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7. 15:17
해태 타이거즈, 아~그 무시무시했던 이름이여!


[화제의 책]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빙그레 팬에게 해태란


1987년. 오로지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기 위해 가전기기까지 모조리 삼성제품으로 도배한 집안에서 유년기를 보낸 빙그레 이글스의 어린이 회원이었다. 반 아이들이 파란색 삼성 잠바를 입고, 포항 아톰즈 마크가 새겨진 축구공을 갖고 다닐 때 홀로 검정색에 주황색 독수리 마크가 아로새겨진 빙그레 잠바를 입고 학교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2년 후 가을, 빙그레의 어린이 회원은 " 꼴찌 응원해서 좋겠다 " 던 반 아이들을 실컷 약 올려준 후, 웃음을 빙그레 머금은 채 검정색에 주황색 독수리 마크가 아로새겨진 잠바를 입고, 마치 신성한 행사라도 치르듯 '우리집 라면'을 끓여 먹은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꽃게랑'을 손에 쥐고, 삼성전자에서 생산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정말 우승할 것'만 같았다. 마치 '진짜 타격의 신의 모습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듯 이강돈은 1회말, 다른 누구도 아닌 선동열의 공을 받아쳐 담장 한가운데를 넘겨버렸다. 그 무시무시하고 징글징글하고 너무나 너무나 짜증스러웠던 해태를, 이번에는 정말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어진 네 경기에서 빙그레는 내리 졌다. 도대체 이 놈의 해태라는 팀에는 무슨 천사라도 들러붙은 건지, 선동열을 넘어서도 문희수가 있었고, 김정수가 있었고, 김성한이 있었고, 장채근이 있었고, 한대화도 있었고, 이순철도 있었다. 팀 창단 후 92년까지 무려 네 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빙그레는, 그때마다 번번이 해태를 만나(92년은 롯데 자이언츠) 맥없이 패했다. 이건 정말이지, 호랑이와 독수리의 싸움이라기보다는 고양이와 병아리의 먹이사슬 관계였다.

▲선동열은, 정말 차원이 다른 선수였다. ⓒ선동열 팬사이트 선동열닷컴


해태를 본격적으로 증오하게 된 계기는 91년 한국시리즈였다. '시속 145㎞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투수(아마도 87년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 팬북에 이렇게 설명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송진우의,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한국시리즈 퍼펙트 기록달성이 해태 때문에 깨졌다. 빙그레는 역시나 맥없이 패했고 당연히 한국시리즈 우승은 해태의 차지였다.


그저 신생팀이라는 이유만으로 빙그레를 응원했던 마음 여린 초등학생에게 당시 해태란 '왜 인간은 타인을 증오하게 되는가'라는 따위의 철학적 고민을 안겨줬던 선동열을 보유한 팀이었고, '어떤 거짓말을 해야 떡볶이 사먹을 돈을 받아낼까'하는 따위를 고민하던 아이에게도 '프로야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력 평준화가 필수적'이라는, 가히 하일성 뺨칠 정도의 문제의식을 안겨줬던 팀이었다(아마도 80~90년대 빙그레 이글스와 마찬가지로 해태 앞에서는 호랑이 앞의 고양이었던 삼성 라이온즈나 꼴찌를 도맡았던 인천 야구 팬들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91년 한국시리즈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야구경기를 볼 힘을 잃어버린 초등학생은 검정색에 주황색 독수리 마크가 아로새겨진 잠바를 벗고 고향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스틸야드로 달려가 검정색에 붉은색 줄무늬가 수놓인 유니폼을 입고 뛰는 이기근과 나승화를 응원했다. 롯데와 OB의 한국시리즈가 열린 95년, 옛날 검정색에 주황색 독수리 마크가 아로새겨진 잠바를 입었던 까까머리 고등학생은 스틸야드에서 황선홍과 라데가 선보이는 환상적인 경기에 열광하고 있었다.


8~90년대 당시 해태란, 야구를 좋아하던 초등학생을 축구장으로 돌려보낼 정도의 위력을 가진 팀이었다. 해태와 포스트시즌에서 맞붙는 팀의 팬에게는 축제를 고통의 나날로 가득 채워준 증오의 대상이었다.


해태 타이거즈란

▲ <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 김은식 지음(이상미디어). ⓒ프레시안


<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 은 아마도 해태를 마주한 빙그레 팬의 한숨 정도는 안드로메다 너머로 날려버릴 정도로 한을 쌓아왔음이 틀림없는, 삼미-청보-태평양으로 이어지는 인천 야구 팬이 쓴 책이다. 저자 김은식은 CBS 라디오 < 파워스포츠 > 에서 80~90년대 한국 프로야구 스타들을 재조명한 '야구의 추억'을 방송했고, 인터넷 포털에 같은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묶어 역시 같은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제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언급돼 있지만 그는 군사독재에서 민주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대로 이어지는 20세기말 질곡의 한국사를 설명하는 하나의 코드에 불과하다. 어디까지나 책의 중심은 과거 한국프로야구 최강의 팀이었던, 보다 정확하게는 책에 나온 설명대로 '최강자였지만 약자의 방식으로 싸웠고 승자였지만 패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팀' 해태 타이거즈다.


97년까지 해태의 홈 유니폼이었던 그 촌스러운 붉은색 상의-검정색 하의 콤비는 제대로 된 팀 구성원도 채우지 못하고 출범했음에도(82년 출범당시 해태 타이거즈 선수는 14명에 불과해 김성한이 선발투수로도 뛰어야 했다. 그는 프로야구 첫 시즌 10승을 거뒀다) 강자들을 차례로 거꾸러뜨린 악바리 야구의 상징이었다.


