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째 읽는 에밀 아자르, 아니 이번엔 로맹 가리의 소설. 이 소설은 단편이다. 단편 중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라는 제목이 있는데, 그 제목을 이 책 전체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이 전에 읽었던 그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워낙에 재밌게 읽었던 터라,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뭐가 재밌는지도 모르겠고, 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는 이유도 잘 모를 정도였다. 그래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왜 재밌는지 모르겠다고. 친구의 문자-이 책은 인간의 악함을 다루고 있다는-를 받고서, 그제서야 재미를 느꼈었다. 이 책은 인간의 참을 수 있는, 아니 참을 수 밖에 없는 악함을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나는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토로를 했다.
이 책에는 16편의 단편 소설들이 있다. 모두 하나같이 부도덕하고, 악한 인간들의 군상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의 군상들을 보고 있으면, 아니 읽고 있으면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 지는 것은 나 자신이다. 왜냐하면 그 모습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로맹 가리 자신의 모습도 또한 소설 속에 조금이나마 녹아 있지 않을까 싶다.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이다. 그냥 얼마 전에 폴 고갱을 모델로 한 달과 6펜스를 읽었는데, 그 책에서 스트릭랜드가 최후를 맞이한 섬인 타히티와 폴 고갱이 이 이야기에서 언급된다. 이 이야기는 탐욕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벗어나 홀로 섬에 간 주인공이 그곳에서 폴 고갱의 그림이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 그 그림들을 비싼 값에 매입한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그림은 모사된 그림이었고, 결국 그는 순수를 찾아간 그 섬에서 조차, 탐욕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벽 또한 재밌게 읽었다. 벽을 사이에 둔 남녀의 자살, 부질없는 망상, 오해, 외로움, 관음증을 다룬 이야기인데, 짤막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한번 읽어보시라! 단편 모음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부담도 적은 것 같다.
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다 재밌게 읽었다던,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궁금한건 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 다고 글을 썼을까? 왜 하필이면 페루일까? 하는 생각들인데 별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에 대한 설명은 이와 같다.
18쪽 "어쨌든 한 가지 설명은 있을 거요. 언제나 한 가지 이유는 있는 법이니까."
115쪽 "(생략)속임수와 거짓된 가치가 도처에서 기승을 부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획일성이 있다면 걸작의 그것 아니겠소. 우리는 온갖 위조범들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야 하오. 내게 예술작품이란 신성한 거요. 나에게 작품의 진위는 종교라고 할까······(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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