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9. 23:15

최근 이준석 새누리당(구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이 과거에 트위터에 철거민에 대해 썼던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시끄럽게 하는 것은 좀 미친 X들이 아닌가 싶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짧은 글을 쓸 때에, 훗날 이렇게 파장을 일으킬 줄 본인은 알았을까? 마찬가지로, MC몽도 과거에 네이버 지식IN에 썼던 병역 면제에 대한 질문이 병역 기피 의혹을 불러 일으킨 발단이 되었다. 이는 꼭 유명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를 이용하는 사람은 언제고 위와 같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이렇듯 디지털 기술은 우리에게 망각을 허락하지 않는다. 조심하라. 언제 네티즌 수사대가 본인을 겨냥할지 모르니.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의 <잊혀질 권리>(지식의 날개, 2011)는 과거에 마이스페이스에 올린 ‘술 취한 해적’이라는 제목의 사진 때문에 교사 임용이 취소된 스테이시 스나이더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는 이력서에 SNS나 블로그 아이디를 요구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우리나라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원자의 사회적 관계망을 파악하려는 의도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이제 취업을 위해서는 SNS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SNS 사용을 하지 않으면 간단하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찍힌 사진은 친구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게시가 될 수도 있다. 즉, “안 하면 그만.”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예상치 못한 누군가에게 언제 어디서나 감시를 당할 수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포털 사이트에서의 검색 내용도 데이터로 저장되고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연관 검색어가 나타나는 것이 그 예이다. 인터넷 사용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사용 내역, 스마트 폰을 사용하며 전송되는 위치도 저장되고 있다. 조지 오웰 소설 <1984>(민음사, 2007)에 등장하는 빅브라더는 소설 속만의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이제 현실이 되었다.

 

유사 이래로 인류에게는 망각이 일반적이었고, 기억하는 것이 예외였다. 그렇지만 디지털 기술과 전지구적 네트워크 때문에 이 균형이 역전되었다.(18쪽)


저자는 역사적으로 언어의 발명, 종이의 등장과 출판 기술의 발달을 소개하며 망각을 지연시킨 사례를 소개한다. 그리고 그 정점을 디지털 기술로 소개한다. 디지털 기술은 드디어 망각을 망각하도록 만들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나 글을 인터넷에 저장하고, 본인이 지우지 않는다면, 그 사이트가 폐쇄되지 않는 이상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기록의 풍요에 살아 가고 있는 우리는 행복한 걸까, 불행한 걸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원형감옥에 살아가고 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디지털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기술이다. 하지만 언젠가 기억은 마모되고 기록에 의해 기억도 조작될 여지가 있다. 그리고 그 데이터 자체가 조작될 여지 또한 상존한다. 이 책은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잊혀질 권리’는 그러한 위험성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다. 잊고 싶은 기억에 대해서, 그리고 잊고 싶은 기억 그 자체를 잊었을 지라도, 잊혀질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만들어 져야 한다. 저자는 잊혀질 권리를 위한 여러 가지 선택 가능한 대안을 제시한다. 여러 대안 중에서 가장 실효성 있는 것은 바로 ‘정보 만료일 설정’이다. 이것은 미리 기기에 설정한 만료일에 저장된 정보가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하는 것이다. 저자는 만료일이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고, 만료일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정보의 수명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도록 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개인적인 차원 이외에도, 제도, 서비스 업체,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정보 만료일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잊혀질 권리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우리가 망각하고 있었던 망각의 축복 또한 일깨워 준다. 故 김광석은 그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1992)에서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묻히면 그만인 것을/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또 잊지 못해 새울까”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고이 묻는 것도, 잊지 못해 긴긴 밤을 새우는 것도 우리 삶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지새운 밤이 무색해 질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제 우리는 잊혀지지 않는 영원한 디지털 기억에 맞서, 잊혀질 권리가 절실해 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잊혀질권리디지털시대의원형감옥당신은자유로운가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지식의날개, 2011년)
상세보기

1984(세계문학전집77)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조지 오웰 (민음사, 2007년)
상세보기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1. 10. 17. 23:04

언젠가 책 읽기도 귀찮아지고, 뭔가 쉽게 읽을 책을 생각해보다가, 예전에 읽었던 이 책을 다시 꺼내어 읽었다. 언젠가 나도 이런 수필 하나 쓰고 싶다.

