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9. 23:15

최근 이준석 새누리당(구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이 과거에 트위터에 철거민에 대해 썼던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시끄럽게 하는 것은 좀 미친 X들이 아닌가 싶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짧은 글을 쓸 때에, 훗날 이렇게 파장을 일으킬 줄 본인은 알았을까? 마찬가지로, MC몽도 과거에 네이버 지식IN에 썼던 병역 면제에 대한 질문이 병역 기피 의혹을 불러 일으킨 발단이 되었다. 이는 꼭 유명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를 이용하는 사람은 언제고 위와 같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이렇듯 디지털 기술은 우리에게 망각을 허락하지 않는다. 조심하라. 언제 네티즌 수사대가 본인을 겨냥할지 모르니.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의 <잊혀질 권리>(지식의 날개, 2011)는 과거에 마이스페이스에 올린 ‘술 취한 해적’이라는 제목의 사진 때문에 교사 임용이 취소된 스테이시 스나이더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는 이력서에 SNS나 블로그 아이디를 요구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우리나라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원자의 사회적 관계망을 파악하려는 의도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이제 취업을 위해서는 SNS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SNS 사용을 하지 않으면 간단하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찍힌 사진은 친구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게시가 될 수도 있다. 즉, “안 하면 그만.”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예상치 못한 누군가에게 언제 어디서나 감시를 당할 수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포털 사이트에서의 검색 내용도 데이터로 저장되고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연관 검색어가 나타나는 것이 그 예이다. 인터넷 사용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사용 내역, 스마트 폰을 사용하며 전송되는 위치도 저장되고 있다. 조지 오웰 소설 <1984>(민음사, 2007)에 등장하는 빅브라더는 소설 속만의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이제 현실이 되었다.

 

유사 이래로 인류에게는 망각이 일반적이었고, 기억하는 것이 예외였다. 그렇지만 디지털 기술과 전지구적 네트워크 때문에 이 균형이 역전되었다.(18쪽)


저자는 역사적으로 언어의 발명, 종이의 등장과 출판 기술의 발달을 소개하며 망각을 지연시킨 사례를 소개한다. 그리고 그 정점을 디지털 기술로 소개한다. 디지털 기술은 드디어 망각을 망각하도록 만들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나 글을 인터넷에 저장하고, 본인이 지우지 않는다면, 그 사이트가 폐쇄되지 않는 이상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기록의 풍요에 살아 가고 있는 우리는 행복한 걸까, 불행한 걸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원형감옥에 살아가고 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디지털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기술이다. 하지만 언젠가 기억은 마모되고 기록에 의해 기억도 조작될 여지가 있다. 그리고 그 데이터 자체가 조작될 여지 또한 상존한다. 이 책은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잊혀질 권리’는 그러한 위험성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다. 잊고 싶은 기억에 대해서, 그리고 잊고 싶은 기억 그 자체를 잊었을 지라도, 잊혀질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만들어 져야 한다. 저자는 잊혀질 권리를 위한 여러 가지 선택 가능한 대안을 제시한다. 여러 대안 중에서 가장 실효성 있는 것은 바로 ‘정보 만료일 설정’이다. 이것은 미리 기기에 설정한 만료일에 저장된 정보가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하는 것이다. 저자는 만료일이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고, 만료일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정보의 수명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도록 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개인적인 차원 이외에도, 제도, 서비스 업체,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정보 만료일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잊혀질 권리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우리가 망각하고 있었던 망각의 축복 또한 일깨워 준다. 故 김광석은 그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1992)에서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묻히면 그만인 것을/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또 잊지 못해 새울까”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고이 묻는 것도, 잊지 못해 긴긴 밤을 새우는 것도 우리 삶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지새운 밤이 무색해 질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제 우리는 잊혀지지 않는 영원한 디지털 기억에 맞서, 잊혀질 권리가 절실해 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잊혀질권리디지털시대의원형감옥당신은자유로운가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지식의날개, 2011년)
상세보기

1984(세계문학전집77)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조지 오웰 (민음사, 2007년)
상세보기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