀 만끽했었지만, 지난 월요일에 출근하고 나서 오류를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그리고 식은땀이 날 정도의 절망감이 들 때의 아찔함.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 또한 치밀한 논리 싸움을 하면서, 전제를 비틀어, 결국 자신이 원하는 최상의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논리 싸움에서는 승리했다. 결과를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토대 위에 서 있나.'에 따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향이 결정되고, 그 방향은 우리를 되돌릴 수 없는 곳으로 인도한다. 올바른 토대 위에 집을 짓고, 우리가 응당 있어야 할 그 곳에 이를 때 까지, 끊임 없이 올바른 곳에 서 있는지 점검하자.


그나저나, 책 다 읽고 영화 보러 가려고 했는데, 이제 조만간 영화 내리겠지? 자, 이제 영화속 주인공들이 어떻게 소설속 주인공을 분했는지만 확인하면 끝!




용의자 X의 헌신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출판사
현대문학 | 2006-08-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정교한 살인수식에 도전하는 천재 물리학자의 집요한 추적이 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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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