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9. 09:53


 작년 말이었다. KBS에서 방송 했던 TV 책을 말하다에 이 책이 소개되었다. 패널이 음. 누구였더라. 우석훈 교수님하고, 음 시골의사 박경철도 아마 출연 했을 것이다. 두 분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그 방송에 대한 기억은 많이 나질 않지만, 이 책에 대한 임팩트는 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샀고, 책을 산지 약 2달이 지난 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일단 지방의 사전적 의미는 서울 이외의 지역이다. 방송 중에 기억나는 한가지는 우석훈 교수님이 지방이라는 단어에도 서울 중심적인 사고가 물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참, 그리고 한가지 더 생각 나는 게 있는데, 시골의사 박경철님은 아마도 강준만 교수님이기에 이런 책을 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음. 강준만 교수님은, 예전에 한참 월간지 인물과 사상을 읽을 때 처음 접했다. 그 때 교수님의 글이 기억에 오래 남았었는데, 음. 누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식민지가 뜻하는 것은 지방이 서울(수도권)에 정치,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내부식민지론으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부식민지를 고착화 시키는 주범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교육인 것 같다. 예부터 '말은 나면 제주도로, 사람은 나면 서울로'라는 말이 있었다. 아마 옛부터 모든 것의 중심이 서울로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 것같다. 서울로의 집중. 물론 긍정적인 외부효과도 있지만, 아마 부정적인 외부효과가 더 큰 것 같다. 나 또한 내부식민지를 고착화 시키는데, 일조하는 것 같아서 할말은 없지만서도, 서울로 유학을 온 지방학생들이 서울에서 사용하는 돈을 따져보면 -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돈이 지방에서 쓰이지 않고 - 어마어마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서울에 소재하는 대학교에 학생들이 집중하는가? 그것은 단순하다. 단지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서울의 많은 학교들이 서울에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짐에도 많은 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학교들을 지방으로 옮긴다면, 과연 지금의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을까?'하고 묻는다. 아마 답은 뻔할 것이다. 53쪽의 "지방의 여러 지역에선 아직도 지역의 우수인재를 서울로 보내는 걸 '지역발전전략' 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걸 내부식민지 근성에 찌든 추태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라는 구절을 읽을 때는, 왠지 뜨끔했다. 뭐 나는 고향에서의 '지역발전전략' 정책의 수혜를 입은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음. 지금 수혜를 입고 있다. 서울유학생을 위한 기숙사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감사히 잘 지내고 있지만, 이것을 내부식민지 근성에 찌든 추태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정말 궁금하기는 하다. 그래서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과연 여러 방법으로 혜택을 받은 학생들이 너무너무 고마워서 과연 나중에 고향에 뭔가 기여를 해야한다고 생각할까? 이건 조금 아닌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니. 나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주위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95쪽에 소개된 한 예는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남겨준다. 도쿄대학 법학부, 교토대학 법학부의 학생 2명이 중앙관청이나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고 지역발전을 위해 고향에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이런 결심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교육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중 한 예가 방송, 신문이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잡담을 하면, "지방방송 꺼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지방방송을 왜 꺼야 하는가. 지방방송을 꺼서인지, 지방사람들은 지방의 소식들 보다는 서울의 소식에 더 빠삭하다. 이는 방송 뿐만 아니다. 신문도 마찬가지인데, 중앙지인 조중동의 점유율이 지방에서 지방지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중앙지에서는 지방에 대한 기사를 단지 한면에 걸쳐 싣는게 전부인데. 덕분에 지방지는 고사위기에 처해졌다고 한다.
 
 음. 그리고 예전에 블랙 스완을 읽을 때 접했던 프랙털 이론을 여기서 한번 더 만났다. 수학자 만델브로가 고안한 개념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프랙털 이론이 어떻게 쓰였냐 하면, 서울-지방의 관계가, 지방에서도 똑같이 예를 들어 부산-경남, 광주-전남의 관계와 비슷핟고 한다. 사이가 좋고 나쁨을 떠나, 서울에 많은 것들이 집중되듯이, 지방의 대도시도 또한 집중이 되고, 더 깊게 들어가면 읍-면의 관계도 비슷한 것같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너무 외부적인 측면에 대해서 썼는데, 사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외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부적 문제이다. 너무 외부적으로만 접근하면 피해의식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내부적인 문제도 많다. 지방에서의 이권 다툼, 지방 행정의 후진성, 그리고 지방민의 무관심, 지방의 교수들의 무책임함. 등등 내부적으로도 개선해야할 문제점들이 많다.
 