책의 설명을 빌리자면 아마도 세계 정치사를 통틀어도 그만큼 애절하고 처연한 별명이 없을 '인동초' 김대중과 마찬가지로, 해태의 촌스러운 유니폼은 80~90년대 영남 정권 하에 이어진 온 국민적 '왕따'에 숨죽이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나가야만 했던 호남 사람들의 설움과 한의 상징이었다. 해태의, 정말 노골적으로 새빨갛던 상의와 칙칙한 검정색 하의로 이뤄진 유니폼은 96년 당시 정부적 차원에서 부르짖던 '선진사회'와는 담을 쌓았으나, 그러면서도 기아에 허덕이던 빈국을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주역이었던 가난한 노동자들이 흘린 땀의 상징이었다.


책은 이처럼 '최강이면서도 약자들의 팀이었던' 역설적 팀 해태 타이거즈를 핵심 키워드로, 또 해태와 함께 광주의 눈물을 상징하던 김대중을 부수적 키워드로 삼아 민주화와 군부독재, 경제 선진화와 외환위기라는 모순된 시공간으로 존재했던 8~90년대 한국사회를 차근차근 넘어간다. 따라서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최강팀 해태가 승리한 날 경기장에 너무도 구슬프게 울려퍼지던 < 목포의 눈물 > 이 해태의 응원가가 될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해태는 농촌의 부모가 소 팔아 키운 돈으로 공부한 시골학생이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는 게 가능했던, '민주택시운전기사'들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초들이 민주화의 열망을 가졌고 실제 이를 이뤄낼 수 있었던 시절을 상징하는 팀이었던 셈이다. 해태는 그 모순된 시절의 시대정신이었다.


검정색에 주황색 독수리 마크가 아로새겨진 잠바를 입고 다니던 초등학생이 목놓아 응원했음에도 당시 시대정신을 품지 못한 빙그레가 해태를 넘어설 수 없었음은 따라서 당연했다. 고양이와 병아리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직접 흘린 피로 민주화를 이뤄낸 대한민국 서민과 독재정권의 싸움이랄 정도로 승부가 빤했기 때문이다.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 이선희 등 그 시절에도 최고 스타를 보유했던 삼성이나 '왕년에 미국을 주름잡았다던' 박철순을 거느렸던 OB, 일본야구를 평정했다던 백인천을 가졌던 MBC마저 해태를 넘어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오고 해태는 가고


그랬던 해태의 영광의 시절은 97년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공교롭게도 98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외환통장이 이미 바닥난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차관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됐다.


서민 신화의 끝이요,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 징글맞던 해태 야구가 더 이상은 먹히지 않는 시대가 열렸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공교롭게도 프로야구 8개 구단 중 가장 먼저 쓰러진 두 구단이 바로 호남을 연고지역으로 삼았던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였다.


모기업이 부도나면서 해태는 쌍방울과 마찬가지로 주축선수를 모조리 타구단에 팔아넘기는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 김응용 감독의 말처럼 " 동열이도 가고 종범이도 갔다 " . 처음부터 돈 먹는 하마로 출발했던 한국프로야구 시스템에서 열악한 재정 상태에 놓인 해태의 근성은 더 이상 발휘되지 못했다.


정말 역설적이게도 호남의 상징 김대중이 위기 극복의 기법으로 퍼뜨린 신자유주의 세례를 호남 서민들은 버텨내지 못했다. 아니, 한국의 어떤 서민도 견뎌내지 못했다. 그렇게 '악으로 깡으로' 싸우던 서민의 시대가 저물면서 해태는 사라졌고, 뒤를 이은 기아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해버렸다.


호랑이가 사라진 왕좌는 외환위기를 견뎌낸 다른 공룡들의 차지였다. 선진야구 시스템이라던 자유계약선수제도(FA)가 도입되면서 돈다발을 가진 팀이 곧 승리를 독식하는 시대가 됐다. 빙그레 못지않게 해태 앞에서는 비운의 팀이었던 삼성은 돈으로 스타들을 쓸어담으며 21세기 초 최강팀이 됐다. 역시나 역설적이게도 삼성의 전성기는 옛 해태 전성기 주축을 이뤘던 김응용, 선동열, 한대화, 조계현, 임창용 등이 열었다.


심지어 마치 고양이 앞의 병아리만 같았던 빙그레마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한화의 이름으로). 그러나 기아는 외환위기 사태 이후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다. 그 새빨갛던 홈 유니폼이 원정 유니폼으로 바뀐 것만큼이나 극적이었다.


그 옛날 검정색 바탕에 주황색 독수리 마크가 아로새겨진 잠바를 입고 다니던 초등학생은 외환위기 직후 대학생이 됐다. 무시무시함의 상징이었던 그 새빨간 유니폼을 마치 한 때는 지구를 호령했으나 이제는 화석으로 변한 공룡의 뼈를 보듯 가볍게 넘길 정도로 기억이 희미해진 대학생은 성인식을 치르며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했다. 어느새 놀라우리만치 세련된 경기장, 호쾌한 플레이가 넘실대는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 메이저리그의 팬이 된 채로.


퇴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다 읽은 후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켰다. 한 스포츠 케이블 방송에서 기아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중계됐다. 마치 텍사스 레인저스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모자를 눌러쓴 채, 새빨간 원정 유니폼을 입은 서재응이 호투했으나 결국 기아는 패했다. 끝내기 안타를 친 강민호가 클로즈업된 뒤로 덕아웃에서 고개 숙인 기아 선수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최강이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가장 약한 자들의 영웅을 추억하게 된 것이. 그 무시무시했던 해태를 다시 떠올린 것이.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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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꼭 본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맛있는 단어 & 문장2009. 4. 12. 23:20
113쪽 은빛연어는 그 인간들 가까이로 헤엄쳐 가서 은빛 몸뚱어리를 실컷 보여주고 싶었다. 카메라가 시간을 찍는 기계라면, 자기 자신이 카메라 속으로 들어가서 정지된 시간이 되고 싶었다.

 카메라는 시간을 찍는 기계. 그리고 사진은 정지된 시간을 나타내는 것.

