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28. 01:22
 
 작년에 읽었던 책. 작년 부쩍 우리나라 현대사가 궁금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그것이 촉발되었고,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이 후에,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어떤 책이 좋을까 싶어서 고민하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냥 거창하게 현재 우리나라 정치 구조에 누적된 문제점이 갑자기 궁금해져서, 혹시 멀지 않은 가까운 과거를 알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고, 솔직히 말하면, 아는 척을 하고 싶어서 였던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책은 1940년대 1편으로 일제 치하로부터 해방된 1945년, 1946년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강준만 교수님이 머리말에 쓴 이야기인데, 한 대학생이 40년대 후반의 이야기를 읽다가, 우울해서 이 책을 덮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덮지는 않았고 - 사서 읽은 책이었기 때문에 다 읽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 속으로 욕을 하며 읽었다.
 
 해방 이 후, 격동의 1940년대. 이 책을 읽고 가장 오래 가슴을 저미게 만들었던 이야기는 해방 소식을 듣고도 사람들이 기뻐 곧바로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 아니라 그 전대로 무표정하기만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줄곳 겁을 먹고 지내왔고, 해방된 그 순간에도 일본 경찰이 버티고 있었으므로, 바로 기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4~5시간 후 대폭발로 이어졌다. 어쨌든 나는 이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고 가슴이 아팠다. 기뻐도 곧바로 기뻐하지 못했던 그 4~5시간.
 
 어쨌든 해방 이 후, 하지만 기쁨의 순간만이 그 시간을 채웠던 것은 아니었다. 해방이 갑작스럽게 와서, 아무런 준비도 못했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 시기, 우리나라이 진짜로 영웅이 나왔더라면, 지금 우리나라는 분단되어 있지도 않았을테고, 친일파들이 득실거려, 후대에도 떵떵거리며 살지는 았았을 게다. 영웅이 나오기는 커녕 영웅인 척 하려했던 사나이-슈퍼맨이었던 사나이 패러디 - 들만 득세했다. 어쨌든, 그 시기 영우이 되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았나보다. 이는 인정욕구와 영웅주의라고 저자는 분석했던 것 같다.
 
 이 때 친일청산을 했어야 했지만, 슬픈 이야기이지만 일제 치하에서 미군정으로 변화되었을 때, 전범국인 일본을 철저하게 처벌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즉 미국이 전략적 요충지로 이용했기 때문에, 일본은 전쟁을 일으키고도, 그에 합당한 벌을 받지 않았다. 아마 일본의 힘이 약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친일파의 힘 또한 약해질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또 그들은 미군정의 부름을 받아, 더 큰 권력을 누렸다고 한다. 이 참을 수 없는 기회주의.
 
10쪽 이 시기에 진정한 이데올로기가 있었다면, 그건 대세 또는 힘이 센 쪽으로 기우는 기회주의였을 것이다. 해방 이틀 후 소련군이 서울역에 들어온다는 헛소문은 그런 기회주의를 유감없이 드러나게 해준 사건이었다. 후일 강력한 반공(反共) · 반소(反蘇)주의자로 활동하게 되는 사람들도 그때엔 소련군에 대한 대대적인 환영을 준비하였기 때문이다.
 피가 끓는 원한관계, 전통적인 유대관계, 대세 추종의 처세술 등과 같은 동기들로 인해 빚어졌거나 증폭된 갈등마저 이데올로기 투쟁이라 불러야 한다면, 그건 아마도 '의사(擬似 : 실제와 비슷함) 이데올로기 투쟁' 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음. 친일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친일을 했으나, 인정하지 않은 뻔뻔한 친일, 그리고 반성하는 친일. 물론 모두 잘못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반성하지 않는 뻔뻔한, 정당화하는 친일이 많지 않나 싶다. 한편 내가 당시에 살았더라면 친일을 하지 않았으려나? 모르겠다. 하기야. 친일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하는건데, 친일 하는 것도 아마 어려웠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나라 국민의 단결도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의 과잉으로 인해 너도나도 우익, 좌익을 선택받기를 강요받았고, 흑백논리는 덤이었다. 중도를 지키기란 어려웠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저자는 그 동안 오랫동안 막혔던 둑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표현했고, 통제가 어려웠고, 통제를 시도할 주체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욕망은 애국심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그 시기는 시정잡배도 정치를 부르짖었고, 영웅이 되던 시기였다.
 
 또 한 가지 의아했던 점은, 백범 김구에 대한 점이다. 그냥 지금 우리나라에서 김구 선생이 과대평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은 조심스러운 부분이기에. 뭐라고 할 말은 없고,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그냥 단편적인 생각일 뿐. 당시 친일파 처단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는 정치자금 문제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종종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현실 상황을 오판 했었고, 자신의 욕심인지, 민족을 위한 것인지 불분명한 상황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지난 해, 조정래 작가님의 강연회를 듣고서, 뭔가 생각한 게 있었다. 청산리 전투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사람은 김좌진 장군인데, 사실 그 때 김좌진 장군 말고도 기억해야할 분이 있다고 했는데, 이름을 까먹었다. 어쨌든, 남한과 북한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영웅화 시켰다는 말씀이었다. 즉, 균형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였다. 김구에 대한 평가도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한 것 같다. 뭐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지껄인 이야기이고, 진짜 아무것도 모르면서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래 빈수레가 요란하다고들 하니까.
 
 그리고 당시 임시정부는 분열하고 있었고, 과도한 보상욕구와 인정욕구에 굶주렸다고 한다. 결국 민족을 위해 했던 일이라고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순수하게 민족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던가보다. 아마 영웅이 되고 싶었던 마음도 컸을 것이다.
 
136쪽 이타적 삶을 산 사람들의 과도한 보상욕구가 문제였을까? 보상욕구 자체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나, 그런 전통은 훗날까지도 계속되어 민중으로 하여금 엘리트의 이타적인 행동을 정략적인 '장기 투자' 로 보게끔 만드는 가공할 효과를 낳게 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책 읽은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예전에 조금 메모한 것을 바탕으로 쓴 글인데, 뭔가 당시에는 재밌게, 애써 읽었었는데, 기억력이 좋지 않아 지금 머리에 남은 게 많지 않다는 것이 슬프다.
 
18~19쪽 진정한 '낙관과 긍정'을 위해선 우리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회복이 필요하다. 그래야 과거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다. 그래야 오늘이 규명되고 더 나은 내일이 열린다. 어떤 역사적 조건의 산물 또는 역사의 상흔은 우리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의식구조로까지 자리잡아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역사 탐구의 장점은 현재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의 기원을 캠으로써 그것이 어떠한 역사적 조건의 산물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게끔 해준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1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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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