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2011. 9. 2. 17:59

# 종류를 막론하고, 어떤 류의 이별이든 익숙치 않다. 가슴에 묵직한 돌이 하나 얹혀져 있는 기분이다.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기억에 남는 이별은 09년도에 복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올 때에 막내 동생과의 이별이다. 3년 동안 같이 살면서 뭐 잘해준 것도 없는데, 서울 올라가는 날, 의연한 척 터미널까지 따라오더니, 버스에 올라서려고 하니, 기어코 눈물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버스에 출발하고 나서, 집에 가서도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버스 출발 후에, 막내 동생과 통화 했는데, 괜스리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 막내한테, 그 때 왜 울었냐고 물어보면, 내가 언제 울었느냐고, 잡아 떼지만.

# 예전에 요즘 SNS가 Social Network Stress가 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현재 티스토리 블로그, 한 서점에 블로그, 싸이월드, 트위터, 페이스북의 SNS를 운영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블로그는 SNS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가입했었던 페이스북을 그저께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더 이상의 SNS를 늘리고 싶지는 않았는데, 또 막상 시작하니까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것 같더라. 그런데 최대한 자제할 예정.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사람도 있었고, 또 하나의 소통 창구가 늘어나 좋긴 했지만, SNS를 하면 할 수록, 어디까지 나를 노출해야 하나? 그리고 나의 좋은 면만 보이려고 하는 나의 모습. 그리고 글이나 사진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보여주고 싶은데,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뭔가 오픈하는 게 망설여 진다.

 처음 블로그에 입문한 게 한 서점의 블로그이다. 그 블로그에는 소싯적의 부끄러운 글들이 한 다발인데, 이 블로그는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블로그이다. 활성화 된 블로그는 아닌데, 당시 서점 블로그의 특성 상(?) 책에 관하여, 서로 댓글 품앗이를 하다가, 친해졌고, 서로 소포로 책을 보내주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받았던,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었던 사람들끼리 수상한 관계를 맺기도 했었더랬다. 지금은 블로그도 시들시들해져서, 잘 찾지 않는 폐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옮겨온 곳이 티스토리. 모르는 사람에게 초대장을 신청해서, 겨우 초대장 받고 나서, 이런 저런 부끄러운 글들을 많이 쓴 것 같다. 여기도 사실 철저한 비공개의 장(?)이었는데, 비공개의 장막은 걷혔다 ㅋㅋ

 블로그에 앞서 인터넷에 처음으로 애정을 갖고 글을 쓰게 된 곳은 누드 다이어리라는 곳이다. "누드" 라는 이름이 들어가, 19금 사이트로 뜨지만, 전혀 그런 사이트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날 그날 일기를 쓰면서, 서로 댓글도 소통하던 곳이었다. 이 곳도 지금은 사이트가 폐쇄됐다가, 다시 소생(?)되기도 한다.

 누드 다이어리에 앞서는 다모임이라는 게 있는데, 이런 저런 사진들을 꽤 올렸던 것 같은데, 그냥 어느 날 충동적으로 탈퇴해버려서 모든 자료는 사라졌다.

 나의 SNS 이용사(史). SNS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보이고 싶은 마음. 그리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픈 마음. 하지만 SNS를 통한 소통에는 한계가 있다. 어디서든 상대방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어느 새인가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게 불편해질 때도 있고, 시간을 허비한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원치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점점 늘어난다. 무형의 공간에서가 아니라, 작은 카페에서 오손도손, 조곤조곤 이야기 하는 게 그리워진다.

# 이제 퇴근.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1. 6. 26. 23:17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유? 수취인 불분명한 호리병에 편지 담아 창파[滄波]에 띄우는 심정으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누군간 읽겠지. 그리고 누군가는 공감해주겠지'를 목적으로 끊임없이 웹에 띄우는 게 나도 몰랐던, 이제 깨달은 목적이 아니었나 싶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1. 6. 24. 23:18

# 포퓰리즘에 대해서 생각해보다가,

 

 최근 한 언론사에서 포퓰리즘 감시단을 발족했다는데, 사실 이것도 포퓰리즘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인기를 끌기 위한 또 하나의 포퓰리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란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누구를 만족시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힘없고, 돈없는 사람을 위한 정책을 마냥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기득권을 위한 정책이 대부분이지 않았던가?

