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2011. 1. 28. 01:04

#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2005년에 친구와 학교에서 봤던 영화. 차암 재미있게 봤던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아키가 가고 싶어 했던 세상의 중심은 호주의 울룰루라는 곳이란다. 너무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 그래서 검색해서 찾아봤다.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상의 중심에 관한 것이다. 세상의 중심이라 여겨지는 울룰루라는 곳으로 가서 사랑을 외칠 필요가 있느냐는 것.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내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사랑을 외치기 위해 내가 서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말씀.

 

 사실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자꾸 자꾸 나아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이 동요가 생각나긴 하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내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 하지만 인정해야 할 다른 한가지가 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면,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곳도 세상의 중심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뭐든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세상의 중심에 있는 다른 사람도 생각하라는 것이다.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빚진자 의식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관계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 사실 지난 여름 특새 때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우리는 빚진자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 즉 권리를 주장하는 채권자보다는 빚진자인 채무자의 마음을 가지라는 권면. 채무자는 어떻게 하면 빚을 갚을까 하는 낮아진 마음을 갖는다.

 

 많이 알고 있 듯,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9시, 12시, 3시, 5시에 온 사람에게 똑같이 품 삯을 주는 것에 대해서 혹시 분개 하지는 않았는지. 그 이유는 내가 9시 포도원의 품꾼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5시 포도원 품꾼이라면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황송할 것이다. 우리는 9시 포도원 품꾼처럼 권리를 주장하기 보다는 5시 포도원 품꾼의 마음으로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권면도 설교 내용 중의 하나였다.

 

 우린 때론 관계에서 채권자 의식을 갖음으로 말미암아, 상대방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고, 그로 인한 큰 실망을 하게 된다. 그 실망이라는 것은 내가 상대방에게 해준 것 보다, 내가 상대로부터 받은 것이 작다고 여기는 마음 때문일 게다. 그리고 처음부터 자신이 상대에게 불순한 의도 - 즉 내가 이 정도를 해주고, 이 정도는 받아야지 하는 - 로 무언가를 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를 상대에게 행함 자체에 기쁨이 있었다면, 절대로 내가 해준 만큼 못받아도 실망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관계에서 항상 우리는 기대와 실망을 하게 된다. 나 또한 그럴 때가 많이 있다. 어떤 때는 일체의 기대감과 혹시라도 모를 실망감을 피하기 위해 많은 관계를 회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삶, 정말로 피폐해질 것이다. 결론은 상대에게 어떤 선한 일을 행하든 대가를 바라지 말고, 진심으로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오늘 아침부터 했던 생각.

 

# 성경책을 잃어버린 유익

 

신앙생활 하면서,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성경책을 샀다. 선교 며칠 전에 잃어버려서, 완전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정신을 어디에 놓기에 성경책을 잃어버릴까. 어쨌든 그동안 임시방편으로 홀리 바이블 어플만 보다가, 마침 오늘 교보에 갈 일이 있어서 성경책을 샀다. 굿모닝 성경인데 예쁘다. 뭐 성경책이 예쁠 필요가 있겠느냐만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 성경책을 사러 같이 갔더랬다. 적당히 큰 성경책과 미니 성경책을 놓고 고심하다가, 결국 "그래, 미니 성경책은 이동 중에 보는 것은 좋긴 하지만, 평소에 읽기에 불편 하니까, 조금 더 큰 성경책을 사야겠다. 그래, 이걸루 낙찰!" 했는데, 친구가 미니 성경책을 선물해줬다. 성경책 열심히 읽으라며, 선물이라며. 역시 신학생 친구라서 그런지. 정말로 감사했다.

 

 그리고 최근 성경책이 없던 내게 성경책을 사줄 챈스를 잡았지만, 그 (생색) 챈스를 잃어서 아쉬워했던 분ㅋㅋ께도 정말 정말 진.심.으.로. 감사 또 감사했다.

 

 성경책을 잃어버린 유익은 감사를 느끼게 하는 것이 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리고는 정말 심하게 자책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잃어버린 것도 감사하다.

 

 또 한가지 생각한 것은, 내가 성경책을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교회? 동대문? 진수네 집? 지하철? 부동산 집? 잃어버린 날 동선이 대략 이 정도 인데. 어디에서 잃어버렸던지, 그 성경책이 꼭 필요한 사람이 주워서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 성경책이 성경책이 필요한 사람의 기도 응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오늘 들었기 때문이다.

 

# 오늘 한 커플과 너무 오래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너무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둘 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별 생각은 없었지만, 학교에서도, 요즘 교회에서도 항상 커플들 사이에 낑겨 있어서, 너무 익숙해져 있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건, 같이 마커스 집회에 갔다는데, 정말 좋았다.

 

 성경책을 읽다가 궁금한 게 있었는데

 

출애굽기 14장 8절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바로는 처음부터 완악했던 게 아니라, 여호와께서 완악하게 만들었던건데.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분이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완악이라는 단어는 여기에서 뿐만 아니라, 출애굽기의 열재앙 이야기에도 등장하는 단어이다.

 

왜 도.대.체.

 

 본인을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말로 의지할 것은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것과 자신의 완전함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즉 출애굽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앞에는 홍해, 뒤에는 완악한 바로. 그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희를 위하여 싸운다고 하셨다. 그리고 홍해를 가르시고, 또 다시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갈라진 홍해에 따라오게 만들었고, 그 홍해에 애굽의 군사들은 바다 가운데에서 죽게 된다. "이 또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이시다." 라는 것을 집회 때의 느낌을 완전히 살려서 쓸 수는 없지만. 집회 때 깨달았다. 하나님은 나쁜 분도, 실수하시는 분도 아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 좌우되는 내 믿음이 아니라.

 

# 아 졸려.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쓰다 보니까 또. 지난 며칠 동안 생각했던 아이템을 한꺼번에 오늘 써야 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왠지 오늘 아니면, 다시는 이 느낌으로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사실 아까 생각했을 때 바로 썼어야 했는데.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