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16. 22:36

먹거리에 대한 불신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마도 먹거리가 산업화가 되면서 부터 일 것이다. 먹거리에도 경제의 논리가 개입되어 저비용, 대량생산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었다. 기업은 이윤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식의 질은 무엇으로 담보할까? 현대의 음식산업은 그것을 담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소비하는 이상 우리는 이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323~324쪽 수세기 동안 먹는 행위는 특별한 순간을 의미했다. 대화와 감정을 나누는 시간, 즉 대부분의 경우 즐거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음식은 그저 습관이 되었고, 혼자 빨리 먹어치워야 할 것이 되었다. 무엇보다 광고의 대상이 되었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음식은 빨리 해치워야 하는 대상이 되었고, 광고의 대상이 되었다. 광고는 우리에게 빨리, 많이 먹으라고 부추킨다. 그리고 식품회사는 더 많이 팔아 수익을 남기기 위해 질이 담보되지 않은 저비용의 재료를 사용해 우리의 입에 넣는다. 그리고 그 수익은 다시 광고비로 들어가 우리에게 또 먹을 것을 강요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식품회사와 정치와의 유착관계로 인하여 계속 반복된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건강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비만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식욕을 억제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라고. 하지만 이는 본명히 사회경제적인 문제이다.


308쪽 식품의 산업화는 우리가 몰랐던 몇몇 회사들에게 더 큰 이득을 안겨주는 '혁명'이다. 더 나쁜 것은 식품업계가 언론 조작과 광고 공세를 통해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저야 한다고 믿게 만든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비윤리적인 기업의 행태와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하나하나 탐사하며, 불편한 진실을 알린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현실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위와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더 똑똑해여쟈 한다. 최근 이러한 문제를 자각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나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식욕을 다스리고, 조금 더 똑똑해져야 겠다는 것과 식품회사를 믿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래도 요 근래, 탄산음료와 패스트푸드를 안먹기로 다짐하고, 예전에 비해 조금 더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음식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환경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속이고, 소비를 부추킨다. 기본적인 욕망을 자극하면서. 그리고 깊은 생각을 못하게 만들고, 주어진 현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이 책은, 전세계적은 식품기업의 은밀한(?) 비밀을 폭로하지만, 사고의 외연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본주의, 그리고 우리를 속이고 있- 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는 다른 것들도 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씁쓸한 결론을 스스로 내려보며, 책장을 덮었다.


326쪽 우선,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소비자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우리는 매일 먹는 세 끼 식사를 투표하듯 선택해야 한다. 그 투표에 세상이 독성물질로 가득 찰 것이냐 아니냐가 달려 있다. 우리는 환경과 건강, 윤리를 생각한 떡에 표를 던져야 하며, 그 힘은 구매력에서 나온다.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 일은 투표소에 가는 것 이상으로 정치적인 행위가 되었으며, '직접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어울리는 유일한 순간이 되었다.


소비에 종속되어서는 안되지만, 우리는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소비를 해야한다. 비록 우리의 소비(표)는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하나하나 모이다보면, 우리 나름대로의 힘을 발휘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비판적인 소비의 승자는 결국 비윤리적인 자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최소한의 힘을 윤리적인 소비를 해야할 것이다. 숨막히도록 우리를 둘러싼 자본과 항상 욕망을 부추키는 광고에 맞서 이기려고 노력하지만, 맘같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랴, 내가 가진 조그마한 힘이라도 이렇게 사용해야지.



독소: 죽음을 부르는 만찬

저자
윌리엄 레이몽 지음
출판사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05-17 출간
카테고리
건강
책소개
2001년, 미국은 9·11 테러 희생자(2,752명)보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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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7~328쪽 국제비만대책위원장이자 토니 블레어 정부 때 보건 고문을 맡았단 필립 제임스 교수는 시드니 비만대회에서 연설을 통해 비만 위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우리는 의학적이거나 과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다루는 건 전 세계적인 의료체계를 집어삼킬 엄청난 경제적 문제입니다. 국민이 내는 세금을 오늘날 비만 유행병을 일으킨 모든 식품 체인을 과잉보호하는 데 사용하고 있음에 우리는 주목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의 기름과 지방, 당분 과다 생간은 농업 수익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보조금때문이며, 이로 인해 우리가 겪고 있는 건강 위기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4. 3. 22:36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는 편안함이 있다.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그의 면목이다. 나는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선호하는 편인데, 덤덤한 문체와 꾸밈없는 그의 일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비밀의 숲><문학사상사, 2007)이라던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 2009)를 읽을 때는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그저, 작가로서의 삶을 느낄 수 있고, 옆집 아저씨로서의 삶도 엿볼 수 있다. 물론 그의 소설도 좋아한다.


