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8. 10:33



 내가 처음에 시장 참여자가 되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주식이 오르고 있는지 떨어지고 있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다. 나도 주식투자라는 것을. 계좌를 만들고 수중에 있는 몇만원을 갖고 투자를 해봤다. 그리고 까맞게 잊고 있었다. 오랜시간이 지나고 다시 투자를 해보려고 했는데, 당최 비밀번호가 생각이 안났다. 5회 이상 틀려서, 은행에 가서 다시 새로운 비밀번호를 설정했다. 이러고 보니 나도 어느새 주식투자를 시작한지가 햇수로 4년차이다. 에헴. 중간에 공백기가 많이 길긴 했지만.

 

 음. 시골의사라는 필명을 가진 의사 박경철. 그는 의사라는 직업보다는 성공한 주식투자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TV 출연으로 익히 알려져 있고, 작년에는 민주당 공천심사도 했었다. 여러 책의 저자이기도 하고, 어떤게 진짜 직업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도 주식시장에서 개미로 일컬어 진다. 정말 개미중에서도 아마 가장 미미한 개미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 책에서는 대부분의 개미가 주식시장에 뛰어들 때는 시장이 뜨겝게 달아오를 때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개미가 주식투자에서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처음 투자할 때는 장이 좋기 때문에 어떤 종목을 사더라도 거의 수익이 난다. 하지만 머지 않아 결정적인 순간에 이익을 초과하는 손실을 입게 된다. 파울로 코엘료가 말한 초심자의 행운이 가혹한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개미들은 구조적으로 주가의 바닥에서 매수해 고점에서 매도하는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것은 기관과 외국인이 평균주가의 아랫쪽을 형성하고, 위쪽에는 일반 개인의 자금의 비중이 높다고 한다. 이는 개인 투자자가 시장에 진입하는 시기로 인해 실패한다는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셋째로 개인의 투자금액이 작기 때문에 큰 수익을 바라면서 레버리지가 크고 변동성이 높은 종목을 고르게 되지만, 투자금액이 큰 사람은 다양한 투자수단을 동원하고, 안정적이고 우량한 종목을 고르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골의사는 개인 투자자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자의 마음으로 시장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음. 그러면 주식투자는 어떤 돈으로 해야할까? 여유자금으로 투자를 한다고 하지만, 정말 없어도 되는돈, 특히 있으면 짜증나 죽겠다는 정도의 돈을 갖고 투자를 해서 딱 한번 몰빵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승률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한다. 나에게 있으면 짜증나 죽겠다는 정도의 돈이 언제쯤 생길지.

 

 신문의 광고에서 이 책에 대한 평을 인용한 것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서 다른 사람이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지만, 뭐 상관 없다. 이 책을 읽은 사람도 며칠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

 

 이 책을 읽고서 가장 얻은 큰 것은, 시장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이다. 시장을 예측하려 들었다가는 큰 손실을 입고 만다. 그저 겸허히 시장에 순응해야 한다. 예전에 거래의 신 혼마라는 책에서 시장을 하나의 생명체으로 여겼던 게 생각이 난다. 시장은 항상 움직이지만, 시장을 바라보는 눈은 항상 그대로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기준으로 시장을 오판하게 되고, 결국 큰 손실을 입는다. 우리도 시장이 움직이면서 같이 유연하게 변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성공을 가져다준 하나의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고, 같은 방식으로 투자를 하면 결국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을 이중잣대로 판단해서는 안다. 시장이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 모두 같은 기준으로 판단해야한다.

 

그리고 작년 한 해의 대폭락을 지내면서, 이 책을 일찍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특히 대중심리에 관한 부분과, 공포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는 완전 대공감을 했다. 2007년의 대상승으로 광란에 도취되었을 때,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은 2008년 대폭락으로 도취의 잔을 빼앗기고 말았다. 정말 어느 누구도 의심이 없었다. 주식시장이 하락하지 않을거라는. 그 때 부터 주식시장은 폭락했었고, 2008년 더는 주식시장이 오르리라는 희망이 없을 때, 그 때 부터 반등을 시작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 때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은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 통찰편이다. 여기에서 통찰이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들, 혹은 보이는 현상들을 놓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것 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나도 시골의사 박경철님의 통찰을 갖고 싶다. 그의 통찰을 읽음으로써 얻게되는 통찰도 좋지만.

 

23쪽 사람들은 주식시장에서 평균을 넘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 꿈꾼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바둑을 열심히 배운다고 해서 누구나 이창호나 조훈현 같은 최강의 고수가 되는 건 아님을 알고 있다. 아침마다 조깅을 하고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한다고해서 황영조나 이봉주가 될 수 없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주식시장의 아이러니다.
 
53쪽 노동이 없는 투자는 기본적으로 도박이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놀고먹는 것, 거저먹는 것은 전부 도박이다. 우리가 우아한 말과 철학으로 포장하는 재테크는 일을 덜하면서 더 잘먹고 잘살자는 것이 목표다. 이것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말에 긍정을 하든 부정을 하든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투기꾼들이다.
 
108쪽 출구가 보이지 않는 뒤편의 사람들은 한시라도 더 빨리 출구에 도착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정작 그들의 뒤를 쫓는 불길은 없다. 다만 그들의 망상 속에서만 뜨거운 불길이 뒤쫓고 있을 뿐이다. 그러 대중의 강화된 심리는 극명하게 반대로 뒤집히고, 흥분은 공포로 광기는 절망으로 변한다. 무너지는 주가가 폭포처럼 떨어지는 이유다.
 
109쪽 결국 우리가 시장에서 판단해야 할 것은, 대중의 광기가 과연 얼마나 치명적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그 위력이 얼마나 큱에 따라 다음을 대비해야 한다. 주가가 이유 있는 확신을 근거로 일시적 고평가에 이른 것이라면 조정은 기회다. 그러나 모두가 "코스닥 주세요." "중국펀드 주세요." 하고 있는 상황은 그 다음에 올 조정이 비정상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115쪽 현명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대중으로부터 한발 물러나서 그것을 대중심리라고 규정했다 하더라도, 그는 예상보다 장기간 대중으로부터 소외되어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렇게 힘든 혼자만의 번민에 빠져 있다보면 결국 지쳐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이번에는 다르다."는 논리의 함정에 매몰된다.
 이것이 대중의 광기가 무서운 진짜 이유다. 대중의 광기는 타이머가 달린 기폭장치가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확하게 폭발하는 시한폭탄처럼 그 끝이 보인다면 아무도 그곳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대중의 광란을 담은 폭탄은 시간이 지나 경계심이 흐트러지고, 많은 사람들이 불발탄이라고 확신할 때 갑자기 폭발한다. 어떤 방비나 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일거에 휩쓸어버리는 것이다.
 광기의 끝은 시계로 계측할 수 없다. 어부가 바람의 냄새를 맡고 폭풍우를 예측하듯 대중의 광란을 포착하려면 예민한 감각을 소유하는 길밖에 없다. 현명한 투자자는 광란을 기피하지만 영민흔 투자자는 그것을 이용한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고 믿는 자신감이 때로는 함정에 빠뜨리기도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118쪽 소문의 실체를 덩어리만 보지 말고 양파껍질처럼 까 들어가며 하나하나 해체해보면 대중의 터무니없는 확신은 그 실체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119쪽 당신이 초과수익에 관심이 있고 성장이 주는 유혹으로부터 멀어질 수 없다면, 또 그로 인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위험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면, 대중의 광란에 주목하라. 하지만 대중의 광란이 갖는 특성을 잘 이해하고 주변에 회의론자가 사라지고, 마지막에 남은 당신의 이성마저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려 들 때, 과감하게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치며 흥분에서 깨어나 그곳을 빠져나오라. 광기는 악마의 술잔이다. 그것을 가까이하다보면 당신도 어느새 도취되어 악마가 내미는 술잔을 거침없이 받아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
 
130쪽 최소한 내일의 주가를 알 수 있는 확률은 신이 아닌 이상 50%에서 ±1%의 차이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만이 주식투자를 해도 된다는 면허증을 가진 셈이다. 최소한 이 말을 이해해야 주식시장의 계좌를 트고 거래버튼을 누를 수 있는 것이다. 시장은 그만큼 무서운 존재다.