 

 예를 들어, 요 근래에는 비즈니스 후렌들리(?)의 일환으로 고환율 정책으로 막대한 이익을 일부 대기업에게 안겨주었는데. 전경련이라는 단체는 막무가내 포퓰리즘을 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낸다고 했던 것 같다.

 

 최근 포퓰리즘 논쟁을 보면서, 이제 원래 자리로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외환위기 때마다, 서민들이 허리를 졸라, 심지어는 금모으기 운동을 통해서도 - 일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는데 - 책임과 피해는 착한 일반 국민이 고스란히 지면서, 경기가 회복되면 남몰라라 하는 행태는 분명 고쳐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최근 한진중공업 사태를 바라보면서도, 과연 지금 우리 사회의 정의는 자본의 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지난 주 목요일부터 이번 주 화요일까지 폭풍 면접을 봤다. 주일 하루 빼고, 매일 매일 면접. 사실 뭐 하나 제대로 준비해 간게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비슷한 형식의 면접 전형이 있는 곳에 면접 보러 갈 때는 준비한 시간과 합격률은 비례할테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사실 준비한 시간과 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어느 곳이든 준비한 시간 보다는 인상과 합격률과 많이 비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겁한 변명인가? 내 첫인상이 썩 좋지 않은 것은 나도 알기 때문에. 특히 서비스 업종에서는 첫인상이 중요하긴 하다.

 

 첫인상 뿐이겠느냐마는, 실력도 부족한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오긴 했었는데, 내향적인 성격은 정녕 사회에서 필요 없는 성격인가?

 

 그리고 사실은 취업에 대한 열망도 많이 부족한 것 같긴 하다. 내가 뭘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지 못찾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게중에는 정말 이런 곳에서 일해본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한 곳도 있었고, 누구에게도 자랑할 만한 회사와 직업, 그리고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연봉. 그런데 그런 곳을 원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고, 항상 귀하의 자질은 뛰어나지만, 한정된 자리 때문에 채용을 할 수가 없다는 메일을 받는 것도 이제는 덤덤하다.

 

# 오늘도 면접을 보긴 했다. 사실 덤이라고 생각하고 면접 보긴 했다. 여의도에서 면접 보구서, '이제 뭐하지?' 하고 생각하다가, '남도학숙이랑 가까운데, 오랜만에 방문해볼까?'도, '5호선 타고 가면서 광화문 교보문고나 갈까?'도, 고민하다 '영화나 보자!'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보게 된 영화는 소중한 날의 꿈! 애니메이션인데, 박신혜, 송창의 더빙. 참 잘 만든 것 같던데. 사실 극의 후반으로 갈 수록 너무 교훈을 주고자 하는 그런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아서, 재미 없어 졌지만, 애니도 섬세하게 잘 만든 것 같고, 내용도 요즘 내 상황과 맞아 떨어진지라, 그냥 공감하면서 봤더랬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1. 6. 6. 23:27

# 과거를 추억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다.

 

 일단은 기억으로. 그리고 추억하기 위해 많은 사진들을 찍는다. 지금은 가장 사진이 보편적인 방법. 적극적으로는 추억의 현장에 방문함으로, 과거를 떠올린다. 그 곳의 향기와, 분위기, 정취 등을 느끼며, 그 때 그 시간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물론 과거를 추억하기 위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다보면, 그 때 느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한다.

 

 오늘 과거를 추억하기 위한 기발한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사실 기발하지도, 독창적이지도 않다. 내가 온전히 생각해 낸게 아니다. 예전에 우연히 읽었던 주간지 - 아마도 주간 동아인 것 같다 - 를 보고 떠오른 것. 

 

 한 필자가,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수집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수집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떤 물건이나, 기념품을 수집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의외인 영.수.증.

 

  여행지에서 어떤 물건을 사고, 받았던 영수증. 그리고 그 영수증을 볼 때, 어디에서, 언제 - 친절하게, 날짜와 시간도 나와있다 - , 왜 샀는지를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왜 샀는지 기억할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최근 우연히 버리지 않고, 모아놨던 영수증을 정리했다. 대부분 버릴만 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지만, 게중에는 버리기 아까운 영수증들이 있었다. 물론 영수증을 보면, 내가 샀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쓰라린 기억도 찾아오지만 말이다.

 

 누구와 어느 식당에서, 어느 찻집에서 몇 시 쯤에 어떤 얘기를 했었는지, 대략 떠올릴 수 있고. 누구와 어떤 영화를, 공연을 봤었구나. 그래 그랬었지. 아참, 이 사람한테 선물도 줬었구나.