17쪽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散策)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52쪽 선물은 뇌물이나 구제품같이 목적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다. 구타여 목적을 찾는다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80쪽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적고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 과거를 다시 사는 데 있는가 한다.

137쪽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263쪽 세월은 충실히 살아온 사람에게 보람을 갖다 주는 데 그리 인색지 않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1. 8. 6. 00:59

쿠 형님께서 추천해 주신 책. 기억으로는 2010 동해 선교 마지막 날이었던 것 같다. 모든 선교 일정을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책을 꼭 읽어 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그래서 일단 읽을 책 목록에 한참 넣어 놓고, 겨울 즈음에 생각나서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뭔가 한 번만 읽기가 아쉬워서, 올해 짬짬히 또 읽었다. (그런데 내 글에는 쿠 형님이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이 책은 성경 속 인물들에 대해서 색다르게 접근해, 그들의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성경 속 인물들에 대해서 접근하고 있다. 사실 성경을 읽거나, 성경 속 인물들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 괜스리 주눅이 든다. 그래서 '어떻게 그 분들이랑, 감.히. 나를 비교할 수 있을까? 그분 들은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라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렇게 설명 하지 않는다. 성경 속 인물들도 처음엔 믿음이 별로 없었는데, 하나님의 열심으로, 점점 믿게 만드신다고 성경 인물들을 기존의 설명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일깨워 준다. 일례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고 주로 들어왔는데, 사실 믿음으로 떠난 게 아니라, 떠나고 나서 믿음이 생겼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가장 오해하고 있었던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가장 극적이었다. 이 책의 표현으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목덜미를 쥐고' 끌고 왔다고 했다. 그리하야, 결국엔 아브라함의 믿음을 완성 시키신 하나님은 고집이 있으신 분이라는 설명.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여러 성경 인물들에 대해, 그들은 처음 부터 위인이 아니었다고, 하나님의 열심으로 위인을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이 글을 쓰신 목사님의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인물들의 순서를 보면, 그들을 결국 하나님께서 끌고 오시고, 마지막에는 사랑하게 만드신다는 흐름이 있는 것 같다. 프랙탈 이론 - 똑똑한 척 - 과 유사한데, 성경 속 인물들의 면면을 바라볼 때에도 결국엔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시고, 구약의 인물에서, 신약의 인물들로 갈 수록 점점 사랑이 강조되는 것 같다.

 

책을 읽고서, 나 같은 사람도 희망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of course, 라는 답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나만을 보면 희망이 없다. 그래서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성경 속 인물들을 하나님의 열심으로, 결국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었듯이, 나 또한 하나님의 열심으로 점점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지면 좋겠다. 보통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고집도 영원하다고 한다. 인간의 고집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고집에는 비할 바 못된다. 그래서 항복 하라고 이 책은 말 하고 있다.

 

99쪽 구원은 내가 하나님께 요청하지 않았을 때, 이미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완성하시는 작업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구원 얻은자로서 완성의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는 실패하고 실수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신 일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119쪽 "아브라함은 일단 하나님으로부터 이삭을 바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불평하지 않았거 지체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까지 인도함을 받도록 지도하신 '하나님의 무한히 참으시고 인도하시는 열심 있는 손길'에 있습니다.


175쪽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을 감수하고라도, 뛰어 넘어서라도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만드시고야 말 고집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열심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대목에 설 때마다 놀라는 것입니다.
얍복 나루터에 선 야곱이 아니라 얍복 나루터에 세우신 하나님 앞에 선 우리의 입에서 오늘도 참으로 감사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183쪽 하나님이 한 인생을 무엇으로 만들어내실 것을 목적하시고, 어디를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삼아서 공부를 시키고 훈련을 시키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220쪽 하나님과 우리들의 고집 대 고집으로 붙을 싸움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고집이 센가하면 그의 별명이 '영원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231쪽 우리의 기도는 참으로 미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보고 무슨 기도든지 하라고 하십니다. 결재는 하나님 마음대로 하실 것이니까. 참 은혜요 축복입니다.


297쪽 기도는 능력의 도구가 아닙니다. 기도는 내가 누군지를 아는 것과 비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과 비례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열심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지은이 박영선 (새순출판사, 1992년)
상세보기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1. 7. 23. 00:55

 2009년에 1940년대편 1권을 읽고, 2년이 지나서야 2권을 읽었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산더미다. 90년대편까지 연대별로 3~4권의 책이 있는데, 장기 프로젝트로 읽어야 할 듯. 점점 장기 프로젝트가 늘어난다. 조정래 장편 소설 부터 시작해서...