 

 327쪽 항상 어떤 사안이 최악의 지점에 이르면 투자자들은 더욱 절망하며 그 순간 나아보이는 수단을 찾아 떠나지만, 투자자가 찾아내는 새로운 엘도라도는 늘 새로운 파국의 시작점이다.
 그래서 그것은 농산물이든 금융위기든 전쟁이든 간에 인간사회가 만들어나가는 사회는 늘 해결점이 있다고 믿는 것이 현명하다. 만약 그러한 해결국면이 없이 극적인 문제를 싣고 있는 열차가 서로 충돌한다면 시장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생존 자체를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인류의 진화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심각하고 극적인 문제를 만났을 때 무조건 비관에 빠지지 말고 인류의 진화라는 바탕 위에서 낙관적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것이다.

 

 388쪽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항상 어떤 지점인지를 돌아보고 그에 답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안목과 판단이 없는 사람은 아직 투자자로서 자질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 통찰 편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박경철 (리더스북,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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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4. 17. 15:17
해태 타이거즈, 아~그 무시무시했던 이름이여!


[화제의 책]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빙그레 팬에게 해태란


1987년. 오로지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기 위해 가전기기까지 모조리 삼성제품으로 도배한 집안에서 유년기를 보낸 빙그레 이글스의 어린이 회원이었다. 반 아이들이 파란색 삼성 잠바를 입고, 포항 아톰즈 마크가 새겨진 축구공을 갖고 다닐 때 홀로 검정색에 주황색 독수리 마크가 아로새겨진 빙그레 잠바를 입고 학교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2년 후 가을, 빙그레의 어린이 회원은 " 꼴찌 응원해서 좋겠다 " 던 반 아이들을 실컷 약 올려준 후, 웃음을 빙그레 머금은 채 검정색에 주황색 독수리 마크가 아로새겨진 잠바를 입고, 마치 신성한 행사라도 치르듯 '우리집 라면'을 끓여 먹은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꽃게랑'을 손에 쥐고, 삼성전자에서 생산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정말 우승할 것'만 같았다. 마치 '진짜 타격의 신의 모습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듯 이강돈은 1회말, 다른 누구도 아닌 선동열의 공을 받아쳐 담장 한가운데를 넘겨버렸다. 그 무시무시하고 징글징글하고 너무나 너무나 짜증스러웠던 해태를, 이번에는 정말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어진 네 경기에서 빙그레는 내리 졌다. 도대체 이 놈의 해태라는 팀에는 무슨 천사라도 들러붙은 건지, 선동열을 넘어서도 문희수가 있었고, 김정수가 있었고, 김성한이 있었고, 장채근이 있었고, 한대화도 있었고, 이순철도 있었다. 팀 창단 후 92년까지 무려 네 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빙그레는, 그때마다 번번이 해태를 만나(92년은 롯데 자이언츠) 맥없이 패했다. 이건 정말이지, 호랑이와 독수리의 싸움이라기보다는 고양이와 병아리의 먹이사슬 관계였다.

▲선동열은, 정말 차원이 다른 선수였다. ⓒ선동열 팬사이트 선동열닷컴


해태를 본격적으로 증오하게 된 계기는 91년 한국시리즈였다. '시속 145㎞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투수(아마도 87년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 팬북에 이렇게 설명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송진우의,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한국시리즈 퍼펙트 기록달성이 해태 때문에 깨졌다. 빙그레는 역시나 맥없이 패했고 당연히 한국시리즈 우승은 해태의 차지였다.


그저 신생팀이라는 이유만으로 빙그레를 응원했던 마음 여린 초등학생에게 당시 해태란 '왜 인간은 타인을 증오하게 되는가'라는 따위의 철학적 고민을 안겨줬던 선동열을 보유한 팀이었고, '어떤 거짓말을 해야 떡볶이 사먹을 돈을 받아낼까'하는 따위를 고민하던 아이에게도 '프로야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력 평준화가 필수적'이라는, 가히 하일성 뺨칠 정도의 문제의식을 안겨줬던 팀이었다(아마도 80~90년대 빙그레 이글스와 마찬가지로 해태 앞에서는 호랑이 앞의 고양이었던 삼성 라이온즈나 꼴찌를 도맡았던 인천 야구 팬들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91년 한국시리즈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야구경기를 볼 힘을 잃어버린 초등학생은 검정색에 주황색 독수리 마크가 아로새겨진 잠바를 벗고 고향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스틸야드로 달려가 검정색에 붉은색 줄무늬가 수놓인 유니폼을 입고 뛰는 이기근과 나승화를 응원했다. 롯데와 OB의 한국시리즈가 열린 95년, 옛날 검정색에 주황색 독수리 마크가 아로새겨진 잠바를 입었던 까까머리 고등학생은 스틸야드에서 황선홍과 라데가 선보이는 환상적인 경기에 열광하고 있었다.


8~90년대 당시 해태란, 야구를 좋아하던 초등학생을 축구장으로 돌려보낼 정도의 위력을 가진 팀이었다. 해태와 포스트시즌에서 맞붙는 팀의 팬에게는 축제를 고통의 나날로 가득 채워준 증오의 대상이었다.


해태 타이거즈란

▲ <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 김은식 지음(이상미디어). ⓒ프레시안


<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 은 아마도 해태를 마주한 빙그레 팬의 한숨 정도는 안드로메다 너머로 날려버릴 정도로 한을 쌓아왔음이 틀림없는, 삼미-청보-태평양으로 이어지는 인천 야구 팬이 쓴 책이다. 저자 김은식은 CBS 라디오 < 파워스포츠 > 에서 80~90년대 한국 프로야구 스타들을 재조명한 '야구의 추억'을 방송했고, 인터넷 포털에 같은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묶어 역시 같은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제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언급돼 있지만 그는 군사독재에서 민주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대로 이어지는 20세기말 질곡의 한국사를 설명하는 하나의 코드에 불과하다. 어디까지나 책의 중심은 과거 한국프로야구 최강의 팀이었던, 보다 정확하게는 책에 나온 설명대로 '최강자였지만 약자의 방식으로 싸웠고 승자였지만 패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팀' 해태 타이거즈다.


97년까지 해태의 홈 유니폼이었던 그 촌스러운 붉은색 상의-검정색 하의 콤비는 제대로 된 팀 구성원도 채우지 못하고 출범했음에도(82년 출범당시 해태 타이거즈 선수는 14명에 불과해 김성한이 선발투수로도 뛰어야 했다. 그는 프로야구 첫 시즌 10승을 거뒀다) 강자들을 차례로 거꾸러뜨린 악바리 야구의 상징이었다.