 

 그래서 그러한 기억의 마모를 조금 더 더디게 하고자, 영수증과 공연 티켓 등을 최근 장만한 내 노트에 붙일 예정이다. 참고로 노트의 용도는 평소에 흘려 보내가 아까운 글들을 스크랩하고, 신문을 읽을 때, 그냥 흘려 보냈던 행간을 기록하기 위한 거였는데. 영수증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이제 잡(?) 노트가 되어 버렸다. 음. 노트에 이름을 붙이고 싶은데. 뭘로하지? 생각해 놓은 게 있었는데, 사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으로 노트 이름을 지을까 생각했었는데, 뭔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중. 아무것도 아닌 노트로 할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니깐 노트의 이름은 아무것도 아닌.

 

 어쨌든 지금 영수증을 2개 붙여놨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1. 5. 18. 23:45

# 5.18과 야구의 추억

 

5.18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던 날. 과거에 한동안 광주에서는 5월 18일에는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물론, 야구를 빌미로 가장 정치적인 광주 시민이 모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은 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 86년에 첫 홈(하지만, 전주에서) 경기, 2000년 5월 18일 한화 전이 두번째 경기. 야구의 고장, 민주화의 고장에서 20년 동안 야구가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5.18의 또 하나의 야구는 2008년 5월 18일의 광주 경기. 엘지와의 경기였다. 아마 기아가 어이없게 무너졌던 경기 였다. 특별히 5월 18일이어서, 져도 무기력하게 져서는 안되는 경기였다. 그런데 무기력한 강우콜드 패. 박정태의 이대형을 향한 빈볼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기도 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리고 광주 팬들은 분노로, 야구장에 오물 투척을 했고, 급기야는 5.18정신을 운운하며, 기아와 광주팬을 비난하는 기사가 신문의 기사거리가 되기도 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로부터 3년 후, 2011년 5월 18일 공교롭게도 또 엘지와의 경기.

오늘은 대승. 특히 공동 4위에만 3팀, 유례없는(?) 중위권 싸움을 하는 도중에, 2위를 달리고 있는 LG를 상대로, 승차를 줄일 수 있었고, 내일까지 이긴다면, 2위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경기였는데, 낙승해서 너무 좋다. 내일은 올시즌 프로야구의 히트상품인 박현준과 양현종의 빅매치! 요즘 기아가 잘하니깐 너무 좋다! 그런데 내 기억력 완전 쩌는데? 이런걸 기억해내는 나의 야구에 관한 기억력!!ㅋㅋ

 

# 다니엘서를 읽다가. 부끄럽지만 참 오랜만에 성경을 읽었다. 진짜 오랜만으로.

 

10장 12절. 그가 내기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이렇게 극히 일부의 구절로만 성경을 해석하면 이단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다는 말에, 일단 결심 자체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항상 결심만 하다 결국 행하지 못해서, 그걸로 끝나는데, 결심도 하나님께서 보신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지.

 

 그래도 다니엘은 결심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행함이 있었고, 항상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목숨조차 아깝지 않게.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에 처했지만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믿음을 지킨 다니엘. 나는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1. 5. 14. 23:31

# 풍요 속의 빈곤

 

최근 나의 삶을 압축해본다면, 풍요 속의 빈곤인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절대적인 시간은 풍요롭지만, 막상 마음 속에 여유가 없어, 항상 바쁜 것 같다.

 

놀자는 이야기에,

 

"시간이 안되서."

"뭐하는데 그렇게 바뻐?"

".....(변명거리 생각 중) 조만간 면접이 있어서.

면접 준비도 해야하고, 원서도 써야하고."

 

사실 면접 준비도 잠깐, 원서 쓰는 것도 잠깐이지만, 꼭 해야할 일을 앞두고, 다른 약속을 잡는 게 여간 맘이 편하지 않아서. 그래서 흘려버린 약속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물론! 변명이긴 하지만, 면접 준비 한 거 맞고, 원서 쓰는 것도 맞다.

 

또한 최근 느끼는 풍요속의 빈곤의 다른 예.

