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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06 기억을 기억하기
  2. 2011.05.18 5.18과 야구의 추억 3
  3. 2011.05.15 회복의 신앙 1
  4. 2011.05.14 풍요 속의 빈곤
  5. 2011.04.30 비가 와도 젖은 자는
  6. 2011.04.24 서울숲 나들이
  7. 2011.04.17 고향의 봄 2
  8. 2011.04.17 The BOX -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경제학
  9. 2011.04.14 어린이 대공원 나들이 4
  10. 2011.04.03 헤어짐보다 아픈 그리움
단상2011. 6. 6. 23:27

# 과거를 추억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다.

 

 일단은 기억으로. 그리고 추억하기 위해 많은 사진들을 찍는다. 지금은 가장 사진이 보편적인 방법. 적극적으로는 추억의 현장에 방문함으로, 과거를 떠올린다. 그 곳의 향기와, 분위기, 정취 등을 느끼며, 그 때 그 시간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물론 과거를 추억하기 위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다보면, 그 때 느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한다.

 

 오늘 과거를 추억하기 위한 기발한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사실 기발하지도, 독창적이지도 않다. 내가 온전히 생각해 낸게 아니다. 예전에 우연히 읽었던 주간지 - 아마도 주간 동아인 것 같다 - 를 보고 떠오른 것. 

 

 한 필자가,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수집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수집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떤 물건이나, 기념품을 수집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의외인 영.수.증.

 

  여행지에서 어떤 물건을 사고, 받았던 영수증. 그리고 그 영수증을 볼 때, 어디에서, 언제 - 친절하게, 날짜와 시간도 나와있다 - , 왜 샀는지를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왜 샀는지 기억할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최근 우연히 버리지 않고, 모아놨던 영수증을 정리했다. 대부분 버릴만 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지만, 게중에는 버리기 아까운 영수증들이 있었다. 물론 영수증을 보면, 내가 샀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쓰라린 기억도 찾아오지만 말이다.

 

 누구와 어느 식당에서, 어느 찻집에서 몇 시 쯤에 어떤 얘기를 했었는지, 대략 떠올릴 수 있고. 누구와 어떤 영화를, 공연을 봤었구나. 그래 그랬었지. 아참, 이 사람한테 선물도 줬었구나.

 

 그래서 그러한 기억의 마모를 조금 더 더디게 하고자, 영수증과 공연 티켓 등을 최근 장만한 내 노트에 붙일 예정이다. 참고로 노트의 용도는 평소에 흘려 보내가 아까운 글들을 스크랩하고, 신문을 읽을 때, 그냥 흘려 보냈던 행간을 기록하기 위한 거였는데. 영수증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이제 잡(?) 노트가 되어 버렸다. 음. 노트에 이름을 붙이고 싶은데. 뭘로하지? 생각해 놓은 게 있었는데, 사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으로 노트 이름을 지을까 생각했었는데, 뭔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중. 아무것도 아닌 노트로 할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니깐 노트의 이름은 아무것도 아닌.

 

 어쨌든 지금 영수증을 2개 붙여놨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1. 5. 18. 23:45

# 5.18과 야구의 추억

 

5.18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던 날. 과거에 한동안 광주에서는 5월 18일에는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물론, 야구를 빌미로 가장 정치적인 광주 시민이 모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은 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 86년에 첫 홈(하지만, 전주에서) 경기, 2000년 5월 18일 한화 전이 두번째 경기. 야구의 고장, 민주화의 고장에서 20년 동안 야구가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5.18의 또 하나의 야구는 2008년 5월 18일의 광주 경기. 엘지와의 경기였다. 아마 기아가 어이없게 무너졌던 경기 였다. 특별히 5월 18일이어서, 져도 무기력하게 져서는 안되는 경기였다. 그런데 무기력한 강우콜드 패. 박정태의 이대형을 향한 빈볼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기도 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리고 광주 팬들은 분노로, 야구장에 오물 투척을 했고, 급기야는 5.18정신을 운운하며, 기아와 광주팬을 비난하는 기사가 신문의 기사거리가 되기도 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로부터 3년 후, 2011년 5월 18일 공교롭게도 또 엘지와의 경기.

오늘은 대승. 특히 공동 4위에만 3팀, 유례없는(?) 중위권 싸움을 하는 도중에, 2위를 달리고 있는 LG를 상대로, 승차를 줄일 수 있었고, 내일까지 이긴다면, 2위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경기였는데, 낙승해서 너무 좋다. 내일은 올시즌 프로야구의 히트상품인 박현준과 양현종의 빅매치! 요즘 기아가 잘하니깐 너무 좋다! 그런데 내 기억력 완전 쩌는데? 이런걸 기억해내는 나의 야구에 관한 기억력!!ㅋㅋ

 

# 다니엘서를 읽다가. 부끄럽지만 참 오랜만에 성경을 읽었다. 진짜 오랜만으로.

 

10장 12절. 그가 내기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이렇게 극히 일부의 구절로만 성경을 해석하면 이단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다는 말에, 일단 결심 자체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항상 결심만 하다 결국 행하지 못해서, 그걸로 끝나는데, 결심도 하나님께서 보신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지.