책의 설명을 빌리자면 아마도 세계 정치사를 통틀어도 그만큼 애절하고 처연한 별명이 없을 '인동초' 김대중과 마찬가지로, 해태의 촌스러운 유니폼은 80~90년대 영남 정권 하에 이어진 온 국민적 '왕따'에 숨죽이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나가야만 했던 호남 사람들의 설움과 한의 상징이었다. 해태의, 정말 노골적으로 새빨갛던 상의와 칙칙한 검정색 하의로 이뤄진 유니폼은 96년 당시 정부적 차원에서 부르짖던 '선진사회'와는 담을 쌓았으나, 그러면서도 기아에 허덕이던 빈국을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주역이었던 가난한 노동자들이 흘린 땀의 상징이었다.


책은 이처럼 '최강이면서도 약자들의 팀이었던' 역설적 팀 해태 타이거즈를 핵심 키워드로, 또 해태와 함께 광주의 눈물을 상징하던 김대중을 부수적 키워드로 삼아 민주화와 군부독재, 경제 선진화와 외환위기라는 모순된 시공간으로 존재했던 8~90년대 한국사회를 차근차근 넘어간다. 따라서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최강팀 해태가 승리한 날 경기장에 너무도 구슬프게 울려퍼지던 < 목포의 눈물 > 이 해태의 응원가가 될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해태는 농촌의 부모가 소 팔아 키운 돈으로 공부한 시골학생이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는 게 가능했던, '민주택시운전기사'들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초들이 민주화의 열망을 가졌고 실제 이를 이뤄낼 수 있었던 시절을 상징하는 팀이었던 셈이다. 해태는 그 모순된 시절의 시대정신이었다.


검정색에 주황색 독수리 마크가 아로새겨진 잠바를 입고 다니던 초등학생이 목놓아 응원했음에도 당시 시대정신을 품지 못한 빙그레가 해태를 넘어설 수 없었음은 따라서 당연했다. 고양이와 병아리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직접 흘린 피로 민주화를 이뤄낸 대한민국 서민과 독재정권의 싸움이랄 정도로 승부가 빤했기 때문이다.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 이선희 등 그 시절에도 최고 스타를 보유했던 삼성이나 '왕년에 미국을 주름잡았다던' 박철순을 거느렸던 OB, 일본야구를 평정했다던 백인천을 가졌던 MBC마저 해태를 넘어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오고 해태는 가고


그랬던 해태의 영광의 시절은 97년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공교롭게도 98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외환통장이 이미 바닥난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차관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됐다.


서민 신화의 끝이요,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 징글맞던 해태 야구가 더 이상은 먹히지 않는 시대가 열렸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공교롭게도 프로야구 8개 구단 중 가장 먼저 쓰러진 두 구단이 바로 호남을 연고지역으로 삼았던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였다.


모기업이 부도나면서 해태는 쌍방울과 마찬가지로 주축선수를 모조리 타구단에 팔아넘기는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 김응용 감독의 말처럼 " 동열이도 가고 종범이도 갔다 " . 처음부터 돈 먹는 하마로 출발했던 한국프로야구 시스템에서 열악한 재정 상태에 놓인 해태의 근성은 더 이상 발휘되지 못했다.


정말 역설적이게도 호남의 상징 김대중이 위기 극복의 기법으로 퍼뜨린 신자유주의 세례를 호남 서민들은 버텨내지 못했다. 아니, 한국의 어떤 서민도 견뎌내지 못했다. 그렇게 '악으로 깡으로' 싸우던 서민의 시대가 저물면서 해태는 사라졌고, 뒤를 이은 기아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해버렸다.


호랑이가 사라진 왕좌는 외환위기를 견뎌낸 다른 공룡들의 차지였다. 선진야구 시스템이라던 자유계약선수제도(FA)가 도입되면서 돈다발을 가진 팀이 곧 승리를 독식하는 시대가 됐다. 빙그레 못지않게 해태 앞에서는 비운의 팀이었던 삼성은 돈으로 스타들을 쓸어담으며 21세기 초 최강팀이 됐다. 역시나 역설적이게도 삼성의 전성기는 옛 해태 전성기 주축을 이뤘던 김응용, 선동열, 한대화, 조계현, 임창용 등이 열었다.


심지어 마치 고양이 앞의 병아리만 같았던 빙그레마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한화의 이름으로). 그러나 기아는 외환위기 사태 이후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다. 그 새빨갛던 홈 유니폼이 원정 유니폼으로 바뀐 것만큼이나 극적이었다.


그 옛날 검정색 바탕에 주황색 독수리 마크가 아로새겨진 잠바를 입고 다니던 초등학생은 외환위기 직후 대학생이 됐다. 무시무시함의 상징이었던 그 새빨간 유니폼을 마치 한 때는 지구를 호령했으나 이제는 화석으로 변한 공룡의 뼈를 보듯 가볍게 넘길 정도로 기억이 희미해진 대학생은 성인식을 치르며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했다. 어느새 놀라우리만치 세련된 경기장, 호쾌한 플레이가 넘실대는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 메이저리그의 팬이 된 채로.


퇴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다 읽은 후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켰다. 한 스포츠 케이블 방송에서 기아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중계됐다. 마치 텍사스 레인저스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모자를 눌러쓴 채, 새빨간 원정 유니폼을 입은 서재응이 호투했으나 결국 기아는 패했다. 끝내기 안타를 친 강민호가 클로즈업된 뒤로 덕아웃에서 고개 숙인 기아 선수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최강이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가장 약한 자들의 영웅을 추억하게 된 것이. 그 무시무시했던 해태를 다시 떠올린 것이.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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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꼭 본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4. 6. 00:09


 이 책을 덮고나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책에는 없을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의 결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때 할 일이 없었을 때 네이버의 기사를 섭렵(?)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으니, 프랑스의 한 철학자가 불치의 병에 걸린 자신의 부인과 동반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쇼킹한 뉴스여서, 잠시동안 생각을 했었더랬다.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음. 나 솔직히 이 사람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어떻게 알게되었냐면, 예전에 매일경제 신문에서의 신간소개 코너에서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읽고 싶어서, 책 보관함에 계속 넣어놨다. 오래 묵은 책들을 찾아보니, 마침 이 책이 보였다. 그리고 머지 않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음. 이 사람 철학자라는데, 내가 아는 게 없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앙드레 고르와 그의 아내 도린은 영화같은 첫 만남을 가졌다. 도린을 보고 첫눈에 반한 고르는 그녀에게 춤을 청한다. 그녀의 대답은 "와이 낫!" 이었다. 그렇게 둘의 첫만남이 시작되었고 그들의 사랑도 시작되었다.
 
12쪽 쾌락이라는건 상대에게서 가져오거나 상대에게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 덕에 알았습니다. 쾌락은 자신을 내어주면서 또 상대가 자신을 내어주게 만드는 것이더군요.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었습니다.
 
21쪽 우리는 둘 다 불안과 갈등의 자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보호해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서로가 서로에게 힘입어, 이 세상에서 있을 자리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애초부터 우리에겐 없던 자리를 말입니다.
 
30쪽 만약 내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면, 나는 결코 세상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입 밖에 낼 줄 몰랐던 말들을 나는 찾아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함께했으면 한다는 마음을 당신에게 전할 수 있는 말들을.
 
 고르와 도린의 사랑은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 사랑이 아닌, 서로를 채워주는,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했다. 즉,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나'인 서로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랑 말이다.
 
 둘의 관계는 둘 만의 사적인 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공적인 즉, 고르의 일에서도 함께 했었다. 도린은 고르가 글을 쓰는데, 조언도 해주었고, 독려도 해주었다. 때로는 고르가 미처 깨우치지 못한 것들도 알려주기도 한다.
 