 

관계다. 막상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사람은 많지만, 연락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막상 '한 번 연락해볼까?' 마음 먹고, 연락하지 않는 이상, 연락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나는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양과 질 모두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허나, 아는 사람이 늘어 날 수록, 관계의 빈곤에 허덕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질/양)이기 때문에, 분모가 커질 수록, 관계에 있어서 질의 비율은 낮아지기 마련이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만나야 하는 사람이 많아 지기 때문에, 질의 질도 낮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삶 속에서, 정말로 친한 사람이 얼마나 있어야 행복한 삶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친한"의 기준은 무엇일까? 고민해봐야겠다.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나는 "빈곤 속의 풍요"를 택하고 싶다. 소수의 뜨뜻한 그런 사람들과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평생!

 

# 목요일 면접.

 

8시 까지 여의도 도착! 전날 잠을 늦게 잤더랬다. 잠이 안와서. 그래서 아침에 겨우 눈 비비고 일어났다. 아침의 1분은 왜 이리 소중한지. 지하철에서 1분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아침의 1분 vs 저녁의 1분

 

같은 1분이지만, 아침의 1분은 너무 소중해서, 알뜰하고, 살뜰하게 사용하지만, 저녁의 1분은 완전 퍼질러져서 낭비하는 것 같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아침에 하라고 했으면, 절대로 안할 짓.

 

어쨌든 8시에 도착해야 했는데, 딱 8시에 칼같이 도착했던 것 같다. 정말 살뜰하게, 1분 1초도 사용했던 것 같다.

  

# 차이나 신드롬

 

요즘 다시 차이나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주목 받고 있다.

 

‘차이나 신드롬’은 1970년대 미국에서 최악의 원전 사고를 상정해 만들어진 신조어. 원자로의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멜트 다운’이 시작되면 핵반응에 따른 고온·고열로 원자로 바닥의 땅까지 계속 녹아내려 지구 중심을 지나 미국 땅의 반대편인 중국까지 뚫고 나갈 수 있다는 발상에서 생긴 조어다. 실제 이같은 내용의 '차이나 신드롬'이란 영화도 제작됐으며, 그 다음해에 스리마일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미디어 오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5376)

 

요즘 일본 원전에 관한 기사가 올라오지 않아서, 별일 없나 싶었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다. 악화 일로로 치닫는 것 같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방사능 비"에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은데, 어느 새 쏙 들어갔고, 이제 더 이상 원전 사고에 대한 언급을 언론에서 못봤던 것 같다. 우리는 과연 안전한 곳에서 살고 있나?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1. 4. 17. 01:22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 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딱 이건 내 고향이다. 내 나이대의 사람들은 동의 하기 어려운 봄이지만 적어고 내 고향의 봄은 그렇다. 전원일기에 나오던 그 마을 보다 훨씬 시골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어느 정도 시골이냐면 산골소녀 영자보다는 아니지만, 내가 살던 곳도 완전 산골이었다. 아주 어릴 땐 산을 넘어가면 아라비아 상인들 및 외국인이 사는 줄 알았다. 할머니께서는 산에 가서 우슬이라는 약초를 캐서 파셨는데. 할머니가 산에 다녀오시면 진짜로 외국에 다녀오신지 알았었다.

 

음. 그리고 또 시골 of 시골을 가늠하는 한 가지. 티비가 어느정도 잘 나오냐인데. MBC만 깨끗히 나오고, KBS1은 그럭저럭 KBS2는 날씨에 따라 잘 나올 때도 있었고, SBS는 구경도 못했다. 이건 산골에 살았던 고 2때 까지 지속되었는데.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순풍 산부인과 얘기만 하면 나는 꿀먹은 벙어리 - 그나마 꿀이라도 먹어서 다행이지만 - 마냥 있었더랬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제일 좋아하는 채널은 MBC이다.

 

어릴 때의 봄. 그 곳에서는 계절에 따라서 해야할 것들이 매번 바뀐다. 봄에 하는 연중 행사는 모내기 준비하는 것. 모판에 고운 황토흙을 채우고, 볍씨를 뿌린다. 그리고 모가 돋아나길 기다려. 적당히 자라나면 모내기 시작! 모내기는 보통 기계가 하는데, 직접 손으로 심은 적도 있다. 꼬막손으로 어른들 따라했었는데. 논에 맨발로 들어가 혹시 거머리가 물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거머리가 물면 기겁을 했었는데. 아빠는 쏘쿨하게 손으로 떼어버렸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산에 놀러가서 개나리 진달래 꺾어와서 꽃병에 꽃아 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꽃들한테 미안하다. 그리고 또 봄의 기억 중의 하나는 쑥이랑 미나리를 캐러 다니기도 했고, 고사리 손으로 고사리를 꺾으로 산에 다니기도 했다. 엄마랑 같이 가기도 했었고, 동생들이랑 소꿉친구랑 같이 가기도 했었다.

