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2012. 12. 16. 00:38

한 촉망 받던 미모의 여류 화가의 장래를 꺾는 것은 단 한마디면 충분했다. "당신의 그림에는 깊이가 없어." 이는 한 평론가의 평이다. 깊이가 없다는 평을 접하자마자 그 여류 화가는 깊이 없음을 자책하며, 결국 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그 여류 화가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 평론가는 그녀의 그림에 대해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칭송했다.


이는 실화는 아니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소설집 「깊이에의 강요」(열린책들, 2000)에 실린 단편 <깊이에의 강요>의 내용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깊이"라는 상대적인 단어를 비꼬고 싶어서 이 단편을 썼을 것이다. 아마 자신의 글에 깊이가 없다는 평론가의 평에 대한 항변을 깊이에의 강요로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나 그리고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깊이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대화를 나누며, 그 사람의 깊이에 대해서 가늠해 보지만, 결국 결론은 "어느 누군가의 깊이는 쉬이 판단할 수 없다." 라는 점이다.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사람도 나름의 깊이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또한 자못 심각한 척, 진지한 척하는 나는 깃털처럼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깊이가 없는 사람의 전형이기도 하다.


관계에 있어서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깊이에 다다를 때, 깊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깊이 없는 가벼운 만남은 너무나도 싫다. 단 한 번의 만남이라도 평생의 이야깃거리로 삼을 수 있는 그런 만남이라면 깊이가 있는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류의 깊이에의 강요는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깊이에의 강요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8-03-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깊이가 없다`라는 평론가의 말에 `깊이`가 무엇인지 구현하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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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