 

 그래도 다니엘은 결심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행함이 있었고, 항상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목숨조차 아깝지 않게.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에 처했지만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믿음을 지킨 다니엘. 나는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1. 5. 15. 00:41

앞으로 매해 12월 31일이면 생각날 책. 회복의 신앙. 신림동 헌책방에서 쿠형님께서 사준 책! 쿠 형님께서 볼 때, 나의 회복이 필요한 듯 해서 사주신 책인 것 같다. 사실 정말 회복이 절실하긴 하다.

 

아참. 헌책방에서 책을 산 건 이번에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산 것은 아니었지만.

 

먼저 이 책은 설교를 엮은 책이라서, 읽기에 편했다. 설교는 말 그대로, 말로 가르치는 건데, 순수하게 배우는 측면에서 읽기에 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신앙 생활의 basic을 알려주는 책인데, 정말 정말로 basic 인 것 같지만, 새롭게 읽히는 것은 우리네 설교가 basic보다는 삶의 지혜나 스킬을 알려주는 것에 치중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회복이라는 단어 자체는 원래 상태로 돌이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회복해야 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지금 우리는 원래의 상태에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깐 back to the basic!을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 좋을 듯 싶다. 책 한 권으로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만은.

 

 

31쪽 우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생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 믿음의 동기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과 더불어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54쪽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

 

앞에서 믿음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순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바뀌면 만나는 사람이 달라집니다. 그 때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순종한다는 것은, 바뀐 상황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을 대접하고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에 교회에서 팀개편이 되었는데, 이 말이 절실하게 느껴졌었다. 바뀐 팀원들에 대한 대접 그 자체가 순종! 이라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막상 또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게 내 성격상 맞지는 않는데. 그래도 개선하려고 노력 중.

 

94~95쪽 녹은 쇠에서 생겨납니다. 그런데 쇠에서부터 나온 녹이 결국은 쇠를 잡아먹습니다. 그래서 녹이 무서운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인간의 내부로부터 생성됩니다. 그런데 그 더러운 욕망이 인간을 파멸시킵니다.

 

116쪽 진리는 세상의 요란함 속에서 들리지 않습니다. 진리는 정적 속에서만, 고요 속에서만 들립니다. 그래서 침묵의 깊이만큼 우리의 영성은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133쪽 각자 자신에게 가만히 질문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오는 동안에 나의 인생에 분명한 획이 그어졌던 적이 있습니까? 예전에는 나 중심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선택해서 살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게 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된 시점이 분명히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불 같은 것이 나에게 떨어진 적이 없었다 할지라도,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할지라도, 나는 카톨릭 처치요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며 내게 불 같은 뭔가가 나에게 떨어진 적이 없었고,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듣지 못했었지지만, 그리고 그런 걸 바라기도 했었지만, 이 부분을 읽고 "아, 그래, 그런거구나. 나도 가능성이 있구나."라는 위안을 받았다.

 

162~163쪽 우리의 계획이 어그러질 때, 우리에게 뜻하지 않났던 상황이 일어날 때, 제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 상황 속에서 나를 다루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분에게 맡기십시오. 하나님에 의해 다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거룩한 씨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다루려고 하면 나는 하나님을 무당으로 만드는 사람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내가 다루어질 때, 우리의 삶은 날로 날로 성숙한 경지 속으로 몰입되어 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이 책의 저자인 목사님의 어머니께서, 목사님께 그의 기이한 빛을 본 적이 있는지 물어봤다는 내용이 있다. 사실 나도 기이한 빛을 본 적이 있는지, 생각을 잠깐 해봤더랬다. 목사님의 어머니는 80평생동안 그이한 빛을 못봐서, 기이한 빛을 알 수 있게 기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깨달은 것은 기이한 빛이 보이는 게 아니라는 답을 얻었는데, 구체적인 답은 책에! 그 답을 읽어서 알긴 했지만, 나만의 답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책을 덮고 해봤더랬다.


회복의신앙(믿음의글들171)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지은이 이재철 (홍성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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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1. 5. 14. 23:31

# 풍요 속의 빈곤

 

최근 나의 삶을 압축해본다면, 풍요 속의 빈곤인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절대적인 시간은 풍요롭지만, 막상 마음 속에 여유가 없어, 항상 바쁜 것 같다.

 

놀자는 이야기에,

 

"시간이 안되서."

"뭐하는데 그렇게 바뻐?"

".....(변명거리 생각 중) 조만간 면접이 있어서.

면접 준비도 해야하고, 원서도 써야하고."