 이 문장을 읽었을 때, 갑자기 시간을 찍고 싶었고, 나 또한 정지된 시간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카메라가 없다는. 중국에 있는 동생에게 빌려줬는데, 이 문장을 본 순간 만큼은 엄청난 후회가.

 평소에 카메라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에, 수중에 있던 아껴놓았던 돈을 대방출해 작년 이맘 때 즈음에, 큰 맘 먹고 구입했었는데, 갑자기 생각나네, 낯선 이국 땅에서 잘 지내려나. 음. 어차피 요즘 대부분 카메라의 고향은 중국이라서, 어떻게 보면, 카메라의 입장에서는 환향(還鄕)이겠지만.



<자료출처 : 디지털타임즈>


 이 카메라를 사려고, 약 일주일 정도를 고민했었더랬다. 친구의 적극 추천에 따라, 이 카메라를 샀다. 솔직히 오래 쓰지는 않았고, 이 카메라에 대해서 공부를 하지도 않아서. 그냥 사진만 찍었더랬다. 다시 한국으로 온다면, 이 카메라 공부를 해서, 격하게 아끼며 사용해야겠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09. 4. 11. 14:39

# 1 요즘 어디를 가도 만개한 벚꽃을 볼 수가 있다. 이제 봄인가 보다. 올해도 봄이 오긴 왔구나.


# 2 며칠 전, 학교 점심 방송시간에, 이 노래가 흘러 나왔다. 나카시마 미카의 櫻色舞うころ(연분홍빛 춤출 무렵)이 흘러 나왔다. 포지션이 리메이크했던 하루라는 곡의 원곡으로 유명하다. 어쨌든, 12시에 시작하는 강의 가운데 약 4분이었던가, 이 곡이 흘러 나왔는데, 도무지 화폐경제학 강의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선곡 센스는 좋았지만, 그 센스 덕분에 강의시간의 일부분을 놓쳤다. 그래도, 봄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 3 전국 곳곳에 연분홍빛이 춤추고 있다. 혹자는 일제시대의 잔재라고 벛꽃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성행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예쁜건 예쁜거다.


# 4 음. 올해는 여의도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벛꽃 축제에 갈까 생각 했었는데, 음. 시험의 압박이. 음. 압박은 있지만, 공부는 안된다는.

# 5 어쨌든, 봄은 연분홍빛 벛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櫻色舞うころ(연분홍빛 춤출 무렵)
 
櫻色舞うころ 私はひとり
벚꽃이 춤추며 떨어질 때, 나는 홀로
押さえきれぬ胸に 立ち盡くしてた
완전히 억누를 수 없는 마음으로 계속 서 있었어요 (봄)

若葉色 萌ゆれば 想いあふれて
새싹이 싹트니 그대를 향한 마음이 흘러넘쳐
すべてを見失い あなたへ流れた
모든 걸 놓치고, 그대에게로 흘러갔죠 (여름)

めぐる木木たちだけが ふたりを見ていたの
시간이 흘러 변해가는 나무들만이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ひとところにはとどまれないとそっとおしえながら
같은 곳에서는 머무를 수 없다고 살며시 가르쳐주며…

枯葉色 染めてく あなたのとなり
나무들이 마른 잎 빛으로 물들어 갈 때, 그대의 곁에 있어요
移ろいゆく日日が 愛へと變わるの
변해가는 날들이 사랑으로 변해요… (가을)

どうか木木たちだけは この想いを守って
부디 나무들만은 이 마음을 지켜주길!
もう一度だけふたりの上で そっと葉を搖らして
다시 한번만, 우리 둘의 머리 위에서 살며시 나뭇잎을 흔들기를…

やがて季節はふたりを どこへ運んでゆくの
결국 계절은 우리 둘을 어느 곳으로 데려 가나요?
ただひとつだけ 確かな今を そっと抱きしめていた
단지 하나뿐인 확실한 지금을 살짝 껴안고 있었어요

雪化粧まとえば 想いはぐれて
눈으로 세상이 하얗게 되면, 그대를 생각할 기회를 놓쳐요
足跡も消してく 音無きいたずら
발자국도 지워가는, 소리 없는 장난… (겨울)

どうか木木たちだけは この想いを守って
부디 나무들만은 이 마음을 지켜주길!
「永遠」の中ふたりとどめて ここに生き續けて
「영원」속에서 우리 둘을 머물러 있게 해주기를… 여기에 계속 살게 해주길…

めぐる木木たちだけが ふたりを見ていたの
시간이 흘러 변해가는 나무들만이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ひとところにはとどまれないとそっとおしえながら
같은 곳에서는 머무를 수 없다고 살며시 가르쳐주며…

櫻色舞うころ 私はひとり
벚꽃이 춤추며 떨어질 때, 나는 홀로
あなたへの想いを かみしめたまま
그대를 향한 마음을 깊이 생각하며
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4. 6. 00:09


 이 책을 덮고나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책에는 없을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의 결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때 할 일이 없었을 때 네이버의 기사를 섭렵(?)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으니, 프랑스의 한 철학자가 불치의 병에 걸린 자신의 부인과 동반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쇼킹한 뉴스여서, 잠시동안 생각을 했었더랬다.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음. 나 솔직히 이 사람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어떻게 알게되었냐면, 예전에 매일경제 신문에서의 신간소개 코너에서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읽고 싶어서, 책 보관함에 계속 넣어놨다. 오래 묵은 책들을 찾아보니, 마침 이 책이 보였다. 그리고 머지 않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음. 이 사람 철학자라는데, 내가 아는 게 없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앙드레 고르와 그의 아내 도린은 영화같은 첫 만남을 가졌다. 도린을 보고 첫눈에 반한 고르는 그녀에게 춤을 청한다. 그녀의 대답은 "와이 낫!" 이었다. 그렇게 둘의 첫만남이 시작되었고 그들의 사랑도 시작되었다.
 
