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2010. 4. 20. 01:35

#1. 이번 주 주일 설교 말씀 중에서.

 나의 연악함을 시인하라고 하셨다.
 그렇다. 나는 최근 좋지 않다. I'm not okay.

 올 한해 전 목사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약한 모습 그대로. 연약한 모습 그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2. 그리고 쿨한 척 하는 세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씀하셨다.
 쿨한 척은 자신의 약함을 감추는 모습이라고.

 최근 유세윤의 쿨하지 못해 미안해 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나도 그 뮤직비디오를 보고, 한참을, 아니 사실은 그냥 피식 웃었다.
 사실 쿨하지 못한게 우리의 모습이다.
 그리고 쿨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고픈 이야기는 아마도 쿨 한척 했지만, I'm not okay. 그리고 내 얘기좀 들.어.줘. 일지도 모른다.

#3. 최근 뭔가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ADHD인가.
 그냥 뭔가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어느 하나를 하면, 다른 해야하는 하나가 생각나고. 머릿 속에 생각들이 너무나도 많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뭔가 움켜쥐는 사람보다는, 나누는 그런 사람.
 작은 것이라도, 섬기는, 희생하는 그런 사람.

#4. 샤르트르가 그랬다.

 나의 죽음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죽음은 타자들의 것이다. 나의 죽음은 나를 판단하는 타자의 의식 가운데서만 존재하는 결정적인 의미를 나의 삶에 부여해준다. 따라서 죽은 자는 살아있는 자들의 먹이감이다.

 천안함에서 희생된 많은 장병들은 살아있는 자들의 먹이감이 되지 않아야 할텐데.
 반성해본다.
 정말.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6. 시험 공부를 하다가.
 컴퓨터를 켰다.
 시험에 용어 문제도 나오기 때문에, 모르는 용어들을 정리하려고.
 그런데, 공부는 안하고, 또 이 짓이다.
 뭔가 생각했던 걸 글로 써야 머리 한 켠이 조금이나마, 비워질 것 같아서.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0. 4. 10. 21:12

#1. 낮잠을 잤다. 2시간 정도를 잔 것 같다. 그냥 잠깐 누워있으려고 했는데, 잠깐이 2시간이 되버렸다. 정말 이 참을 수 없는 패배감과 무력감이란. 덕분에 그날 계획했던 공부의 양을 달성하지 못했다. 음. 그래도 꿀맛같은 단잠이었다.

 

#2. 요즘 잠이 부족했다. 자소서를 밤 늦게까지 쓰느라, 잠을 많이 못잤다. 사실 글을 쓰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데, 생각하는 시간이 오래걸린다. 한 밤 중의 반갑지 않은 고뇌.

 

#3. 어쨌든, 이제 자소서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나의 짧은 인생가운데, 임팩트가 있었던 사건들이 의외로 많았다. 자소서의 순기능을 굳이 생각해보자면 이런 점이다. 내가 얼마나 한심하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만든다는점. 좋은 작품(?)을 위해 나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봐야 한다. 그러면서 재미있었던 추억도 떠올려본다. 이야깃 거리들을 쥐어 짜기 위해 나의 행적을 뒤좇아보면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4. 하지만 자소서를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를 포장하게 된다. 하나의 소설이 되기도 한다. 소설은 허구의 문학작품이다. 나는 그 허구의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자소서를 심사하는 분들은 어떤 소설이 가장 완성도(?)가 높은지 심사하는 심사위원이 된다.

 

#5. 자소서에 기입하라는 항목을 읽게되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정말 순수하게 그 질문에 적합한 경험을 기술하라는 건지, 거짓말을 유도하는 건지 저의가 궁금할 정도로. 결국 누가 거짓말을 더 잘지어냈나를 평가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어쩌면 거짓말을 더 잘하는 사람이 업무능력이 더 뛰어날 수도 있겠다.

 

#6. 솔직히 내가 쓴 글도 100% 진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마모되어서 생긴 어쩔 수 왜곡과, 정말 어쩔 수 없는 의도적인 포장이 가미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나마 나는 최대한 정직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아마 93.28%는 진실로 썼다고 말할 수 있다.

 

#7. 요즘 날씨가 너무 좋더라. 어디든 놀러 가고 싶은데, 일단 같이 갈 사람이 없고, 시간도 없다. 따스한 봄볕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심적인 여유와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뚝섬 유원지에 가서 혼자서 라도 바람이라도 쐴까 하다가 그냥 기숙사로 들어왔다.

 

#8. 예전에 뚝섬 유원지에서 혼자 자전거를 탔던 적이 있었다. 뚝섬 유원지 근처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과의 약속시간이 한참이나 남아서 자전거를 차며 시간을 떼운 적이 있었다. 우리를 시원하게 만드는 바람 중에서 가장 시원한 바람은 자전거를 탈때 맞는 바람이다.

 

#9. 이번주 수요일에도 봉사활동을 갔었다. 한 초딩이 나를 보며 민속탈을 닮았다며 계속 웃었다. 누군가에게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웃음을 주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음. 그런데 외모로 인해 웃음을 주는 일은....

 

#10. 어디를 가도 누군가를 닮았단 얘기를 많이 듣는다. 대표적으로 그까이꺼 장동민, 정말 장동민은 내가 봐도 닮았더라. 예전엔 박지성 닮았단 얘기도 들었었다. 그리고 축구 선수 중에 박강조라고 있다. 재일교포 출신, 단신의 축구 선수인데, 나랑 닮았나보다. 한 때, 보쳉을 닮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옷가게에 갔는데, 시골에 있는 자신의 동생과 닮았다며, 옷 값을 깎아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학교 후문의 춘천 닭갈비 집의 이모는 자신의 조카와 내가 닮았다며, 나를 많이 반겨주신다. 다른 손님보다 나를 더 많이 챙겨주신다. 서비스도 듬뿍. 음. 흔치 않고 못생긴 FACE인데, 외모로 인해 손해본 적은 생각해보니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참. 외모로 인한 손해를 찾아보자면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연애를 못해봤다는 점? 비자발적 초식남이 되어가고 있다.