 

 09년에 읽었을 땐, 왜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근본부터 알고 싶어서 읽게 되었었다. 요 근래 2권을 읽은 이유는 그냥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부터.

 

 40년 대는 격변의 시기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격변이 아닌 시기는 없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난세에 영웅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많았었나, 너무도 많은 이름들이 등장했다.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를 정도로.

 

 2권에서의 주인공은 1권에 이어서 이승만과 김구이다. 그 중에서도 김구에 대해 조명을 해보자면, 저자는 김구에 대한 평가에 '안전의 욕구'가 스며들었다고 한다. 사실 김구가 정말로 존경받아야 할 시기는 장덕수 암살의 배후자로 지목 받고, 경찰에 연행되어 씻을 수 없는 수모를 당한 후 부터였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소원이 통일이 아니었을 게다.

 

68쪽 " 장덕수가 암살되었을 때 이승만은 김구를 배후로 지적했고 그 후 김구는 경찰에 연행되어 씻을 수 없는 수모를 당한 후로 이승만과 헤어질 것을 결심했다. 그 후속 조치로 나온 것이 단정론의 철회와 남북협상론이었다. 따라서 김구의 남북 통일론의 배후에는 우국적 고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승만과의 애증의 문제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신복룡, 「한국사 새로 보기: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역사의 진실」재인용)

 

 1권을 읽고서, 김구가 그렇게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왜 만인의 존경의 대상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물론 내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도 그만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을테지만, 공이 과에 비해서 너무 크게 평가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승만에 대해서도. 건국의 아버지라고 추대받지만, 분단을 고착화 시킨 장본인. 그리고 본인의 권력을 위해 많은 힘 없는 국민을 죽인 장본인. 특히 그 당시의 종교라고 할 수 있었던 반공과 마녀라고 할 수 있었던 좌익, 빨갱이는 권력 유지에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제주 4.3 사건에 대한 텍스트를 읽을 때는,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해보았다. 국민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국가란 무엇인가. 4.3 사건에 대한 글을 읽을 때, 책을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아직도 나이드신 제주 도민들은 4.3 사건에 대해 기억할 때는, 언급하기 꺼려하고 몸서리를 친다고 한다. 참고로 국가의 4.3 사건 희생자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는 노무현 대통령이 했다고 한다.

 

 이 사건에 비할 바 못되지만, 최근 국민들에게 최루액을 사용한 물포를 사용하기도 했다. 국민에게 최루액을 사용해야만 하는 국가는 과연 선인가? 물론 국가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 WBC 등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지만, 국가의 유지, 혹은 권력의 유지를 위해 언제고 국민을 피해자로 만들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있다는 건 명심해야할 일인 것 같다. 이는 헌법의 풍경이라는 책을 읽을 때도 느꼈던 점.

 

 그런 점에서 욕망과 폭력의 제도화라는 소제목은 이 시기를 잘 압축해준다. 누구의 욕망을 위함이며,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동원되었던 폭력. 폭력은 당연히 이 시기에 좌익이라고 의심받던 사람들. 사실 단지 희생양이 필요했을 뿐이었기 때문에, 좌익이 아니었더라도 언제나 그 폭력이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역시 이 시기에는 친일파의 득세도 빼놓을 수 없다.

 

312쪽 해방정국에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친일파 위주의 기능적 효율성만을 따져선 안 될 이유가 전쟁 중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지배집단은 일제 시기에도 그랬던 것처럼 전쟁이 터지자 다시 해방 전으로 돌아가 자신과 자기 가족 챙기기에만 바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후 한국의 지배, 엘리트 집단의 전통으로 굳어져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게 된다.

 

 최근 역사 왜곡을 한다고 추정되는(?) 다큐멘터리가 이슈가 되었고, 반대편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에 페인트를 뿌리기도 했다. 아직도 역사는 우리를 지배한다. 매 시기의 역사적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도 쌓여가, 후대가 어떻게 이 시기를 기억할 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역사를 대하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2(개정판)(8·15해방에서6·25전야까지)
카테고리 역사/문화 > 한국사 > 근현대사 > 해방전후사/한국전쟁
지은이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6년)
상세보기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1. 6. 25. 01:26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가 있더라. 사실 베스트 셀러를 골라 읽는 내 모습이 싫어, 이 책 읽기를 미뤄왔다. 사실 소설 상실의 시대의 한 등장 인물이 했던 말.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을 읽지 않는다는. 나도 이 때 이게 기억에 오래 남았던 것 같다. 비록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시류에 따른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오래 남을 책을 읽고 싶어서 베스트 셀러에 쉬이 손을 옮기지 않으려고 노력 중. 어쨌든 이는 쓸데 없는 개똥 독서학이라고 해야할까?