52~53쪽 나는 내 생각을 구조화하기 위해 이론이 필요했고, 구조화되지 않은 생각은 항상 경험주의와 무의미 속에 빠져버릴 위험이 있다고 당신에게 반박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대답했지요. 이론이란 언제든 현실의 생동하는 복잡성을 인식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53쪽 직관도 감동도 없다면 지성도 없고 의미도 없음을 당신은 인지과학을 공부하지 않고도 알았던 것입니다. 당신의 판단은 전달될 수는 있지만 증명해 보일 수는 없는, 그러나 당신이 몸소 겪어 얻은 확신의 토대 위에 서 있었습니다. 이런 판단의 권위 - 그것을 '윤리'라고 합시다 - 는 논쟁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생기는 것입니다. 반면 이론적 판단의 권위는 논쟁으로 설득시키지 못하면 무너지고 맙니다.
 
72쪽 당신은 내게 삶의 풍부함을 알게 해주었고, 나는 당신을 통해 삶을 사랑했습니다. 아니, 삶을 통해 당신을 사랑한 건지도 모르겠군요.
 
 아름다운 고르와 도린의 사랑이 항상 평화로운 것은 아니었다. 잘못된 치료로 거미막염이라는 병에 걸리게 된다. 사실 거미막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책에서 잠깐 잠깐 고통스러워 하는 도린의 모습을 볼 때,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병이라고 짐작을 할 수 있었다.
 
79쪽 우리 둘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고 믿고 싶었는데, 당신만 혼자 그런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고르와 도린은 이를 계기로 생태주의와 기술비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75~76쪽 즉 산업의 팽창은 사회를 거대한 기계로 바꾸어놓는데, 그 기계는 인간을 해방하기는커녕 인간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공간을 제한하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적과 그 추구 방식을 결정해버린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거대한 기계의 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을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온갖 서비스가 동시에 전문화함에 따라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책임지고, 자기 요구를 스스로 결정하고 충족시키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직업들'에 종속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읽고 심하게 공감을 했었다. 무엇이 본질인지 한번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책의 후반부이다. 후반부를 읽을 때에는 뭔가 동반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문장들이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89~90쪽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실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왜 그는 그리고 그녀는 동반자살을 선택했을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랑을 해보지 않아서 인가보다.
 
87쪽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본질인 단 하나의 일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썼지요. 당신이 본질이니 그 본질이 없으면 나머지는 당신이 있기에 중요해 보였던 것들마저도, 모두 의미와 중요성을 잃어버립니다.
 
 서로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 앙드레 고르는 도린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큰 상실감, 즉 삶의 본질의 상실감을 느끼고서, 결국 삶을 마감했으리라고.
 
 이 책의 뒷 표지에, 김훈작가가, 짧은 서평을 쓴게 있는데, 마지막 줄에 아, 나는 언제 이런 사랑 한번 해보나. 읽고서, 나도 똑같이 마음속으로 따라해봤다.
 
 음. 두 번 읽었다. 처음에는 지하철에서 통학하면서 읽었었고, 두 번째는 혼자 영화를 보러 갔었는데, 시간이 남아, 영화를 기다리며, 이 책을 읽었었다. 처음 읽을 때는 사실, 그냥 텍스트만 읽고 간 느낌이었는데, 두 번째 읽을 때는 뭔가 가슴에 더 와닿는 느낌이었다. 먹먹했고, 가슴 한 켠이, 살짝 아렸다.

D에게 보낸 편지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앙드레 고르 (학고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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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3. 29. 09:53


 작년 말이었다. KBS에서 방송 했던 TV 책을 말하다에 이 책이 소개되었다. 패널이 음. 누구였더라. 우석훈 교수님하고, 음 시골의사 박경철도 아마 출연 했을 것이다. 두 분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그 방송에 대한 기억은 많이 나질 않지만, 이 책에 대한 임팩트는 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샀고, 책을 산지 약 2달이 지난 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일단 지방의 사전적 의미는 서울 이외의 지역이다. 방송 중에 기억나는 한가지는 우석훈 교수님이 지방이라는 단어에도 서울 중심적인 사고가 물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참, 그리고 한가지 더 생각 나는 게 있는데, 시골의사 박경철님은 아마도 강준만 교수님이기에 이런 책을 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음. 강준만 교수님은, 예전에 한참 월간지 인물과 사상을 읽을 때 처음 접했다. 그 때 교수님의 글이 기억에 오래 남았었는데, 음. 누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식민지가 뜻하는 것은 지방이 서울(수도권)에 정치,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내부식민지론으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부식민지를 고착화 시키는 주범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교육인 것 같다. 예부터 '말은 나면 제주도로, 사람은 나면 서울로'라는 말이 있었다. 아마 옛부터 모든 것의 중심이 서울로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 것같다. 서울로의 집중. 물론 긍정적인 외부효과도 있지만, 아마 부정적인 외부효과가 더 큰 것 같다. 나 또한 내부식민지를 고착화 시키는데, 일조하는 것 같아서 할말은 없지만서도, 서울로 유학을 온 지방학생들이 서울에서 사용하는 돈을 따져보면 -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돈이 지방에서 쓰이지 않고 - 어마어마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서울에 소재하는 대학교에 학생들이 집중하는가? 그것은 단순하다. 단지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서울의 많은 학교들이 서울에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짐에도 많은 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학교들을 지방으로 옮긴다면, 과연 지금의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을까?'하고 묻는다. 아마 답은 뻔할 것이다. 53쪽의 "지방의 여러 지역에선 아직도 지역의 우수인재를 서울로 보내는 걸 '지역발전전략' 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걸 내부식민지 근성에 찌든 추태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라는 구절을 읽을 때는, 왠지 뜨끔했다. 뭐 나는 고향에서의 '지역발전전략' 정책의 수혜를 입은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음. 지금 수혜를 입고 있다. 서울유학생을 위한 기숙사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감사히 잘 지내고 있지만, 이것을 내부식민지 근성에 찌든 추태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정말 궁금하기는 하다. 그래서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과연 여러 방법으로 혜택을 받은 학생들이 너무너무 고마워서 과연 나중에 고향에 뭔가 기여를 해야한다고 생각할까? 이건 조금 아닌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니. 나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주위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95쪽에 소개된 한 예는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남겨준다. 도쿄대학 법학부, 교토대학 법학부의 학생 2명이 중앙관청이나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고 지역발전을 위해 고향에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이런 결심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교육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중 한 예가 방송, 신문이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잡담을 하면, "지방방송 꺼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지방방송을 왜 꺼야 하는가. 지방방송을 꺼서인지, 지방사람들은 지방의 소식들 보다는 서울의 소식에 더 빠삭하다. 이는 방송 뿐만 아니다. 신문도 마찬가지인데, 중앙지인 조중동의 점유율이 지방에서 지방지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중앙지에서는 지방에 대한 기사를 단지 한면에 걸쳐 싣는게 전부인데. 덕분에 지방지는 고사위기에 처해졌다고 한다.
 
 음. 그리고 예전에 블랙 스완을 읽을 때 접했던 프랙털 이론을 여기서 한번 더 만났다. 수학자 만델브로가 고안한 개념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프랙털 이론이 어떻게 쓰였냐 하면, 서울-지방의 관계가, 지방에서도 똑같이 예를 들어 부산-경남, 광주-전남의 관계와 비슷핟고 한다. 사이가 좋고 나쁨을 떠나, 서울에 많은 것들이 집중되듯이, 지방의 대도시도 또한 집중이 되고, 더 깊게 들어가면 읍-면의 관계도 비슷한 것같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너무 외부적인 측면에 대해서 썼는데, 사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외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부적 문제이다. 너무 외부적으로만 접근하면 피해의식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내부적인 문제도 많다. 지방에서의 이권 다툼, 지방 행정의 후진성, 그리고 지방민의 무관심, 지방의 교수들의 무책임함. 등등 내부적으로도 개선해야할 문제점들이 많다.
 