 

#11. 오늘 낮잠을 잤고, 게다가 몸에 안맞는 커피까지 마셔서인지, 잠이 안온다. 그래서 그 동안 쓰고 싶었지만 못썼던 글을 지금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잠자고 일어나서 포스팅 해야겠다.

-현재 시각 새벽 4시..

 

#12. 3시간여를 자고, 북한산에 갔다. 학교 교수님과 간 산행이었다. 작년에도 산행에 참여해서,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서 좋은 추억들이 있었다. 올해도 그런 것들을 기대하며 갔다. 올해는 그런 건 없었다. 작년 이맘 때즈음에는, 뭐든지 의욕적이었더랬다. 내가 먼저 인사하고, 수업시간에도 학구열에 불타올라,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는 기쁨들을 느꼈더랬다. 그런데, 한해가 바꼈을 뿐인데, 작년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13. 산행을 마친 후에는 연신내에서 막걸리 TIME. 나는 태생적으로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맛없는 것에 돈쓰는 것이 아깝다. 적어도 나에게 술은 경제학적 개념으로는 비재화이다.

 

산행 후, 교수님과 학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 나는 그냥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  그냥 유익한 얘기가 있어서, 몇가지 적어본다.

 

박정희 시대의 과(過) - 수단이 어찌 됐든,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의식을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은 점.

 

하늘을 쳐다보려면, 땅을 딛고 있어야 한다! -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이상주의

 

유연한 사고의 필요성!

 

#14. 공부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는 이 어정쩡한 상황.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10. 1. 4. 23:39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그리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 예전에 읽었던 청년 박문수가 쓴 기쁨의 천마일이라는 책에서 그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프리카에 있어도 아프리카가 그립다는. 진정한 그리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노래 가사의 그것처럼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이것이 진정한 그리움일 게다.

 

 반면에, 진정한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그리움에 대한 설명과 비교했을 때, 아마도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일 것 같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그런 느낌들.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 일반적인가라면,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야 말로 진정한 외로움인 것 같다.

 

 사실 이런 진정한 그리움과 외로움은 드문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미치게 된게, 예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양을 쫓는 모험에서, 진정한 나약함에 대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각을 빗대어 설명하자면

 

"일반론은 그만두자.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물론 인간은 누구나 나약해. 그러나 진정한 나약함은 진정한 강인함과 마찬가지로 드문 법이야. 끊임 없이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나약함을 자네는 모를걸세. 그리고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거야. 모든 것을 일반론으로 규정 지을 수는 없어."

 

 진정한 그리움도 외로움도, 일반론으로 규정지을 수 없고, 실제로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론으로 생각하는 일반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별거 아닌 잡.생.각.이다. 그냥 이런 생각을 갑자기 했을 뿐이다.

 

 사실 어제 감기에 걸렸다. 별로 심하게 걸린 것도 아니고, 아마 하루, 이틀 자고나면 금방 나을 정도의 증세이다. 그런데, 어제 문득 갑자기 스친 생각인데, 혹시, 만약에, 내가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할 때, 혼자 있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궁상맞게, 지금으로썬 내 거처를 아는 유일한 친구에게 문자를 하나 보냈다. 그래도 덜 궁상맞게 ㅋㅋ를 많이 붙여서 보냈다. "혹시..며칠동안나랑연락두절되면ㅋ나찾아와줘ㅋ지금내거처아는사람너밖에없는것같아ㅋ","나감기걸렸는데 ㅋㅋ혹시방에서꼼짝못하게되면ㅋ 도와줄사람이없어ㅋㅋ혹시해서..ㅋ"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궁상맞고,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오는데, 왜 갑자기 어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09. 12. 2. 21:21

 어느 새 2009년도 마무리 되어가고, 나의 대학 생활도 사분의 삼이 지나가는 시점. 코 앞에 닥친 기말고사. 복학하고 나서, 4번째 시험. 매 시험기간만 되면 느끼는 거지만, 항상 시험기간만 닥치면 땡기는 것들이 있다.

 

 1.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포스팅을 자제하지만, 이상하게 시험 기간만 되면 포스팅의 욕망이 다른 때보다 더 커진다. 지금까지 밀린 책 리뷰도 신경쓰이고.

 

 2. 독서. 책꽂이에 지금 나에게 읽히지 않은 책들이 나에게 읽혀지기를 원하는 것 같은 느낌. 아마 시험기간때 읽는 교과서의 빽빽한 글자들을 잠시라도 피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게다.

 

 3. 영화. 평소에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영화도 잘 안보고, 일년에 많이 가봐야 고작 네, 다섯번가는 극장이지만, 시험기간만 되면 영화가 고프다.

 

 4. 여행. 여행도 마찬가지로, 평소에 돌아다니는 것을 귀찮아하고, 궂이 여행하는 것 보다 잠을 자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시험 기간 때 읽는 신문 - 신문도 마찬가지로, 이상하게 시험기간만 되면 재미있는 기사들이 더 많은 것 같다 - 에 나오는 여행란의 여행지들이 나에게 손짓하는 것 같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가지 못했던 곳들이 갑자기 생각난다.

 

 5. 컴퓨터. 컴퓨터에 널부러져 있는 이런 저런 파일들. 정리하고 싶다.

 

 6. 청소. 시험기간 때는 평소보다 방에 있는 시간이 길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 책상이 아니라 의자구나 - 방에 있는 먼지들, 책상에 있는 티끌들, 머리카락들, 다 깨끗히 정리하고 싶다. 평소에는, 음. 청소를 자주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경이 덜 쓰였던 것들.

 

 7. 전화. 시험기간이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아님 그냥 하소연을 하고픈 걸까? 그냥 전화가 하고 싶어져, 평소보다 통화를 자주 하는 것 같다.

 

 8. 쇼핑. 쇼핑에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왜 시험기간만 되면,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는 거지?