12쪽 쾌락이라는건 상대에게서 가져오거나 상대에게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 덕에 알았습니다. 쾌락은 자신을 내어주면서 또 상대가 자신을 내어주게 만드는 것이더군요.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었습니다.
 
21쪽 우리는 둘 다 불안과 갈등의 자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보호해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서로가 서로에게 힘입어, 이 세상에서 있을 자리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애초부터 우리에겐 없던 자리를 말입니다.
 
30쪽 만약 내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면, 나는 결코 세상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입 밖에 낼 줄 몰랐던 말들을 나는 찾아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함께했으면 한다는 마음을 당신에게 전할 수 있는 말들을.
 
 고르와 도린의 사랑은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 사랑이 아닌, 서로를 채워주는,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했다. 즉,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나'인 서로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랑 말이다.
 
 둘의 관계는 둘 만의 사적인 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공적인 즉, 고르의 일에서도 함께 했었다. 도린은 고르가 글을 쓰는데, 조언도 해주었고, 독려도 해주었다. 때로는 고르가 미처 깨우치지 못한 것들도 알려주기도 한다.
 
52~53쪽 나는 내 생각을 구조화하기 위해 이론이 필요했고, 구조화되지 않은 생각은 항상 경험주의와 무의미 속에 빠져버릴 위험이 있다고 당신에게 반박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대답했지요. 이론이란 언제든 현실의 생동하는 복잡성을 인식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53쪽 직관도 감동도 없다면 지성도 없고 의미도 없음을 당신은 인지과학을 공부하지 않고도 알았던 것입니다. 당신의 판단은 전달될 수는 있지만 증명해 보일 수는 없는, 그러나 당신이 몸소 겪어 얻은 확신의 토대 위에 서 있었습니다. 이런 판단의 권위 - 그것을 '윤리'라고 합시다 - 는 논쟁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생기는 것입니다. 반면 이론적 판단의 권위는 논쟁으로 설득시키지 못하면 무너지고 맙니다.
 
72쪽 당신은 내게 삶의 풍부함을 알게 해주었고, 나는 당신을 통해 삶을 사랑했습니다. 아니, 삶을 통해 당신을 사랑한 건지도 모르겠군요.
 
 아름다운 고르와 도린의 사랑이 항상 평화로운 것은 아니었다. 잘못된 치료로 거미막염이라는 병에 걸리게 된다. 사실 거미막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책에서 잠깐 잠깐 고통스러워 하는 도린의 모습을 볼 때,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병이라고 짐작을 할 수 있었다.
 
79쪽 우리 둘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고 믿고 싶었는데, 당신만 혼자 그런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고르와 도린은 이를 계기로 생태주의와 기술비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75~76쪽 즉 산업의 팽창은 사회를 거대한 기계로 바꾸어놓는데, 그 기계는 인간을 해방하기는커녕 인간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공간을 제한하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적과 그 추구 방식을 결정해버린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거대한 기계의 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을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온갖 서비스가 동시에 전문화함에 따라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책임지고, 자기 요구를 스스로 결정하고 충족시키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직업들'에 종속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읽고 심하게 공감을 했었다. 무엇이 본질인지 한번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책의 후반부이다. 후반부를 읽을 때에는 뭔가 동반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문장들이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89~90쪽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실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왜 그는 그리고 그녀는 동반자살을 선택했을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랑을 해보지 않아서 인가보다.
 
87쪽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본질인 단 하나의 일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썼지요. 당신이 본질이니 그 본질이 없으면 나머지는 당신이 있기에 중요해 보였던 것들마저도, 모두 의미와 중요성을 잃어버립니다.
 
 서로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 앙드레 고르는 도린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큰 상실감, 즉 삶의 본질의 상실감을 느끼고서, 결국 삶을 마감했으리라고.
 
 이 책의 뒷 표지에, 김훈작가가, 짧은 서평을 쓴게 있는데, 마지막 줄에 아, 나는 언제 이런 사랑 한번 해보나. 읽고서, 나도 똑같이 마음속으로 따라해봤다.
 
 음. 두 번 읽었다. 처음에는 지하철에서 통학하면서 읽었었고, 두 번째는 혼자 영화를 보러 갔었는데, 시간이 남아, 영화를 기다리며, 이 책을 읽었었다. 처음 읽을 때는 사실, 그냥 텍스트만 읽고 간 느낌이었는데, 두 번째 읽을 때는 뭔가 가슴에 더 와닿는 느낌이었다. 먹먹했고, 가슴 한 켠이, 살짝 아렸다.

D에게 보낸 편지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앙드레 고르 (학고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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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09. 4. 2. 23:25

 요즘 조금 피곤한 생활을 했더니, 눈 밑에 다크써클이 생길 조짐이 보인다. 음. 왜 피곤한 생활을 하냐면, 열심히 생활해서라기 보다는 '밤에 잠이 안와서' 이다.( 이건 뭐?) 외로움에 잠을 못자는 건가? 이건 아니다. 그냥 잠이 안온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보면. 요즘엔 몸은 굉장히 곤한데도, 침대에 누우면 잠이 오질 않는다. 이런일이 최근 일주일동안 반복 되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 몰린 피로를 한꺼번에 해소하느라, 잠을 미친 듯이(?) 잤는데, (아니. 죽은 듯이가 맞겠구나.) 그 이후로, 밤에 제시간에 잠을 못자고 있다. 그래도 일어나는 시간은 매일 같은데.

 주위에 보면, 만성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크써클이 눈가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다크써클은 하나의 콤플렉스일 수도 있다. 다크써클이 생기는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한가지로 수면부족이 있다. 생각해보니, 내 주위에 다크써클이 떠나지 않거나, 짙은 사람들은, 뭔가 자신의 일들을 굉장히 열심히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냥 내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서지만.
 
