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1.06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2
  2. 2009.08.22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2010. 1. 6. 22:05


 다사다난했던  작년. 개인적으로 가장 극적이었던 사건을 꼽자면,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와 기아 타이거즈의 우승을 꼽을 것이다. 물론, 전자는 비극이었고, 후자는 희극이었다. 두 극적인 사건은 뭔가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를 이은 책이 있으니, 그 책은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다. 사실 이 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에 출판된 책이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 후 다시 이슈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 김은식씨는 야구 이야기를 맛갈나게 전하는 작가이다. 예전에 읽었던 그가 쓴 책인 야구의 추억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그의 칼럼은 매번 챙겨보는 편이다. 기록으로써의 야구가 아닌, 기억으로써의 야구를 가장 잘 전하는 분 같다. 그래서 이 책 읽기를 주저 하지 않았다. 사실 추석 연휴 때 집에 내려가는 버스에서 이 책을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버스에서 결국 이 책은 보지 않았고, 내려가는 10시간 동안 수다만 떨면서 갔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큰 소리로 수다를 떤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우라나라 프로야구의 태생은, 사실 3S(Sex, Screen, Sports) 정책에 의한 전(全) 정권의 산물이다. 뭔가 정권의 정당성이 없으니,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인 김은식씨는, 한 때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했었다고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3S 정책의 산물인 야구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잠깐 고민한 적이 있었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역사의 아이러니인지 모르지만, 많은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아세운 정권에서 프로야구를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야구팀 가운데, 호남을 연고로한 해태 타이거즈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고, 정치적 소외된 호남에서의 유일한 위안거리는 해태 타이거즈였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전 재산이 29만원 뿐인 분의 극진한(?) 호남사랑이 이런 시나리오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 해태가 잘 나가던 시절, 정치적으로는 소외되었었고, 김대중은 대선에서 미끄러지고, 급기야 정계에서 은퇴 선언까지 했었다. 호남인들에게 도대체 김대중이란 무엇이었나. 사실, 김대중을 지지한다고해서 득이 된 것은 없었고, 돌아온 것은 폭도 취급이었고, 급기야 많은 사람이 빨갱이로 몰려 죽기까지 했었다.
 
31쪽 김대중은 광주, 그리고 한국민주화운동과 그렇게 뿌리 깊은 곳에서 이어졌다. 같이 웃는 사람보다 함께 울었던 사람과의 인연이야말로, 잘라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호남인들이 김대중을 지지했던 것은 함께 울었던 인연 때문일 게다. 어쨌든, 해태의 영광과 김대중의 고난은 궤를 달리했다. 당시 빙그레 이글스에 김대중이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해태와 빙그레와의 경기가 있을 때, 김대중 선수가 등판했을 때는 많은 관중이 김대중을 연호했다고 한다. 그렇다. 유일하게 눈치보지 않고 야구장에서 김대중을 연호할 수 있었던 곳이 그들에게는 야구장이었다.
 
126쪽 그 시절, 그곳에서, 야구장은 수천 명이 모여 한 목소리로 외치고 흥분하고 울고 웃으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곤봉과 최루탄의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세는 역전된다. 결국 대통령 병에 들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통령에 집착을 보였던 김대중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고, 그 시절, 해태 타이거즈는 모기업의 부도로 인해, 해체의 위기를 맞는다. IMF에서 차관을 받으며, 신자유주의의 물결도 또한 수입되어 온다. 그리고 그것은 해태의 발목을 잡는다. 사실 신자유주의보다는, 해태의 무리한 사업확장이 해태의 몰락을 가져왔다. 결국 해태는 해체되어, KIA에 인수된다. 어쩌면, 해태 팬은 김대중에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해태만은 아니, 해태 타이거즈만은 살렸어야 한거 아닌가 하는. 책에서는 이 사건을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의 바톤 터치로 명명하며 "김대중이 해태 타이거즈를 죽였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시절 무등 구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 책에서는 소개가 되지 않았지만, 올 해 또다시 바톤 터치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KIA 타이거즈의 우승이 그것이다. 사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께 죄송한 일이지만, 타이거즈와 김대중은 공생할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책을 덮고, 이렇게 해태를 추억하는 책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입에서 여전히 오르내리는 팀. 최근 어떤 기사에서는 만약 당시 해태의 우승보다, 삼성 혹은 두산이 우승했었더라면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더 발전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해태가 강조한 것은 오로지 투지, 하지만 삼성, OB는 당시에 드문 선진 시스템과 투자가 있었는데, 만약 두 팀이 우승했었다면 프로야구의 트렌드가 그쪽으로 흘러갔을테지만, 해태의 변함없는 우승으로 투자없는 투지만 강조되었다는 점을 아쉬워 했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이야기거리는 풍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태의 변함없는 우승은 프로야구의 재미를 반감시켰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의 후반부에 쌍방울 레이더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중 인상적인 글귀가 있다.
 