 

 주저 하고 있다가, 이 책이 미국의 뉴욕 타임즈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한 번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괜한 개똥 독서학은 괜한 독서 사대주의(?)라고 해야할까? 여튼 그런 거라고 해두자. 한 번에 와르르 무너져, 줏대 없음을 인증하게 되었다. 물론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이야기 이지만.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그냥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고, 엄마가 생각나서, 엄마한테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전화를 살짝 더 자주하긴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는데 나는 그냥 가슴이 먹먹해지기만 하고, 왜 눈물이 안나는지, 눈물이 메마른 사람인 것 같다. 그래도 책에 눈물 한 방울은 떨어뜨려줬다. 중학생 때, 가시고기를 읽고, 또 딴 사람들도 이 책 보고 울었다니깐. 조창인의 가시고기, 그리고 김정현의 아버지라는 책을 읽은 이 후로 오랜만에 책 읽다가, 눈물 - 한 방울 - 흘린 것 같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가족이야기 인 것 같다. 위에 언급한 가시고기와 아버지라는 소설, 그리고 엄마를 부탁해 모두 가족의 부재 - 질병, 실종 - 로 인한 슬픔을 그린 소설이다. 시대가 각박해질 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의 사랑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있을 때는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 소중한 지 깨닫지 못한다는 것. 이게 안타깝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며, 익숙한 지명이 자주 등장해서 반가웠다. 숙대입구, 남영동, 남영역, 서울역 등. 이는 신경숙 작가의 전작 외딴방을 읽었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외딴방도 같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사실 외딴방에서도 엄마에 대한 아련한 미안함이라고 해야할까, 그런게 등장했었는데, 이 책에는 아련한 미안함이라기 보다는 이 세상에서 미안해 할 수 있는 가장 미안한 그런 정도의 미안함이 묻어 있다. 그리고 그건 신경숙 작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엄마에게 갖고 있는 미안함이다. 무조건적인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 그리고 그 무조건 적인 희생을 항상 엄마의 부재로 밖에 느끼지 못 한, 그리고 못 할 우리의 모습. 왜냐면, 엄마는 당연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외딴방 168쪽 부재의 느낌은 그렇게 엉뚱한 곳에서 오는 것 같아요. 특히 죽음으로 인한 부재는 처음엔 실감이 안 나죠. 점차 일상 속에서 그 사람이 없다, 다시 만날 수 없다, 라는 걸 깨달아가는 것 같아요. 생전에 그 사람이 즐겨 앉았으나 이젠 텅 비어 있는 의자나, 세숫비누를 놓는 위치, 양말을 신는 스타일, 그런 것으로 말이죠.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은 매 장마다, 관점이 다르다는 점.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 딸, 큰 아들, 남편, 그리고 마지막에는 엄마로 책의 관점이 바뀌면서, 각자의 삶 속에서 엄마의 부재를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에는 엄마의 이야기. 미안함, 고마움, 그리고 가슴에 묻어둘 수 밖에 없었던, 아무도 모를 비밀 이야기.

 

 나는 4개의 관점 중에, 남편의 관점에서, 엄마(부인)의 부재를 그린 부분이 가장 슬펐다. 잘 해 주지 못해 가장 미안할 사람이라서, 그러한 미안함이 서린 슬픔이 가슴을 여미었다.

 

 또 이 책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고향이 시골이라는 점과 신경숙이 그린 소설 속 가정의 모습이 우리 가정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골집의 모습과 부모님께서 서울에 올라오는 모습, 서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그런데 이렇게 신경숙만의 아름다운 문장과 우리 나라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가 어떻게 번역되었을까 궁금하다.


18쪽 모든 일은, 특히 나쁜 일은 발생하고 나면 되짚어지는 게 있다. 그때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싶은 것.

 

26쪽 가족이란 밥을 다 먹은 밥상을 치우지 않고 앞에 둔 채로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관계다.