 

 9 일드, 미드. 원래 적어도 한달에 한편은 볼 정도의 일드 매니아였지만, 올해들어 봤던 일드는 고작 두편 뿐이다. 갑자기 2009년 4분기 일드가 궁금해지고, 2010년 1분기에 재밌는 일드는 머가 있지? 하는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밀려온다. 미드도 마찬가지, 지난 여름을 나와 함께 했던 그레이 아나토미도 개강하면서 끊었지만,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시험기간.

 

 이 외에도 많지만, 음. 지금 생각나는 것은 여기까지. 사실 어제 밤에 오랜만에 정지영의 스위트뮤직박스를 들었다. 오래만에 정지영 누님의 목소리도 듣고, 좋았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밤을 이 방송과 함께 했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마음먹고 들은 것 같다. 어제 방송에서 나왔던 주제가 시험 기간만 되면 하고 싶은 것들 혹은 시험 기간만 아니라면 당장 했을 것들을 주제로 문자로 사연을 받았다.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들이 거의 내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음. 독특한 것 중에, 시험기간만 되면 100분 토론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는 사연이 있었다. 그리고 시험기간 끝나면 바로 하고 싶은 것이, 다음 시험 준비라는 사람도 있었다. 벼락치기를 하지 않기 위해, 바로 공부할 것이라는 의미인데. 과연.

 

 음. 시험기간 전에 못했던 것들을 후회하는 것은 배고플 때 전에 남겼던 음식들이 더 간절히 생각나는 류의 후회인 것 같다. 후회할 짓은 되도록 안하는 것이 좋지만, 이런 류의 후회는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09. 10. 25. 01:53

 오늘은, 아니 어제는 KIA TIGERS가 우승을 확정 지은 날이었다. 12년만의 우승이라, 정말 감회가 남다르다.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승한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정말 감격의 하루였다. 그리고 그 감격의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정말 다시 한 번 감격이었다.

 7차전 경기를 어떻게 직접 경기장에서 볼 수 있었는지 이야기 하자면 조금 길다. KIA의 광주무등경기장 예매는 아마 기억상으로 10월 12일 월요일이었을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플레이오프 승자가 가려지지 않아서 일단 경기일정이 확실한 무등경기장의 예매 가능했었다. 그리고 SK의 한국시리즈 진출 확정 이후 10월 15일에 남은 경기 일정 예매를 시작했는데, 나는 예매 시간에 수업이 있어서 동생에게 부탁해놨었고, 친한 친구에게도 부탁해놨었다. 동생은 예매에 실패했고, 친구(의 친구)는 예매에 성공. 하지만 7차전 경기. 예매에는 성공했지만, 설마 7차전까지 갈까 하는 생각이 먼저들었었고, KIA 팬으로서, KIA가 7차전 경기를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1,2 차전 경기를 이길 때만 해도, 4차전에서 끝날 기세였는데, 이런, 문학경기에서 2패를 당해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그리고 운명의 잠실경기에서도, 6차전까지 3승 3패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었고, 드디어 7차전. 7차전까지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원하지 않던 7차전 경기는 현실이 되었다.

 10월 24일 아침. 지하철 2호선을 타기위해 마을버스를 탔다. 마을버스를 탔는데, 등번호 7번이 새겨진 이종범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탔다. 인사를 해볼까 하다 안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탔다. 종합운동장역까지 가는 길이 왜이리 먼지. KIA와 SK의 우승을 열망하고 지하철을 탄 사람이 꾀 많이 있었고, 대부분 종합운동장역에서 내렸다. 종합운동장역에서 내려, 야구장으로 가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는데, 나도 영문을 모르고 뛰기 시작했다. 아마 예매를 못한 사람들이 현장판매분 티켓을 구하기위해 뛴거였는데, 나는 뛸 필요가 없었는데, 그냥 따라 뛰었다. 야구장 앞에서 친구를 만났고, 경기장에서의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미 명당이라고 생각한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차지가 되어있었고, 그나마 좋은 자리라고 생각된 자리로 찾아가 앉았다.

 2시경기인데, 11시에 만나 경기장에 찾아간 나와 친구는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경기를 기다렸다. 지정석을 예매했더라면 일찍 갈 필요가 없었는데, 일반석에 앉아야 했기 때문에. 어쨌든 야구얘기를 하다보니 시간은 금방 흘렀고, 2시에 야구가 시작되었다. 초반은 양팀 모두 팽팽한 경기를 가져었다. 하지만 경기 중반으로 가더니 어느새 점수는 5대 1로 벌어졌고, 패색이 점점 짙어져갔다. 사실 나도 '에이, SK 너무 강하다. 이러다 SK가 우승하겠네.' 하는 생각을 점차 했었다. 그러면서도 KIA는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점겨가고 있었고, SK는 찬스에서 시원하게 점수를 못 뽑고, 조금씩 달아나고 있었다.

 6회, 7회 기아는 각각 2점을 뽑아 동점을 기어코 만들었다. 나지완의 투런 홈런이 있었고, 우리 찌롱이(안치홍)의 솔로 홈런이 있었다. 우리 어린 아기 호랑이들이 정말 장하게도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왠지 한국시리즈에서 내가 격하게 아끼는 찌롱이가 잘 해낼꺼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한국시리즈 때 빈틈없는 수비와 알토란 같은 공격으로 KIA V10의 주역으로 당당히 활약했다. 잠실야구장의 모든 사람들이 나지완과 안치홍을 연호했다. 이미 그 때 기아의 우승을 직감했다. 분위기는 KIA로 넘어왔고, KIA가 우승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조범현 감독이 했던 이야기. '우주의 기(氣)가 타이거즈를 감싸고 있다'는 이야기는 빈말이 아니라 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점수는 더이상 나지 않았고, 위기를 거쳐 어느새 9회.