 그러므로 다크써클에서 아름다움을 찾자면 열심히 일한 당신에게만 생기는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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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단어 & 문장2009. 4. 2. 08:39
- 앙드레 고르의 <D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37쪽 글쓰는 사람의 첫째 목적은 그가 쓰는 글의 내용이 아닙니다. 그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쓴다는 행위입니다. 쓴다는 것은 세상과 자기 자신을 문학적 구상의 소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다루는 '주제'에 대한 문제는 그 다음에야 제기되는 것입니다. 주제는 필요조건입니다. 글을 만들어 낼 때 부차적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지요. 글을 쓸 수만 있게 해준다면 어떤 주제든 좋은 주제입니다.

52~53쪽 나는 내 생각을 구조화하기 위해 이론이 필요했고, 구조화되지 않은 생각은 항상 경험주의와 무의미 속에 빠져버릴 위험이 있다고 당신에게 반박했습니다. 그러면 다인은 대답했지요. 이론이란 언제든 현실의 생동하는 복잡성을 인식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Posted by 데이드리머
일상2009. 4. 1. 00:00
 드디어 야구 시즌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야구팬으로써 어떻게 겨울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올해는 WBC로 인해 야구시즌이 앞당겨진 느낌이라서 좋긴 하지만, 그래도 프로야구에 비하지는 못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WBC 국가대표팀 보다, 우리 KIA 타이거즈가 훨씬 좋다는 말씀. 지난 WBC 중계를 볼 때도, KIA 타이거즈 소속인 윤석민 선수나, 이용규 선수가 선발로 나오지 않으면 중계를 보지 않거나, 긴장감을 갖지 않은 채로 중계를 보곤 했다. 다행히 본선에서는 이용규 선수는 붙박이 1번 타자로, 그리고 윤석민 선수는 준결승전 선발 투수로 출전해, 흐뭇한 기분으로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윤석민, 이용규 선수는 신인 시절부터 유심히 지켜보던 선수였기 때문에 KIA 내의 다른 선수에 비해 애정이 더 크기 때문이다.

 윤석민 선수는 석민 어린이로 불리우는데, 유망한 신인 투수들이 많다는 KIA 투수진 가운데 신인 때부터, 아마도 유일하게 스트라이크와 볼을 잘 컨트롤 할 수 있었던 선수로 기억된다. 음. 다른 유망한 선수들도 많았지만, 모두 제구력이 안 좋았던 것 같다.  윤석민 선수 지명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KIA는 2004년 신인 2차 지명 때 원래 지금은 한국 최고의 소방수로 불리오는 오승환 선수를 1순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하지만 앞의 순서에 있는 삼성이 오승환을 먼저 지명해서 허를 찔렸다고 한다. 하지만 KIA에게는 윤석민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이제 윤석민 선수는 KIA의 보물이 되었다. 그리고 이용규 대해서 쓰자면, 일단 순수 호랑이 혈통은 아니다. LG에서 홍현우 선수와 같이 KIA로 트레이드 되어 왔다. 그리고 KIA에서 LG로 간 선수는(소소경, 이원식) 감감 무소식이다. 이용규 선수 트레이드를 놓고 많은 네티즌들이, 당시 이순철 전 LG 독이 선수시절 친정팀인 KIA에 보낸 선물이라고 표현하는데, 음. 이건 이용규 선수가 KIA에 와서 성공했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쨌든 트레이드의 승자는 분명 KIA이다. 장기적으로 이종범 선수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를 얻는 행운을 얻었으니. 음. 그런데 이순철 감독의 입장에서는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가 3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을 트레이드를 해서 다른 약점을 보완하는게 최선이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KIA가 선수를 보는 능력이 다른 팀보다 - 적어도 LG 보다는 -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단지 KIA 팬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거지만.

 어쨌든, 이제 개막전이 며칠 안남았다. 우리 KIA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 지난 스프링캠프에서 무럭무럭 성장한 아기 호랑이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특히 작년 1차 1번 지명으로 입단한 안치홍과,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최단신인 꼬꼬마빈 김선빈, 그리고 KIA 좌완 투수의 희망 양현종, 전병두를 SK로 보내고 지킬정도로 장래성이 높게 평가 받았던 곽정철 정도가 떠오른다. 아참, 그리고 작년 KIA 마운드의 샛별로 갑작스레 떠오른 이범석과 차세대 거포로 기대받고 있는 나지완을 빠뜨릴 뻔했다. 신인급 선수 뿐만 아니라 EX-메이저리커인 서재응과 최희섭의 부활도 기대된다. 올해 KIA 타이거즈의 성패가 이 두선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이니다. 그리고 작년, (강요된) 은퇴설로 고생했던 KIA의 정신적 지주인 이종범 선수의 회춘(?) 또한 기대되는 바이다. 음. 그리고 작년에 조금 부진한 성적을 올렸던 장성호, 작년 시즌 초 타율이 한 때 칠 푼 정도밖에 안되서 네이버 문자중계 댓글에서 칠푼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한남자 김종국, 파이팅 넘치는 최경환, 북한 용병 김원섭, 갑상선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이현곤, 안방마님 김상훈, 작년에 뜻하지 않게(?) 기량이 급성장한 차일목도 떠오른다.

 그리고 부상과 관계된 선수들로는, 오랜 기간 동안 계속 거듭된 고된 재활 훈련을 이겨내고 복귀한지 올해 3년차(맞나?) 이대진, 병살을 많이 쳐서 팬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한 홍세환, 한 때 KIA의 원투 펀치였던 강철민도 떠오른다. (언제 복귀할런지는 잘 모르겠다.)