 이 책에서 지방의 발전을 주장하는 것을 넓혀보면, 성장과 분배로도 설명할 수 있다. 지방은 분배를 요구하고 있고, 서울은 성장을 지향하고 있다. 이건 필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가치가 어떤 것에 더 큰 비중을 두는지에 따라 방향이 설정되는지, 적어도 지금까지는 서울의 성장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이러다가 전 국토가 수도권이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344쪽 지방이 지방주의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울이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발상을 포기한 만큼 그 걱정도 지방이 해야 한다. 수도권의 고민도 헤어려가면서 좀더 정교한 대안을 제시하고 추진해 나가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을 지방이 책임지자."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뭔가 저자의 결연한 주장인 것 같다.
 
20쪽 지금 지방의 요구는 무조건 수도권에 있던 것을 빼내서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라는 게 아니다. 전체 파이를 키우지 못하면서 나눠 먹기만 하자는 것도 아니다. 중앙의 기만적인 정책, 그리고 새로 투자 · 투입되는 돈과 인허가권이 수도권 위주로 돌아가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44쪽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의 근본 문제는 헌법이나 제도에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줄세우기와 줄서기 관행에 있다. 이런 관행은 이성과 양심을 가진 자율적 개인을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며, 내부 비판과 이견을 압살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총명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인 집단일지라도 스스로 망할 때까지 아무런 자구책을 내놓지 못한다. 이게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줄 공화국' 의 부끄러운 얼굴이다.
 
69쪽 규제를 푸는 건 수도권엔 '현금' 이다. 일도 매우 간단하다. 규제를 푸는 것만으로 모든 게 완성된다. 반면 국가의 지원을 지방에 집중하겠다는 건 지방엔 '어음' 이다. 그것도 만기일이 멀리 남은 5년짜리 어음이다. 안전장치도 없다. 법적으로 강제할 수도 없는 신뢰뿐이다.
 
135쪽 우리는 공공 영역의 사유화에 대해 많은 비판을 쏟아내곤 있지만 작심하고 그걸 본격적인 이슈로 삼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아니, 고양이 목에 방울 매달 사람이 없다고 보는 게 옳겠다. 사유화를 근절할 순 없을망정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공공 영역이 전리품으로 탕진되는 걸 막는 것 이상 큰 개혁이 어디에 있겠는가.
 
139쪽 사회개혁을 위한 비판에서도 '역지사지' 는 꼭 필요하다. 실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국민도 '직업으로서의 정치' 에 대한 역지사지를 해줘야 한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지만 정치인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에겐 생계수단이기도 하다. 그걸 인정하는 현실적 기반 위에 서야 정치를 바판하더라도 힘이 실리고 응징도 제대로 할 수 있다.
 
152쪽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한 마당이 펼쳐졌을 때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최근의 촛불집회처람 말이다. 그런 기회는 자주 오지도 않지만, 그건 좀 무책임한 생각이다. 내가 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거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일에 참여를 해주면 그 일이 그럴듯해지고, 참여자가 늘면 세상을 진짜로 바꾸게 된다. 우리는 왜 이런 간단한 이치를 외면하는 걸까?
 
238쪽 아는 만큼 보일 뿐만 아니라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지역문화에 대해 별로 좋은 줄 몰랐던 것도 알게 되면 몹시 좋아하게 된다. 지역문화를 모를 뿐만 아니라 무관심한 수용자들을 상대로 그 무지와 무관심을 그대로 둔 채 아무리 콘텐츠 경쟁력을 역설해봐야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293쪽 한국은 세계에서 교육열이 가장 뜨거운 나라다. 긍지를 느끼고 자랑할 만 하다. 그러나 그 그림자가 있으니, 그게 바로 학력 · 학벌 숭배주의다. 자신만 숭배하고 끝나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자신의 숭배심을 근거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게 문제다.

지방은 식민지다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강준만 (개마고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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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3. 14. 15:59

 

 사실 회계에 대한 지식은 몇 년 전에 회계 기초 강의를 들었던 터라 일반인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이 책 읽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음. 그 강의를 들은지도 4년이 다 되었고 해서, 이 책을 읽는데, 그 때의 지식은 겨우 희미하게 떠오르는 정도였다. 그것이라도 떠올렸다는게 다행이었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고 아예 무(無)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수월하게 쓰려고 노력한 것 같았다. 일본 자기계발서 특유의 세심함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은 최근에 읽은 1日 30分에서도 느꼈었는데, 일본 자기계발서의 전반적인 특징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일본 기업의 사례들로만 채워졌기 때문에 약간은 흥미를 잃었다. 뭐 그래도 한국이나 일본의 회계기준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아니 같나? 음 잘 모르겠다.)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기업의 사례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재무제표를 분석하는데 3가지의 눈이 필요했다. 애널리스트의 눈으로 전체의 이미지를 파악하고, 회계사의 눈으로 재무제표를 완벽하게 해석하며, 투자자의 눈으로 판단하라고 전하고 있다. 3개의 눈의 목적이 다르니까, 당연히 재무제표를 바라보는데도, 각각 중요시 하는 것도 달랐다. 이 3 가지의 눈 중에 투자를 결정하는 눈은 투자자의 눈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았다. 3가지 눈을 사용할 때에, 어쩌면 가장 노력을 하지 않고 사용하는 눈이 투자자의 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뭐 눈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분석 - 크게는 생각 - 도 하지 않고, 클릭 한 번이면 바로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관이 가장 개입될 여지가 투자를 할 때에 가장 크다. 감사법인의 자료, 애널리스트의 리포트는 구하기가 어려운 일은 아닐텐데, 이런 자료는 나의 눈을 통해서 본게 아니라, 조작된 눈, 혹은 오류의 눈이 될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재무제표를 보고, 분석할 줄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음.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던 기업 회계 담당자나 CEO는 조금 뜨끔뜨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구체적인지 아닌지를 내가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많이 발생하는, 그리고 경영진 등이 유혹이 빠지기 쉬운 회계 조작 테크닉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눈뜬 장님이 되는 게 정말 쉬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되었다. 초보자들은 눈 멀쩡히 뜨고서 속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회계 자료를 봐도 잘 모르고, 게을러서 막상 보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타입인데, 조금이라도 차근차근 노력해가야겠다. 결국 이 책을 읽고 느끼게 된 것은 "공부하고서 투자를 하자" 이다.

 

5쪽 투자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하는 성실한 기업에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자금을 투입하여 수익을 얻으려는 행위다.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투자한 돈은 수익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손실을 가져오기도 한다. 자본주의는 원래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189쪽 덧붙여 말하면 회계는 경영자의 판단에 의해 회계방침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유일의 올바른 이익'이라는 것이 없다. 따라서 지금부터 사례로 언급할 회계조작을 하는 기업들도 분식이라기 보다는 합법적인 이익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익이 회계조작에서 비롯된 것인지, 또는 이익을 은폐한 것은 아닌지를 판단함으로써 이익의 질을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자신의 자산을 지키기 위한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220쪽 주가를 높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익을 제대로 내고 있다는 것을 어필해야 한다. 즉,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기업에서는 이익을 부풀리려는 동기가 작용하는 것이다.