 가장 최근의 에세이 <잡문집>(비채, 2011)은 말 그대로 잡문을 엮은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게 뭐야."라며 실망할 사람도 더러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잡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다면,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사실 나는 기대치를 낮춰 읽긴 했지만서도, 이걸 그냥 넘겨야 하나, 다 읽어야 하나, 고민 했던 분량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재즈에 관한 글들. 전혀 문외한이라서. 그럼에도 일단 모든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다 읽기는 했지만, 역시나 읽고 나면,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찌하랴. 잡문집인 걸.


 그래도 아무리 책으로 내기는 부족한 글들을 겸손하게 잡문집이라 칭하였어도, 그의 철학과 삶, 일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으로서 이 책을 읽는다면,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그중 몇가지 좋은 글들을 적어본다.


먼저 주례사 중에서,

87쪽 가오리 씨,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그리고 그의 예루살렘 상 수상 연설 <벽과 알> 중에서. 사실 이 부분을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91쪽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벽이 옳고 알이 그르더라도, 그래도 나는 알 편에 설 것입니다. 옳고 그름은 다른 누군가가 결정할 일입니다. 혹은 시간이나 역사가 결정할 일입니다. 혹시라도 소설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벽 쪽에 서서 작품을 썼다면, 과연 그 작가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요?


그의 기억에 관한 공감할 수 있는 글.


196쪽 우리의 인생이란 기억의 축적으로 완성된다. 그렇지 않은가? 혹시 기억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지금 현재의 우리밖에 기댈 곳에 없는 셈이 된다. 기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떻게든 자기라는 존재를 하나로 묶고, 동일시하고, 존재의 중추 같은 것을 - 설령 그것이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더라도 - 일단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뭐랄까, 쿨한 삶의 철학.


257쪽 과거에 쓴 작품은 웬만하면 일단 다시 읽지 않습니다. '과거는 돌아보지 않는다'라고 하면 꽤나 멋지게 들리지만, 내 소설을 집어든다는 게 왠지 멋쩍고, 다시 읽어본들 어차피 마음에 안 들게 빤하니까요. 그보다는 앞을 내다보며 다음 할 일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343쪽 독자의 마음을 진정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뛰어난 문장도 아니요 재미있는 줄거리도 아니요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분위기인 것이다. 내가 특히 마음을 쓴 부분은 그들의 '올바른 자세'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일본어로 옮기는 일이었다.


작가로서의 철학.


445쪽 소설을 쓴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자기만의 방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방을 마련하고, 그곳으로 사람을 불러 편안한 의자에 앉히고, 맛있는 음료는 내놓고, 상대가 그곳을 아주 마음에 들게 하는 것. 마치 자기만을 위한 장소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뛰어나면서도 바람직한 이야기의 본디 그대로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곳이 설령 어마어마하게 멋지고 호화로운 방이라도 상대가 편히 쉬지 못하면 바람직한 방 =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겠죠.


하루키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잡문집을 읽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1-11-2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30년 하루키 문학의 집대성!『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197...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4. 3. 22:18

진눈깨비

                                                                   기형도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참 많은 각오를 했었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  
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  
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  
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 했다, 진눈깨비


점심을 먹고, 기형도 시집을 펴서 읽는데, 진눈깨비가 나왔다. 그리고 창 밖에는 진눈깨비가 내렸다. 19년만에 4월의 서울 하늘에 내린 눈이란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2. 3. 27. 21:37

4월의 봄날 같은 영화. 싱숭하기도, 생숭하기도 한 영화. 건축학개론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카피로 모든 (잠재적) 관객을 영화 주인공으로 만든다. 특히 첫사랑이라는 단어에서 풍겨오는 아련함이 많은 관객을 공감하게 한다. 첫사랑이라. 남녀 간의 사랑 중에서 가장 순수할 수 있고, 서투를 수 있고, 풋풋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첫사랑은 그런 거다.