 

또 봄 하면 생각 나는 게 개학. 학교도 가야지. 마지막 6학 년 때 전교생이 12명 남짓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입학 했을 땐 20명이 넘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같은 학년 3명, 바로 아래 학년 5명. 한 선생님이 두 학년을 맡았다. 뭐 개학이라고 해서 반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해서 딱히 기대감같은 건 없었다. 특히 같은 학년 3명중에 여자가 2명이어서 나는 3년 선배들이랑 주로 놀았다. 축구하거나 주로 학교에 있는 잔디밭에서 야구를 했던 게 기억난다. 음. 그 땐 형들한테 엄청 까불었는데, 지금은 만나면 어색해한다

 

음 그리고 어릴 때도 야구광이었었다. 특히 봄에 야구가 개막하는 데, 매일 매일 스포츠 뉴스를 섭렵하며. 직접 순위표를 만들기도 했었다. 종범이 형 홈런 쳤는지도 관심 대상. 물론 그게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그 때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서 답답해서 직접 스포츠 뉴스를 보며 기록을 하던 영특하던 어린시절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집. 닭장 속에는 암탉이 있었고. 아참. 한가지 인상적이 었던 것. 부엉이도 며칠 유숙했었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부엉이가 잠시 닭장에 있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개도 키웠었고, 염소도 키웠다. 어릴 때 부모님이 왜 그런 걸 시켰는 지 모르지만, 염소도 끌고 다녔다. 철에 따라 좋은 꼴을 먹이는 좋은 목자(?)ㅋㅋㅋㅋㅋ는 아니었고, 염소가 말을 안들어서 나한테 이걸 시킨 부모님을 원망하고, 염소를 원망하고. 어릴 때 아마도 염소 끌다가 팔근육이 유달리 발달했는지도 모른다.

 

집 뒷 뜰에는 자연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이끼가 끼어있고, 가끔 뱀도 지나다녔다. 학교 가는 길에 왕 구렁이 본적도 있고,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하다. 로드킬도 많이 봤다.

 

예전 집엔 두엄밭도 있었다. 나중에 거름으로 쓰게 될. 그리고 화장실은 재래식. 화장실에 갈 때마다, 빠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밤에는 무서워서 화장실에 잘 못가고.

 

집앞 텃밭엔 고추, 옥수수, 마늘, 부추, 고구마, 감자 등을 키웠었다. 그리고 감나무(단감, 떨감), 배나무 아주 어릴 땐 포도나무도 있었던 것 같다. 옆 켠에는 빛좋은 개살구 나무도 자리잡고 있었다.

 

어릴 때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 어릴 때 차암 부잡했었는데. 나무에 올라가는 거 좋아했었다. 괜한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감나무에 열린 감을 먹거나, 수박을 먹고 씨를 뱉으면 며칠 뒤에 싹이 돋아나기도 했다. 물론 이는 가뭄에 콩 나듯의 확률 정도였지만.

 

울타리 밖, 집 옆은 친척집의 밤나무와 감나무 밭. 집 앞에는 아주 작은 대나무 숲도 있었다. 봄이면 죽순이 돋아났는데. 그거 꺽어서 칼싸움을 하곤 했다. 그 때는 죽순이 먹을 거라는 생각은 못해봤다;;;

 

집앞 여우내라는 개천이 있었다. 비가 많이 올 땐 물이 갑자기 불어나, 다리를 삼킬 듯 하지만, 며칠 뒤에 금새 말라버려서, 여우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천(川)이 여우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음. 아주 어릴 때에 그 여우내에서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다. 그 다음 부턴 깊은 물가 근처에도 못가겠더라.

 

직접 손으로 물고기도 잡는 신동이었다 나는. 움직이는 물고기를 잡는 것은 아니고, 돌 사이로 손을 슬그머니 집어 넣으면 운이 좋으면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운이 안 좋으면 빠가사리를 잡거나, 꺽지를 잡아 다치기도 했었던 것 같다.

 

봄 얘기를 하다가, 너무 길어졌다. 벌써 4월도 반을 넘어섰다. T.S. 엘리엇은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 왜 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이유가 있긴 하겠지만. 나도 작년에는 잔인한 달이로구나 읊고 다녔었는데, 올해는 그냥 견딜만하다.