 음. 지역주의 그런 것 안좋아하지만, 야구에서 만큼은 예외인 것 같다. 어쩌면 나는 KIA 팬이 된게 아니라, KIA 팬으로 태어났다고 해야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이건 다른 지역 팀의 팬들도 마찬가지일 터인데, 아마 부산 지역 사람들 또한 롯데의 팬이 된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롯데의 팬이 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KIA팬으로써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과거 해태시절에는 항상 우승후보였는데, 최근에는 가을 잔치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한다. KIA 팬으로써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올해 어떤 해설자는 KIA가 8개구단 가운데 2약에 해당된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올 시즌을 위해 투수 용병 2명을 영입한 것 외에 뚜렷한 전력보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보다 더 나은 성적을 위해서는 최희섭과 서재응의 부활과 어린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기다리는 것 밖에 전력 상승 요인이 없다. 한편으로는 작년과 비교해서 뚜렷한 전력 이탈이 없다는 것은 살짝 위안이 되기도 한다.

 최근 약 3년 동안 야구중계를 원없이 봤던 것 같다. 특히 작년에는 전경기 출석(?)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정도로 야구 시청을 했던 것 같다. 야구를 못 볼 때는 친구한테 야구 실황을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음. 그 친구와는 상부상조하는 사이라서, 그 친구가 야구를 못 볼 경우에는 내가 알려주기도 한다.) 작년에는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거의 모든 경기를 중계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끔 인기 없는 팀의 경기는 중계를 안하기도해서 전경기는 아니다.) 그리고 딱히 할일이 없었고, - 사실 없었던 것은 아니다. - 할 일이 있더라도 야구 생각에 할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야구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도 TV를 켜서 중계를 보거나, 네이버에서 중계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음. 지는 경기가 너무 많아서, 야구를 보면 볼 수록 짜증이 늘어나지만, 그래도 야구의 인력(引力)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른바 야구 인력의 법칙이라고 해야겠다. 덕분에 야구 지식은 부끄럽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낫다고 자부할 수 있다. (자랑할 게 없어서) 음. 어쨌든 올해는 아마 작년처럼 야구를 보기가 힘들 것 같다.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그걸로 만족해야지. 아쉽지만.

 며칠 뒤면 잠실 구장에서 개막전이 열린다. 작년 순위가 최종 결정되자마자, 계산(?)을 해보니, KIA와 두산의 경기가 잠실에서 있어서 엄청 반가웠었다. 올해부터는 서울에서 지내게 되어서, 서울 올라가면 꼭 개막전 보러 가야지 하고 다짐 했었는데(음. 그리고 또 한가지 서울가면 꼬옥 하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그것은 TV, 책을 말하다 방청하는 것이었다. 올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 누군가의 압력 때문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 우습게도 신년특집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결국 둘 다 물건나 갔다. 야구 개막식날 팔자에도 없는 산행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아쉽다. 음. 그나저나 앞으로는 꼭 4강 들어서 광주에서 개막전을 했으면 좋겠다.

 음. 여기까지가 야구 개막전에 못가게 되서 아쉬움에 써내려간 변이다. 야구 감상은 다음 기회에.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09. 3. 29. 10:42

 오늘 씻으면서 문득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사실 어제 조금 과음을 했는데, 적어도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많이 마신 듯 하다. 다른 사람들 기준으로 봤을 때, 내가 마신 양은 미미한(?) 수준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과음한 덕분에, 속이 조금 안좋고, 머리도 살짝 "띵"하다. 새벽 1시쯤에 잠을 자서, 6시쯤에 일어났다. 앞으로 다음 날 일찍일어나야 할 일이 생기면 술을 많이 마시고 볼일이다. 음. 생각해보니, 어제 2차를 간다고 했는데, 안가고 몰래 빠져나오길 잘한 것 같다.

 술자리를 별로 안좋아해서, 술자리에서 술을 안마시거나, 술자리에서 빠져나온다거나 하는 일에는 약간 도가 튼것 같다. 사람들은 왜 맛없는 것을 먹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마시고 나면 속이 쓰리기도 하고, 머리 아프기도 하지만, 항상 이렇게 말을 하는 나도 마시기는 하니,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적어도 나에게는 술을 마시고 이내 몇 잔 후면 효용이 마이너스가(마실 수록 고통이 되는) 된다. 음.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왠지 즐거운 술자리다 싶으면 더 마시게 되기는 하지만, 취하도록 마시지는 않는다.

 음. 술자리에 가게되면 항상 나오는 질문은, 주량이 어떻게 되느냐이다. 나의 경우는 술을 취할 때 까지 마신 적이 없어서, 주량을 잘 모른다. 술을 잘 마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정도 되면 스스로 자제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왠지 술에 취해 비이성적으로 바뀌는 - 정신줄을 놓는 -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나도 내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기는 하다. 어쨌든 주량 얘기를 하면 은근히 자존심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내가 술을 안좋아 한다고 하면 누군가는 그러면 앞으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려고 그러느냐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 얘기를 조금 확대 보자면 '사회생활=술자리', 즉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렇다면 나는 사회생활 부적격자인 것 같다. 

 언젠가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해봤다. 누군가와 밥을 먹으러 가면, 당연하다는 듯이 술을 시킨다. 그리고 어떤 모임을 하게 될 때 호프집을 가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밥을 먹을 때 술을 마시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그리고 모임을 가질 때 호프집으로 가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인가? 뭔가 나에게는 어색한 행동이다. 내가 술을 시킨다거나, 호프집에 가자고 주동하는 건.
 
 일본 드라마를 보게되면, 유독 캔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여러명이서 마신다기보다는 주로 하루를 마무리 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 같다. 내가 그 중에서 멋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별거 아니지만, 롱 베케이션에서 기무라 타쿠야가 밤에 집에 들어와서, 티브이로 야구를 보며 캔맥주를 마시는 장면이다. 왜 이게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 음. 누가 보면 변태인 줄 알겠다. 