영화를 보며, 첫사랑의 풋풋함과 캠퍼스를 누비던 대학생 시절이 그리워졌다. 사실 요즘 첫사랑을 대학교에 와서야 했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첫사랑과 캠퍼스는 잘 어울린다. (건축학개론이라는 수업과 첫사랑은 잘 어일리지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의 연기도 어울린다. 첫사랑을 그리는 신인 배우들. 아마 눈에 익은 배우들이 연기를 했다면, 그런 이야기를 그릴 수 있었을까.


이제훈이라는 배우를 처음 봤는데, 매력이 넘치는 배우인 것 같다. 그리고 왠지 앞으로 이 영화에서 맡은 승민의 역할보다 더 맞는 역할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 수지도 익히 들어서 명성은 알고 있었지만, 건축학개론에서 처음 봤다. 딱 그 나이에 맞는 신입생 역할을 너무 아기자기하게 한 것 같다. 그들의 소소한 데이트 - 라고 할 수 있을까 - 였던 철길 걷기와 그들의 키스 - 사실은 뽀뽀 - 도 당분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승민이 엄마에게 “엄마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GEUSS 로고가 박힌 흰 티의 초고속세탁을 부탁했던 장면이, 결국 서연 앞에서 GUESS가 아니었음을 알았을 때의 자괴감 혹은 모욕감을 느끼며 도망쳤던 모습은 왠지 마음을 저미게 했다. 그녀가 술 취해 학교 선배와 함께, 자취방으로 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실망하여 집(정릉)에 돌아가는 택시를 잡으려 하지만, 정릉을 외면하던 택시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던 모습을 보며, 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가 생각났다.


음대생이었던 서연에게, 건축학도 승민은 나중에 집을 지어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서연(한가인)은 고향인 제주도에 지을 집을 부탁하기 위해서 - 라기보다는 승민을 만나기 위해 - 승민(엄태웅)의 건축사무소를 찾아간다. 영화의 시작은 이 장면이지만, 시간 순서로는 하반부에 속한다. 그리고 집을 지으며, 과거를 떠올린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기에, 그들의 사랑은 정말로 첫사랑으로 끝맺는다.


건축학개론에서 나타난 첫사랑의 언어는 노래 - 가령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라던가, 강의실과 캠퍼스 등. 이 영화에 공감을 했더라면, 이런 소소한 부분을 잘 읽어낸 영화의 성실함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건축학개론 (2012)

8.6
감독
이용주
출연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조정석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한국 | 118 분 | 2012-03-22
글쓴이 평점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첨부. 별로 영화와 관련은 없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3. 13. 17:17

종로 5가 근처에서 친한 형과 밥을 먹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수선화를 샀다. 감히 꽃에게 샀다는 표현을 하기에는 너무 미안하지만. 수선화를 보자마자, 정호승님의 수선화에게라는 시가 떠올라, 아니 살 수가 없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내가 수선화를 산 것도 외로움때문이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3. 10. 18:45
겨우 내 게을렀던 빛이
기여코 6시 넘어까지 길을 밝힌다

해가 길어진다
어두움이 짧아진다

고요한 어둠 속 평온함은 짧아지고
빛 속의 시끌벅적함은 길어진다

아 봄이여
왜 밤을 앗아가는가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2. 15. 17:33

 ‘청춘(靑春)’이라는 단어가 작년처럼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 해는 없었을 것이다. 푸른 봄을 생각하면, 당연히 따스한 봄이 가슴에 스며들어야 하는데, 사실 청춘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보면, 실상은 안쓰럽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과연 ‘따스한 봄과 같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면,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함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런 청춘을 위로하는  김란도 교수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 2010)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청춘의 아픔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책 이외에도, 청춘을 감싸 안으려는 박경철, 안철수의 청춘 콘서트가 인기를 끌었었고, 기성 정당들은 청춘을 끌어안기 위해,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청춘들의 문제는 청춘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의 문제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는 다름 아닌 청춘이다.