 이제 어쩌면 연장전까지 가야할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불펜에서는 등번호 20번 윤석민이 몸을 풀고 있었다. 어쩌면 KIA 벤치에서는 연장전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9회초, 정규시즌 평균자책점 0점대의 유동훈이 마운드에 올라 깔끔하게 막았고, 9회말. 이제 여기서 점수를 못내면 연장전으로 가야했다. 9회 1사. 타석에는 나지완. 관중들은 나지완이 들어서자, 나지완의 응원가를 부르고, 끝내기 홈런을 외쳤다. 볼카운트 2스트라이크 2볼. 6구째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허공을 갈랐다. 공이 펜스를 넘기기도 전에 모든 사람들이 홈런을 직감했고,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나도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나지완 선수가 홈런을 치고 우는 모습을 보고서, 나도 괜스리 눈물이 나왔다.

 이렇게 2009년 프로야구의 일정은 모두 끝났다. KIA는 경기의 시작과 끝을 모두 잠실에서 하게됬고, 모든 구단 통틀어 0.1세기에 한 번 이상 우승을 한 유일한 팀이 되었다. 80년대, 90년대, 2000년대에 우승을 기록한 유일한 팀.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2009년에 우승을 이룩했다. 80, 90 년대에는 최강팀이라 할만했지만, 2000년대에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0년대가 끝나기 전 2009년에 우승을 기록해, 2000년대의 강팀 중의 한 팀으로 기록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그 현장에는 자랑스럽게(!) 내가 있었다. 아마 평생의 이야기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는 후배를 만나 그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야구이야깃거리는 정말 소중하다.

 조범현 감독의 "우주의 기(氣)" 발언이 있어서 말인데, 올해는 정말로 꼭 우승했어야 하는 해였다. 조범현 감독은 내년 시즌의 계약을 위해, 이종범 선수와 이대진 선수는 언제 다시 한국 시리즈 무대에 등판할지 모르기 때문에 꼭 이번에 우승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KIA 팬들의 바램이었다. 이종범 선수와 이대진 선수가 다시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이. 아마 어쩌면 KIA의 V10 보다 그것을 더 바랬는지도 모른다. ( 뭐 그게그거지만)

 그리고 우리 고생한 선수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 윤석민. 올 시즌 궂은 일 맡아가면서 부상까지 얻었었지만, 끝까지 의젓하게, ACE의 역할을 해냈다. 6차전 경기에 선발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여차하면 등판하려 했던 그의 뒷모습이 기억에 계속 남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찌롱이(안치홍). 찌롱이는 정말 운이 좋은 놈(!)이다. 데뷔 첫해에 정규시즌 풀타임으로 경기를 뛰었고, 신인으로 14홈런을 기록했고, 올스타전에서는 MVP,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는 주전 2루수로 모든경기에 선발출장했고, 특히 마지막 경기에서는 홈런을 쳐, 종전 심정수가 가지고 있던 한국시리즈 최연소 홈런을 갈아치웠다고 한다. 그리고 입단 첫해에 우승을 기록하는 행운을 얻었다. 오늘 정말로 자신의 응원가에 맞춰, 안타치고, 도루까지 했다.

 끝내기 홈런을 기록한 나지완. 사실 시즌 때 실망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였었는데, 홈런 하나로 다 만회했다. 이제 입단 2년차, 그 동안 그에게 많은 기대를 했었고, 그에 걸맞은 실망도 많이 했지만, 이제 입단 2년차이다. 내년 시즌이 정말 기대된다.

 드래곤 Q 이용규.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 때 정말 경기의 맥을 끊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었지만, KIA 후반기 돌풍의 주역이었다. 후반기 시작과 함께 연승을 해서 정규시즌 우승을 했던 힘에는 분명 이용규 선수도 크게 기여를 했다. 올 시즌, 부상으로 시즌의 대부분을 재활로 보냈지만, 내년엔 더욱 더 잘하리라 생각된다.

LG에서 돌아온 김상현, 그리고 포카리 박에서 샴페인 박으로 승진한 박기남 선수. 김상현 선수가 없었다면 올해 KIA는 4강싸움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상현 선수의 이적 이후에, KIA의 성적이 급상승했고, 결국 홈런왕까지 기록했다. 본인에게는 최고의 한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포카리 박 매의 눈 박기남. 불안한 내야의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서 수비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이현곤 선수. 올 시즌, 그가 등장하면 광고가 나온다고 하여(공격이 끝난다고 하여) 광고니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철벽 유격수 수비로 KIA 내야를 이끌었고, 한국시리즈에서 정말 좋은 활약을 펼쳤다. 내가 알기로는 3가지 지병을 갖고 선수생활을 하는 걸로 알고있는데, 정말 인간 승리인 것 같다. 화이팅!

 원섭동무 김원섭 선수. 이제 당당한 KIA 외야의 주전. 사실 시즌 초에 팬들이 주전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조금 서운해했다는 김원섭 선수. 하지만 이제, 모든 팬들은 당신을 주전 외야수라고 생각한답니다. 올 시즌 이용규 선수가 부상으로 경기 출전을 못할 때, 1번 타자자리를 훌륭하게 메꾸어준 원섭동무!

 형저메 에서 형저매 로 승진한 최희섭 선수. 한 때 이승엽 선수에게 "형, 저 메이저리거에요." 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소문으로 네티즌들의 조롱을 받았던 최희섭 선수. 올 시즌에는 별명이 바꼈다. "형, 저 매일 걸어나가요." 올 시즌 홈런을 많이 쳐서, 매일 볼넷을 얻어나갔던 최희섭 선수. 올 시즌 못하면 유니폼 벗을 각오로 준비했다던데, 내년 시즌에도 김상현 선수와 함께 같이 홈런왕 경쟁을 이어나가길!

 그리고 올해 KIA 선발의 주축이었던, 구로연합(구톰슨, 로페즈 연합). 이닝이터의 면모를 보여줘 다승, 투구이닝 1위인 로페즈. 여우같은 투구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구톰슨. 정말 올해 용병 농사는 최고의 작황(?)을 보였다. 내년에도 꼭 남아주세요!