 

263~264쪽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확률' 이나 '가능성' 에 대한 판단의 질을 향상시켜 가는 일이다. 장래를 100% 예측할 수는 없지만, 더 가능성이 높은 결과를 파악해 전체적인 판단의 정확도를 갈고 닦는 일이라면 가능하다.

 

281쪽 시장이 아직 파악하지 못한 회계의 질을 꿰뚫으면 투자실력이 향상된다.

투자프로의 재무제표 분석법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카츠마 카즈요 (지상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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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3. 7. 17:10

 르 클레지오.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때는 2008년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 되기 시작할 때였다. 당시 고은 시인이 거론되기도 했었는데, 결국엔 르 클레지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나는 결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책은 읽지 않아야지 하는 다짐을 했었다. 그 이유는 노벨문학상이라는 훈장으로 인해 수상자의 책을 읽는 내 모습이 뭔가 시류에 따라가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래서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사라진 <TV 책을 말하다>에서 방송된 그의 책을 보고나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결국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또한 뭔가 프랑스 작가는 나와 궁합이 잘 맞았었다는 사실도 떠올리며.

 

 밤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라일라. 그녀는 물고기였다. 바로 아주 작고 하찮은 물고기 말이다.

 

197쪽  제복을 입고 수갑과 자동권총을 지니고 있는 힘센 남자들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이 아주 작고 하찮은 물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힘센 사람들 앞에서 연약한 그런 물고기였다. 처음 유괴를 당했던 때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했을 때, 그리고 남자들의 정욕앞에서. 물살을 힘겹게 가르는 그런 물고기였다.

 

 하지만 라일라라는 물고기는 평범한 물고기는 아니었다. 황금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물고기인데, 이는 귀하고 빛나는 것을 뜻한다. 황금이라는 귀한 단어와 연약한 물고기, 이 두 단어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대조적인 두 단어. 그녀의 삶은 대조적이었다. 누군가에게 깊이 사랑을 받았던가 하면 또 누군가에게는 깊은, 이유없는 미움을 받기도 했다. 또한 정처없이 흘러가던 물고기였으며, 정처없이 흘러간 곳이 바로 그녀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목표했던 곳이었기도 했다.

 

 그녀는 능동적인 삶을 살았다. 그것은 그녀가 살아있는 물고기였기 때문이다. 죽은 물고기는 떠내려간다. 하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과 함께하거나 물살을 거스르거나 능동적인 삶을 산다. 그녀는 급류에 휩쓸려 움직이기도 했고, 어떨 땐 물살을 거스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물고기처럼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했다. (물고기의 집이 따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문득 궁금해지네.) 자의로든 타의로든. 그렇게 운명지어진 것 처럼. 편안한 안식처는 그녀에게는 사치였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편안한 안식처를 거부하기도 했던 것 같다.

 

프란츠 파농이 누군지, 그의 책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다른 작가들의 글들은 가슴을 찌르는 것이 없었고,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프란츠 파농의 책은 그렇지 않았다. 라일라에게는. 그녀가 좋아하는 프란츠 파농의 책을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한 번 읽어볼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나오는 다른 왠지 끌리는 책들도 읽어야겠다.

 

이탈로 스베보의 제노의 양심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프란츠 하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

니체의 선과 악을 넘어서

에드워드 클라인의 히프노스와 타나토스

(참고로 절판된 책도 있고, 다른 제목으로 번역된 책도 있고, 없는 책도 있다.)

 

 빌리 할리데이와 지미 핸드릭스는 라일라가 좋아했던 가수이다.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일까 궁금하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이라서 살알짝 긴장감을 갖고 읽었는데, 뭔가 물흐르듯이 흘러가는 이야기에 다다른 결말은 마치 바다에 다다른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의 역자는 근원에의 회귀라고 했다. 뭔가 정말 멋있는 문장이다. 역자 후기를 읽고 멋있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169쪽 그것은 우리가 뭔가 진정으로 원한 적이 없고 항상 타인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117쪽 나는 급류를 거슬러올라가는 물고기처럼,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사물들 사이를 누비며 살아가고 싶었다.

 

121쪽 나는 어렸을적부터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를 그물로 잡으려 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끈끈이에 들러붙게 했다. 그들은 자신의 감상과 그들 자신의 약점으로 내게 덫을 놓았다.

 

146쪽 우리는 젊었다. 돈도 없고 미래도 없었다. 우리는 마리화나를 피웠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지붕과 붉은 하늘과 도시의 웅웅거리는 소음과 하시시와 같이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그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것이었다.

 

155쪽 "라일라야, 너는 아직 어리니까 조금씩 세상을 알아나가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도처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될테고, 멀리까지 그것들을 찾아나서게 될 거야."

 

168쪽 그 때 나는 세상이란 참으로 좁아서 실만 제대로 끌어당기면 모든 것이 끌려온다는 것, 이를테면 누구든 어떤 일에 관련되면 서로 한 동아리를 이루게 되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되며, 노노와 나같이 그들과 무관한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78쪽 내가 원하는 것은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다. 그것이 나를 두렵게 하기도 하고 매혹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나이기도 하고 내가 아니기도 하다.

 

294쪽 바닷물에 손을 담그면 물살을 거슬러올라가 어느 강의 물을 만지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막의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300쪽 라일라의 표류가 조금씩 항해로서의 의미를 키워나가면서 새로운 출발을 위한 근원에로의 회귀를 도모할 수 있기에 이르듯이, 르 클레지오 자신도 다분히 의식적인 표류와 방황을 통해 궁극적으로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 진정한 가치를 향해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 있는 글쓰기의 근원적인 상태에 도달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황금 물고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르 클레지오 (문학동네,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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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3. 2. 22:02


 연일 증시가 요동을 친다. 특히 오늘은 40포인트 이상 하락 했고, 환율도 급등 했는데, 격변하는 금융 시장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분명 한 둘이 아닐 것 같다. 어렵게 번 돈이 이렇게 쉽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 정말 분통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존 템플턴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에 대한 답이 이 책에 담긴 것 같다. 작년에 존 템플턴이라는 큰 별이 졌지만, 그의 종손녀인 로렌 템플턴이 방황하고, 손실을 내는 투자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가장 눈에 솔깃한 내용은 역발상 투자 전략이다. 마지막 한 사람이 매도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매수를 하고, 마지막 한 사람이 매수를 할 때까지 기다렸다 매도를 하는 그의 정신력을 이 책에서는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재작년에 코스피가 2000이 돌파 했을 때는 너도 나도 펀드에 가입하거나 주식에 직접 투자했지만, 요즘과 같은 때는 무슨 주식이냐며, 쳐다보기도 싫다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기는 템플턴 같은 바겐 헌터에게는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가치보다 저렴한 주식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음. 그러니까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가장 큰 주제는 남들이 살 때 팔고, 남들이 팔 때 살 수 있는 정신력을 가져라 라는 메시지 인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템플턴의 투자 방법 조금 구체적으로 나와 있긴 한데, 그 것 보다 더 큰 수확은 그가 전하는 역발상 투자 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성공적인 투자는 저렴한 가격에 매수해서 장기적으로 갖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 그에 따른 저렴한 가격을 찾는 방법도 책에 서술 되어 있다. 또한 그가 투자 했서 큰 수익을 얻었던 일본, 한국, 중국에 관한 이야기들도 있다. 특히 일본에 투자했을 때는 해외 투자에 대한 필요성을 못느끼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컸었는데, 저렴한 주식을 찾으려는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그의 예측이 맞았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역시 남들보다 앞설 수 있는 이유는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소신과 부단한 노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이 책을 통해서 느꼈다.