 

40쪽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의 일과 자주 마주치는 것은 그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엄마를부탁해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신경숙 (창비, 2008년)
상세보기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1. 6. 21. 23:11

 시리즈로 나오는 책 중에, 매번 가슴 벅차 오름을 주는 책은 지식 ⓔ 가 유일한 것 같다.

 

 독서도 편식하는 편이고, 같은 작가의 책이라도 쉬이 질려 많이 못 읽 편인데, 매해 나오는 이 시리즈는 매번 기대감과 그에 상응하는 가슴 울림을 선사한다.

 

 짧은 영상과 다르게 텍스트의 힘은 상상하게 만드는 데에 있다. 그 책을 읽고 계속 생각하고, 상상하고, 느끼게 된다.

 

 느낀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위와 같은 이 책의 슬로건 대로라면, 읽는 내내 미친 존재감을 선사한다.

 

 이번 시즌의 주제는 진, 선, 미 이다.

 

 진리를 좇는 사람, 선을 위한 몸부림, 아름다운 사람들을 조명함으로 여러가지 생의 의미를 선사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채식하는 사자 리틀타이크. 사자가 채식을 한다고? 그것도 모자라 새끼 양들과 산책하는 등 목장의 다른 동물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그의 베프는 고양이 핑키. (혹시 이런 곳이 천국?이 아닐까 싶다.)

 

 처음 목장에 왔을 때에 심한 부상을 입었었다고 한다. 이를 불쌍히 여긴 목장 주인이 정성으로 치료해주었고, 목장의 다른 동물들과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리틀타이크는 피냄새를 강하게 거부했고, 우유에 피한방울을 섞었을 때 모두 토해낼 정도였다고 한다.

 

 맹수로 태어났지만, 삶의 궤적은 맹수와 거리가 멀었던 리틀타이크. 채식만 했지만, 건강은 양호했다고 한다.

 

 맹수의 본능은 길러지는 건지, 혹은 리틀타이크만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강자와 약자가 - 물론 힘의 논리로 판단컨데 - 한데 어우러져 사는 모습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이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빅 이슈를 다뤘던 Working Not Begging.  알고 나니까, 요즘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빅 이슈가 눈에 자주 띈더라. 홈리스가 이 잡지를 팔게 해 수익을 얻어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창간한 잡지이다.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까지 상륙.

 

 사실은 이러한 일들은 국가가 해야하는 일이지만, 국가가 하는 게 아니라 민간 단체가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반성 정도는 해야할 것 같다.


지식eSEASON6가슴으로읽는우리시대의지식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교양
지은이 EBS 지식채널 e (북하우스, 2011년)
상세보기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1. 5. 15. 00:41

앞으로 매해 12월 31일이면 생각날 책. 회복의 신앙. 신림동 헌책방에서 쿠형님께서 사준 책! 쿠 형님께서 볼 때, 나의 회복이 필요한 듯 해서 사주신 책인 것 같다. 사실 정말 회복이 절실하긴 하다.

 

아참. 헌책방에서 책을 산 건 이번에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산 것은 아니었지만.

 

먼저 이 책은 설교를 엮은 책이라서, 읽기에 편했다. 설교는 말 그대로, 말로 가르치는 건데, 순수하게 배우는 측면에서 읽기에 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신앙 생활의 basic을 알려주는 책인데, 정말 정말로 basic 인 것 같지만, 새롭게 읽히는 것은 우리네 설교가 basic보다는 삶의 지혜나 스킬을 알려주는 것에 치중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회복이라는 단어 자체는 원래 상태로 돌이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회복해야 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지금 우리는 원래의 상태에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깐 back to the basic!을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 좋을 듯 싶다. 책 한 권으로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만은.

 

 

31쪽 우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생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 믿음의 동기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과 더불어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54쪽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

 

앞에서 믿음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순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바뀌면 만나는 사람이 달라집니다. 그 때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순종한다는 것은, 바뀐 상황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을 대접하고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에 교회에서 팀개편이 되었는데, 이 말이 절실하게 느껴졌었다. 바뀐 팀원들에 대한 대접 그 자체가 순종! 이라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막상 또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게 내 성격상 맞지는 않는데. 그래도 개선하려고 노력 중.

 

94~95쪽 녹은 쇠에서 생겨납니다. 그런데 쇠에서부터 나온 녹이 결국은 쇠를 잡아먹습니다. 그래서 녹이 무서운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인간의 내부로부터 생성됩니다. 그런데 그 더러운 욕망이 인간을 파멸시킵니다.