 이 책에서 지방의 발전을 주장하는 것을 넓혀보면, 성장과 분배로도 설명할 수 있다. 지방은 분배를 요구하고 있고, 서울은 성장을 지향하고 있다. 이건 필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가치가 어떤 것에 더 큰 비중을 두는지에 따라 방향이 설정되는지, 적어도 지금까지는 서울의 성장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이러다가 전 국토가 수도권이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344쪽 지방이 지방주의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울이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발상을 포기한 만큼 그 걱정도 지방이 해야 한다. 수도권의 고민도 헤어려가면서 좀더 정교한 대안을 제시하고 추진해 나가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을 지방이 책임지자."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뭔가 저자의 결연한 주장인 것 같다.
 
20쪽 지금 지방의 요구는 무조건 수도권에 있던 것을 빼내서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라는 게 아니다. 전체 파이를 키우지 못하면서 나눠 먹기만 하자는 것도 아니다. 중앙의 기만적인 정책, 그리고 새로 투자 · 투입되는 돈과 인허가권이 수도권 위주로 돌아가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44쪽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의 근본 문제는 헌법이나 제도에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줄세우기와 줄서기 관행에 있다. 이런 관행은 이성과 양심을 가진 자율적 개인을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며, 내부 비판과 이견을 압살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총명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인 집단일지라도 스스로 망할 때까지 아무런 자구책을 내놓지 못한다. 이게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줄 공화국' 의 부끄러운 얼굴이다.
 
69쪽 규제를 푸는 건 수도권엔 '현금' 이다. 일도 매우 간단하다. 규제를 푸는 것만으로 모든 게 완성된다. 반면 국가의 지원을 지방에 집중하겠다는 건 지방엔 '어음' 이다. 그것도 만기일이 멀리 남은 5년짜리 어음이다. 안전장치도 없다. 법적으로 강제할 수도 없는 신뢰뿐이다.
 
135쪽 우리는 공공 영역의 사유화에 대해 많은 비판을 쏟아내곤 있지만 작심하고 그걸 본격적인 이슈로 삼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아니, 고양이 목에 방울 매달 사람이 없다고 보는 게 옳겠다. 사유화를 근절할 순 없을망정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공공 영역이 전리품으로 탕진되는 걸 막는 것 이상 큰 개혁이 어디에 있겠는가.
 
139쪽 사회개혁을 위한 비판에서도 '역지사지' 는 꼭 필요하다. 실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국민도 '직업으로서의 정치' 에 대한 역지사지를 해줘야 한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지만 정치인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에겐 생계수단이기도 하다. 그걸 인정하는 현실적 기반 위에 서야 정치를 바판하더라도 힘이 실리고 응징도 제대로 할 수 있다.
 
152쪽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한 마당이 펼쳐졌을 때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최근의 촛불집회처람 말이다. 그런 기회는 자주 오지도 않지만, 그건 좀 무책임한 생각이다. 내가 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거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일에 참여를 해주면 그 일이 그럴듯해지고, 참여자가 늘면 세상을 진짜로 바꾸게 된다. 우리는 왜 이런 간단한 이치를 외면하는 걸까?
 
238쪽 아는 만큼 보일 뿐만 아니라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지역문화에 대해 별로 좋은 줄 몰랐던 것도 알게 되면 몹시 좋아하게 된다. 지역문화를 모를 뿐만 아니라 무관심한 수용자들을 상대로 그 무지와 무관심을 그대로 둔 채 아무리 콘텐츠 경쟁력을 역설해봐야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293쪽 한국은 세계에서 교육열이 가장 뜨거운 나라다. 긍지를 느끼고 자랑할 만 하다. 그러나 그 그림자가 있으니, 그게 바로 학력 · 학벌 숭배주의다. 자신만 숭배하고 끝나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자신의 숭배심을 근거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게 문제다.

지방은 식민지다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강준만 (개마고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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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이드리머
일상2009. 3. 25. 22:21

 오늘 아침에 음악을 들으며 쓴 글이다.

 

 엠피쓰리플레이어에서 클래식이 나온다. 랜덤 듣기로 설정했는데, 이번 순서는 클래식이다. 클래식을 들으며 학교에 가고 있으니 뭔가 새롭다. 귓가에 들리는 음악과 함께 모든 소리들이 함께 합주가 된다. 지하철 소리, 똑깍거리는 구둣소리, 신문 펼치는, 그리고 신문 넘기는 소리다.

 

 클래식을 들으며 사람들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조금 평화롭게 보인다. 음악이 잠시나마 귀와 세상을 단절시키니, 내 사고도 약간은 잠시나마 단절된 느낌이다. 그리고 왠지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도 들게 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무언극의 무대인 것 같다.

 

 지금 듣고 있는 곡은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나오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이다.