 그리고 최근에 본 호타루의 빛이라는 일본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회사일을 마치고 나서, 집에 들어가 마루에 누워 맥주를 마시는 장면도 뭔가 구미를 당겼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기억에 남는다. 어느 날에는 오랜만에 평소에 좋아했던 남자와 데이트 약속이 있었는데, "데이트. 데이트. 데이트" 하고 혼잣말을 하고 다니다가, 일을 마치고 퇴근시간에는 어느새 "비루. 비루. 비루"로 바뀌어서, 자기도 모르게 데이트 약속장소로 안가고, 집으로 가버린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엄청 웃었었는데.

 아마 내가 일본 드라마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는, 혼자 마시는, 하루를 정리하는 뭔가 특별한 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나만의 생각일 지도 모르지만. 아. 그런데 사람들은 왜 진짜 술을 마시는 거지?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술을 악마의 선물로 묘사했던 것 같다. 모두 술은 적당히 마셔요!

Posted by 데이드리머
2009. 3. 29. 09:53


 작년 말이었다. KBS에서 방송 했던 TV 책을 말하다에 이 책이 소개되었다. 패널이 음. 누구였더라. 우석훈 교수님하고, 음 시골의사 박경철도 아마 출연 했을 것이다. 두 분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그 방송에 대한 기억은 많이 나질 않지만, 이 책에 대한 임팩트는 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샀고, 책을 산지 약 2달이 지난 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일단 지방의 사전적 의미는 서울 이외의 지역이다. 방송 중에 기억나는 한가지는 우석훈 교수님이 지방이라는 단어에도 서울 중심적인 사고가 물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참, 그리고 한가지 더 생각 나는 게 있는데, 시골의사 박경철님은 아마도 강준만 교수님이기에 이런 책을 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음. 강준만 교수님은, 예전에 한참 월간지 인물과 사상을 읽을 때 처음 접했다. 그 때 교수님의 글이 기억에 오래 남았었는데, 음. 누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식민지가 뜻하는 것은 지방이 서울(수도권)에 정치,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내부식민지론으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부식민지를 고착화 시키는 주범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교육인 것 같다. 예부터 '말은 나면 제주도로, 사람은 나면 서울로'라는 말이 있었다. 아마 옛부터 모든 것의 중심이 서울로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 것같다. 서울로의 집중. 물론 긍정적인 외부효과도 있지만, 아마 부정적인 외부효과가 더 큰 것 같다. 나 또한 내부식민지를 고착화 시키는데, 일조하는 것 같아서 할말은 없지만서도, 서울로 유학을 온 지방학생들이 서울에서 사용하는 돈을 따져보면 -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돈이 지방에서 쓰이지 않고 - 어마어마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서울에 소재하는 대학교에 학생들이 집중하는가? 그것은 단순하다. 단지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서울의 많은 학교들이 서울에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짐에도 많은 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학교들을 지방으로 옮긴다면, 과연 지금의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을까?'하고 묻는다. 아마 답은 뻔할 것이다. 53쪽의 "지방의 여러 지역에선 아직도 지역의 우수인재를 서울로 보내는 걸 '지역발전전략' 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걸 내부식민지 근성에 찌든 추태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라는 구절을 읽을 때는, 왠지 뜨끔했다. 뭐 나는 고향에서의 '지역발전전략' 정책의 수혜를 입은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음. 지금 수혜를 입고 있다. 서울유학생을 위한 기숙사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감사히 잘 지내고 있지만, 이것을 내부식민지 근성에 찌든 추태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정말 궁금하기는 하다. 그래서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과연 여러 방법으로 혜택을 받은 학생들이 너무너무 고마워서 과연 나중에 고향에 뭔가 기여를 해야한다고 생각할까? 이건 조금 아닌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니. 나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주위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95쪽에 소개된 한 예는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남겨준다. 도쿄대학 법학부, 교토대학 법학부의 학생 2명이 중앙관청이나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고 지역발전을 위해 고향에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이런 결심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교육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중 한 예가 방송, 신문이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잡담을 하면, "지방방송 꺼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지방방송을 왜 꺼야 하는가. 지방방송을 꺼서인지, 지방사람들은 지방의 소식들 보다는 서울의 소식에 더 빠삭하다. 이는 방송 뿐만 아니다. 신문도 마찬가지인데, 중앙지인 조중동의 점유율이 지방에서 지방지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중앙지에서는 지방에 대한 기사를 단지 한면에 걸쳐 싣는게 전부인데. 덕분에 지방지는 고사위기에 처해졌다고 한다.
 
 음. 그리고 예전에 블랙 스완을 읽을 때 접했던 프랙털 이론을 여기서 한번 더 만났다. 수학자 만델브로가 고안한 개념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프랙털 이론이 어떻게 쓰였냐 하면, 서울-지방의 관계가, 지방에서도 똑같이 예를 들어 부산-경남, 광주-전남의 관계와 비슷핟고 한다. 사이가 좋고 나쁨을 떠나, 서울에 많은 것들이 집중되듯이, 지방의 대도시도 또한 집중이 되고, 더 깊게 들어가면 읍-면의 관계도 비슷한 것같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너무 외부적인 측면에 대해서 썼는데, 사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외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부적 문제이다. 너무 외부적으로만 접근하면 피해의식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내부적인 문제도 많다. 지방에서의 이권 다툼, 지방 행정의 후진성, 그리고 지방민의 무관심, 지방의 교수들의 무책임함. 등등 내부적으로도 개선해야할 문제점들이 많다.
 
 이 책에서 지방의 발전을 주장하는 것을 넓혀보면, 성장과 분배로도 설명할 수 있다. 지방은 분배를 요구하고 있고, 서울은 성장을 지향하고 있다. 이건 필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가치가 어떤 것에 더 큰 비중을 두는지에 따라 방향이 설정되는지, 적어도 지금까지는 서울의 성장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이러다가 전 국토가 수도권이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344쪽 지방이 지방주의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울이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발상을 포기한 만큼 그 걱정도 지방이 해야 한다. 수도권의 고민도 헤어려가면서 좀더 정교한 대안을 제시하고 추진해 나가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을 지방이 책임지자."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뭔가 저자의 결연한 주장인 것 같다.
 