 

116쪽 진리는 세상의 요란함 속에서 들리지 않습니다. 진리는 정적 속에서만, 고요 속에서만 들립니다. 그래서 침묵의 깊이만큼 우리의 영성은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133쪽 각자 자신에게 가만히 질문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오는 동안에 나의 인생에 분명한 획이 그어졌던 적이 있습니까? 예전에는 나 중심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선택해서 살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게 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된 시점이 분명히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불 같은 것이 나에게 떨어진 적이 없었다 할지라도,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할지라도, 나는 카톨릭 처치요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며 내게 불 같은 뭔가가 나에게 떨어진 적이 없었고,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듣지 못했었지지만, 그리고 그런 걸 바라기도 했었지만, 이 부분을 읽고 "아, 그래, 그런거구나. 나도 가능성이 있구나."라는 위안을 받았다.

 

162~163쪽 우리의 계획이 어그러질 때, 우리에게 뜻하지 않났던 상황이 일어날 때, 제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 상황 속에서 나를 다루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분에게 맡기십시오. 하나님에 의해 다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거룩한 씨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다루려고 하면 나는 하나님을 무당으로 만드는 사람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내가 다루어질 때, 우리의 삶은 날로 날로 성숙한 경지 속으로 몰입되어 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이 책의 저자인 목사님의 어머니께서, 목사님께 그의 기이한 빛을 본 적이 있는지 물어봤다는 내용이 있다. 사실 나도 기이한 빛을 본 적이 있는지, 생각을 잠깐 해봤더랬다. 목사님의 어머니는 80평생동안 그이한 빛을 못봐서, 기이한 빛을 알 수 있게 기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깨달은 것은 기이한 빛이 보이는 게 아니라는 답을 얻었는데, 구체적인 답은 책에! 그 답을 읽어서 알긴 했지만, 나만의 답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책을 덮고 해봤더랬다.


회복의신앙(믿음의글들171)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지은이 이재철 (홍성사, 2005년)
상세보기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1. 4. 17. 00:01

411쪽 "모든 방면의 기술 변화는 불가피하게 일부에겐 번영을, 일부에겐 퇴보를 초래할 것이다."

 

경제학자 저엘 머키르가 비평한 것이라고 한다. 이 책도 컨테이너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를 그린 책이다. 일부에겐 번영, 일부에겐 퇴보를 초래한 과정을 그린 책.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세계화에 기여한 바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크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읽고 보니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하나의 세계를 가능케 했겠구나, 절감하게 되었더랬다.

 

요즘 무역 말고도, 이런 저런 방면에서 컨테이너 박스가 많이 쓰이더라. 어떤 집은 컨테이너로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명박산성으로도 쓰였다. 그래도 컨터이너 박스의 주요 용처는 짐을 옮기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의 발전 과정은 비슷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컨테이너의 발명. 그리고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 노동자들의 파업. 하지만 결국 컨테이너의 유용성으로 인해, "선택"을 받게 되고, 베트남 전쟁 때, 컨테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표준화 전쟁. 항구 간의 경쟁. 하지만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컨테이너 물류 회사 때문에, 공급 과잉. 요율은 떨어지고, 다시 시장은 재편.

 

대략 이런 과정이 400페이지가 넘게 기술되어 있다. 사실 모든 역사의 과정을 축약해 놓은 느낌.

 

그리고 책이 왜 이렇게 안 읽혀지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만 그런가?' 해서, 인터넷 서점 서평을 검색해봤는데. 역시 번역의 문제. 내가 번역의 문제를 논하기에는 내공이 부족하지만, 너무 읽히지 않아서, 문제가 있긴 있나 보다 했더랬다.

 

이 책 읽느라 너무 힘들었다ㅠㅠ 내가 왜 읽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으나. 일단 읽기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쓸데 없는 사명감으로 다 읽긴 읽음.


THEBOX(더박스):컨테이너역사를통해본세계경제학
카테고리 경제/경영 > 각국경제 > 경제사
지은이 마크 레빈슨 (21세기북스, 2008년)
상세보기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1. 3. 27. 01:31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픈 청춘들이 많나 보다. 지나가다, 유심히 이 책을 찾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더라. 약간 푸르스름한 색깔이 있는 책이라면, 거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들고 있는 사람이다. 괜히 이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끼리 마주치면 민망할까봐. 나는 가방에 넣어 놓고 다녔다.

