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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2 비의 계절
단상2009. 7. 12. 02:38

 올해도 어김없이 비의 계절이 찾아왔다. 비의 계절이라는 단어는 몇 년 전에 봤던 일본영화 지금만나러갑니다에서 처음 접했다. 뭔가 장마보다는 친근감 있는 단어이다. 사실 이전까지는 장마하면, 뭔가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아마도 고등학교 입학 과제로 읽은 윤흥길의 장마로 인해 생긴 이미지 인 것 같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사실 내용이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장마기간이 되면 항상 생각나는 것이 비의 계절이라는 단어와, 그로 인해 떠오르는 지금만나러갑니다이다.

 

 최근 부쩍 비가 자주 내린다. 그로 인해 요즘 새삼 느끼게 된 점이 있다. 내가 비를 싫어하게 됬다는 점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를 좋아했었는데 말이다. 비를 좋아했던 이유는 딱히 잘 모르겠다. 그냥 아주 어릴 때 읽었던 아동 서적에 어떤 한 꼬맹이가 - 사실 그 책을 읽던 나도 꼬맹이었던 시절이었지만 - 비오는 날 학교에서 비 구경을 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던 글이 있었는데, 그게 어린 시절 인상깊었나 보다. 그래서 나도 어린 시절 비오는 날이면, 툇마루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구경하곤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옥집에 살았기 때문에, 기와 지붕 밑으로 빗방울이 주룩주룩 떨어지는 것을 구경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마당은 흙으로 덮여 있었다. 다른 많은 시골집이 그렇듯이, 아직 마당을 흙이 덮던 시절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처마 밑의 빗줄기로 인해 흙은 조금씩 파이기 시작했었다. 더운 여름, 툇마루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구경을 하는 것이 당시의 즐거움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이런 즐거움도 결국 마당을 시멘트가 덮으면서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나 비에 대한 즐거웠던 기억은, 고등학교 시절, 왜 그랬는지는 몰랐지만, 친구들과 비를 듬뿍(?) 맞고 집에 갔던 기억이다. 비를 맞으며, 조그마한 물이 고인 웅덩이를 지날 때 친구 옷에 물을 튀기려 했었다. 그렇게 놀았다. 그 기억만 선명하고, 전후의 기억은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비가 좋은 이유를 딱히 만들자면, 일단 한 여름에 비는 단비와 같다. 비가 한 여름 뙤약볕에 뜨거워진 지표면을 식혀준다. 그 덕분에 무더운 여름 가운데 조금이나마 더 시원한 여름도 만끽 할 수 있다. 이런 날엔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비가 오고 난 후에는 뭔가 상쾌한 느낌이다. 시골 고향집에 있을 때는 못느꼈던 건데, 공기가 더 깨끗해진 느낌이다. 특히 비가 개인 후, 공원에 가면 나무 내음이라던가, 흙 내음이 훨씬 선명하고 좋다. 비를 머금은 나무나 흙이 내뿜는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최근에는 비가 싫은 이유가 좋은 이유보다 더 커진 느낌이다. 비가 싫은 이유 중의 하나는 우산이다. 비가 오면 한 손으로 우산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손이 하나뿐이게 된다. 특히 나는 호주머니에 이것 저것 넣어서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손에 이것 저것들을 들고다니는 편이다. 특히 MP3 플레이어나 핸드폰, 지갑 같은 것은 자주 넣었다 뺐다 해야하기 때문에 가방에 넣으면 불편해진다. 책도 마찬가지로 그런 이유로 들고다니는 편이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이면 불가피하게 몇 몇 물건들은 호주머니나 가방에 넣어야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특히 일요일에 비가 오는 경우에는 축구를 못한다는 것. 몇 안되는 취미생활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들 중의 하나가 축구인데, 비 오면 축구는 물건너 가게 된다. 굳이 비를 맞고 하려면 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정도 까지는 아니다.

 

 한편으로 내가 왜 이렇게 많은 것들을 평소에 들고다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핸드폰, MP3 플레이어, 지갑 등. 어느 새 이런 것들에 나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있었고, 나는 그런 것들에 너무 익숙해 진 건 아닌가 싶다. 어릴 땐 그리고 불과 몇 년 전의 학창시절에도 이런 것들에 익숙하기는 커녕, 없이도 불편함 없이 잘 살았는데도 말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비의 계절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는데, 생각이 엉뚱한 곳으로 미치게 되었다. 비오는 새벽에 말이다.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