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2009. 8. 22. 02:16


 오늘 국회의사당으로 조문을 갔다. 낮에 가면 더울 것 같아서, 일부로 해가 저문 저녁에 갔었다. 오늘 이런 저런 기사를 읽으면서 낮에 갈껄 하는 후회를 조금 했다. 북측 조문단도 국회의사당으로 왔었고, 이희호 여사님도 조문객을 맞이 했었다고 한다. 북측 조문단이 왔을 때 시민들이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실제로 들었더라면, 아니 내가 그 자리에서 같이 불렀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유명인사를 보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뜻하지 않게 이건희 전 삼성회장, 이재용 전무의 조문하는 뒷모습을 봤었고, 원혜영 전 민주당 원내대표를 잠깐 봤었다. 그리고 동교동계 정치인이었던 김옥두 전 의원도 봤다. 어릴 때 내가 있던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했었기에 익히 얼굴은 알고 있었다. 그분은 나를 모르지만.

 약 30여 분을 기다렸던 것 같다. 조문할 때까지. 영정사진 앞에 서니, 숙연해졌다. 인동초의 삶을 사셨던, 민주주의를 위해 일생을 보내셨던 그 분 앞에서.

  국회의사당의 해태상. 해태상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라는 책을 쓴 김은식 씨의 기사를 며칠 전에 읽었더랬다. 기사의 내용은 해태가 잘나가던 그 시절. 그 시절 해태는 유일하게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야구는 해태였고, 해태는 야구였다. 그들은 야구장에 가서 해태의 우승을 바라보며 호남인의 한을 풀었고, 야구장에서 처량한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김대중을 연호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시절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시절 해태는 영광의 세월을 보냈었고, 김대중 대통령은 고난의 시기를 보냈었다. 하지만 최초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이후로, 해태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호남인들은 더 이상 야구장을 찾지 않았다. 그 시절 아마도 무등구장 평균관중 수가 거의 최저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9번의 우승 후, 아홉수에 걸려 우승 문턱에도 들지 못했던 타이거즈가 다시 올 시즌 우승에 도전한다. 마지막 우승이 97년 그리고 지금은 2009년.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올 해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그 2009년에 타이거즈 팬들은 다시 야구장을 찾고 있다. 참고로 김은식 씨가 쓴 기사의 제목과 주소는 타이거즈와 김대중, 끝내 엇갈린 닮은 꼴의 두 이름, 
http://news.nate.com/view/20090818n16735

 이 글은 지역감정을 조장하거나 그런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다. 그저 분향소가 차려진 국회의사당의 해태상을 보니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 그리고 지역감정 이야기를 하니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 주민이 직접 하의도를 방문했다는 기사를 읽었었다. 뭔가 가슴 뭉클한 기사였다. 사실 지역주의라는 놈이 생긴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혹자는 삼국시절인 백제와 신라 시절부터 싹텄다고 하는데, 사실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지역감정의 망령은 1970년대부터 생겼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지역감정의 역사를 이제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청산해야 함을 새삼느끼게 된다.

 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기장의 일부를 소책자로 만들어 배포했다고 한다. 금방 동이 났다고 한다. 나도 꼭 갖고 싶었는데, 그 소책자의 제목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인데, 왠지 이 짧은 글만으로 그 분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제목인 것 같다. 그 일기중에 인상 깊었던 일기 하나를 꼽으라면 3월 18일의 일기이다.

2009년 3월 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8년의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그 분의 통찰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음. 그런데 이 글이 대의민주정치에 대해 회의를 느낀 것인지 궁금해졌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