 올 시즌 국내 최고의 포수로 성장한 김상훈 포수. 그리고 매년 일취월장하는 차일목 선수. KIA 투수력의 안정을 이야기할 때 이 두 선수를 빼고서 얘기를 하면 안된다. 올 시즌 정말 수고했어요!

 KIA의 좌완 에이스. 양현종. 무럭무럭 성장해서, 김광현, 류현진을 뛰어넘는 좌완 투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 시즌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 내년에는 얼마나 더 성장할지 벌써 기대가 된다.

 KIA의 뒷문을 철벽같이 지켜준 유동훈 선수. 싱커로 모두를 제압하고, 선동렬 이후 두번째로 20세이브 이상 기록한 선수 중에서 0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선수. 시즌 초반에는 경기가 끝나도 끝난게 아니었는데, 후반기에 정말 리드하는 경기는 무조건 이기는 경기로 만들어줬던 유동훈!

 무엇보다도 타이거즈의 12년 전 우승의 주역이었던 이종범, 이대진 선수. 우승을 확정짓고 가장 먼저 떠오른 선수는 무엇보다도 이종범 선수, 이대진 선수였다. 정말 타이거즈의 전설. 그리고 아직까지 많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모범이 되는 두 선수. 이종범 선수와 이대진 선수와 같은 팀에서 경기를 하는 것은 아마 후배들에게 정말 행운일 것이다. 오래오래 타이거즈 맨으로 남아주세요!

 조범현 감독님 수고하셨습니다. 조갈량 감독님. 10번째 우승 시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 타이거즈 출신이 아니라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KIA의 체질을 변화시켜서 이길 줄 아는 팀으로 탈바꿈 시켜준 감독님.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선수, 코치님들 수고하셨습니다.

 아. 오늘 정말 행복하다. 그런데, 이제 야구끝나서, 무슨 재미로 살지?


<오늘의 사진들>

사진에 출처들 다 박혀있으니까, 따로 출처는 안쓸게요. 문제가 된다면 지우겠습니다. 하지만 봐주세요. KIA가 우승했으니까요.


 정상호의 병살을 막기 위한 슬라이딩으로 두 선수의 충돌이 있었다. 5차전 경기때, 김상현 선수와 나주환 선수의 충돌로 예민해져 있던 상태에서, 다시 한번 충돌이 있었다. 아마 두 선수간의 다툼이 있었다면 벤치클리어링이 다시 한 번 발생했을텐데, 정상호는 미안해했고, 이현곤은 괞찼다는 아마 무언의 대화를 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다시 동영상으로 봤는데, 정상호의 슬라이딩은 쓰리피트 라인에서 벗어나지 않은 정상적인 플레이였다.

  우리 찌롱이 홈런치고 3루 돌 때, 오늘 너 아니었음 우승 못했다! 혼자서 2타점 올린 우리 안치홍 선수!


 나지완 선수 홈런치고 가장 먼저 뛰어오는 이용규 선수. 아마 오늘 찬스에서 번번히 물러나 동료 선수들에게 가장 미안해 했을 이용규 선수. 입단년도는 다르지만 친구 나지완 선수의 홈런을 가장 기뻐해주고 있다.


포카리 박에서 승진한 샴페인 박 박기남 선생. 축하는 이렇게 해야한다고 몸소 보여주고 있다.

  가장 멋진 포옹. 올 시즌 유독 로페즈의 등판때 수비실수를 많이 했던 나지완 선수. 로페즈와 다투기 까지 했다고 한다. 로페즈가 조범현 감독님에게 자신의 등판 때 나지완 선수를 수비수로 출전시키는 것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자, 나지완이 욱(!)해서 다퉜다고 한다.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 때 포옹으로 화해했다. 아마 이미 그 전에 화해를 했을지도 모른다. 음. 그런데 나지완이 MVP를 타서 로페즈가 삐졌을 것 같다.


 바람의 아들과 바람의 조카의 포옹. 두 바람이 모여 올 시즌 태풍을 이루었다. 눈물흘리는 종범형님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어쨌든, 올해 우승했어야 하는 이유가 이종범 선수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종범 선수때문에 우승을 할 수 있었다.


 이종범 선수를 행가래 하는 KIA 선수들. 정말 행복해 보인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09. 8. 22. 02:16


 오늘 국회의사당으로 조문을 갔다. 낮에 가면 더울 것 같아서, 일부로 해가 저문 저녁에 갔었다. 오늘 이런 저런 기사를 읽으면서 낮에 갈껄 하는 후회를 조금 했다. 북측 조문단도 국회의사당으로 왔었고, 이희호 여사님도 조문객을 맞이 했었다고 한다. 북측 조문단이 왔을 때 시민들이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실제로 들었더라면, 아니 내가 그 자리에서 같이 불렀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유명인사를 보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뜻하지 않게 이건희 전 삼성회장, 이재용 전무의 조문하는 뒷모습을 봤었고, 원혜영 전 민주당 원내대표를 잠깐 봤었다. 그리고 동교동계 정치인이었던 김옥두 전 의원도 봤다. 어릴 때 내가 있던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했었기에 익히 얼굴은 알고 있었다. 그분은 나를 모르지만.

 약 30여 분을 기다렸던 것 같다. 조문할 때까지. 영정사진 앞에 서니, 숙연해졌다. 인동초의 삶을 사셨던, 민주주의를 위해 일생을 보내셨던 그 분 앞에서.