 이런 청춘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최근 들어, 20대의 정치 참여가 두드러지면서,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만들고, 그들의 표심을 모으기 위해 많은 정치인이 노력하고 있지만, 그들을 진정으로 20대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단지, 20대가 주요 투표의 캐스팅 보드(casting board)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듣는 척만 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엄기호 교수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푸른숲, 2010)에서는 20대의 ‘the right to speak’를 넘어서, ‘the right to be heard’를 위한 노력의 흔적이 돋보인다. 저자는 이 책을 “2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이 어떤 언어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들과 함께 나누었던 지적 대화의 기록이다. 형식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겠지만, 내용을 보자면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내가 깨닫게 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다.”(19쪽)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들과의 수많은 대화 가운데, 인문학적 개념을 도출해 내고, 학생들이 “개념적 사유가 가진 짜릿함을 만끽”(249쪽)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고 한다. 그 결과가 이 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 책은 20대 스스로에 대한 자기고백적 혹은 변론적 성찰, 그리고 20대가 바라본 이 사회에 대한 고발적 성찰을 담는다. 특히, 앞으로 더 나아질 것 없는 미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과거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던 기성세대의 그것과는 다르다. 기성세대는 정치적인 자유를 꿈꾸었지만, 20대는 경제적 자유를 희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세대는 20대를 속물로 볼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예속된 그들의 모습은 부정할 수 없는 이 사회의 자화상이기에, 속물로만 볼 수도 없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경제적 속박은, 그들이 조금 더 높은 순위의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가 되고, 또한, 그들이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노동력이 초과 공급 상태인 현대 사회에서는, 그들의 열정조차 ‘자기 소설서’에 그럴싸하게 표현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삽질’ 또는 ‘잉여’로 표현되는 현실은 이 사회의 서글픈 이면이다.


 상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그 사람은 사회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쓰레기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나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드러내고 상품으로 치장하여야 한다. 우리 모두는 본래 속물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속물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67쪽)


 이런 20대를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비판 보다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조성해줘야 한다. 마음껏 사랑을 하지 않는 20대를 향한 비판에도, 사랑을 하기에도 사회적 환경, 즉 사랑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조성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저자는 ‘삶이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되었는데 어떻게 사랑이 임시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임시적인 사랑, 그것은 왜 또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163쪽)라고 반문한다. 이 외에도, 저자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도 20대의 가감 없는 생각들을 그대로 전하고자 노력한다. 책을 읽다 보면 그저 철없을 것 같은 20대의 성찰이 놀랍기도 하다. 깊은 사유를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그들이 철부지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라고 선언한 전(全) 고려대학생 김예슬 양의 선언에 대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학생들이 그 선언의 순수성과 저의 사이에서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20대의 고군분투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 일단 수많은 대학생 가운데 일부, 제한적인 학생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자칫, 20대 대부분의 생각일 거라고 여길 일반화의 오류에 당착할 위험이 있다. 또한, 그저 20대의 변명거리만 가득한 것 같아서, 20대 밖의 시선에서는 이 책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제목에 청춘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이 책은 아마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은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는 숙명일 게다.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같은 청춘을 지나온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위로를 하는 책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마치 친구와도 같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20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은 꼭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특히, 20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척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것은왜청춘이아니란말인가20대와함께쓴성장의인문학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엄기호 (푸른숲,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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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tigerbh's 칼럼2012. 2. 14. 16:28
* 한 신문사의 현장평가 면접을 진행하면서, 스마트폰 원고지 애플리케이션에 썼던 짧은 기사를 수정해서 다시 블로그에 올립니다. 기사를 쓴다고 썼는데, 전혀 기사가 아닌 느낌. 기사를 써본 적이 있어야지;;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라는 문구는 어느 화장실에서든 볼 수 있는 친숙한 문구이다. 하지만 머문 자리가 아름답지 않다면, 이는 아름답지 않은 이용자들 때문만일까?

 서울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하철역의 한 곳인 용산역 화장실은 아름답지 않았다. 한국철도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용산역의 하루 평균 유동인구는 9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서울시 전철역 이용객 순위에서 서울역 다음으로 많은 수치라고 한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화장실 이용객도 당연히 많지만, 화장실 관리는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남자 화장실에서는 소수의 노숙인이 머물며, 세면을 하기도 하고,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장실을 이용한 한 시민은 “화장실 위생 상태도 그렇고, 역에서 조치를 어떻게 취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무작정 쫓을 수도 없고.”라며 불쾌감을 표현했다.