 

 현재 왜 내가 아픈지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물론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프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삶에서 청춘이라는 시기는 가장 싱그러운 시기이기도 하지만, 한 치 앞을 몰라, 발을 어디로 내딛어야 할지. 과연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길인지. 뒤 돌아 보기에도 버거운 그런 시간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사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책을 작년 이 맘 때 즈음에 봤더라면,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을 것 같다. 내가 언제부터 아팠냐면. 음. 나도 한 번에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취업이 안 될 때 부터, '과연 내가 이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인가. 나는 왜 태어난 건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 하게 되었다. 뭐 그 전에도 나름대로의 아픔이 있었겠지만, 아마도 내 인생에서 뭔가를 가장 내 뜻대로 하지 못했던 때 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게 또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하지만 그 시기에 정말 많은 위로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구나.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의외로 많구나 - 물론 나 혼자 하는 생각인지도 몰랐지만 - 하는 생각을 하니, 나름대로 감사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 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그 즈음에 했다. 그런데 어디서 나를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내게 이 책은 위로를 주었다. 아파도 된다고,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 같아. 아파도 된다는. 많은 청춘들이 공감할 만한, 사랑도, 취업도 모두다 쉬운게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아픈 사람이 많고, 이 책의 저자인 김란도 교수님도 청춘 때는 아팠다고. 그래서 괜찮다고. 특히 이 책을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쓴다는 마음으로 썼기 때문에, 더 절절하게 쓰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서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부분들.

 

 화살파종이배파 젊은이들 이야기. 사실 나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목표가 확고한 화살파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제 정말 막연한 시간에, 불확실성에 몸을 맡기는 종이배파로 바뀌었다. 화살파는 삶을 최단 경로로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 종이배파는 목표가 불확실해 이리저리 물 흐르는 대로 살려는 사람.

 

 사실은 마음만 급하다. 차라리 몸이 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괜스리 뒤쳐진 것 같아서 왠지 패배감을 느끼지만, 란도샘은 우리들에게 우리 인생의 신인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주연상을 노리라고 말하고 있다. 4월에 피는 꽃이 있듯, 9월, 10월에 피는 꽃도 있다고 하니. 위안이 되긴 한다.

 

 하지만 늦게 피는 꽃이 되기 위해서 지금 마냥 한가하게 있을 수는 없다. 이 책이 위로에서만  그쳤다면, 여운이 오래 남지는 않았을텐데. 격려하며 열심히 도전하라며, 호흡을 길게 가져가려며 독려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에, 좋은 책이 아니었나 싶다.

 

28쪽 열망은 힘이 세다.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열정과 보람을 기준으로 삶을 살 스 있게 하기 때문니다. 그렇게 좁고 험난한 길을 사서 가는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에 우뚝 서 엤다. 매 순간 가장 합리적으로 최적화 된 의사결정이 모인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열망의 힘 때문이다.

 

106쪽 인간관계는 쇼핑과 다르다. 인간관계란 좋은 파트너를 '선택' 하는 일이 아니라, 좋은 파트너가 '되는' 일이다. 친구 사이에서도 그렇고, 연인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만 '밑지지 않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관계란 호혜적인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도 밑지지 않겠다고 나오는 순간, 서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이 불가능해져 버린다.

 

156~157쪽 수많은 작심삼일이 존재하는 진짜 이유는 그 결의가 실은 오늘의 나태를 합리화하는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연습은 많은 '오늘'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내일은 없다. 그러므로 내일부터가 아니라, 오늘 조금이라도 한번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297쪽 사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첫 직장이 아니라 마지막 직장이다. 첫 한 방으로 승부를 결정지으려고 하지 말라. 마지막에 누가 웃을지 보자며, 호흡을 길게 가져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취업을 그대의 '거대 생애 계획(grand career plan)'의 틀 속에서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초반의 희생을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능성만 있다면 말이다.
 세상은 급변한다. 그리고 인생은 길다. 그 '감수'의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출발을 했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남은 수많은 인생의 걸음들을 어떻게 걸어 나갈 것인거에 있다.