 

사실 면접 준비도 잠깐, 원서 쓰는 것도 잠깐이지만, 꼭 해야할 일을 앞두고, 다른 약속을 잡는 게 여간 맘이 편하지 않아서. 그래서 흘려버린 약속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물론! 변명이긴 하지만, 면접 준비 한 거 맞고, 원서 쓰는 것도 맞다.

 

또한 최근 느끼는 풍요속의 빈곤의 다른 예.

 

관계다. 막상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사람은 많지만, 연락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막상 '한 번 연락해볼까?' 마음 먹고, 연락하지 않는 이상, 연락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나는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양과 질 모두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허나, 아는 사람이 늘어 날 수록, 관계의 빈곤에 허덕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질/양)이기 때문에, 분모가 커질 수록, 관계에 있어서 질의 비율은 낮아지기 마련이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만나야 하는 사람이 많아 지기 때문에, 질의 질도 낮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삶 속에서, 정말로 친한 사람이 얼마나 있어야 행복한 삶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친한"의 기준은 무엇일까? 고민해봐야겠다.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나는 "빈곤 속의 풍요"를 택하고 싶다. 소수의 뜨뜻한 그런 사람들과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평생!

 

# 목요일 면접.

 

8시 까지 여의도 도착! 전날 잠을 늦게 잤더랬다. 잠이 안와서. 그래서 아침에 겨우 눈 비비고 일어났다. 아침의 1분은 왜 이리 소중한지. 지하철에서 1분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아침의 1분 vs 저녁의 1분

 

같은 1분이지만, 아침의 1분은 너무 소중해서, 알뜰하고, 살뜰하게 사용하지만, 저녁의 1분은 완전 퍼질러져서 낭비하는 것 같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아침에 하라고 했으면, 절대로 안할 짓.

 

어쨌든 8시에 도착해야 했는데, 딱 8시에 칼같이 도착했던 것 같다. 정말 살뜰하게, 1분 1초도 사용했던 것 같다.

  

# 차이나 신드롬

 

요즘 다시 차이나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주목 받고 있다.

 

‘차이나 신드롬’은 1970년대 미국에서 최악의 원전 사고를 상정해 만들어진 신조어. 원자로의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멜트 다운’이 시작되면 핵반응에 따른 고온·고열로 원자로 바닥의 땅까지 계속 녹아내려 지구 중심을 지나 미국 땅의 반대편인 중국까지 뚫고 나갈 수 있다는 발상에서 생긴 조어다. 실제 이같은 내용의 '차이나 신드롬'이란 영화도 제작됐으며, 그 다음해에 스리마일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미디어 오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5376)

 

요즘 일본 원전에 관한 기사가 올라오지 않아서, 별일 없나 싶었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다. 악화 일로로 치닫는 것 같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방사능 비"에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은데, 어느 새 쏙 들어갔고, 이제 더 이상 원전 사고에 대한 언급을 언론에서 못봤던 것 같다. 우리는 과연 안전한 곳에서 살고 있나?


Posted by 데이드리머
일상2011. 4. 30. 01:48

# 이제 모르는 사람 만나는 것. 말거는 것은 일도 아닌 것 같다. 대학교 입학 후, 지식이 늘어난 것 말고, 대인관계의 기술 - 이것도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 이 는게 하나 있다면, 이거다. 모르는 사람한테 말걸기.

 

대학교 입학 후에, 정말 쓸쓸했다. 학과의 O.T, M.T 참여를 하지 않아서,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 아, 같은 과에 한명 있었네; 생각해보니; -  여튼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도, 항상 친구들과 함께 생활했었지만, 대학교 입학 후에는 친구를 사귈 의지가 없다면, 진짜로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입학 후, 한 동안, 눈물을 머금고, 학생회관에서 혼자 밥먹기도 했었다. 솔직히, 이런 대학생활이라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게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 사귀기 위해서, 학과에 있는 신문사 동아리에 들어가고, 행정학도였던 하숙집 옆 방 형의 권유에 룸메이트인 HJ이와 전혀 연고가 없는 행정학과 축구부에 들어갔다. 우연히 들어간 행정학과 축구부에서 고향 형을 만나기도 했다. 정말 잘 챙겨주셨는데.

 

행정학과 축구부에서, 형들한테 귀여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축구를 그다지 잘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뛰는 것 밖에. 덕분에 축구부에서 내 별명은 깡조 - 제일 교포 출신의 단신의 축구선수 박강조, 한 때, 국가대표 선수로도 뛰었었다 - 였다. 친구의 별명은 을용이ㅋㅋㅋㅋ

 

여튼 대학교 1학년 때는, 신문사 인맥과 행정학과 인맥. 그리고 같은 수업 듣던, 같이 자전거 여행을 하기도 했던 JJ가 내가 아는 사람의 전부였다.