 

 그리고 또 이 책이 절묘한 시점에 출판 되었는데, 아마도 지금 상황이라면 존 템플턴은 주식을 매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43쪽 "다른 투자자가 실망 속에 매도할 때 매수하고, 탐욕스럽게 매수할 때 매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그 결과 기대 이상의 높은 수익을 얻게 될 것이다."

 

53쪽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현재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170쪽 여러 상점에서 모든 물건을 50퍼센트 할인해서 판다고 했을 때 그 상품의 구매를 꺼리는 구매자가 있을까? 물론 없을 것이다. 하지만 증시에서는 주식을 할인해서 팔려고 하면 투자자가 꺼린다.

 

180쪽 주식 투기꾼들은 소비 성향이 강하다. 그들은 부(富)를 잡을 기회를 잡으면 그 부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투기꾼들은 투자에 성공하면 새로운 부를 소비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318쪽 이제 당신은 성공적인 투자 결과를 성취하는 유일한 방법이 '다른 투자자들이 실망 속에 파는 것을 사고, 다른 투자자들이 탐욕스럽게 사는 것을 파는 것'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수의 투자자들보다 더 나은 실적을 달성하기를 원한다면 그들과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 존 템플턴

존 템플턴의 가치 투자 전략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로렌 템플턴 (비즈니스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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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2. 22. 01:22



 책을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다. 행복한 작은 학교. 누구나 가고 싶어할 학교. 나도 초등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다면 꼭 이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 학교는 학년의 이름부터 다르다. 해가 떠오르면(해오름) 터를 일구고(터일굼) 싹을 띄우니(싹틔움) 물이 오르고(물오름), 꽃을 피온 뒤(꽃피움) 씨를 영근다(씨영금). 대자연의 흐름과 같다고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상주남부초등학교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영상을 못 봐서 아쉽기도 하지만, 책으로라도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 행복한 학교를 만든 선생님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대안학교도 아닌, 소수의 뜻을 모아 만든 사립학교도 아닌, 폐교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던 공립 초등학교를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로 만들어진 모습에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특히 요즘과 같이 시험성적에 비관해서, 자살을 하는 초등학생이 나오는가 하면, 영어 발음을 위해 혀를 수술한다거나, 어린 나이에 조기유학을 보낸다거나,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초등학생들은 아마 이 학교가 천국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고, 권위를 내세우는 선생님이 아닌 친구 같은 선생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모습을 보며, 참다운 학교,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가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전교 회장을 뽑는데, 한 학생이 약간은 불분명하게 투표를 했는데, 이는 투표 결과에 당락을 미칠 정도로 중대한 한 표였다. 선생님들이 그 투표 용지를 보고, 어떻게 처리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결국엔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를 해서 학생들에게 알려 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힘든 원두막 공사를 통해서도 아이들에게 과정을 가르치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또한 이 곳의 아이들은 시험 성적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선생님들은 등수를 매기는 시험 보다는 배운 지식을 잘 이해했느냐를 알아보는 수준에서 시험을 치른다. 특이한게, 시험을 보다가 선생님한테 스스럼 없이 질문을 하기도 한다는. 하하. 나는 고등학교 때 쪽지시험을 보다가, 목이 뻐근해서, 고개를 살짝 돌렸는데, 컨닝이라며 시험 점수 C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음. 상주남부초등학교 학생들을 생각해보면, 상급학교로 진학 할 수록, 심해지는 경쟁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이 아이들의 초등학생 시절을 생각해 보면 왠지 가련한 생각도 든다. 이 책에서 잠깐 언급이 되긴 했었는데, 상주남부초등학교의 선생님들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중학교가 지역에 있다고 한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아이들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뭔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다른 학교에는 없는 주사님의 퇴임식을 통해서 아이들은 누구에게 보이는 화려한 일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게 학교를 가꾸어 가는, 묵묵히 일하는 것도 큰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나는 시골의 작은 분교 5년 넘게 다니다가, 비교적 큰 학교로 전학을 갔었다. 지금은 수몰이 되어서, 어떻게 학교를 찾아 가려면,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야 한다. 아마 물고기들과 수초들이 학교를 점령했을 수도 있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자 언젠가는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갈 수가 없다는 생각이 한동안 정말 울적했던 적이 있었다. 예전에 창가의 토토 리뷰를 쓰면서도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썼었는데, 도시 친구들이 들으면 우리나라에 그런 학교도 있어? 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특별한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뭐 공부와는 먼 생활을 했다는 거. 예전에는 그런 학교를 다녔었다는게 창피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이야기 거리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소재가 될 수 있어서 좋다.

 

저자의 말 중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교육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희망은, 마음을 활짝 열어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아이, 또 다른 교육의 주체인 학부모가 모여 말 그래도 '참된 삶' '참된 사람다움'을 고민하고 몸으로 실천해 갈 때 가능하다.

 

70쪽 "누구나 인간다운 교육을 받을 권리는 있는 것이죠. 삶의 수준이 교육의 질적 수준까지 결정해 버린다면 얼마나 슬픈 현실입니까. 이곳의 아이들 얼굴을 보세요. 모두 다 웃고 있잖아요." - 김화자 선생님

 

79~81쪽 '공교육' 이라고 부르는 것. 세상 속에서 교육이 같는 '공공재적인 성격' 때문에 부르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전 공교육 스스로가 공교육이기를 포기하는 것 같다. 세상 모두가 브레이크가 터진 폭주 기관차를 타고 달리는 모습이다.

 

112쪽 지금 대한민국의 수많은 학교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영어몰입교육, 우열반 편성 모두 학력 수준의 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교육은 '사람을 길러 내는 것' 이지 '평가나 테스트를 위한 기계'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알까? 그 모든 평가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136쪽 시험이라는 것은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아는 것을 제대로 행하지 못할 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197쪽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생은 절대 후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갈 수는 있어도 초등학교에서 다시 유치원으로 갈 수 없다는 얘깁니다." - 노윤중 주사님의 퇴임사 중에서

 

 이 책을 덮고서 미친듯이 돌아가고 싶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로. 하지만 노윤중 주사님이 퇴임사 중에 하셨던 말씀 처럼 인생을 뒤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다.

행복한 작은학교 365일간의 기록
카테고리 가정/생활
지은이 이길로 (글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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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2. 15. 23:42



 2008년 10월, 그를 봤다. 로버트 치알디니. 제 9회 세계지식포럼에서 특별강연을 했는데, 그 때 그를 보고 싸인을 받았다. 그 강연을 듣지는 않았다. 바로 옆에 있던 홀에서 다른 분의 강의를 들었는데, 그의 강연을 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재미있었다는 것이었다. 강연을 마치고 싸인을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남들도 다 하길래, 나도 싸인 받았다. (이것은 사회적 증거의 법칙인가.) 그리고 그냥 싸인만 받은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어 설득의 심리학 2 를 샀었다. (이건 상호성의 법칙인가.) 그로부터 4개월이 흐른 후 잊고 지내다가, 설득의 심리학 2 를 꺼내 읽게 되었다.

 

 약 5년 전에 설득의 심리학을 읽었었다. 당시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내용은 다 잊어버리고. 음. 사실 그 때 싸인만 받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책을 읽는 내내 부정적인 생각을 깔고 읽게 되었다.

 

한국어판 서문 中 설득은 강요나 야만적인 힘. 공식적인 비난을 동원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이다.