 용산역에서 근무하는 OOO 씨는 화장실 노숙인에 대해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시민 중에서도 민원을 제기하는 분이 많다. 시민의 민원이 있을 때에는 노숙인에 대한 조처를 하지만 노숙인들은 인권을 주장하며 반발하기도 한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화장실 청소 관리자 OOO 씨는 용산역 화장실 악취의 주범 중의 하나가 노숙인 때문이라며, 이에 대해 “그나마 서울역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고 이야기했다. 화장실에서의 세면, 빨래는 예사이고, 심지어는 화장실 문을 잠그고 잠을 자기도 해, 시민에게 불편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한다. 특히, 외부 무료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다시 들어와 상대적으로 따뜻한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장기로 머문다고 한다. 하지만 딱해서 막무가내로 쫓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노숙인을 제지하면 화장실 집기를 부수기도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사실 우리는 청소를 대행하는 상황인데, 이것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용산역, 그리고 이 사회의 문제”라고 전했다.

 용산역 화장실을 찾는 한 노숙인은 “여름은 괜찮은데, 겨울에 있을 곳은 화장실뿐”이라고 했다. 이는 매 겨울 반복되는 문제이다. 추운 날씨 탓에 밖에 있을 수는 없고, 그나마 화장실이 그들의 고육지책인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들 아름답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할까?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자리도 아름답다.’라는 말은 노숙인이 화장실에서 조차 환영 받지 못하도록 하는 슬픈 울림으로 남게 한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1. 8. 12:36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는 손양원 목사의 딸인 손동희 권사님이 쓰신 책이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을 증언하는 자료 중 가장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동기도,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에서 느꼈던 아쉬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아쉬움은, 최대한 정확하고, 풍부한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쓰게 하는 유인이 되었다. 평생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회상하며, 최대한 감정의 소요를 자제하며 쓰기 위해 노력했을 저자를 생각해보니, 쉬이 읽을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양원 목사의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손양원 목사, 그리고 목사님의 가족에까지 이르는 믿음은 한마디로 ‘고난의 역사’라고 표현할 수 있다. 특히 그 시대는 믿음에 따른 박해가 있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손양원 목사님은 모두 감사로 받아들였다.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감옥에 갇히고, 또한 이념이 권력이 되었던 당시 여순사건의 현장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해방 이후, 순교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이 읽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적신다.

 특히, 여순사건 때,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 순교했는데, 그 두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고, 자신의 양아들을 삼은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일 터이다. 그리고 모든 계명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에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솔로몬보다는 욥이 되고 싶다던 손양원 목사님은 평생을 고난 가운데 살았지만, 항상 감사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나병 환자들을 보며, 차라리 자신이 나병에 걸렸으면 좋았을 거라는 고백을 하기도 한다.

“…우리 기독교는 본시 잘 살기 위한 종교가 아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 위해 잘 죽기 위한 종교인 것입니다. 꼭 살아서만이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씨가 죽어야 싹이 나듯이 죽어서도 얼마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280~281쪽)

 그는 마지막 순교하는 순간까지도 전도했다. 그는 그의 필시 생각처럼, 잘 죽기위해 노력했고, 결국 한알의 밀알이 되어, 하나의 본(本)이 되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007년에 여수에 있는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에 들른적이 있다. 오래전 기억이라서, 무엇을 봤는지는 선명하지는 않다. 사실 오래전 기억이라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고,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무지로 인해, 그 기념관에 전시된 사진과 물품들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방문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이 책을 읽고서야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한 숨을 쉬었는지 모른다. 손양원 목사님의 고난과 믿음의 경주. 그리고 나의 모습을 생각할 때, 한 없이 부끄럽다는 생각에 나온 한 숨들이었다. 이런 한 숨 쉴 일을 매일 조금씩 줄여가며 살아가면 좋으련만.


250쪽 아버지가 던진 사랑의 폭탄은 용서를 모르는 완악한 인간사회의 죄악으로 뭉친 근원을 뿌리채 파괴시키는 사랑의 폭탄이리라. 양식 없어 기근이 아니라 사랑이 없어 기근인 이 사회에 복수만이 최대의 승리인양 끝장을 보자는 이들에게 사랑의 폭탄이 되어 떨어지기를 바란다.

326쪽 돌이켜보면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셨음을 느끼며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어렵고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울 때도 그분은 우리 곁에 계셨다. 길을 찾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할 때도 그분은 우리의 길을 미리 예비하고 계셨다. 한 알의 씨앗은 죽어야만 그 결실의 열매가 백 배 혹은 천 배가 되듯이 두 오빠와 아버지는 죽어 희생이 되었지만 그 씨앗들은 싹이 나고 움이 터서 이 땅에 복음의 열매가 되어 많은 영혼을 깨우치는 하나의 ‘믿음의 본’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거두시는 순간, 죽음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며, 패배가 아니고 승리이며, 실패가 아니고 성공이며, 돌발사고가 아니고 그의 계획과 섭리이다. 죽음은 곧 이 땅의 시련을 마치는 졸업이다.