 

 특별히 소중한 인연이었던 JJ는 동아리에서 만난 것도 아니었는데, 같은 수업을 듣다가, 우연히 중간고사 즈음에, 시험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우연히 JJ에게 물어보게 되었고, 그 이후로 연락처 주고 받다가 - 아마도 내가 먼저? - 친해졌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이후로, 혼자 밥먹는 횟수는 줄어들었던 것 같다. 뭐 그 때 혼자 밥먹는 것이 훈련이 되어서 그런지, 지금은 혼자 밥먹어도 아무렇지도 않더라.

 

 혼자 밥먹기의 절정은, 작년 1월달에 하숙할 때였다. 너무 배고파 죽을 것 같았는데, 마침 하숙집에 밥이 없었다. 내가 하숙집에서 밥을 할 리가 만무했고, 만일 밥을 하더라도, 밥이 다 될 때 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토요일 저녁. 혼자서, 학교 후문의 식당에 가서, 불고기를 시켜 먹었던 적이 있었다. 2인분 이상은 주문이 안되는 메뉴였는데, 내가 딱해보였는지, 그리고 그 식당에 여러번 가서, 안면이 있어서 그런지 특별히! 주문을 받아주셨다.

 

 사실 글의 방향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거는 것에 초점을 마추려고 했는데, 결국은 혼자 밥먹기로 끝나버렸네;;

 

# 오늘도 같은 회사 서류 합격한 사람들과 - 완전 처음 보는 사람들 - 신촌에 있는 스터디 룸에서 만나서, 정보 공유하고, 자소서를 보면서, 서로 돌아가며, 질문과 대답! 내 자소서를 보며, 글의 내공이 다르다며, 칭찬 받아서 뿌듯하다. 지금까지 본 자소서 중에 최고라며. 하하. 나도 그 회사꺼는 실험작으로 쓴 거 였는데.

 

 하지만, 역시 어디서나 듣는 피드백. 소극적으로 보인다. 이는 순전히 나의 외소한 체구에서 기인하고. 사실은 진짜로 소극적이기도 하다. 자소서를 보면, 역량이 뛰어난 것 같은데, 면접에서는 그것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평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정말로, 소극적인 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게 고쳐지지 않다면, 취업은 점점 요원해질 것 같은데. 나 같은 사람 뽑아주는 회사, 어디 없나?


후. 그런데, 나의 경쟁자 중의 한 명이, 경영학 석사다. 경쟁자를 미리 만나서, 반갑긴 헌데. 나는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데 말이지.

 

# 우이동 엠티촌 다녀옴. 젊은 느티나무라는 곳. 공기도 맑고, 정말 엠티 분위기 나는 곳. 좋더라. 사정이 있어서 - 엠티를 빠져야하는 정당한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정당하다고 생각했기에 -  저녁만 먹고, 집에 들어옴.

 

마침 오늘 그 동안 밀린 신문을 엄청 읽었더랬다. 신촌에서 마침 우이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 신문 3개를 읽었다. 그 중에 읽은 한겨레 신문의 한 칼럼. [삶의 창] 나를 울려주는 봄비 / 하성란

 

봄비에 대한 내용이 심각하게(?) 언급되었고, 그 중에, 한 시가 소개되었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이라는 시.

 

오, 왠지 좋은데? 라는 생각을 하고, 핸드폰에 메모를 했다. 그냥 그렇게 지나갈 수 있었는데, 마침. 우이동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비를 맞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쉬이 그칠 비가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비를 맞고 가기로 했다. 그래.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잖아. 라는 생각에. 결국, 오랜만에 비를 맞았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 다는 말. 뭔가 의미심장한 말이다. 젖은 자가 젖지 않는 다는 말은, 분명히 역설적인 말이지만. 그 역설이 시의 매력.

 

비가 시련을 뜻한다면, 이미 닥친 시련은 시련이 아니다. 그러니까, 좌절하지말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뭐 인터넷에 찾아 보니깐, 그런 의미로 쓰인 것 같다. 또 다른 한 편 생각해보면, 이미 비를 맞아서, 흠씬 젖었기 때문에, 이판사판(?)의 기분으로. 이 어려움을 헤쳐보자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오규원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 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 위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 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 이번 달은 가계부를 꼬박꼬박 작성. 가계부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 작성하긴 했는데, 했다가, 안했다가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아이폰을 쓴 이 후, 나름대로 꼬박꼬박 작성하고 있다. 이번 달은 나름대로 살뜰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합산을 해보려 하니, 살뜰하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평소와 별 다른 차이가 나질 않네.