  국회의사당의 해태상. 해태상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라는 책을 쓴 김은식 씨의 기사를 며칠 전에 읽었더랬다. 기사의 내용은 해태가 잘나가던 그 시절. 그 시절 해태는 유일하게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야구는 해태였고, 해태는 야구였다. 그들은 야구장에 가서 해태의 우승을 바라보며 호남인의 한을 풀었고, 야구장에서 처량한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김대중을 연호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시절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시절 해태는 영광의 세월을 보냈었고, 김대중 대통령은 고난의 시기를 보냈었다. 하지만 최초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이후로, 해태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호남인들은 더 이상 야구장을 찾지 않았다. 그 시절 아마도 무등구장 평균관중 수가 거의 최저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9번의 우승 후, 아홉수에 걸려 우승 문턱에도 들지 못했던 타이거즈가 다시 올 시즌 우승에 도전한다. 마지막 우승이 97년 그리고 지금은 2009년.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올 해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그 2009년에 타이거즈 팬들은 다시 야구장을 찾고 있다. 참고로 김은식 씨가 쓴 기사의 제목과 주소는 타이거즈와 김대중, 끝내 엇갈린 닮은 꼴의 두 이름, 
http://news.nate.com/view/20090818n16735

 이 글은 지역감정을 조장하거나 그런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다. 그저 분향소가 차려진 국회의사당의 해태상을 보니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 그리고 지역감정 이야기를 하니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 주민이 직접 하의도를 방문했다는 기사를 읽었었다. 뭔가 가슴 뭉클한 기사였다. 사실 지역주의라는 놈이 생긴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혹자는 삼국시절인 백제와 신라 시절부터 싹텄다고 하는데, 사실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지역감정의 망령은 1970년대부터 생겼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지역감정의 역사를 이제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청산해야 함을 새삼느끼게 된다.

 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기장의 일부를 소책자로 만들어 배포했다고 한다. 금방 동이 났다고 한다. 나도 꼭 갖고 싶었는데, 그 소책자의 제목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인데, 왠지 이 짧은 글만으로 그 분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제목인 것 같다. 그 일기중에 인상 깊었던 일기 하나를 꼽으라면 3월 18일의 일기이다.

2009년 3월 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8년의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그 분의 통찰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음. 그런데 이 글이 대의민주정치에 대해 회의를 느낀 것인지 궁금해졌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09. 8. 9. 20:30
 올해 초에 호타루의 빛이라는 일드(일본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해줄 만한 드라마로 아마 내 기준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드라마인 것 같다. 아야세 하루카의 건어물녀 연기가 일품이었다. 여기에서 건어물녀란 일하느라 지쳐 연애는 잊고 살다 보니 연애세포가 바짝 말라 건어물 처럼 된 여자를 말한다. (출처 : 네이트) 극중에서 아야세 하루카는 직장에서는 인정받는 여성인데, 퇴근 후에는 자신의 본연의 모습(?)인 건어물녀로 탈바꿈하게 된다. 퇴근 후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귀찮아 잘 갖지 않고, 그녀에게 낙이라면 마루에 누워 오징어 같은 건어물을 뜯으며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결국 이런 생활이 반복되니 연애는 커녕,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어떻게 해야할지 갈팡질팡해 하며, 급기야는 좋아하는 맥주 때문에 데이트도 잊어버리기도 한다. 결국에는 건어물녀 그녀 모습 자체를 좋아해주는 사람과의 아름다운(?) 결실을 맺으며 끝나게 된다.

<출처 : 다음>

 이 드라마를 보면서, 극중의 인물이 나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공감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래서 스스로 나를 건어물남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몇 달 뒤에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차트에 랭크된 검색어 중에 건어물남은 없었고, 초식남이 있었다. 초식남은 건어물녀의 남자 버전으로 '남성다움'을 어필하지 않고, 취미활동에는 적극적이나 이성과의 연애에는 소극적인 남성을 일컫는 용어이다. (출처 : 네이트) 딱 나의 모습을 제대로 묘사한 느낌이다. 뭐 초식남 테스트를 하고 말것도 없었다. 내가 초식남 자체이니까.

 언제부터 나는 초식남의 외로운 길(?)을 걷게 되었을까?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마도 공익근무를 시작하고 나서 부터 였던 것 같다. 이성과의 연애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소극적이었고, 연애 안하면 그만, 여자친구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중간에 위기(?)도 있었고, 친구에게 나의 이런 생각들을 얘기 하기도 했었다. "여자 친구 생기면 주말에 쉬어야 하는데, 귀찮을 것 같아. 그리고 연애하면 돈도 많이 들 것 같고.", "그런데 이런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버리면 나중에 어떻게 하지?" 이런 얘기들. 당시에 드라마 연애시대를 보고 있었는데, 그 드라마 덕분에 괜스리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했던 것 같다.

<출처 : SBS>

 열심히(?) 초식남 생활을 하다가, 올해는 3년 만에 학교에 복학한 해로, 초식남 생활 청산을 위해 조금 노력했었다. 즉, 그리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음. 혈안(血眼)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눈에 핏발이 섰다는 뜻인데, 사실 그 정도 까지는 아니었다. 그 당시 그리 큰 노력은 아니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었다. 그 성과는 맘에 드는 사람 전화번호를 직접 받은 거였는데, 모두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그냥 아쉽게도 다시 본연의 모습인 초식남의 생활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전화번호를 직접 받으면서도 "만나면 뭐해야 하나?, 만나면 무슨 얘기로 시간을 보내야 하나?, 야구하는 시간에는 야구 봐야하는데, 주말에는 축구해야하는데" 라는 생각 때문에 편치 않았다.

 어쨌든, 이런 생활이 지속되니 당연히 내 생활에서 여자는 불편한 관계가 되버린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여자 앞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호감이 있는 사람 앞에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대화를 해도 뭔가 생각하는 말들이 제대로 나오지 않곤 했다. 그냥 편하게 지내는 누나나 친구들 앞에서는 웃음이 빵빵 터지게 얘기도 잘 하고 그렇지만 이상하게 관심 있는 사람 앞에서는 그런 유머가 나오지 않는다. 아마 나에게는 뇌가 2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렇듯, 연애세포가 이제 말라 비틀어지려고 하고 있다. 덕분에 초식남 생활은 더욱 지속될 것 같다. 연애세포가 말라버렸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언도 잘 하고, 내 조언으로 인한 성공작도 주변에 있다. 하지만 정작 내 앞가림은 못하는 듯 하다.

