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25. 23:22

 두번 째 읽는 에밀 아자르, 아니 이번엔 로맹 가리의 소설. 이 소설은 단편이다. 단편 중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라는 제목이 있는데, 그 제목을 이 책 전체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이 전에 읽었던 그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워낙에 재밌게 읽었던 터라,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뭐가 재밌는지도 모르겠고, 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는 이유도 잘 모를 정도였다. 그래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왜 재밌는지 모르겠다고. 친구의 문자-이 책은 인간의 악함을 다루고 있다는-를 받고서, 그제서야 재미를 느꼈었다. 이 책은 인간의 참을 수 있는, 아니 참을 수 밖에 없는 악함을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나는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토로를 했다.
 
 이 책에는 16편의 단편 소설들이 있다. 모두 하나같이 부도덕하고, 악한 인간들의 군상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의 군상들을 보고 있으면, 아니 읽고 있으면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 지는 것은 나 자신이다. 왜냐하면 그 모습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로맹 가리 자신의 모습도 또한 소설 속에 조금이나마 녹아 있지 않을까 싶다.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이다. 그냥 얼마 전에 폴 고갱을 모델로 한 달과 6펜스를 읽었는데, 그 책에서 스트릭랜드가 최후를 맞이한 섬인 타히티와 폴 고갱이 이 이야기에서 언급된다. 이 이야기는 탐욕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벗어나 홀로 섬에 간 주인공이 그곳에서 폴 고갱의 그림이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 그 그림들을 비싼 값에 매입한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그림은 모사된 그림이었고, 결국 그는 순수를 찾아간 그 섬에서 조차, 탐욕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한 재밌게 읽었다. 벽을 사이에 둔 남녀의 자살, 부질없는 망상, 오해, 외로움, 관음증을 다룬 이야기인데, 짤막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한번 읽어보시라! 단편 모음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부담도 적은 것 같다.
 
 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다 재밌게 읽었다던,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궁금한건 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 다고 글을 썼을까? 왜 하필이면 페루일까? 하는 생각들인데 별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에 대한 설명은 이와 같다. 
 
18쪽 "어쨌든 한 가지 설명은 있을 거요. 언제나 한 가지 이유는 있는 법이니까."
 
 
 
115쪽 "(생략)속임수와 거짓된 가치가 도처에서 기승을 부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획일성이 있다면 걸작의 그것 아니겠소. 우리는 온갖 위조범들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야 하오. 내게 예술작품이란 신성한 거요. 나에게 작품의 진위는 종교라고 할까······(생략)"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로맹 가리 (문학동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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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