20쪽 지금 지방의 요구는 무조건 수도권에 있던 것을 빼내서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라는 게 아니다. 전체 파이를 키우지 못하면서 나눠 먹기만 하자는 것도 아니다. 중앙의 기만적인 정책, 그리고 새로 투자 · 투입되는 돈과 인허가권이 수도권 위주로 돌아가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44쪽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의 근본 문제는 헌법이나 제도에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줄세우기와 줄서기 관행에 있다. 이런 관행은 이성과 양심을 가진 자율적 개인을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며, 내부 비판과 이견을 압살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총명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인 집단일지라도 스스로 망할 때까지 아무런 자구책을 내놓지 못한다. 이게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줄 공화국' 의 부끄러운 얼굴이다.
 
69쪽 규제를 푸는 건 수도권엔 '현금' 이다. 일도 매우 간단하다. 규제를 푸는 것만으로 모든 게 완성된다. 반면 국가의 지원을 지방에 집중하겠다는 건 지방엔 '어음' 이다. 그것도 만기일이 멀리 남은 5년짜리 어음이다. 안전장치도 없다. 법적으로 강제할 수도 없는 신뢰뿐이다.
 
135쪽 우리는 공공 영역의 사유화에 대해 많은 비판을 쏟아내곤 있지만 작심하고 그걸 본격적인 이슈로 삼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아니, 고양이 목에 방울 매달 사람이 없다고 보는 게 옳겠다. 사유화를 근절할 순 없을망정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공공 영역이 전리품으로 탕진되는 걸 막는 것 이상 큰 개혁이 어디에 있겠는가.
 
139쪽 사회개혁을 위한 비판에서도 '역지사지' 는 꼭 필요하다. 실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국민도 '직업으로서의 정치' 에 대한 역지사지를 해줘야 한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지만 정치인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에겐 생계수단이기도 하다. 그걸 인정하는 현실적 기반 위에 서야 정치를 바판하더라도 힘이 실리고 응징도 제대로 할 수 있다.
 
152쪽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한 마당이 펼쳐졌을 때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최근의 촛불집회처람 말이다. 그런 기회는 자주 오지도 않지만, 그건 좀 무책임한 생각이다. 내가 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거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일에 참여를 해주면 그 일이 그럴듯해지고, 참여자가 늘면 세상을 진짜로 바꾸게 된다. 우리는 왜 이런 간단한 이치를 외면하는 걸까?
 
238쪽 아는 만큼 보일 뿐만 아니라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지역문화에 대해 별로 좋은 줄 몰랐던 것도 알게 되면 몹시 좋아하게 된다. 지역문화를 모를 뿐만 아니라 무관심한 수용자들을 상대로 그 무지와 무관심을 그대로 둔 채 아무리 콘텐츠 경쟁력을 역설해봐야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293쪽 한국은 세계에서 교육열이 가장 뜨거운 나라다. 긍지를 느끼고 자랑할 만 하다. 그러나 그 그림자가 있으니, 그게 바로 학력 · 학벌 숭배주의다. 자신만 숭배하고 끝나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자신의 숭배심을 근거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게 문제다.

지방은 식민지다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강준만 (개마고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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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일상2009. 3. 25. 22:21

 오늘 아침에 음악을 들으며 쓴 글이다.

 

 엠피쓰리플레이어에서 클래식이 나온다. 랜덤 듣기로 설정했는데, 이번 순서는 클래식이다. 클래식을 들으며 학교에 가고 있으니 뭔가 새롭다. 귓가에 들리는 음악과 함께 모든 소리들이 함께 합주가 된다. 지하철 소리, 똑깍거리는 구둣소리, 신문 펼치는, 그리고 신문 넘기는 소리다.

 

 클래식을 들으며 사람들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조금 평화롭게 보인다. 음악이 잠시나마 귀와 세상을 단절시키니, 내 사고도 약간은 잠시나마 단절된 느낌이다. 그리고 왠지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도 들게 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무언극의 무대인 것 같다.

 

 지금 듣고 있는 곡은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나오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이다.

 

 그리고 노라존스의 Don't know why로 곡이 넘어갔다. 노라존스의 목소리는 이상한 마력을 지닌 것 같다. 비록 아는 노래도 별로 없지만. 어쨌든 나만의 느낌이지만, 뭔가 몽환적? 아니면 뭔가 표현은 잘 못하지만, 잠들기전 의식이 조금 남아있을 때, 사고활동이 정지될 때 즈음의 기분이다. 음. 몽롱하다고나 해야할까? 어쨌든 노라존스의 노래를 들을 때면 왠지 잠을 자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노라존스의 노래가 끝나고 휘성 1집에 수록된 magic eye가 흘러나온다. 휘성 1집은 CD를 사서, CD가 닳지는 않지만, 닳을 정도로 들었는데, 아마도 그 때가 고 2, 고 3때였다. 이제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릴 시간이다. 으. 날씨 춥다. 이제 슈베르트 현악4중주인 것 같은데, 무슨 곡인지는 모르겠다.

 

 

 아침에 음악을 들으며, 핸드폰 메모장에 쓴 글이다. 사람이 많아서 책 읽을 틈도 없을 땐 음악을 듣는다. 보통 굿모닝 팝스를 들으며 가는데, 오늘 아침에는 당최 굿모닝 팝스 책을 어디에 놓았는지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그냥 노래나 듣자 하고 - 날씨도 추우니 - 귀마개겸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가자는 심산이었다. 어쨌든, 조금 특별한(?) 아침에 특별한 메모다. 그나저나 굿모닝 팝스 책을 기숙사 돌아와서도 못찾았었는데, 침대와 벽 틈새에 먼지와 함께 고이 이틀정도 묵혀있었다. 음. 일단 찾아서 다행이다.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