 초식남으로 오랜 기간을 지내다 보니, 주위에 친한 사람들도 다 초식남 뿐이다. 고등학교 친구며, 대학교 친구, 선배 등. 이상하게 주변에는 초식남 뿐이다. 거국적인(?) 초식남 클럽을 하나 만들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초식남의 이야기는 너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 많은 88만원 세대의 이야기가 된 듯 하다. 갑자기 글의 주제가 넓어진 이유는 최근 한겨레 21에서 읽은 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사의 제목은 사랑은 88만원보다 비싸다이다. 즉, 미래가 불안정한 88만원 세대에게는 사랑은 사치이며, 초식남, 철벽녀는 그들의, 아니 우리들의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요지의 기사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다른 대담 기사는 국가 경쟁력이 성욕까지 몰수했다인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 인 것 같다. 나는 초식남, 철벽녀는 자기애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기사는 뭔가 이를 사회적인 문제로 이끌어 낸 점에 대해서는 신선했지만, 너무 앞서갔다고나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기사를 읽고 또 한가지 생각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20대의 보수화이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국가는 살찌워졌을지 모르지만 - 정말 모르겠다 - 일반 국민들, 특히 20대는 살이 더 빠진 느낌이다. 그(신자유주의) 덕분에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고, 20대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정, 불투명을 선물해 주었다. 이 때문에 88만원 세대가 직면한 문제는 스펙을 쌓아 취업을 하는 것이다. 다른 것들에는 관심을 기울이기 힘든 구조가 되었다. 보수란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한다는 뜻이고, 진보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보수와 진보 뜻 출처 : 다음)  사실 젊은 사람들에게 보수나 진보 모두 관심 없는 것이긴 하지만, 진보는 귀찮은 것, 보수는 덜 귀찮은 것으로 여겨진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미디어에서는 지난 대선과 총선 때 20대가 보수화되었다고 말 하지만, 사실 보수화라기 보다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초식남에 대한 글을 쓰다가 글이 갑자기 무거워진 느낌이다. 이럴 계획은 없었는데, 쓰다 보니까. 어쨌든 오늘도 내일도 자발적 초식남건, 강요된 초식남이건 우리는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09. 7. 12. 02:38

 올해도 어김없이 비의 계절이 찾아왔다. 비의 계절이라는 단어는 몇 년 전에 봤던 일본영화 지금만나러갑니다에서 처음 접했다. 뭔가 장마보다는 친근감 있는 단어이다. 사실 이전까지는 장마하면, 뭔가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아마도 고등학교 입학 과제로 읽은 윤흥길의 장마로 인해 생긴 이미지 인 것 같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사실 내용이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장마기간이 되면 항상 생각나는 것이 비의 계절이라는 단어와, 그로 인해 떠오르는 지금만나러갑니다이다.

 

 최근 부쩍 비가 자주 내린다. 그로 인해 요즘 새삼 느끼게 된 점이 있다. 내가 비를 싫어하게 됬다는 점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를 좋아했었는데 말이다. 비를 좋아했던 이유는 딱히 잘 모르겠다. 그냥 아주 어릴 때 읽었던 아동 서적에 어떤 한 꼬맹이가 - 사실 그 책을 읽던 나도 꼬맹이었던 시절이었지만 - 비오는 날 학교에서 비 구경을 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던 글이 있었는데, 그게 어린 시절 인상깊었나 보다. 그래서 나도 어린 시절 비오는 날이면, 툇마루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구경하곤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옥집에 살았기 때문에, 기와 지붕 밑으로 빗방울이 주룩주룩 떨어지는 것을 구경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마당은 흙으로 덮여 있었다. 다른 많은 시골집이 그렇듯이, 아직 마당을 흙이 덮던 시절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처마 밑의 빗줄기로 인해 흙은 조금씩 파이기 시작했었다. 더운 여름, 툇마루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구경을 하는 것이 당시의 즐거움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이런 즐거움도 결국 마당을 시멘트가 덮으면서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나 비에 대한 즐거웠던 기억은, 고등학교 시절, 왜 그랬는지는 몰랐지만, 친구들과 비를 듬뿍(?) 맞고 집에 갔던 기억이다. 비를 맞으며, 조그마한 물이 고인 웅덩이를 지날 때 친구 옷에 물을 튀기려 했었다. 그렇게 놀았다. 그 기억만 선명하고, 전후의 기억은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비가 좋은 이유를 딱히 만들자면, 일단 한 여름에 비는 단비와 같다. 비가 한 여름 뙤약볕에 뜨거워진 지표면을 식혀준다. 그 덕분에 무더운 여름 가운데 조금이나마 더 시원한 여름도 만끽 할 수 있다. 이런 날엔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비가 오고 난 후에는 뭔가 상쾌한 느낌이다. 시골 고향집에 있을 때는 못느꼈던 건데, 공기가 더 깨끗해진 느낌이다. 특히 비가 개인 후, 공원에 가면 나무 내음이라던가, 흙 내음이 훨씬 선명하고 좋다. 비를 머금은 나무나 흙이 내뿜는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최근에는 비가 싫은 이유가 좋은 이유보다 더 커진 느낌이다. 비가 싫은 이유 중의 하나는 우산이다. 비가 오면 한 손으로 우산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손이 하나뿐이게 된다. 특히 나는 호주머니에 이것 저것 넣어서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손에 이것 저것들을 들고다니는 편이다. 특히 MP3 플레이어나 핸드폰, 지갑 같은 것은 자주 넣었다 뺐다 해야하기 때문에 가방에 넣으면 불편해진다. 책도 마찬가지로 그런 이유로 들고다니는 편이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이면 불가피하게 몇 몇 물건들은 호주머니나 가방에 넣어야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특히 일요일에 비가 오는 경우에는 축구를 못한다는 것. 몇 안되는 취미생활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들 중의 하나가 축구인데, 비 오면 축구는 물건너 가게 된다. 굳이 비를 맞고 하려면 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정도 까지는 아니다.