 

23쪽 사람들은 경제학, 정치학 등의 분야는 따로 공부를 해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심리학의 경우에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동안 이미 그 기본적인 원리들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할 때 심리학 관련 책을 들춰볼 가능성이 적어진다. '심리학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최악의 경우에는 심리학 원리를 잘못 사용해서 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조금 뜨끔했다. 이 책의 내용에는 크게 공감이 가고, 맞는 말이야 하면서 동의하면서도, 무슨 설득을 공부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 하지만 이 부분은 설득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전반적으로 실험이나 사례를 통해 접한 내용들에 동감을 했는데, 최소한 설득은 못하더라도, 실패를 하는 경로를 밟는 것은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설득의 6가지 법칙.

 

1. 사회적 증거의 법칙_다수의 행동이 '선'이다.

2. 상호성의 법칙_호의는 호의를 부른다.

3. 일관성의 법칙_하나로 통하는 기대치를 만들라.

4. 호감의 법칙_끌리는 사람을 따르고 싶은 이유.

5. 희귀성의 법칙_부족하면 더 간절해진다.

6. 권위의 법칙_전문가에게 의존하려는 경향.

 

 이 법칙만 알고 있어도 크게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하다. 모두 각각의 법칙에 알맞는 사례들로 채워져서 이해를 도와주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조금 의아한 부분도 있었다. 내가 머리가 안 좋아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사례와 법칙이 이게 무슨 상관이 있지 하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경우가 있었다. 제시된 법칙과 사례와 뭔가 희미한 끈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웬지 구색맞추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서 느낀 점은 1권, 2권 모두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권 읽을 때는 뭔가 유익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는데, 두 권 모두 읽으니깐, 괜히 읽었다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1권을 읽은지 오래 되었다면 뭐 기억을 환기 시키는 차원에서 다시 1권을 훑어보는게 나을 듯 싶다. 1권의 내용을 거의 모두 잊어버리긴 했지만, 2권을 읽다보니, 1권에서 읽었던 사례를 하나 발견했었다. 2권을 낸다면 최소한 1권에서의 내용은 빼고, 새로운 주장, 사례, 실험들로 채웠어야 하는 게 옳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설득의 심리학. 2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로버트 치알디니 (21세기북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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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2. 13. 16:50


이 괴상한 세상은 계속 굴러가고 있다.

  작년에 빵굽는 타자기를 읽었더랬다. 그 책은 소설책은 아니었고, 그냥 자전적인 이야기 책이었다. 나름대로 재밌게 읽긴 했지만, 익히 들었던 명성에는 못미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내 기억속에 그가 잊혀질 때 즈음에 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에서 소개된 조인성, 신민아 주연의 영화 마들렌에 그가 등장했다. 영화에 배우로 등장한 것은 아니고, 그의 책 달의 궁전이 출연 했다. 조인성이 신민아에게 빌려준 책이다. 그리고 또 잊혀질 때즈음에, 신문에서 폴 오스터의 신작 어둠 속의 남자가 출간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재밌을 것 같아서, 바로 책을 샀다. 책을 산지는 한참 전인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리뷰에 줄거리를 쓰는 것은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살짝 줄거리를 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브릴은 불면증이 있다. 잠이 못드는 한 밤중 긴 고요한 적막 가운데에서 그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그가 지어낸 인물은 마술사 브릭인데, 이야기 가운데 브릭에게 임무를 부여한다. 그 임무는 바로 브릭을 만들어낸 브릴을 죽이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 전쟁을 만들어낸, 수 많은 사람을 죽게만든 브릴을 말이다. 브릭은 이야기 가운데 첫 사랑을 만나는데, 이는 브릴의 첫사랑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야기 속에서 브릴을 죽이기 전에 브릭이 먼저 죽는다. 이야기는 약간 허무하게 끝났다.

  신문 기사에서는 여기까지만 소개되었는데 소설은 여기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브릭의 이야기가 끝나가는데, 아직 읽어야 할 분량이 많이 남은 것을 보고, 이거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어쨌든 이야기가 허무하게 끝나고, 손녀와 밤새 이야기를 한다. 뭐 이런 저런 할 얘기가 많나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미국의 할아버지와 손녀는 거리낌 없이 친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인 브릴의 젊을적, 자신의 부인인 소니아와의 결혼, 그리고 외도 이런 이야기를 손녀에게 한다. 물론 손녀가 물어봐서이다. 그리고 손녀의 죽은 남자친구 이야기도 하고, 그리고 책 중간중간에 영화 이야기도 있다. 음. 영화 이야기에서 어떤 도구(사물)가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등장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특히 책에서 등장한 영화 도쿄 이야기는 보고 싶어진 영화이다. 그리고 브릴의 정치관 - 즉 뭐 폴 오스터의 정치관이겠지 - 도 읽을 수 있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오랜만에 조금 특이하고, 뭔가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로서 내면을 치유하는 등장 인물들. 그리고 독특한 설정, 좋았다. 음. 그리고 폴 오스터 특유의 묘사, 가령 (23쪽) 텔레비전 화면 위에서 춤추는 이미지들의 끝없는 행진, (39쪽) 태양이 이른 아침의 안개를 태워 주었고, (82쪽) 고통이 홍수 난 것처럼 마술사의 온몸으로 넘쳐흘렀다. (101쪽) 망각의 검은 구멍으로 떨어지지. 죽음처럼 깊고 어두운 허무 (228쪽) 아마 4시가 넘었을 것이다. 어쩌면 5시 가까이 되었는지 모른다. 새벽이 오기까지 한 시간. 어둠은 옅어지고 창문 곁의 나무에 사는 때까치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울음을 울어대는 불가사의한 시간 이 그것이다. 작가 지망생은 아니지만, 뭔가 독특한 묘사를 하고픈, 글을 잘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런걸 쓰지, 하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었다.

107쪽 오로지 선량한 사람이 자신의 선량함을 의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선량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쁜 자는 자신이 선량하다고 생각하지만, 선량한 자는 자신의 선량함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남들을 용서하면서 삶을 살아 나가지만, 정작 자기 사진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 영화 도쿄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중

120쪽 사람들은 상심으로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정말로 심장이 깨져서 죽는 것이다. 이런 일은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이 세상이 끝날 때 까지 계속될 것이다.

140쪽 나 자신을 그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이야기는 현실이 된다. 아니면 비현실, 즉 나 자신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그림이 된다. 어느 쪽이든 그 효과는 만족스럽고 나의 분위기와 더 조화를 이룬다.

237쪽 그의 존재를 깊이 호흡하여 우리 내부에 그를 간직할 수 있도록. 그 외롭고 비참한 죽음을 우리 내부에, 그 마지막 순간에 그가 당했던 그 잔인함을 우리 내부에 간직함으로써 그를 휩싼 저 무자비한 어둠 속에 그를 혼자 내버려두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이라크전에서 피랍되어 살해된 손녀 남자친구의 동영상을 보며

  이 문장을 읽으며 어둠 속의 남자란 이 글의 주인공으로 불면증때문에 어둠 속에서 이야기를 짓고 있는 브릴 뿐만 아니라 이라크에서 무자비하게 살해된 타이터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두를 얘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는 뭐 책 소개에도 없고, 그냥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딱! 든 생각이다.

  아. 그리고 빵굽는 타자기에 나왔던 희곡이었던가. 뭐였나. 하여튼, 거기에 나온 주인공 중의 한명의 이름이 브릭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었나. 음. 그리고 그 것을 읽을 때, 웬지 고도를 기다리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음. 이 책에서도 그러한 비슷한 설정이 나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는 몰랐었다. 역자가 말하는데, 폴 오스터가 베케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때 내가받았던 느낌이 정당해졌다는 생각에 웬지 뿌듯한 느낌이다. 

 재밌다. 폴 오스터의 다른 책도 읽어야지.

어둠 속의 남자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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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