 

음. 그리고 오늘부터, 가계부 작성 원칙을 하나 세웠다. 회계를 잘 모르지만, 현금주의로 작성하기로 결정! 발생주의는 어렵다ㅠ그리고 정말 예산이 적은 상태에서는 현금의 매일 매일의 변화가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현금주의로 해야지, 그 날 그 날의 유동성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Posted by 데이드리머
일상2011. 4. 24. 00:23
4월 20일. 급 서울숲 나들이 단행! 한양대에서 스터디 후. 바람이 너무 좋아 같은 스터디원에게 급 제안. 한 명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집에 가야했고. 그래서 남자와 단 둘이 ㅠㅠ

"바람 쐬러 갈까요?"
"아, 네. 좋아요."

그간 도대체 서울숲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가보고 싶었는데...
뉴욕에 센트럴 파크가 있다면, 서울엔 서울숲!!
사실 서울숲에 간 것 보다, 같이 간 서로 말 높이는 친구랑 이런 저런 이야기 한게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정말 속 깊고,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는, 배려심이 최고여서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그 친구.


 

 
이 아이 너무 부러웠음. 나도 저렇게 배깔고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음. 시간적인 여유와 마음의 여유. 물론 요즘 시간적 여유야 넘쳐나지만 ㅋㅋㅋㅋㅋ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해야하나.


허브 농장인가? 있었는데, 꽃이 너무 예쁘게 피었더라.

문득 생각났던 구절 하나.
항상 광화문 교보빌딩 지나갈 때, 뜬금없이 꽃을 사고 싶게 만드는 그 문구!


별안간 꽃이 사고 싶다.
꽃을 안사면 무엇을 산단 말인가?


젠장, 이런 식으로 꽃을 사나
('11년 광화문 글판 봄편)


                                      이진명 시인


우이동 삼각산 도선사 입구 귀퉁이
뻘건 플라스틱 동이에 몇 다발 꽃을 놓고 파는 데가 있다
산 오르려고 배낭에 도시락까지 싸오긴 했지만
오늘은 산도 싫다
예닐곱 시간씩 잘도 걷는 나지만
종점에서 예까지 삼십분은 걸어왔으니
오늘 운동은 됐다 그만두자
산이라고 언제나 산인 것도 아니지
젠장 오늘은 산도 싫구나
산이 날 좋아한 것도 아니니
도선사나 한바퀴 돌고 그냥 내려가자
그런 심보로 도선사 한 바퀴 돌고 내려왔는데
꽃 파는 데를 막 지나쳤는데
바닥에 저질러앉아 있던 꽃 파는 아줌마도 어디 갔는데
꽃, 꽃, 꽃이로구나
꽃이란 이름은 얼마나 꽃에 맞는 이름인가
별안간 꽃이 사고 싶다
꽃을 안사면 무엇을 산단 말인가
별안간 꽃이 사고 싶은 것, 그것이 꽃 아니겠는가
몸 돌려 꽃 파는 데로 다시 가
아줌마 아줌마 하며 꽃을 불렀다
흰 소국 노란 소국 자주 소국
흰 소국을 샀다
별 뜻은 없다
흰 소국이 지저분히 널린 집 안을 당겨줄 것 같았달까
집 안은 무슨, 지저분히 널린
엉터리 자기자신이나 좀 위로코 싶었겠지. 자가 위로
잘났네, 자가 위로, 개살구에 뼉다귀
그리고 위로란 남이 해주는 게 아니냐, 어쨌든
흰색은 모든 색을 살려주는 색이라니까 살아보자고
색을 산 건 아니니까 색 갖고 힘쓰진 말자
그런데, 이 꽃 파는 데는 절 들어갈 때 사갖고 들어가
부처님 앞에 올리라고 꽃 팔고 있는 데 아닌가
부처님 앞엔 얼씬도 안 하고 내려와서
맘 같지도 않은 맘에게 안기려고 꽃을 다산다고라
웃을 일, 하긴 부처님은 항상 빙그레 웃고 계시더라
부처님, 다 보이시죠, 꽃 사는 이 미물의 속
그렇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꽃이잖아요
부처님도 예뻐서 늘 무릎 앞에 놓고 계시는 그 꽃이요
헤헤, 오늘은 나한테 그 꽃을 내어주었다 생각하세요
부처님, 나 주신 꽃 들고 내려갑니다
젠장, 이런 식으로 꽃을 사다니, 덜 떨어진 꼭지여
비리구나 측은쿠나 비리구나 멀구나


이날 스터디 하면서, 토끼랑 옹달샘 얘기가 나왔었는데, 서울숲에서 진짜 토끼랑 옹달샘 봐서 빵터졌더랬다. 그래서 이 사진 찍어서 바로 전송!

이건 타일도기. 사진 찍은 것보다 훨씬 많은데, 인상적인 몇 개만 사진 찍어놨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한 것 같은 동심이 묻어난 그럼도 있었고, 전문가의 손길이 묻어있는, 그리고 옆집 동네 아저씨가 쓴 것 같은 타일도 있었고. 여튼 한데 모아 놓으니, 알록달록 예쁜 그림들.