 

 그리고 노라존스의 Don't know why로 곡이 넘어갔다. 노라존스의 목소리는 이상한 마력을 지닌 것 같다. 비록 아는 노래도 별로 없지만. 어쨌든 나만의 느낌이지만, 뭔가 몽환적? 아니면 뭔가 표현은 잘 못하지만, 잠들기전 의식이 조금 남아있을 때, 사고활동이 정지될 때 즈음의 기분이다. 음. 몽롱하다고나 해야할까? 어쨌든 노라존스의 노래를 들을 때면 왠지 잠을 자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노라존스의 노래가 끝나고 휘성 1집에 수록된 magic eye가 흘러나온다. 휘성 1집은 CD를 사서, CD가 닳지는 않지만, 닳을 정도로 들었는데, 아마도 그 때가 고 2, 고 3때였다. 이제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릴 시간이다. 으. 날씨 춥다. 이제 슈베르트 현악4중주인 것 같은데, 무슨 곡인지는 모르겠다.

 

 

 아침에 음악을 들으며, 핸드폰 메모장에 쓴 글이다. 사람이 많아서 책 읽을 틈도 없을 땐 음악을 듣는다. 보통 굿모닝 팝스를 들으며 가는데, 오늘 아침에는 당최 굿모닝 팝스 책을 어디에 놓았는지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그냥 노래나 듣자 하고 - 날씨도 추우니 - 귀마개겸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가자는 심산이었다. 어쨌든, 조금 특별한(?) 아침에 특별한 메모다. 그나저나 굿모닝 팝스 책을 기숙사 돌아와서도 못찾았었는데, 침대와 벽 틈새에 먼지와 함께 고이 이틀정도 묵혀있었다. 음. 일단 찾아서 다행이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일상2009. 3. 24. 01:15

 오늘 학교에서 진중권 교수님 강연회를 했다. 주제는 디지털 시대의 문화였다. 열심히 강의 필기를 해가면서 들었다. 유익했던 강의였다. 강의 요약한 내용을 다시 정리해야하는데, 오늘은 졸려서, 못하겠다. 그래서 일단 교수님을 만났던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

 

 티비에서만 보던 진중권 교수님을 실제로 보니깐 새로웠다. 그렇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목소리도  귀에 익고, 방송에서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아서 마치 방송을 보는 듯한 착각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막힘없이 말을 하시고, 학생들의 질문에도 곧 바로 대답을 하시는 달변가이신 것 같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안좋아 할 수도 있는데, 음 나는 그 분을 좋아한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실 강연을 마치고 대단한 만족감을 갖고 지하철 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하철 역을 가는 길에, 뭔가가 아쉬웠다. 역시 막혀있는 공간에서는 생각도 제한되는 것 같다. 길을 걸으며, 생각하는데, 뭔가 강의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그러면서 그냥 아쉬운 마음을 갖고 걷는 길에, 학교 후문의 서점을 발견했다. 서점가서 이런 저럭 책을 스치며 보니, 아쉬운 마음은 조금 풀렸다. 여러 책들을 스치며 보는 중에 진중권 교수님이 얼마 전에 출판한 이매진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나중에 읽어야하고, 그냥 훑어보고, 서점에서 나왔다.

 

 서점을 나와서, 가는 길에 진중권 교수님 일행을 마주쳤다. 근처의 호프집에에 들어갔는데, 진보신당 당원과 학교 교지편집위원회의 조촐한 뒤풀이 같았다. 뭔가 그냥 가기 아쉬워서, 사인을 받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예전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짓을 저질렀다. 서점에가서 이매진을 구입하고, 사인을 받으러 조금 뒤 늦게 따라 들어갔다. 사인을 받고나서 가려는데, 진중권 교수님께서 시간있으면, 조금 있다 가는게 어떻겠느냐는 말씀에, 사실 0.000001초만 고민하다가 바로 진중권 교수님 옆자리에 앉았다. 뭔가 꼽사리라고 해야하나, 주최 측의 모임에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된 것 같아서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사실 말주변이 별로 없어서, 이런 저런 얘기는 많이 못했지만,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재밌었고, 진중권 교수님 옆에서 있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티비 토론회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실 토론회의 특성상, 조금 날카로운 모습만 보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예의바르시고, 상대를 배려하고, 음. 이런걸 젠틀이라고 해야하나. 젠틀 앞에 수식어를 하나 붙이자면, 뭔가 자유로운 젠틀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쨌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에 악수를 하고 진중권 교수님은 먼저 들어가셨다. 그리고 나도 지하철 시간도 있고, 기숙사까지 들어가려면 너무 늦으면 안되니까, 적당한 시간에 먼저 일어났다.

 

 오늘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진중권 교수님의 책을 탐독해야겠다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재발견이다. 사실 예전이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무슨 일로, 내가 이런 일을 했는지. 한편으로는 가상하기도 하다.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나저나 내일 1교수 수업이라서 빨리 자려고 했는데, 일단 기숙사에 늦게 들어와서, 씻고 나니 12시가 넘었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네이트온에서 수다를 떨면서 벌써 1시가 넘었다. 오늘 강연도 정리 못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내일 혹은 주말로 미뤄질 듯 싶다. 흑. 빨리 자야겠다.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엔 지하철을 타고 파김치가 되서 학교에 도착하곤 하는데. 조금 더 일찍 출발해야겠다.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