 

 한편으로 내가 왜 이렇게 많은 것들을 평소에 들고다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핸드폰, MP3 플레이어, 지갑 등. 어느 새 이런 것들에 나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있었고, 나는 그런 것들에 너무 익숙해 진 건 아닌가 싶다. 어릴 땐 그리고 불과 몇 년 전의 학창시절에도 이런 것들에 익숙하기는 커녕, 없이도 불편함 없이 잘 살았는데도 말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비의 계절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는데, 생각이 엉뚱한 곳으로 미치게 되었다. 비오는 새벽에 말이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09. 6. 7. 03:20

 또 시험기간이다. 평소에는 과제다 뭐다 해서, 블로그에 자주 오지 못했는데, 오히려 시험기간이 되니까 블로그에 자주오는 나는 뭐지? 뭔가 엇박자이다.

 

 음. 시험기간체제(?)에 들어감에 따라, 요즘 읽고 싶은 책을 못읽고 있다. 최근에 들고 다니던 책은 600여 페이지 분량의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다분히 야구 매니아적, 혹은 일본말로 오타쿠적인 책이다. 어쨌든, 약 200여 페이지를 읽다가, 시험공부 한답시고, 책을 못읽고 있다. 원래 지하철에서, 도서관에서 책을 조금씩 읽는 편인데, 요즘은 뭐랄까, 정말 속된, 내가 교양을 운운하는게 조금 웃기지만, 교양없는 표현이긴 자히만, 똥줄이 탔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지하철에서도 강의 교재를 읽거나 - 막상 기숙사에 들어오면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 노트 필기 같은 것을 읽는다. 뭔가 급하긴 급했나보다.

 

 어쨌든, 평소에는 책도 그리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시험 기간이 되니까 읽고 싶은 책들이 왜 이렇게 눈에 밟히는지. 두꺼운 전공 서적만 보다가, 뭔가 아담한 아기자기한 그런 책을 보고 싶다. 예를 들어서 얼마전에 찜해 두었던 맛있는 문장들이라는 책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서 샀던 달과 6펜스 같은 책들이다. 음. 내용은 몰라서 아기자기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표지를 봐서는 아닌 듯. 어쨌든, 사놓고 안본 책들이 조금 많이 쌓여 있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쌓아 놓지 않고, 읽고 싶을 때 사서 읽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당장 읽지 않더라도, 책을 사는 편이다. 책이라는 게, 살 때 사야지, 미루다 보면, 그 책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떨어지는데, 미리 사놓으면, 언젠가는 손길이 갈 것 같아서이다. 덕분에 책들이 쌓여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헌법의 풍경에서, 저자 김두식씨가 쓴 내용이 오래동안 남았다. 헌법의 풍경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그의 책에 관한 이야기이다. '읽고 싶은 책''읽어야 할 책' 들을 두고 스스로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인데, 재밌다.

 

 21쪽 일단 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때부터 저는 법률가의 길이라고 하는 '생존을 위한 현실적 목표' 와 읽고 싶은 책이라고 하는 '오늘의 즐거움'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법대에 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당위를 애써 무시한 채, 읽고 싶은 책에 빠져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학교 성적은 뚝뚝 떨어져만 갔습니다. .....(중략)..... 고3 기간 내내 시달렸던 '읽고 싶은 책' 과 '읽어야 할 책' 들 사이의 딜레마는 법률가로서 제 삶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이었던 셈입니다. 그때 '읽고 싶은 책' 쪽 전공으로 제 진로를 선택해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후회도 없지 않지만, 지금은 그것도 제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사학, 인류학, 사회학 대신 법학을 선택한 것은, 늘 경계선에 서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가면 꿈이나 이상 대신 현실을 택하는 저의 부끄러운 성향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기도 했습니다.

 

 나 또한 최근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 을 두고, 자그마한 내적 갈등(?)을 하고 있다. 뭔가 대단한 독서가인 양 말하는 내가 싫지만. 음. 단지 두꺼운 전공 서적에 질렸다고나 해야할까. 어쨌든 다독가인 것 처럼 글을 쓰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어쨌든 지금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소박한 소망이 있다.

 

 그래서 말 인데, 방학되면, 정말 책 많이 읽을거다. 항상 결심만 이렇게. 음. 그래도 벌써 방학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뭔가 스펙이라는 것도 쌓아야 할테고, 음. 뭔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은 책을 많이 읽어야 겠다는 생각 뿐이다. 시험 공부 조금 하다가, 새벽 3시 17분 즈음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는 말이다.

Posted by 데이드리머
단상2009. 5. 18. 21:50


 1980년 5월. 그리고 29년 후. 그날의 비명, 울분 그리고 시민을 향한 국가라는 괴물의 총성. 그리고 민주화.

 우리는 그날의 광주의 그분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화려한 휴가의 신애(이요원)가 말했던 것 처럼.

 오늘 아침, 광주, 전남에서 출자(?)한 기숙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기숙사에서 추모식을 했다. 솔직히 체조점수 때문에 억지로 참석하긴 했지만, 기숙사에 들어온 이후에, 가장 의미있는 체조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대부분의 학생이 대충 점수를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체조시간. 오늘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나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솔직히 누가(누굴까?) 시켜서 하는 것에 대한 반감때문에, 싫긴 했지만. 좋아하는 일도 누가 시키면 하기 싫어지듯. 어쨌든, 체조하고, 밥먹고 나서, 분향을 했다.

 다른 무엇보다, 그 시간에 흘러 나왔던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귀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그냥 흘려 보냈을 노랫말인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양희은의 목소리와 함께 귀에 알알이 박혔다. 


긴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이제 가노라


내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이제 가노라


 구 전남도청 별관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 곳에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1980년 5월에 그 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곳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기억할 수 있을까? 사진으로, 영상으로, 책으로, 혹은 영화로? 하지만, 만지고, 느끼고, 그곳의 냄새를 맡지는 못한다. 그리고 우리의 후대로 내려갈 수록 1980년 5월은 점점 희미해 질 것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그날을 기억해야 하나.

 화려한 휴가에서 이요원의 마지막 대사. 이 대사는 광주시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들을, 그리고 그날을 잊지 말자.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Posted by 데이드리머