요즘 바람을 너무 자주 쐬는 감이 있긴 한데. 여튼, 이렇게 좋은 봄날.
별안간 산책이 하고 싶었다.
산책을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한단 말인가?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1. 4. 17. 01:22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 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딱 이건 내 고향이다. 내 나이대의 사람들은 동의 하기 어려운 봄이지만 적어고 내 고향의 봄은 그렇다. 전원일기에 나오던 그 마을 보다 훨씬 시골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어느 정도 시골이냐면 산골소녀 영자보다는 아니지만, 내가 살던 곳도 완전 산골이었다. 아주 어릴 땐 산을 넘어가면 아라비아 상인들 및 외국인이 사는 줄 알았다. 할머니께서는 산에 가서 우슬이라는 약초를 캐서 파셨는데. 할머니가 산에 다녀오시면 진짜로 외국에 다녀오신지 알았었다.

 

음. 그리고 또 시골 of 시골을 가늠하는 한 가지. 티비가 어느정도 잘 나오냐인데. MBC만 깨끗히 나오고, KBS1은 그럭저럭 KBS2는 날씨에 따라 잘 나올 때도 있었고, SBS는 구경도 못했다. 이건 산골에 살았던 고 2때 까지 지속되었는데.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순풍 산부인과 얘기만 하면 나는 꿀먹은 벙어리 - 그나마 꿀이라도 먹어서 다행이지만 - 마냥 있었더랬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제일 좋아하는 채널은 MBC이다.

 

어릴 때의 봄. 그 곳에서는 계절에 따라서 해야할 것들이 매번 바뀐다. 봄에 하는 연중 행사는 모내기 준비하는 것. 모판에 고운 황토흙을 채우고, 볍씨를 뿌린다. 그리고 모가 돋아나길 기다려. 적당히 자라나면 모내기 시작! 모내기는 보통 기계가 하는데, 직접 손으로 심은 적도 있다. 꼬막손으로 어른들 따라했었는데. 논에 맨발로 들어가 혹시 거머리가 물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거머리가 물면 기겁을 했었는데. 아빠는 쏘쿨하게 손으로 떼어버렸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산에 놀러가서 개나리 진달래 꺾어와서 꽃병에 꽃아 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꽃들한테 미안하다. 그리고 또 봄의 기억 중의 하나는 쑥이랑 미나리를 캐러 다니기도 했고, 고사리 손으로 고사리를 꺾으로 산에 다니기도 했다. 엄마랑 같이 가기도 했었고, 동생들이랑 소꿉친구랑 같이 가기도 했었다.

 

또 봄 하면 생각 나는 게 개학. 학교도 가야지. 마지막 6학 년 때 전교생이 12명 남짓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입학 했을 땐 20명이 넘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같은 학년 3명, 바로 아래 학년 5명. 한 선생님이 두 학년을 맡았다. 뭐 개학이라고 해서 반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해서 딱히 기대감같은 건 없었다. 특히 같은 학년 3명중에 여자가 2명이어서 나는 3년 선배들이랑 주로 놀았다. 축구하거나 주로 학교에 있는 잔디밭에서 야구를 했던 게 기억난다. 음. 그 땐 형들한테 엄청 까불었는데, 지금은 만나면 어색해한다

 

음 그리고 어릴 때도 야구광이었었다. 특히 봄에 야구가 개막하는 데, 매일 매일 스포츠 뉴스를 섭렵하며. 직접 순위표를 만들기도 했었다. 종범이 형 홈런 쳤는지도 관심 대상. 물론 그게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그 때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서 답답해서 직접 스포츠 뉴스를 보며 기록을 하던 영특하던 어린시절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집. 닭장 속에는 암탉이 있었고. 아참. 한가지 인상적이 었던 것. 부엉이도 며칠 유숙했었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부엉이가 잠시 닭장에 있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개도 키웠었고, 염소도 키웠다. 어릴 때 부모님이 왜 그런 걸 시켰는 지 모르지만, 염소도 끌고 다녔다. 철에 따라 좋은 꼴을 먹이는 좋은 목자(?)ㅋㅋㅋㅋㅋ는 아니었고, 염소가 말을 안들어서 나한테 이걸 시킨 부모님을 원망하고, 염소를 원망하고. 어릴 때 아마도 염소 끌다가 팔근육이 유달리 발달했는지도 모른다.

 

집 뒷 뜰에는 자연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이끼가 끼어있고, 가끔 뱀도 지나다녔다. 학교 가는 길에 왕 구렁이 본적도 있고,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하다. 로드킬도 많이 봤다.

 

예전 집엔 두엄밭도 있었다. 나중에 거름으로 쓰게 될. 그리고 화장실은 재래식. 화장실에 갈 때마다, 빠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밤에는 무서워서 화장실에 잘 못가고.