 

시인 김영랑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라는 시에서,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나카시마 미카라는 일본 가수는 벚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연분홍 빛 벚 꽃이 춤출 때 완전히 억누를 수 없는 마음으로 계속 서 있었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꽃잎들. 마냥 아름답기만 하다. 참 복합적인 감정이다. 봄을 여읜 것 같기도 해서, 슬프기도 하지만, 떨어져야 하는 자신의 임무를 다 한 꽃을 보면, 숙연해지기도 한다.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1. 4. 3. 01:20

 god 노래 제목 중에 헤어짐보다 아픈 그리움이라는 곡이 있다. 예전 MP3 Player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파일. 그냥 제목의 여운이 진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정말 아픈 것은 헤어짐보다는 그리움이라는 것을 모를리가 없지만, 왜 인지 고찰 - 고찰이라고 해서 거창해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이다. - 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감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당연(當然)을 이유로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문득 헤어짐보다 왜 그리움이 더 아픈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헤어짐은 공허함이다. 항상 함께 하던 것 나의 일부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어짐은 텅빔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텅빈 무언가는 어떤 걸로 채워져야 한다. 하지만, 그 텅빈 공간에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그리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득 채웠던 그 무언가가 다시 채워지는 것을 바라는 허전함. 그 허전함이 그리움을 부르는 것 같다.

 

 사실 진짜로 고찰해보았던 것은 이것이다. 점과 선의 관계. 헤어짐은 점(點)이지만, 그리움은 선(線)이다. 점은 찰나이지만, 선은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움이 더 아픈 것이다. 선은 언젠가는 끝이 있을 테고, 중간에 끊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끊어 진다고 하더라도, 다시 묶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움은 언제나 우리가 안고갈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겠다. 문득 문득 가슴 속에서 뛰쳐나와 미어지는 아련한 그런 기억 말이다.

 

 헤어짐 보다 아픈 그리움 말고도,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떤 사건들은 하나의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것도 하나의 점이다. 그 때는 그냥 쿨하게 괜찮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하나의 선이라고 할 수 있다.

 

 매 순간의 삶은 선과 점의 연속이다. 점이 이어진 것이 선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예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생각났던 여운이 남았던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손예진의 나래이션.

 

 

가끔은 시간이 흐른다는 게 위안이 된다.

누군가의 상처가 쉬이 아물길 바라면서.
또 가끔 우리는 행복이라는 희귀한 순간을 보내며

멈추지 않는 시간을 아쉬워 하기도 한다.

 

어떤 시간은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랑은 시간과 함께 끝나고

언젠가 변해버릴 사랑이라 해도 우리는 또 사랑을 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 처럼..

 

시간이라는 덧없음을 견디게 하는 것은 지난 날의 기억들.
지금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기억이 된다.
산다는 것은 기억을 만들어 가는 것.

 

우리는 늘 행복한 기억을 원하지만

시간은 그 바람을 무시하기도 한다.

 

일상은 고요한 물과도 같이 지루하지만

작은 파문이라도 일라치면
우리는 일상을 그리워하며 그 변화에 허덕인다.

 

행운과 불행은.. 늘 시간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달려든다.
우리의 삶은 너무도 약하여서

어느날 문득 장난감처럼 망가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변하고 언젠가는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애닳아하면서,
무엇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고통으로 채워진 시간도 지나고
죄책감 없이는 돌아볼 수 없는 시간도 지나고
희귀한 행복의 시간도 지나고
기억되지 않는 수많은 시간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격렬한 미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지루해하기도 하고
자주 상대를 불쌍히 여기며 살아간다.

 

시간이 또 지나 돌아보면
이 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듯

염치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오늘도 쓰잘떼기 없는 이야기 한 가득이구나.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1. 3. 18. 12:07

#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

 

 어디를 가도 이 책이 보인다. 깜짝 깜짝 놀란다. 약간 푸르스름한 책을 들고 있으면, 100% 이 책이다. 도대체 아픈 청춘들이 왜 이렇게 많은거야. 분명 위로 받고 싶은 거다. 아파도 괜찮다는. 나만 아픈게 아니라는. 그래도 아픈 거 티내기는 싫어, 나는 가방에 슬그머니 집어 넣는다.

 

 쉬운 게 없다. 한 치 앞을 몰라, 발을 어디로 내 딛어야 할지. 과연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바른 길이고, 또 정말로 내가 가야할 길인지. 기도해도, 모르겠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줄 믿는다. 하지만 이 믿음이 희미해져버리지는 않을지. 또한 나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그저 "자기확신"에 그치는 것은 아닐지 하는 일말의 불안도 있다. 결국 믿음이 없다는 것을 티내는 거구나.

