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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7 후회의 종류
단상2010. 5. 17. 02:05
# 후회의 종류를 나눌 수 있다면, 나는 크게 두가지 종류로 나누겠다. 이건 순전한 나의 후회론(論)이다.
 
 먼저, 무언가를 하지 않아서 하는 후회. 이런 류(類)의 후회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 느낄 수 있는 후회이다. 대게 시간이 흘러 '아 그때, 내가 OO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결국 이런 후회의 도(度)가 지나치면, 한(恨)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정적인 후회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무언가를 해서(저질러서) 하는 후회. 정말 이런 류의 후회는 할 말이 많은 후회이다. 이런 류의 후회는 대게, 짧은 기간 안에 느낄 수 있는 후회이다. 보통 이런 후회는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드는 후회일 것이다. 가끔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을 만드는 후회의 종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후회는 동적인 후회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각각의 후회를 위험의 측면에서 설명해보면, 첫번째 류의 후회는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많이 하는 후회이다. 그리고 두번째 류의 후회는 리스크를 즐기는 사람들이 하는 후회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게 어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론은 후회라고 해서 다 같은 후회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소소하지만 무언가를 저질렀을 때, 내가 발전했던 것 같고, 우리 사회를 발전 시켰던 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를 저질러서 항상 좋은 일들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건, 25년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몇 안되는 삶의 진리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지금 이 상태에만 머무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할 일이 생길지 몰라도 일단 저지르라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해본다.
 
 위의 후회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나의 경우에는 올해는 위험을 회피해 후회를 줄이려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올해는 괜스리 의기소침해지고, 소심해진 것 같다. 적어도 작년에는 위험을 즐기는(?)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올해보다는 무언가를 많이 저질렀던 것 같기도 하다.
 
 삶을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가, 안해서 '참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괜히 해서 차마 부끄러워서 얘기하지 못할 그런, 손발이 로그아웃되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이런 상황들이 교차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이런 삶들을 즐겨야 할텐데. 나는 왜 이렇게 재미없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가끔 내가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수동적으로 그냥 살아지는 것인지 모를 경우가 많다. 우리네 역동적인 삶을 사랑해야지.
 
# 16일 주일. 12시에 약속이 있었더랬다. 약속에 늦지 않으려 서둘러 준비해서 나갔다. 하지만 눈 앞에 505번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조금만 뛰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뛰었다. 결국 버스에 올라탔고, 약속시간에 늦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나서 느끼는 안도감(?) 보다는, 괜히 웃겼다. 최근 들어서 이렇게 빨리 달렸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축구할 때 보다 오히려 더 빨리 달렸던 것 같다. 사람에게 초인적인 힘이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생기는 것 같다.
 
 버스에 올라탔다. 제일 끝자리에 앉아, 창문을 열고 시원한, 그리고 더러운 서울의 공기를 맞으며, 숨을 골랐다. 그 때 생각 났던 게, 어린 시절 와 관련한 에피소드였다.
 
 어린 시절, 할머니집에 가려면, 피할 수 없는, 꼭 통과해야만 하는 길이 있었다. 그 길 옆에 친척집이 있었는데, 그 집을 지나야만 할머니 집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친척집에는 무시무시한 개가 살고 있었다. 그 개를 지나지 않고서는 할머니 집에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개에게 자극을 주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항상 그렇게 지나갔던 것 같다. 만약 개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그냥 줄행랑을 쳐야했다. 대게는 개가 묶여있었지만, 어린 맘에, 혹시 나를 쫓아오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노심초사를 했더랬다. 어느 날은, 개가 풀려 있었다. 그런데, 운이 없게, 개에게 들키고 말았다. 결국 나는 줄행랑을 쳤다. 정말 혼신의 힘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개를 따돌렸다. 하지만, 맘에 걸렸던 게, 뜀박질 하면서, 하필이면 신발이 벗겨졌다. 한참을 그 신발을 '찾으러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더랬다. 결국 개가 잠잠해질 즈음에, 다시 슬금슬금 신발을 찾으러 갔던 게, 버스에 올라탔을 때, 생각이 났다.
 
# Smokie의 Living next door to Alice 라는 노래가 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올드팝 중의 하나란다. 나는 예전에 한참, 굿모닝 팝스를 들을 때 알게 된 노래였다. 노래도 귀에 익고, 가사가 예사롭지(?) 않아서, 가끔 생각났던 노래이다. 대충 가사의 줄거리는 24년 동안 짝사랑한 옆집의 엘리스가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엘리스의 집에 리무진이 나타나더니, 그 리무진에 엘리스가 탔고, 결국 떠났다. 그 남자는 24년 동안 엘리스에게 고백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결국 다른 남자에게 갔다는 구슬픈 이야기의 노래이다. 하지만 멜로디는 구슬프지는 않다.
 
 24년 동안 고백할 기회만 엿보던 그 남자. 답답하고, 불쌍한 인간의 표상이다.
 
 외국인 친구 - 나이차이는 많이 나지만 토니가 친구라고 생각해 주길 바래서 - 인 토니와 노래방에 갔을 때 이 노래를 몇 번 불렀던 게 생각이 난다. 토니가 어떻게 이 노래를 아는지 신기해했지만. 워낙에 옛날 노래라서.
 
#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연설에서, Connect the dots 라는 이야기를 했다. 과거 그의 경험들은 연결해보면 현재의 그를 만든 한 점이 된다. 그 점들은 미래로 연결할 수는 없다. 단지 뒤를 돌아볼 때만 알 수 있는 하나의 점이다. 과거의 경험 중에 하나도 쓸모 없는 것은 없다. 결국 쓸모 없다고 여기는 것도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에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학교 언어교육원에서 들었는데, 그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마음에 와닿는다. 한편으로는 섬뜩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늘의 '나'는 더 이상 오늘의 '나'가 아니라 이미 과거의 '나'다. 그리고 그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들고,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을 헛되이 보내는 것은, 미래의 나를 망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된다. 그런데 나는 뭐람?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