 

집앞 텃밭엔 고추, 옥수수, 마늘, 부추, 고구마, 감자 등을 키웠었다. 그리고 감나무(단감, 떨감), 배나무 아주 어릴 땐 포도나무도 있었던 것 같다. 옆 켠에는 빛좋은 개살구 나무도 자리잡고 있었다.

 

어릴 때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 어릴 때 차암 부잡했었는데. 나무에 올라가는 거 좋아했었다. 괜한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감나무에 열린 감을 먹거나, 수박을 먹고 씨를 뱉으면 며칠 뒤에 싹이 돋아나기도 했다. 물론 이는 가뭄에 콩 나듯의 확률 정도였지만.

 

울타리 밖, 집 옆은 친척집의 밤나무와 감나무 밭. 집 앞에는 아주 작은 대나무 숲도 있었다. 봄이면 죽순이 돋아났는데. 그거 꺽어서 칼싸움을 하곤 했다. 그 때는 죽순이 먹을 거라는 생각은 못해봤다;;;

 

집앞 여우내라는 개천이 있었다. 비가 많이 올 땐 물이 갑자기 불어나, 다리를 삼킬 듯 하지만, 며칠 뒤에 금새 말라버려서, 여우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천(川)이 여우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음. 아주 어릴 때에 그 여우내에서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다. 그 다음 부턴 깊은 물가 근처에도 못가겠더라.

 

직접 손으로 물고기도 잡는 신동이었다 나는. 움직이는 물고기를 잡는 것은 아니고, 돌 사이로 손을 슬그머니 집어 넣으면 운이 좋으면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운이 안 좋으면 빠가사리를 잡거나, 꺽지를 잡아 다치기도 했었던 것 같다.

 

봄 얘기를 하다가, 너무 길어졌다. 벌써 4월도 반을 넘어섰다. T.S. 엘리엇은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 왜 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이유가 있긴 하겠지만. 나도 작년에는 잔인한 달이로구나 읊고 다녔었는데, 올해는 그냥 견딜만하다.

 

시인 김영랑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라는 시에서,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나카시마 미카라는 일본 가수는 벚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연분홍 빛 벚 꽃이 춤출 때 완전히 억누를 수 없는 마음으로 계속 서 있었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꽃잎들. 마냥 아름답기만 하다. 참 복합적인 감정이다. 봄을 여읜 것 같기도 해서, 슬프기도 하지만, 떨어져야 하는 자신의 임무를 다 한 꽃을 보면, 숙연해지기도 한다.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Posted by 데이드리머
2011. 4. 17. 00:01

411쪽 "모든 방면의 기술 변화는 불가피하게 일부에겐 번영을, 일부에겐 퇴보를 초래할 것이다."

 

경제학자 저엘 머키르가 비평한 것이라고 한다. 이 책도 컨테이너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를 그린 책이다. 일부에겐 번영, 일부에겐 퇴보를 초래한 과정을 그린 책.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세계화에 기여한 바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크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읽고 보니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하나의 세계를 가능케 했겠구나, 절감하게 되었더랬다.

 

요즘 무역 말고도, 이런 저런 방면에서 컨테이너 박스가 많이 쓰이더라. 어떤 집은 컨테이너로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명박산성으로도 쓰였다. 그래도 컨터이너 박스의 주요 용처는 짐을 옮기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의 발전 과정은 비슷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컨테이너의 발명. 그리고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 노동자들의 파업. 하지만 결국 컨테이너의 유용성으로 인해, "선택"을 받게 되고, 베트남 전쟁 때, 컨테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표준화 전쟁. 항구 간의 경쟁. 하지만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컨테이너 물류 회사 때문에, 공급 과잉. 요율은 떨어지고, 다시 시장은 재편.

 

대략 이런 과정이 400페이지가 넘게 기술되어 있다. 사실 모든 역사의 과정을 축약해 놓은 느낌.

 

그리고 책이 왜 이렇게 안 읽혀지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만 그런가?' 해서, 인터넷 서점 서평을 검색해봤는데. 역시 번역의 문제. 내가 번역의 문제를 논하기에는 내공이 부족하지만, 너무 읽히지 않아서, 문제가 있긴 있나 보다 했더랬다.

 

이 책 읽느라 너무 힘들었다ㅠㅠ 내가 왜 읽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으나. 일단 읽기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쓸데 없는 사명감으로 다 읽긴 읽음.


THEBOX(더박스):컨테이너역사를통해본세계경제학
카테고리 경제/경영 > 각국경제 > 경제사
지은이 마크 레빈슨 (21세기북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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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일상2011. 4. 14. 23:03





# 급 자소서 마무리하고, 학교 후문 미용실에서 이발할까 해서, 학교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에. 날씨도 좋으니, '어린이 대공원에 가볼까.' 해서 가봤다.

 

대학교 2학년 때에는 친구들이랑 몇 번 갔었는데, 그 이후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특히 최근에는 자주 지나가면서도, 선뜻 가기가 어려웠었는데, 오늘은 바람도 쐴 겸.