 

 몇 년 전에는 우석훈 교수님의 88만원 세대라는 청춘을 위한 책이 인기를 끌었다. 이 책도 비슷한 위로를 주긴 한다. '너만 88만월을 받는게 아니야.' '그런데, 우리 이 사회를 바꿔보는 건 어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위로를 주는 반면에, 88만원 세대는 투쟁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이 다르다. 역시 뭔가 나서서 해야하는 투쟁보다는, 가만히 있어도 전해지는 위로가 청춘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더 필요했던 건 아닌가 싶다.

 

 항상 면접을 앞두고는 이게 정말로 내가 가야하는 길인지 잘몰라 확신이 서질 않는다. 정작 자기소개서 쓸 때는 꼭 서류 통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정작 서류를 통과하면, 우왕좌왕. 아마 간절함이 없기 때문에, 은연 중에 이것에 묻어나와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는지도 모른다. 뭐, 물론 다양한 이유들이 많겠지만. 그런데. 진짜로. 떨어뜨렸으면 이유 좀 알려주라고 진짜 ㅡㅡ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1. 3. 4. 23:23

# 시계, 거울, 창문.

 

이 3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카지노에 없다는 것. 사실 카지노에 가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다. 왜 이 3가지가 없을까? 카지노의 상술이긴 하지만, 뭔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긴다. 시계, 거울, 창문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계를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내가 앉아있는 순간에도, 생각하고 있는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 가는 구나. 적어도 내가 멈춰 있는 순간만이라도, 시간이 흐르지 않는 다면 좋으련만.

 

어떻게 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죽어간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분명 죽는 때는 다가오고, 시간이라는 놈은 우리의 죽음까지 남는 시간을 점점 앞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조금 더 의미 있게 사용해야 한다.

 

# 요즘 자꾸 생각나는 말씀이 있다.

 

예레미야 23:23~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이 말씀을 처음 인지하게 된 때는 지난 10월이었던 것 같다. 면접 탈락 발표가 나고나서, 충격이 컸었다. 딱히 붙을 이유는 없었지만, 떨어질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던 면접이었기 때문이다. 눈물이 울컥하려던 것을 참았다. 오히려 때로는 따뜻한 위로가 눈물을 흘리게 만들기도 한다. "괜찮지? 아, 괜찮아요. 잘 될꺼야." 이 한 마디가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는 사실도 그 시절에 알았다.

 

발표가 나서, 한 시간 넘게 이불 둘러싸매고 누워있었다. 그러다 일기로 마음을 풀고.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목요찬양예배에 갔다. 예배 중에, 목사님께서 예레미아 23:23~24 말씀을 인용하셨다. 우리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가까이에 있는 하나님만을 생각한다. 한 때, 하나님을 생각할 때, 찬양 가사에서 처럼.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신음을 해도, 구직은 요원해지고, 내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때가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먼 데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기 원하는 것 같았다. 천지에 충만한 하나님은 왜 모를까. 이런 찬양이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 철야 예배 때 불러서 생각나는 찬양인데, 그 찬양 가사 중에는

 

가시 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라는 게 있다. 어떻게, 가시 밭의 백합화에서 예수 향기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걸 아는 게, 천지에 충만한 하나님을 아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어쨌든 요즘 자꾸 이 말씀이 생각나는 것은, 기도 응답하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온 땅 가운데 충만한 하나님을 눈여겨보고, 귀 기울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 대학교에 갓 입학한 꼬꼬마 신입생들을 바라보며, 같이 캠퍼스를 거닐던 한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저 때가 좋았는데." 그래서 그랬다. 나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비록 아직 직장도 없고, 내세울만한 거 하나도 없지만, 나는 그 때 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변덕이 심해서, 내일 아침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예전에 이찬수 목사님 설교 중에서 누군가의 말을 인용했었는데, 청년에게 가장 주기 아까운 게 청춘이라고 했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직 나는 내게 주어진 청춘의 가치를 잘 모르지만, 무얼 해도 싱그러운 지금 이 청춘, 대학교 신입생 때 더 잘 알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새로운 팀은 짱이다. 간사님을 비롯해서, 새로운 리더진. 자주 만나서 그런지, 벌써부터 아늑해졌다. 좋다!