 

 이 정도 까지만. 아직도 베스트 셀러인데,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프니까청춘이다인생앞에홀로선젊은그대에게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김난도 (쌤앤파커스, 2010년)
상세보기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1. 3. 24. 19:0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뭔가 우리 인간의 존재를 다룬 철학적인 책인 듯, 제목은 말하고 있지만, 사실 철학책은 아니다. 철학적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소설책이다.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다 보면, 인간에 대해서 한꺼풀 더 벗겨지는 그런 느낌이다. 예전 그의 소설 농담을 읽었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인간의 뭔가 밝히기 꺼려 하는 약한 그런 속마음을 그는 거부감이 덜 들도록 글을 쓰는 듯한, 개인적인 느낌이다.
 
 존재의 무게
 
 존재에도 무게가 있을까? 사실 무게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어떤 사물에 대해서 무겁다, 가볍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게를 재는 우리의 관념에는 보편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말 할 수는 없지만, 가볍고 무거운 것에 대한 이야기들은 모두 다 동의할 것이라는 가정을 먼저 해야 했을 것 같다.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한 우리의 존재. 이러한 제목의 책도 있더라지. 두꺼운 삶과 얇은 삶. 이 책에서는 일단 주인공인 테레사와 토마스를 통해 가볍고 무거운 삶을 조명한다.

 

 이 두 사람은 우연에 대해서도 상반된 생각을 갖고 있다. 우연을 불쾌히 여기는 남자, 우연의 주술성을 믿는 여자. 여러 우연은 그 두 사람을 만나게 했고, 그 우연은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에게 했던 <그래야만 한다!>는 필연으로 가장하게 만들었다. 우연히 만난 그 둘은 사랑을 하게 되고, 정말 가볍고 약한 테레사는 토마스라는 전 존재를 사랑하게 된다.

 

 토마스에게는 두 여인이 있다. 토마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토마스가 필요한 사람. 이 두 사람은 또한 삶에 대해 가볍고 무거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표상이다. 당연히 토마스의 사랑에는 가볍고, 무거운 사랑의 이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사랑의 무게뿐만 아니라, 처음엔 약하고 가벼웠던 테레사 또한 점점 토마스만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그의 참 삶을 살게 되는 것도 이 소설의 포인트가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또한 가볍고 무거운 것은 사람뿐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체코의 정치적인 상황을 비추어 볼 때, 밀란 쿤데라는 분명 체코의 참을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가벼움도, 이 책에 녹이지 않았나 싶다. 주인공인 토마스는 정치적인 선택에서도 그는 어찌할 수 없는 약자로, 신념에 대해서 비굴함을 강요받기도 한다.
 
257쪽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 사람의 내면에는 가볍고도, 무겁운 존재가 혼재해 있다는 것이 결론인 것 같다. 그렇게 참을 수 없이 존재가 가벼운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를 의지 하지 않고서는,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힘든 약하디 약한 우리의 모습, 그리고 나의 모습.

 

 이 책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유는 결말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인 테레사와 토마스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뒤엉킨 시간으로. 음 그러니깐 이러한 구성을 액자 구성이라고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 같다. 읽는 독자는 이미 그들의 죽음의 소식을 들어 알지만, 이야기 속의 이야기의 결말은 그들의 존재에서 끝나기 때문에, 먹먹했다.

 

 너무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서,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한번 더 읽고 싶은 책이다. 아오. 나도 리뷰 잘 쓰고 싶은데.

 

 여담인데, 예전에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의 야나체크 편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한 영화 프라하의 봄을 살짝 보여 준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야나체크의 음악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영화에서 사용된 야나체크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 때, 진행자가, 혹자는 이 영화를 보고, 참을 수 없는 흥분의 무거움이라고 이야기 한다고도 했다. 또한, (교양있는) 우리는 야한 영화를 볼 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난다.


11쪽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것을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의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15쪽 테레사와 함께 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것이 나을까?
 도무지 비교할 방법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초벌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초벌그림>이란 용어도 정확지 않은 것이, 초벌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밑그림,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란 초벌그림은 완성작 없는 밑그림, 무용한 초벌그림이다.
 토마스는 독일 속담을 되뇌었다.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 뿐인 것은 전혀 없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36쪽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59쪽 그런데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의해 좌우될수록 보다 중요하고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나 않을까?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보여졌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왔다는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가 그린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169쪽 영혼을 흥분시키는 것은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행동하는 육체에 의해 배신당하는 것, 그리고 이 배신을 목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40쪽 사랑은 메타포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 기타나라소설
지은이 밀란 쿤데라 (민음사, 2008년)
상세보기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