 

평일이라서 사람이 없을 줄 알고 갔는데, 왜 이리 많은 거야. 특히 연인들. 혼자서 벚 꽃 길을 거니는데, 의식이 안될 수가 없더라.

 

꽃 길을 거니면서, 생각났던 시 한편.

 

고려시대 유리왕의 황조가

 

편편황조(翩翩黃鳥)        펄펄 나는 꾀꼬리는
자웅상의(雌雄相依)        암수 서로 놀건마는
염아지독(念我之獨)        외로운 이 내 몸은
수기여귀(誰其與歸)        뉘와 함께 돌아갈꼬

 

 

어대 산책을 마치고, 미용실 고고. 오랜만에 만난 미용실 누나.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그냥 면접 볼 것도 아니라서요. 대충 잘라주세요."

"왜 대충 대충할라 그래요. 그래 인생 뭐 있어.

그까이꺼 그냥 대충 자르면 되지.(내가 장동민 닮은 지 알고 있어서.)"

"아, 아참. 현빈처럼 잘라주세요."

"고놈의 현빈 타령. 현빈 처럼 시원하게? 다 밀어달라고?"

 

 

# 대학교 1학년 때였나, 어린이 대공원의 코끼리에 얽힌 기억.

 

공연을 하던 코끼리의 도주. 어린이 대공원을 뛰쳐 나와서, 학교 후문 근처까지 왔더랬다. 지나가던 행인들 다치기도 하고, 후문의 식당 파손시키고 난리였었는데. 그 이후로, 학교 후문에 코끼리 들어온 집이라는 식당도 생겼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1. 4. 3. 01:20

 god 노래 제목 중에 헤어짐보다 아픈 그리움이라는 곡이 있다. 예전 MP3 Player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파일. 그냥 제목의 여운이 진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정말 아픈 것은 헤어짐보다는 그리움이라는 것을 모를리가 없지만, 왜 인지 고찰 - 고찰이라고 해서 거창해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이다. - 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감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당연(當然)을 이유로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문득 헤어짐보다 왜 그리움이 더 아픈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헤어짐은 공허함이다. 항상 함께 하던 것 나의 일부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어짐은 텅빔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텅빈 무언가는 어떤 걸로 채워져야 한다. 하지만, 그 텅빈 공간에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그리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득 채웠던 그 무언가가 다시 채워지는 것을 바라는 허전함. 그 허전함이 그리움을 부르는 것 같다.

 

 사실 진짜로 고찰해보았던 것은 이것이다. 점과 선의 관계. 헤어짐은 점(點)이지만, 그리움은 선(線)이다. 점은 찰나이지만, 선은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움이 더 아픈 것이다. 선은 언젠가는 끝이 있을 테고, 중간에 끊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끊어 진다고 하더라도, 다시 묶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움은 언제나 우리가 안고갈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겠다. 문득 문득 가슴 속에서 뛰쳐나와 미어지는 아련한 그런 기억 말이다.

 

 헤어짐 보다 아픈 그리움 말고도,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떤 사건들은 하나의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것도 하나의 점이다. 그 때는 그냥 쿨하게 괜찮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하나의 선이라고 할 수 있다.

 

 매 순간의 삶은 선과 점의 연속이다. 점이 이어진 것이 선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예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생각났던 여운이 남았던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손예진의 나래이션.

 

 

가끔은 시간이 흐른다는 게 위안이 된다.

누군가의 상처가 쉬이 아물길 바라면서.
또 가끔 우리는 행복이라는 희귀한 순간을 보내며

멈추지 않는 시간을 아쉬워 하기도 한다.

 

어떤 시간은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랑은 시간과 함께 끝나고

언젠가 변해버릴 사랑이라 해도 우리는 또 사랑을 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 처럼..

 

시간이라는 덧없음을 견디게 하는 것은 지난 날의 기억들.
지금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기억이 된다.
산다는 것은 기억을 만들어 가는 것.

 

우리는 늘 행복한 기억을 원하지만

시간은 그 바람을 무시하기도 한다.

 

일상은 고요한 물과도 같이 지루하지만

작은 파문이라도 일라치면
우리는 일상을 그리워하며 그 변화에 허덕인다.

 

행운과 불행은.. 늘 시간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달려든다.
우리의 삶은 너무도 약하여서

어느날 문득 장난감처럼 망가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변하고 언젠가는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애닳아하면서,
무엇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고통으로 채워진 시간도 지나고
죄책감 없이는 돌아볼 수 없는 시간도 지나고
희귀한 행복의 시간도 지나고
기억되지 않는 수많은 시간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격렬한 미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지루해하기도 하고
자주 상대를 불쌍히 여기며 살아간다.

 

시간이 또 지나 돌아보면
이 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듯

염치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오늘도 쓰잘떼기 없는 이야기 한 가득이구나.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