 

# 이번 주일 아침. 참 오랜만에 맞는 비였던 것 같다. 늦은 겨울비 인지. 아니면 봄을 맞이하는 비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꽃샘비라고 해두자. 어쨌든 오랜만에 어색하게 우산을 갖고 나갔다. 전 날 잠이 안와 뒤척이다가 늦게 잤고, 아침에 겨우 일어났다. 날씨가 생각보다 쌀쌀해 조금 더 따뜻하게 입고 올껄 그랬나 보다 했더랬다.

 

종로 3가역에서 내려, 대동세무고등학교를 찾는 데 한참. 참 좋아진 세상. 구글맵을 이용해서, 겨우 찾아갔다. 도착 해서, 교실에 들어가니, 이미 열심히 가져온 종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뭐... 준비해 간 것도 없었다. 심지어는 연필도 준비 안해 갔으니. 왜 생각지도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식은땀 줄줄. 원래 공식적인 시험에서는 연필 사용 불가 인 줄 당연히 알지만, 괜히 연필이 없어서 불안했더랬다.

 

시험 시작. 뭔가 나도 언론사 시험을 보는구나. 나의 시험 이력에 한 획(?)을 긋는 기분으로 시험을 본 것 같다. 허나, 상식 시험에서 좌절. 원래 상식만은 진짜로 자신있었는데. 이래뵈도, 상식 있는 남자. 아오. 며칠 전에 신문에서 본거였는데, 한 숨만 수 차례. 그리고 서너어 문제.

 

작문 시험. 언론사 시험이 이런건지도 몰랐었다. 주제어 하나만 하니 던져 놓고, 한시간 동안 1600자 내외로 쓰라는데. 막막할 줄 알았지만, 다행히, 나는 잘 한 것 같다. 다만, 분명히 보수적인 성향인 경제 신문에 정부 비판을 많이 해놨으니.

 

제작년에 읽은 로맹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소설을 처음에 인용했다. 그 소설은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책인데, 그 책에 "벽"이라는 내용의 단편 소설이 등장한다. 약간 외설적이긴 한데.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가끔 마주쳤던 천사같이 아름다운 한 여자를 연모하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와 여자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사이이다. 남자는 고독했던 존재였다. 그의 전 존재는 애정을 갈구했다. 그러던 중, 그 천사같이 아름다운 여자는 그를 감동시켰다. 하지만, 어느 날 밤. 그의 옆 방에서 들리는 삐걱임, 신음, 그리고 특이한 소리가 그의 귀를 울렸고, 이는 그를 더욱 낙담하게 만들었다. 미지의 처녀를 사랑하던 그는 그녀가 쾌락의 소리를 내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남자는 고독의 겨운 세상을 져버리고, 자살하고 말았다. 하지만, 후에 밝혀진 사실은 그것은 그 청년의 오해했던 소리는 그녀는 비소 중독으로 인해 점점 죽어가는 소리였던 것이었다. 그녀가 죽은 이유는 "고통스러운 고독과 삶에 대한 총체적인 혐오 때문이었다."

 

이 정도의 예를 들고 - 사실 소설의 내용을 정확하게 옮기지는 못했다. - 벽은 소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용기 없음으로 자신을 죽인 것, 그리고 비약적이지만은 고독에 빠진 그녀를 구하지 못한 점도 남자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리고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MB 취임 3주년이 되던 주였던 것 같다. 그래서 3년 동안 잘했던 점. 물론 이것도 억지 칭찬이었지만, 대충 썼다. 그리고 질책도 했다. 소통의 부재에 대한. 광우병 소고기 문제 때, 그는 분명 자신이 소통하지 못함에 대해서 반성했었고, 앞으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취임 3주년 기자 간담회는, 가지 회견이 아니라, 등반으로 바꼈고, 등반하는 동안 받았던 질문은 겨우 3개, 그것도 영양가 없었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벽을 뚫고 소통해야 한다. 앞에서 예를 든, 남자와 여자의 꼴 나기전에.

 

이렇게 써놓고 보니, 작문은 잘한 줄 알았는데, 맘에 안든다. 뭐, 그래도, 이게 그 때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생각이긴 했다. 벽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생각났던 게, 그 소설이었으므로.

 

시험을 마치고, 나가는 길. 눈이 안 좋아, 혹시 으로 본건 아니었나. 급 생각이 들어서, 거듭 확인했더랬다. 어이 없겠지만, 진짜로, 식은 땀 줄줄.


Posted by 데이드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