174쪽 흘러간 것을 소홀히 하는 이들은 다가올 시간들 역시 치열하게 임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쌍방울 레이더스를 기억하는 방식 역시 한국 프로야구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한 가지 척도가 될 것이다.
 
 쌍방울은 누구도 떠맡지 않으려는 우리 프로야구의 역사이다. 안타깝지만, SK가 쌍방울을 인수한게 아니라, 해체 후, 재창단을 했기 때문에, 쌍방울은 주인없는 역사가 되어버렸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실 KBO에서 신경써서 관리해야 하는 문제인데. 신경을 안쓰는 것 같다. 이게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현주소이다.
 
 이 책을 읽으면 야구와 정치, 현대사를 골고루 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글쓴이의 글 재주 덕분에 책이 더욱 풍성해진 것 같다. 이런 류의 책이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다. 하지만 추운 것 보다 역시 겨울이 안좋은 점은, 야구가 없어서이다. 빨리 야구 개막했으면 좋겠다.
 
 
 
244쪽 뒤돌아보자면 경제학자들의 계산보다 26년쯤 일렀던 프로야구의 출범, 그것은 항상 '의지'로써 '조건'과 '배경'을 앞지르고 선도했던 한국사회 역동성의 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그 '의지'가 흐려지는 순간에도 버텨나갈 자생력을 결여한 불완전성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
카테고리 취미/스포츠
지은이 김은식 (이상미디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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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09. 8. 22. 02:16


 오늘 국회의사당으로 조문을 갔다. 낮에 가면 더울 것 같아서, 일부로 해가 저문 저녁에 갔었다. 오늘 이런 저런 기사를 읽으면서 낮에 갈껄 하는 후회를 조금 했다. 북측 조문단도 국회의사당으로 왔었고, 이희호 여사님도 조문객을 맞이 했었다고 한다. 북측 조문단이 왔을 때 시민들이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실제로 들었더라면, 아니 내가 그 자리에서 같이 불렀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유명인사를 보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뜻하지 않게 이건희 전 삼성회장, 이재용 전무의 조문하는 뒷모습을 봤었고, 원혜영 전 민주당 원내대표를 잠깐 봤었다. 그리고 동교동계 정치인이었던 김옥두 전 의원도 봤다. 어릴 때 내가 있던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했었기에 익히 얼굴은 알고 있었다. 그분은 나를 모르지만.

 약 30여 분을 기다렸던 것 같다. 조문할 때까지. 영정사진 앞에 서니, 숙연해졌다. 인동초의 삶을 사셨던, 민주주의를 위해 일생을 보내셨던 그 분 앞에서.

  국회의사당의 해태상. 해태상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라는 책을 쓴 김은식 씨의 기사를 며칠 전에 읽었더랬다. 기사의 내용은 해태가 잘나가던 그 시절. 그 시절 해태는 유일하게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야구는 해태였고, 해태는 야구였다. 그들은 야구장에 가서 해태의 우승을 바라보며 호남인의 한을 풀었고, 야구장에서 처량한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김대중을 연호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시절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시절 해태는 영광의 세월을 보냈었고, 김대중 대통령은 고난의 시기를 보냈었다. 하지만 최초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이후로, 해태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호남인들은 더 이상 야구장을 찾지 않았다. 그 시절 아마도 무등구장 평균관중 수가 거의 최저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9번의 우승 후, 아홉수에 걸려 우승 문턱에도 들지 못했던 타이거즈가 다시 올 시즌 우승에 도전한다. 마지막 우승이 97년 그리고 지금은 2009년.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올 해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그 2009년에 타이거즈 팬들은 다시 야구장을 찾고 있다. 참고로 김은식 씨가 쓴 기사의 제목과 주소는 타이거즈와 김대중, 끝내 엇갈린 닮은 꼴의 두 이름, 
http://news.nate.com/view/20090818n16735

 이 글은 지역감정을 조장하거나 그런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다. 그저 분향소가 차려진 국회의사당의 해태상을 보니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 그리고 지역감정 이야기를 하니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 주민이 직접 하의도를 방문했다는 기사를 읽었었다. 뭔가 가슴 뭉클한 기사였다. 사실 지역주의라는 놈이 생긴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혹자는 삼국시절인 백제와 신라 시절부터 싹텄다고 하는데, 사실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지역감정의 망령은 1970년대부터 생겼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지역감정의 역사를 이제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청산해야 함을 새삼느끼게 된다.

 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기장의 일부를 소책자로 만들어 배포했다고 한다. 금방 동이 났다고 한다. 나도 꼭 갖고 싶었는데, 그 소책자의 제목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인데, 왠지 이 짧은 글만으로 그 분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제목인 것 같다. 그 일기중에 인상 깊었던 일기 하나를 꼽으라면 3월 18일의 일기이다.

2009년 3월 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8년의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그 분의 통찰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음. 그런데 이 글이 대의민주정치에 대해 회의를 느낀 것인지 궁금해졌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