나의아버지손양원목사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지은이 손동희 (아가페출판사,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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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2012. 1. 3. 23:16
나의 스무살. 대학교 2학년, 나도 브라이언 트레이시처럼 자전거 여행을 했었다. 서울에서 해남 땅끝까지.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가끔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완주했던 걸로 기억된다. 대학교에서 만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나름대로 존경하는 친구가 도서관에서 꼬드겼었다. “이번 여름에 자전거 여행 가자.”고. 딱히, 자전거 여행에 대해서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덜컥 “그래.”라고 답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시작된 자전거 여행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안되는 자랑할만한, 그리고 낭만적인 경험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친구에게 참 감사하다.

이 책을 쓴 브라이언 트레이시도, 20살 때,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여행을 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행을 위해 돈을 모으는 과정, 자전거로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여행했던 과정. 그리고 스페인에서 랜드로버를 구입해, 사하라 사막을 여행했던 과정을 이 책은 그리고 있다. 너무도 낭만적일 것 같은 이 여행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실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여행 경비를 스스로 마련하기 위한 과정, 그리고 여행 중에도, 최소의 비용을 들이기 위한 처절한 노력. 여행 중에는 자동차가 고장나고, 사하라 사막의 더위에 지치고, 아무리 아꼈음에도 불구하고, 경비가 떨어져, 경비를 구하는 과정. 사하라 사막 여행의 막바지에,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불법으로 - 사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본 받을만 하다 - 국경을 넘어 갈 때의 스릴 아닌 스릴. 하지만, 전혀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들의 쿨한(?) 호의는 여행의 청량제였다. 자동차가 고장났다거나, 길을 모를 때, 친절하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더욱 어려운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아슬아슬한(?) 여행기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그들의 여행을 응원하게 되었다. 자기계발 전문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모든 여행 과정에서 배울점을 찾았다. 작은 부분에서도, 배울점을 찾았던 그의 긍정을 배워본다. 흡사, 공자가 이야기했던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는 어디에서든 적용된다.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누구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생각하기에 따라 스승이 된다.

책장을 덮으며, 딱 하나 기억해야할 점을 꼽아 보자면, ‘포기하는 것도 습관이다.’라는 구절이다. 그 동안 도중에 얼마나 많은 포기를 해왔는지, 돌아본다. ‘이쯤이면 됐어.’라는 포기의 언어는, 성공을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포기하는 습관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도록 만든다. 습관성 포기는 이제 멀리하고, 새해에는 되도록 이기는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해봐야지. 새해에 읽기에 적절한 책. 그리고 지금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

참고로, 이 책은 한 서점에서 덤으로 받은 책이어서, 내가 읽게 될 거란 생각은 못했다. 또한 자기계발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읽을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고, 자기전에 잠깐 읽어 볼까 하다가? 출퇴근길에 읽게 되었다.

오래동안 자기계발서를 멀리했다. 자기계발서에 언급된 내용을 모두 실천하기가 겁났기 때문이다. 뭔가 머리에 채워지는 부분도 없다고 생각했었고. 이제 자기계발서를 가끔씩 읽게 된다면, 책에서 딱 한가지 마음에 와닿는 부분만 취할 계획이다. 가끔 자극이 필요할 때, 읽어야지.

18쪽 당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있다면, 그러한 모습이 요구되는 상황에 직면해서 실전 경험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즉 용감해짐으로써 용기를 배우고, 인내함으로써 인내를 배운다. 이러한 인격적 특질은 역경에 직면해 그것을 이겨내는 시간과 양과 강도가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서 증폭 발전하게 될 것이다.

132~133쪽 인생을 살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욕망이나 시도는 개인의 정신과 영혼을 파괴한다.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정신 자세는 인격을 높여 주고 자긍심을 갖게 한다. 반면 다른 사람에게 기대려는 정신 자세는 수치심의 근원이다.


스무살여행내인생의터닝포인트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브라이언 트레이시 (황금부엉이,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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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