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2.12.17 즐거운 편지 - 황동규
  2. 2012.04.03 진눈깨비
  3. 2012.03.13 수선화에게 4
  4. 2012.03.10 봄빛
2012. 12. 17. 23:07

즐거운 편지               -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친한 형의 블로그에 갔다가 다시 읽게 된 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말을 담는 직업이 시인이 아닐까 싶다. 문학의 길을 걷는 사람을 일컫는 많은 단어 - 가령, 작가, 소설가 등 - 중에서 왜 하필 시인에게만, 인(人)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아마도, 시라는 장르가 인간의 감정선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고,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리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위의 시는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라는 시이다. 일명 국민 연애시. 학창시절 연상의 여인을 짝사랑 하며 지은 시란다. 전혀 즐거운 편지인 것 같지는 않지만, 그에게는 기다림조차 즐거움이었기에, 혹은 편지를 쓰며 생각이 난 그 연상의 여인이 생각나 웃음 짓지는 않았을까. 그리하여 그 편지는 즐거운 편지가 되었고.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4. 3. 22:18

진눈깨비

                                                                   기형도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참 많은 각오를 했었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  
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  
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  
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 했다, 진눈깨비


점심을 먹고, 기형도 시집을 펴서 읽는데, 진눈깨비가 나왔다. 그리고 창 밖에는 진눈깨비가 내렸다. 19년만에 4월의 서울 하늘에 내린 눈이란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3. 13. 17:17

종로 5가 근처에서 친한 형과 밥을 먹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수선화를 샀다. 감히 꽃에게 샀다는 표현을 하기에는 너무 미안하지만. 수선화를 보자마자, 정호승님의 수선화에게라는 시가 떠올라, 아니 살 수가 없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내가 수선화를 산 것도 외로움때문이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3. 10. 18:45
겨우 내 게을렀던 빛이
기여코 6시 넘어까지 길을 밝힌다

해가 길어진다
어두움이 짧아진다

고요한 어둠 속 평온함은 짧아지고
빛 속의 시끌벅적함은 길어진다

아 봄이여
왜 밤을 앗아가는가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